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바룩을 위로하시다. 거만하기 짝이 없는 애굽을 향해 심판을 선포하시다. [렘 45:-46:12]
 – 2024년 08월 05일
– 2024년 08월 05일 –
45장은 예레미야의 동역자 바룩에게 주어지는 소박한 구원의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바룩이 생각한 ‘큰 일(구원)’은 당신의 뜻에 어긋나는 것으로 허락하지 않으시지만, 그가 어디로 가든지 그의 생명은 지켜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46장부터 51장까지는 민족들에 대한 신탁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민족들의 운명도 결정하시는 분이다. 유다와 예루살렘을 심판하신 여호와께서 민족들도 심판하신다. 
 
 
 
1. 바룩에게 주시는 말씀(1~5절)
예레미야서에서 45장의 위치는 매우 특별하다. 이 장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예레미야의 심판 선포를 마감하고 민족들에 관한 예언(46~51장)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위치한다. 이 말씀은 여호야김 넷째 해(주전 605년)에 주어졌다. 예루살렘 멸망보다 18년 앞선다. 말씀을 받는 대상도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이 아니라 바룩이라는 개인이 받는다. 39장에 등장하는 구스인 에벳멜렉에게 해주신 구원 약속과 함께 개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의 말씀이다. 
 
예레미야의 서기관 바룩은 선지자의 말만 받아 적은 것이 아니라 그의 삶도 따라 살았다. 선지자가 전한 말씀 때문에 고난을 당할 때도 함께 고난당했다. 그는 선지자의 글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적었다. 멸망으로 치닫던 조국을 보면서 아파하던 바룩은 예언을 받아 적으면서 더욱 큰 통증을 느꼈다. 그래서 “중심이 상하고 모든 뼈가 떨리고 취한 사람 같고 포도주에 잡힌 사람 같다(23:9)”던 예레미야처럼 아픔과 괴로움으로 한숨 쉬기에도 지쳐서 평안을 잃었다고 탄식한다. 그러니 이것은 불평도 아니고 원망도 아니다. 불의한 세상에서 여호와의 뜻을 먼저 알아 이해하고 그 뜻대로 살아보려던 의인의 탄식이 홀로 긴 한숨으로 나온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탄식하는 바룩의 한탄에 응답하신다. 바룩의 혼잣말을 들으시고 응답하신 것이다. 이 세상이 나름대로 성실하게, 양심적으로, 정직하게 살아온 내 삶에 정당한 대가를 주기는커녕 아픔과 외면으로 돌려줄 때 혹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에 어긋나는 현실을 보면서 나 혼자 울분을 삭이며 아파하고 탄식할 때, 주님도 그것을 함께 들으시고 일하고 계심을 깨닫게 된다. 바룩의 바람은 이스라엘의 구원이지만 하나님의 뜻은 재난이고 심판이었다.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모든 육체가 다 재난을 당하게 하실 것이다. 
 
하지만 자기 백성을 위해 “큰 일(구원)”을 바라는 바룩의 마음도 꺾으신다. 그렇지만 어디로 가든지 바룩의 생명을 보존해주겠다고 약속하신다. 자기 백성의 멸망을 아파하고 구원을 바란 마음은 귀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심판을 통해 하실 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인정하는 마음일 것이다.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다는 내 기도나 주장을 고집하지 않고 겸허하게 주님의 뜻을 먼저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 
 
 
 
2. 갈그미스에서 애굽의 패배(46장 1~12절)
1절은 46장에서 51장까지 이어지는 민족들의 신탁에 대한 표제이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에 관해서뿐만 아니라 자기 시대 이스라엘과 관련 있는 민족들에 관해서도 여호와의 의지를 선포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운명에 관심을 두시지만, 그의 통치권은 가나안에 한정되지 않는다. 온 땅이 그분의 지배 아래 있다. 하나님께서 민족들의 운명을 결정하시고 땅 위의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민족들의 운명을 결정하신다는 주장은 한편으로 이스라엘이 누구를 의지해야 할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수집한 단락 다음에 민족들의 심판이 수집된 단락이 뒤따른다. 이런 구조는 민족들 역시 동일하게 여호와의 진노에 떨어진다는 메시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2~12절은 갈그미스에서 바벨론에게 패한 애굽에 대한 기사이다. 25:1; 36:1; 45:1에도 등장하는 여호야김 넷째 해(주전 605년)는 바벨론에 의한 칠십 년 통치가가 확정된 해이다(25:11). 또한 예루살렘과 유다의 멸망뿐만 아니라(36장) 유다가 의존하는 애굽의 운명도 결정된 해였다. 당시 고대 근동의 패권이 앗수르에서 바벨론으로 넘어가는 정치적인 혼란기에 애굽은 시리아와 팔레스티나에 대한 전통적인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앗수르를 멸망시킨 바벨론과 메대 연합군은 협정에 따라 통치 지역을 분할하였는데, 원래 앗수르가 차지하고 있었던 티그리스 강 북쪽과 하란을 포함한 시리아 북북 지방, 소아시아 지방과 이란과 아르메니아의 산지 지역은 메대 족속의 통치권에 들어가게 되었고, 앗수르 제국의 서쪽과 남서쪽 지역(메소포타미아와 길리기아, 남부 시리아와 페니키아와 팔레스티나)은 바벨론의 몫이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바벨론이 팽창할 수 있었던 실질적인 출구는 서쪽이었기에 그 지역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던 애굽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3~6절은 애굽 군대가 갈그미스 전투에서 대패하는 모습을 신탁으로 선포한다. 7~9절은 그 갈그미스 전투로 올라가는 애굽 군대의 위용을, 11~12절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애굽의 처참한 패배를 노래한다. 10절은 이 갈그미스 전투를 신학적으로 유일하게 기술하였다. 이를 통해 여호와께서 애굽 왕 느고의 패배를 결정하셨음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애굽 왕 느고를 부추겨 이 전투에 출정하게 한것도 밝힌다(3~4절). 애굽의 갈그미스 원정이 겉으로 보기에는 바로 느고의 결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겨주려는 여호와의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5~6절에서는 애굽 군대가 바벨론의 군대에 궤멸 당하는 것을 묘사한다. 전선이 무너지고 용사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뒤도 돌아보지 못한 채 황급히 도망친다. 하지만 바벨론 군대가 더 빨리 추격하기에 날랜 자도, 용사도 도망하지 못하고 모두 유브라데 강가에 쓰러져 죽는다. 애굽의 대패는 애굽 의존적인 유다의 외교 정책을 비판하는 역할도 한다. 유다가 여호와께서 이미 패배를 결정하신 애굽에 의존하여 여호와께서 세상의 통치권을 일시적으로 위임한 바벨론에 거역하려 한다면 유다의 멸망은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7~8절은 나일강의 범람에 비유하여 애굽 군대의 위용을 기술한다. 나일강이 범람하여 주변 땅을 물로 뒤덮는 것처럼 애굽 군대는 땅을 덮으며 원정을 떠난다. 9절은 말들이 달리고 병거들이 돌격하고 용사들이 진격한다. 애굽 군대와 함께 동맹군(용병)들도 언급되는데, 방패를 든 구스(에티오피아)와 붓(북아프리카 리비아) 사람들, 활을 든 루딤(리디아) 사람들도 함께 진격한다. 또 기병과 병거로 중무장한 뛰어난 용사들이 원정군으로 조직되었다.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할 만 하다. 하지만 민족들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여호와께서 애굽 군대의 패배를 결정하셨기에 모든 준비가 무용지물이 된다.
 
11~12절은 갈그미스에서 애굽의 파멸적인 패배를 기술한다. 그 패배는 회복이 불가능한 패배이다. 길르앗의 유향으로도 치료할 수 없다. 치명적인 병이기에 어떤 약을 사용할지라도 고칠 수 없다. 이 참패의 소식을 민족들이 듣게 되고, 참패를 당한 애굽의 부르짖음이 온 땅에 가득찬다. 
 
10절은 애굽의 패배를 신학적으로 설명한다. 애굽이 패배하는 날이 여호와께서 당신의 원수 애굽에 복수하는 날이다. 여호와의 칼이 배부르기까지 휘둘리고 적들의 피로 흠뻑 적셔진다. 여호와께서 애굽 군대를 희생제물로 잡아 유브라데 강가에서 희생제사를 지내신다. 애굽 군대는 여호와께 드릴 희생 제물로 정해졌기에 살아남을 길이 없어진다. 이렇게 여호와께서 애굽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으신다. 하지만 “보복”이라는 표현을 통해 여호와께서 애굽에 의해 뒤틀린 정의를 세우시는 일임을 드러내신다. 
 
 
 
나는?
-바룩의 한탄을 들으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처럼 우리 마음의 슬픔과 탄식을 들으시고 아신다(45장 2~3절). 바룩은 예레미야의 말을 받아 적으면서 돌이킬 수 없는 유다의 운명과 불안한 자신의 미래를 알고 고통스러워했을 것이다. 그는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영적인 근심이나 아픔이 누구나 있다. 그런데 바룩의 이야기는 이런 근심과 아픔을 하나님이 아시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하나님이 알고 계시니 아뢰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세운 것을 헐고 심은 것을 뽑기도 하시는 절대적인 주권자이시다(45장 4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지만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자(렘 2:21)” 뽑아 버리겠다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성은 영원하리라는 유다의 교만한 생각을 헐어 버리신다. 유다뿐 아니라 온 땅의 일들도 자신의 주권대로 행사하신다. 그러므로 바벨론 유배에서 회복될 날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의 삶이 헐리고 뽑힌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면 절망의 재를 털고 역전의 하나님, 온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일어나야 한다. 
 
-바룩에게 그가 계획하고 있는 “큰 일”을 중단하라고 하신다(45장 5절).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도 재앙이 빗겨 나가기 위한 일을 계획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한 이 재앙은 돌이킬 수 없다. 그래서 재앙의 상황에서 어디에 있든지 바룩의 생명은 지켜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이 말씀을 통해 아무리 선한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고 거스르는 일은 결코 주님의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저 주님께서 행하시는 심기도 하시고 뽑기도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신뢰하며 고통스러운 순간을 인내해야 할 것이다.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다. 
 
 
-하나님은 열국 위에 계시면서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역사의 주인이시다(46장 1절). 세상 질서를 살펴보면 강대국의 부침에 따라 국제 질서가 좌우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의 산물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세상 물정 모르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 하나님 물정을 모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세상의 변화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염려보다 더 염려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애굽이 갈그미스 전투에서 참패를 당할 것을 알려주시면서(46장 2절) 바벨론에게 항복하라는 말씀을 어기고 애굽을 의지하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보여주신다.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을 돌아보며 의지해야 할 분이 오직 하나님뿐이심을 볼 수 있는가?
 
-애굽은 창과 방패와 병거와 갑옷을 갖추고, 용감한 용사를 거느리고, 범람한 나일 강처럼 강하고 거침없는 나라였다. 자신만만하게 호령하며 갈그미스로 나아갔다. 하지만 갈그미스는 약속된 승리가 기다리는 곳이 아니었다. 애굽은 그곳에서 백약이 무효할 정도로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되었다. 북아프리카와 팔레스티나 지역을 호령하던 애굽이 꺾여 버렸다. 그래서 깨닫는다. 결코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이 모든 일은 열국 위에서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섭리였다. 겉으로 보이는 세상 역사는 이스라엘이 주변 강대국의 부침에 좌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태도에 따라 주변 국가들의 흥망성쇠를 정하신 것이다. 세상 변화에 민감한 것도 세상살이의 처세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들을 심고 뽑으시며 역사를 이끄시는 여호와 하나님에게 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것이다. 
 
-자신만만하고 거만하던 애굽 군대를 순식간에 바벨론 군대에게 겁을 먹고 꽁무니를 빼며 도망하는 오합지졸로 만드셨다(5~6절). 애굽 군대의 용맹하고 발 빠른 용사들이 도망치다 붙잡혀 하수가에서 죽임을 당했다. 지금 내가 구비하고 있는 실력과 배경을 믿고 우쭐해 하면 곤란하다. 그런 식으로 오만한 자들은 허풍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마련이다. 그런 어리석은 인생은 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 주신다(10절). 예레미야는 애굽이 갈그미스에서 패한 이유 중의 하나를 요시아의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해하는 자는 누구든지 당신의 원수로 삼을 것이 뻔하다. 
 
 
 
*주님, 바룩의 한탄을 들으신 주님께서 우리의 한탄에도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주님, 나의 고통과 슬픔을 아시는 주님, 이 아픔 때문에 주님의 일을 외면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 자신만만한 세상(애굽)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크신 주님 안에서 자신 있게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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