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치료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여호와 하나님 [렘 30:12-24]
 – 2024년 07월 09일
– 2024년 07월 09일 –
치료할 수 없는 중한 병에 걸린 사람처럼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혹독한 징계의 심판에 떨어졌다. 허물과 죄악 때문에 치료 약이 없는 불치병에 걸린 예루살렘을 여호와께서 치료해 다시 건강하게 해주실 것이다.
 
예레미야는 포로로 끌려간 유배민들에게 심판을 예언했다. 하나냐와 논쟁하며 2년 만에 돌아온다는 그의 예언을 거부하고, 70년이 지난 후에야 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예레미야가 갑작스럽게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하나냐의 표현을 인용하기도 했다. 또한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의 상처가 치유될 것임을 선언하고, 언약도 맺으신다(22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포로지에서 귀환시킬 뿐 아니라 다시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고 언약을 맺는 분으로 나온다.
 
 
 
1. 시온의 상처와 치료 약속(12~17절)
12~14절은 여호와께서 심판으로 인한 참상을 묘사하신다. 마치 여호와께서 백성을 대신하여 탄식하시는 듯한 인상을 준다. 먼저 시온은 고칠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고 표현하신다. “상처(세베르)”는 직역하면 ‘붕괴, 멸망’인데, 저의 침략으로 인한 멸망을 가리키는 단어로 종종 사용된다. 13절에서는 ‘네 송사를 처리할 재판관이 없다’라고 표현하며 시온이 자신을 변호해 줄 사람조차 구할 수 없는 처참한 형편에 떨어졌음을 묘사한다. 신학적으로 이런 상황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여호와께서 불의한 시온을 치셨기에 변호해 줄 존재가 없는 것이다. 또 시온의 상처를 아물게 할 약이 없다고도 하신다. 이 또한 여호와께서 “원수같이 되어” 시온을 치셨기에 상처의 치료 가능성은 애초에 가능성이 없었다.
 
14절의 ‘너를 사랑하던 자’는 우상보다 정치적인 동맹자들, 특히 애굽을 가리킨다. 역사적으로 보면 시드기야 통치 후반 유다가 애굽의 지원을 기대하고(또는 애굽의 부추김을 받아) 주변 나라들과 연대하여 반역을 꾀하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배반한 유다를 징계하기 위해 원정을 떠나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고립무원의 예루살렘을 돕기 위해 주전 588년 애굽 군대가 개입하지만, 바벨론의 반격에 곧 퇴각하고 유다는 홀로 남겨졌다. 시온의 멸망은 피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된 원인을 14b절에서는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원수가 치는 것처럼 시온을 치셨고 잔인한 자가 징계하는 것처럼 징계하셨다고 표현하셨다. 그러나 시온은 여호와께서 상처를 치료해 주지 않는다고 불만만 토로한다(15절). 시온은 상처의 치료만 바랄 뿐, 상처의 원인에는 관심조차 없다. 시온은 먼저 상처가 악행과 죄에 대한 여호와의 징계임을 깨달아야 했다.
 
여호와는 억압당하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시는 분이지만, 모든 부르짖음에 항상 긍정적으로 응답하시지는 않는다. 시온의 부르짖음은 권리와 보호를 박탈당한 과부와 나그네의 호소와는 전혀 다르다. 자신들의 악행과 죄 때문에 심판을 받은 것이기에 상처를 치료받지 못했다고 여호와께 부르짖을 권리나 자격이 없는 것이다. 시온(유다)에 우선 요청되는 것은 상처의 원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16~17절에서 시온의 중한 상처가 죄악에 따른 징벌임을 알려주신 후 상처 치료에 관한 약속이 주어진다. 치료의 요구할 자격 없는 시온에 원수들의 멸망과 상처의 치료를 약속하신다. 시온의 원수들을 불러 징계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시온을 친 자들을 마찬가지로 징벌하실 것이다(16절). 그들도 시온처럼 멸망 당하고 사로잡혀 갈 것이다. 약탈하였던 그들이 약탈당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치료할 수 없는 중병에 걸린 시온의 건강도 회복시켜 주신다(17절). 시온은 죄로부터 완전히 용서받고, 멸시하던 이방인들의 손에서 다시 구해주신다. 여호와는 시온을 치셨으나 완전히 버리지는 않으신 것이다(11절). 이방인들의 눈에 시온은 자기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버림을 받은 여자(쫓겨난 자)’이다. 그들의 조롱거리가 된 시온의 비참한 운명이 여호와를 움직여 마음을 돌이키게 하신다.
 
 
 
2. 구원 시대의 도래_시온의 회복과 악인의 심판(18~24절)
이스라엘을 심판하셨던 여호와께서 이제 ‘야곱 장막 포로들의 운명을 되돌리신다(18절). 여호와의 가엽게 여기시는 마음, 곧 한량없는 사랑이 시온의 운명을 전환하게 하신다. 마치 어머니가 자기 태에서 나온 자녀에게 베푸는 사랑으로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구원을 베푸실 것이다. 이에 따라 민족들이 침략으로 파괴되어 폐허로 남은 거처와 성읍과 보루가 재건된다. ‘야곱의 장막’은 장막에 거하는 야곱의 후손들을 가리키는 데, 추측하기로 폐허가 된 성읍이나 광야에서 사는 궁핍함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여호와께서 함께하셨던 예전의 광야 시대를 시사해 준다.
 
모든 즐거움과 기쁨을 빼앗겼던 시온이 감사와 기쁨을 되찾는다(19절). 사람들은 여호와의 구원과 땅의 축복을 감사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 시온에 기쁨의 잔치, 특히 혼인 잔치가 끊이지 않고, 다시 거주민이 넘치게 된다. 주변 나라들로부터 멸시를 당하던 시온이 여호와의 축복으로 영화롭게 된다. 야곱의 자손이 옛날처럼 많아지고, 여호와 앞에 굳게 선다(20절). 굳건해진 야곱의 자손은 다시는 여호와를 배반하지 않고 여호와는 자기 앞에 온전히 서 있는 야곱의 자손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신다. 이로써 파탄에 직면했던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된다. 이스라엘은 그분의 백성이 되고, 그분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신다(22절).
 
21절에서는 이스라엘의 통치자를 소개하는데, 이스라엘의 통치자는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나오고(신 17:15), 그에게는 예전 통치자들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신학적) 특권을 준다. “내가 그를 가까이 오게 하리니 그가 내게 가까이 오리라.” 여호와 앞에 가까이 나아올 수 있는 자격은 레위인과 제사장에게만 허락되었기에 구원 공동체의 새로운 통치자는 제사장적이고 중보적인 기능이 주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올 새로운 통치자는 모세나 아론처럼 구원을 중재하는 제사장적인 인물이다. “참으로 담대한 마음으로 내게 가까이 올 자가 누구냐”는 새로운 통치자에 의한 구원 시대가 철저하게 여호와의 은총에 의존적임을 보여준다. 사람이 거룩하신 여호와 앞에 나아가는 것은 목숨을 담보하는 위험스러운(출 3:5; 19:9~25) 일이기에 여호와의 허락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는 제사장적, 중보적 기능이 두어진 통치자에게 여호와께서는 자기 앞에 나아올 수 있는 특권도 허락하셨다는 의미이다.
 
23~24절은 23:19~20과 문자적으로 거의 일치한다. 특이한 것은 동일한 말씀인데, 한 번은 심판을 선포하는 문맥에, 한 번은 구원을 선포하는 문맥에 나온다는 점이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회복(18~22절) 다음에 여호와의 진노가 “악인의 머리 위에서” 휘몰아치기에, 이때 악인들은 전체 이스라엘 또는 예언자들이기보다 회복된 공동체 안에서 악을 행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포로로 잡혀간 유배민들을 돌이키실 뿐 아니라 번영도 약속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결과이다. 하지만 반대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악인은 흔적도 없이 심판하실 것이다.
 
-유다의 병은 가망 없는 죽음에 이르는 것이었다. “싸맬 약이 없다”라는 절망적인 처방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더구나 위로하고 돌봐줄 이가 아무도 없었다. 하나님 대신 의지하고 어울리던 애인들은 그를 잊고 떠났고 친구들(동맹국들)도 그를 버렸다. 모두 크고 작은 유다의 허물과 죄 때문에 생긴 일이다. 참다못해 하나님께서 징계하셨기에 이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소생할 길은 하나뿐이다. 스스로 안 된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여전히 탄식하시며 안타까워하시는 그분께 돌아가야 한다. 죽을힘을 다해 전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기 백성을 고치시는 하나님이시다. 혼자서는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징계하시고 유다를 언약의 동반자가 아니라 원수처럼 대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유다의 원수들을 공격하시고 유다를 치유하시기로 하셨다. “버림받은 자요 아무도 돌보지 않는 시온”이라고 하는 자식을 향한 조롱과 야유를, 자신을 향한 놀림으로 여기시고 악인들을 완전히 심판하실 때까지 분노를 그치지 않으실 것이다.
 
-자기 백성을 건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돌아오게 하실 뿐 아니라 주의 통치를 누리게 하실 것이다. 땅은 번성하여 열방 중에 영화롭게 될 것이고, 부르짖음과 탄식 대신 감사와 찬송이 넘칠 것이며, 넘볼 자가 없게 하시니 안전할 것이다. 감히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만큼 신실한 왕이 다스릴 것이고 언약은 견고하게 설 것이다.
 
 
*환난에 처한 백성을 완전히 회복시키실 것이다(18~20절). 야곱의 장막을 회복하고 야곱의 거처를 불쌍히 여겨 폐허의 언덕 위에 다시 성읍을 세우고 궁도 다시 제자리에 짓겠다고 하신다. 포로에서 돌아왔으나 폐허 속에서 산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경제적인 회복, 정치적인 안정을 약속하신다. 또한 감사의 노래가 터져 나오고, 기쁨의 목소리가 들릴 것이라고 하신다. 그들의 자손이 다시 옛날같이 회복되고 그 회중이 하나님 앞에 굳건하게 설 것이라고 하신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21~22절). 마침내 그의 백성을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게 하신다. 그리고 그중에서 하나님 뜻에 합당한 지도자를 세우실 것을 말씀한다. 간혹 일상에서 “하나님이 내게 관심이 없다”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찾아주신 것이다. 나를 이끌어 주셨다.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할 이유이다.
 
*악인은 철저하게 심판하신다(23~24절). 특히 마음속에서 뜻하신 바를 시행하고 이루실 때까지 그 맹렬한 진노를 그치지 않으실 것이다. 악인은 마지막에 그것을 결국 깨닫게 될 것이라고도 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을 조롱하고 괴롭히는 것은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과 같다. 폭풍과 회리 바람이 나무나 집을 흔적도 없이 날려 버리듯 그렇게 악인을 심판하실 때가 온다. 이 일은 종말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님, 가망 없는 나를 고쳐주시고 건강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욱 하나님 앞에 굳게 서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와 같이 늘 걷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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