매일성경 묵상
선포한 대로 이루어지다 [왕하 7:3-20]
 – 2024년 09월 15일
– 2024년 09월 15일 –
하나님은 나병 환자 넷을 이용하여 사마리아를 전쟁과 기근에서 구하신다. 이로써 엘리사를 통해 예고하신 말씀을 성취하신다. 아람의 군사들은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큰 군대의 소리를 듣고 도망갔다. 이에 나병 환자들은 아람 군대의 퇴각 소식을 성에 전했고, 백성들은 아람 진영의 모든 것을 취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읍의 기근이 순식간에 해결되었다. 모두가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고 누릴 때, 엘리사의 선포를 조롱한 장관은 저주대로 죽는다.
    
    
    
1. 나병 환자들이 텅 빈 아람 진영을 발견하다(3~8절)
사마리아 성안에서 극심한 기근으로 고생하는 동안 이런 성안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성문 어귀에 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네 명의 나병 환자들이었다. 이들은 부정한 자로 간주되었기에 성안에서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안 사람들이 주는 것을 먹고 살았으나, 성안에 기근이 드니 이들의 사정은 더욱 어려워져 목숨 부지하는 것도 쉽지 않게 되었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사회적 약자가 더욱 고통 받기 마련이다.
    
나병 환자들의 대화는 이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잘 대변한다. 성읍으로 들어가도 식량이 없어 죽고, 성문 어귀에 있어도 어차피 죽을 것이니, 차라리 아람 군대에 항복하여 살려주면 사는 것이고, 죽이면 죽는 것이라는 각오로 아람 진영으로 향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6~7절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진술한다. 주님께서 아람 군대에 말소리, 병거 소리, 많은 군사의 소리를 들려주신 것이다. 엄청난 군대의 진군 소리를 들은 아람 군사들은 이스라엘 왕이 돈을 주고 헷 왕과 애굽 왕에게서 용병을 샀고, 그들이 자신들을 치러 오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느닷없이 들려오는 커다란 진군 소리에 겁을 먹고 큰 군대가 오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아람 군대는 이 소리가 사실인지를 확인할 정찰병을 내보내거나, 군대가 눈에 보이길 기다리며 싸울 전략을 세우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모두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버려두고 급히 도망해 버린다. 저자는 그들이 목숨을 위해 이렇게 필사적으로 도망하였다고 표현한다. 이는 여호와께서 들려주신 군대 소리가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키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할 만큼 크고 위협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이나 나귀나 장막 등을 챙길 새도 없이 몸만 간신히 빠져나간 것이다.
    
아람 군대가 빠져나간 시간은 나병 환자들이 아람 진영으로 출발한 시간이다. 아람 군대와 나병 환자는 같은 시간에 출발하였고, 그들이 진영에 도착했을 때는 아람 군대가 막 사라진 후였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나병 환자들이 출발한 시간에 맞추어 아람 군대를 쫓아낸 것처럼 묘사한다. 나병 환자들은 아람 군대의 진영에서 이 장막 저 장막을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배불리 먹은 후에 금은 의복까지 느긋하게 약탈하는 행운을 누렸다. 죽기를 각오하고 온 아람 진영에서 이런 행운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2. 나병 환자들의 말을 듣고 아람 진영을 정탐하다(9~15절)
배고픔을 해결하고 노략물도 챙긴 후에야 나병 환자들은 정신을 차리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이 좋은 소식을 같이 나누어야 하며, 만일 자신들만 알고 있거나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는 것은 잘못이며, 그랬다가는 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그래서 빨리 가서 왕궁에 알리자고 한다. 이들은 나병 때문에 성안에 들어가 살 수 없었고, 성안 사람들보다 더 죽음의 위협을 당했지만, 성안에 있는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많은 식량을 보고 그들에 대한 연민을 느낀 것이다. 또한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가 발각되었을 때 받을 심판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어찌 보면 나병으로 고생한 환자들이지만, 인간에 대한 연민과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잃지 않았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나병 환자들은 성으로 가서 성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에 문지기를 불러 자신들이 본 그대로 전한다. 문지기는 는 다른 문지기들을 불렀고, 그들은 왕궁 안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 소식을 알린다. 이 소식은 매우 급하고 중대한 소식이기에, 왕은 밤에 일어나 신하들을 불러 상황 파악을 하려고 회의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그대로 있는 채 아람 진영이 비었다는 말을 듣고 왕은 자신들을 성읍에서 유인하기 위한 술책이 아닌지 의심한 것이다. 비록 엘리사가 내일 많은 양식을 얻을 것이라고 예언했으나 왕은 그 말을 믿지 않았기에 나병 환자들의 보고를 믿을 수 없었다.
    
그러자 신하 중 한 사람이 그렇다면 남은 다섯 마리의 말과 사람을 보내 정탐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어차피 지금 남아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끝장난 것이나 다름없지 않으냐는 것이다. 말 다섯 마리를 아낀다 해도 모두 죽을 것 같은 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논리이다.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마찬가지이니 아람 진영에 가보자는 나병 환자들의 말과 유사하다. 이에 왕은 병거 둘과 말을 택하여 아람 군대를 추적하도록 보낸다. 정탐꾼들은 아람 군대를 요단까지 추적하여 정탐하였다.
    
사마리아에서 요단까지는 약 64km이다. 상당히 멀리까지 정탐한 것이다. 아람 군대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요단강을 건너야 하기에 요단까지 추적하였고 그곳에 도착해 보니 아람 사람들이 도망하면서 버린 의복과 병기들이 길에 가득하였다. 이는 아람 군대가 정말 혼비백산하여 몸만 간신히 도망갔다는 것과 그들이 이스라엘 땅을 완전히 떠난 것을 보여준다. 정탐꾼들은 이 사실을 왕에게 알린다.
    
    
    
3. 엘리사의 예언이 성취되다(16~20절)
이 소식을 들은 백성들은 성 밖으로 나가서 아람 진영을 노략질한다. 아람은 여호와의 개입으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이스라엘 땅에서 도망감으로써 전쟁에서 패배하였고, 지금 이스라엘은 싸워 보지도 않고 승리의 노획물을 얻게 된 것이다. 아람 진영에서 많은 곡식을 얻게 되니, 정말 여호와의 말씀처럼 밀가루 한 스아가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가 한 세겔이 되었다. 하룻밤 사이에 생각지도 못한 기적이 사마리아 성에 일어난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온전히 이루어졌다.
    
17절은 여호와의 예언의 두 번째 성취이다. 여호와의 말씀을 믿지 않았던 장관은 성문에서 백성들에게 밟혀 죽는다. 백성들의 발에 밟혀 죽었다는 것은 식량을 얻기 위해 다급히 밀고 나가는 군중에게 떠밀려 죽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18~20절에서 다시 한번 엘리사의 예언이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을 반복하여 강조된다. 이를 통해 왕과 지도자들이 살아계신 여호와의 권능을 믿든지 안 믿든지 여호와께서는 여전히 살아계시며, 그 권능을 행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열왕기는 계속해서 왕들과 지도자들의 불신앙으로 인해 백성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그린다. 본문에서도 왕뿐 아니라 그의 심복도 여호와의 말씀을 의심하였다. 그 결과 왕과 지도자들은 이 처참한 재난 속에서 철저하게 무능했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이 상황에서 좋은 소식을 전한 사람은 사마리아 성에서 버림받은 나병 환자들이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가장 먼저 좋은 소식을 알려주시고 이들의 입을 통해 좋은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나아만 집의 이스라엘 노예 소녀를 통해 구원의 소식을 알려준 것과 유사하다. 지도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버리고 여호와를 버리고 철저히 무능할 때, 여호와께서는 노예 소녀나 나병 환자처럼 사회 주변인의 입을 통해서 자신의 복음을 계속해서 전하신다.
    
    
    
나는?
-우리도 증인이다. 저주의 상징인 나병 환자들이 맨 먼저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현장을 목격하였고 그 승리의 전리품을 누렸다. 가장 자격 없다고 여겨진 성 밖의 사람들이고 자기 살겠다고 대적에게 항복하려 한 배신자들이지만, 하나님은 저주의 현장에 있으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성안의 사람들보다 그들에게 먼저 은혜를 베푸셨다. 접촉하지 말아야 하는 나병 환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승리 소식이 들려왔다. 나병 환자들은 자신들만 승리를 누리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보았으며, 당장 전하지 않고 침묵하면 벌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는 즉시 결행했다.
    
-증인은 본 사람이요, 맛본 사람이다. 전할 것이 있는 자이며, 전하지 않을 수 없는 자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지체들의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승리! “소리” 하나로 아람 군대는 혼비백산하여 도망한다. 병거와 말과 큰 군대 소리가 대적들 가운데 불안을 낳았고, 불안이 불온한 상상을 만들었고, 공포가 그 상상을 현실이 되게 한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만큼 견고하지 않다. 물질(돈)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막강하지 않다. 의지할 데 없어 불안하고 두려워서 더욱 성장의 노예가 되고,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자들이다. 이 모든 것을 다 보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한다면, 승리의 전리품을 취하는 인생이 될 것이다.
    
-해 질 무렵 벌판에서 하늘 군대를 진군시키셨다. 아람 군대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셔서 해 질 무렵에 급히 도망가게 하셨다. 아람 군대는 너무 급하게 철수하느라 군수품과 군량미 등을 그대로 두고 도망했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신다.
    
-믿음을 돌아보게 한다. 왕은 정탐꾼을 보내 확인하고서야 나병 환자들이 전한 복음을 믿었다. 여호와를 기다리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에게는 복음이 복음으로 들리지 않는다. 백성이 노략질을 시작하자 순식간에 물가는 안정이 되었지만, 하지만 하늘의 창을 내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짓밟은 한 장관은 백성에게 밟혀 죽고 만다. 복음의 역사는 인내하며 믿는 자를 통해 역사하며, 그 주변이 승리의 전리품을 누릴 것이다.
    
-이스라엘 왕은 나병 환자들의 소식을 믿지 못했다. 아람 군대가 자기들을 성 밖으로 유인해서 성을 점령하려는 전략이라고 생각했다. 말씀을 들었지만, 믿지 못하고 자기 생각에 붙잡혀 있는 모습이다. 결국 신하의 제안으로 정탐하고서야 인정하게 되었고 백성들은 아람 군대의 진영에서 노략물을 가져와서 엘리사의 예언대로 되었다. 나는 기쁜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하는 마음이 완악한 자는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주님, 기쁜 소식은 먼저 알고 누린 이가 전하는 것을 봅니다. 나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 나라 복음의 기쁜 소식을 먼저 누리고 있으니 이제 전하는 교회 되겠습니다.
*주님, 엘리사가 예언한 대로 되었습니다. 말씀이 이르는 대로 되는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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