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절망 속에서 희망의 밭을 사다 [렘 32:1-15]
 – 2024년 07월 13일
– 2024년 07월 13일 –
본 장은 시드기야 통치 열째 해(느부갓네살 통치 열여덟째 해), 예루살렘 함락이 초읽기에 들어갔을 때, 시위대 뜰에 구속된 예레미야에게 여호와께서 뜻밖의 말씀을 주신다. 고엘의 자격이 있는 예레미야 삼촌에게 밭을 팔려고 조카 하나멜이 찾아올 것을 미리 알려주신다. 국가의 멸망 위기에서 여호와는 예레미야에게 아나돗의 밭을 구매하라고 말씀하신다.
    
본문에서 예레미야에서는 처음으로 그의 동역자 바룩(복받은 자)이 등장한다. 12~14절에서 예레미야는 바룩에게 매매 계약서를 넘겨주고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게 토기에 넣게 한다. 바룩은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로 소개되는데, 렘 51:59에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스라야”가 나오는데, 스라야와 바룩이 형제였던 것 같다. 예레미야 36장에서는 바룩이 “여호야김 제 사년(주전 605년)”에 예레미야와 함께하며 예레미야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불러주어 기록하게 했다.
    
    
    
1. 시대 상황(1~5절)
유다의 역사가 바벨론의 역사와 연동되어 등장한다(1절). 유다 왕 시드기야의 통치 십 년째에 통치한 지 18년째인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의 영향 아래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바벨론 왕이 유다의 마지막 시간을 결정한다. 2절은 말씀이 주어진 때의 외적인 상황을 묘사하는데,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고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에 갇혔다. 예레미야가 언제부터 구금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바벨론 군대가 처음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는 자유로웠다(37:3~5). 하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포위 사이(37:11~16) 또는 예루살렘을 포위한 후 성의 함락이 임박했을 때(38:1~6) 체포된 듯하다. 한 가지 사실은 당시 예루살렘 성의 상황에서는 “왕의 궁중에 있는 시위대 뜰”은 안전한 장소 중 하나였다.
    
3~5절은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히게 된 배경을 보여준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가 성의 패망과 자신의 유배를 선포했다고 그를 시위대 뜰에 가뒀다(37:11~21; 38:1~13). 본문은 시드기야 왕이 인용하는 예레미야의 예언이다. 주된 내용은 시드기야 자신에 관한 예언이었다. 그는 갈대아인들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로잡혀 바벨론 왕 앞에 끌려가 그에게 심문당하고 바벨론으로 잡혀가 여호와께서 그를 ‘돌볼 때까지’ 거기에 있을 것이다(4~5절). 3절은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차지할 것이며’와 5절의 ‘너희가 갈대아인과 싸울지라도 승리하지 못하리라’라는 예루살렘의 멸망에 초점을 맞춘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어도 거짓 구원 예언자들이 여호와의 도움으로 바벨론과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선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의 구원자로 알고 있는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바벨론의 손에 넘겨주기로 하셨음을 분명하게 선포한다.
    
    
    
2. 밭 구매에 관한 예레미야의 보고(6~15절)
여호와께서 계시로 예레미야에게 곧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주신다. “너의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너에게 와서, 아나돗에 있는 그의 밭을 너더러 사라고 하면서, 그 밭을 유산으로 살 우선권이 너에게 있기 때문에, 네가 그것을 사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새번역_7절).” 그리고 여호와께서 알려주신 그대로 일어난다(8절).
    
예레미야는 조카 하나멜의 방문이 여호와의 결정임을 깨닫는다. 하나멜이 어떤 이유에서 삼촌 예레미야에게 땅을 팔려 했는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8절의 “그 밭을 소유할 권리도 나에게 있고, 그 밭을 유산으로 사들일 권리도 나에게 있으니(새번역)”를 통해 추론해 보면 개인 채무로 인해 땅을 넘겨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스라엘에서 가족이나 씨족이 소유한 땅은 상속 재산에 속했다. 그래서 하나멜은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친척 예레미야를 찾아와서 고엘의 권리를 행사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고엘”은 씨족사회에 뿌리를 둔 전통으로 집안의 일원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곤경에 처하거나 종이 되었을 때는 그 빚을 갚아주거나 속량해 주어야 하는 제도이다. 예레미야는 고엘의 자격으로 조카 하나멜에게서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기로 하고 은 칠십 세겔을 달아준다(9절). 세겔은 무게 단위로 1세겔은 11.4g인데, 예레미야는 200g 못 미치는 은을 달아 주고 밭을 사는데 이것이 적당한 가격인지, 또는 전쟁 중이라서 싼값에 사들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10~11절은 통상적인 계약서 작성 과정을 보여준다. 예레미야와 하나멜과 증인들이 계약서에 서명하고 봉인한다. 서명은 주로 이름과 직분이 새겨진 도장이 사용됐다. 매매 계약서는 공간을 기준으로 둘로 나뉜 두루마리에 동일하게 두 번 적고 그 반은 말아 봉인하고 바깥쪽에 서명한다. 다른 반은 필요하면 펴볼 수 있도록 그냥 말아둔다. 계약의 진위가 의심스러울 때는 봉인한 계약서의 봉인을 풀고 조사한다. 매매의 법적 절차가 마무리된 후에 예레미야는 매매 계약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 그 매매 계약서, 곧 봉인한 매매 계약서와 봉인하지 않은 계약서를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넘겨주고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도록 토기에 넣게 한다(12~14절).
    
네리야의 아들 바룩은 주전 605년 이전부터 동역자와 서기관으로 예레미야와 함께했다. 12절에서 “앞에서”를 세 번 사용하여 매매 계약서의 전달과 보관 행위의 공적 성격을 강조한다. 당사자들 외에도 “시위대 뜰에 앉아 있는 유다 모든 사람”이 증인으로 참여한다.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해 토기에 넣어 보관할 뿐만 아니라 증인들도 많기에 예레미야가 하나멜과 맺은 매매 계약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15절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목전에 둔 시점에 행해진 밭의 매매를 “표적 행위”로 해석해 준다. “참으로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사람들이 이 나라에서 다시 집과 밭과 포도원을 살 것이다(새번역).” 유다가 멸망하기는 하지만 영원히 폐허가 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다시 집과 밭과 포도원을 사고팔고 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사람들이 다시 집과 밭과 포도원의 거래 재개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멸망한 자들에게 주어진 구원 약속으로는 너무 소박해 보이기도 한다.
    
    
    
나는?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시위대 뜰에 가둔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는 동안에 일어난 일이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실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이 이미 실현되기 시작했으며, 유다의 운명이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로운데도, 끝까지 시드기야 왕은 그의 입을 막으려고 한 것이다.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어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겠다고 귀를 막은 셈이다. 자신이 해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지하지 못한다. 이는 주님의 뜻을 몰라서가 아니라 내 뜻을 꺾고 싶지 않아서 말씀에 귀를 막고, 충고를 물리치고 기도를 멈추지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예레미야는 더욱 분명한 심판을 선포한다. 예레미야는 예언대로 될 날이 다가올수록 바벨론을 통해 유다가 심판받을 것임을 더욱 분명히 선포했다. 바벨론(갈대아인)을 결코 이길 수 없으며, 최고 권력자인 왕마저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할 것이라고 대담하게 전했다. 자기 목숨을 위태롭게 할 매우 위험하고 듣기 거북한 예언이지만, 서슴지 않고 하나님께 받은 그대로 전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는 메시지다. “심판을 거친 후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계획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왕과 동족들 귀에는 민족을 배반하고, 철옹성 같은 다윗 왕조 사상과 시온 사상을 업신여기는 망언으로만 들렸을 뿐이다.
    
-한편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의 밭을 사서 그의 기업을 물렀다. 그에게는 물려줄 자식도 없고 감옥에서 죽을지도 모를 일이고, 무엇보다도 그의 예언대로라면 이제 바벨론에게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포로로 잡혀갈 텐데도 적지 않은 값을 주고 밭을 샀다. 예레미야 본인에게는 무용지물이 될지라도, 하나님께서 심판 후에 반드시 이 땅으로 돌아와 새로운 나라를 세우시고 이전에 조상들이 누렸던 번영과 영화를 누리는 일상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임을 보여주기 위한 선지자적 상징으로 한 것이다.
    
-그가 하나멜의 기업을 이어주었듯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기업이 되어주실 것이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의 기업을 물러주어 영원한 나라를 살게 하셨다.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을 선포한 예레미야를 고난 가운데 밀어 넣으신다(1~5절). 하나님의 종이 된다고 어려움을 면제받는 것은 아니다. 모든 고난이 불순종 때문에 생기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인간적으로 형통하다고 모두 하나님의 뜻인 것은 아니다. 순종하며 살더라도 고난은 닥친다. 그럼에도 이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말고 반응하고 있는가?
    
*절망 속에서 희망의 밭을 샀다(6~15절). 유다에게 멸망을 선포하셨으나 선지자의 기업 무르기를 통해 유다의 회복을 약속하신 것이다. 이것은 실상 하나님께서 소망 없는 유다를 대신해 기업을 물러주시겠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죄로 인해 사망에 팔린 우리를 대신하여 기업을 물러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크고 크시다.
    
*기업을 물려줄 자식도 없고 이제 곧 포로로 잡혀갈 것이며, 또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한 자신의 선포와도 어긋나는데도 땅을 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 무모하고 무익하게 보이고 여겨지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본 적이 있을까?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밭을 사야 하지 않겠는가!
    
    
    
*주님,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희망의 밭을 사는 예레미야의 순종을 봅니다. 이렇게 순종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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