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돼지 떼의 가치보다 한 영혼이 더 소중하신 주님 [막 5:1-20]
 – 2024년 02월 20일
– 2024년 02월 20일 –
이방지역 데가볼리 지역에서 귀신을 내쫓으심으로 이방지역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 것을 알리고 계신다. 마가는 거라사 광인의 이적을 보도하면서 다른 복음서 저자들과 달리 귀신들린 자의 과거 모습과 치유 이적을 경험하고 난 후의 모습을 자세하게 서술한다. 제자들과 함께 바다를 건넌 예수가 이방 거라사인의 땅에 발을 내딛으신다. 더러운 군대 귀신 들린 자가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 앞에 엎드린다. 그의 입에서 놀라운 고백이 나온다. 군대 귀신은 주님이 허락해 그에게서 나와 돼지 떼에 들어가 바다에 몰살된다. 주민들은 두려워하며 귀신의 반응과 같은 반응으로 떠나주실 것을 요청한다.
    
    
    
1. 거라사 광인과 주님의 만남(1~5절)
거라사는 갈릴리 호수 남동쪽 약 10km 떨어진 데가볼리 지역의 도시이다. 마가는 주님과 제자들이 밤바다를 건넌 후 거라사 지방 해안가에 당도했음을 기록한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저편으로 건너가자(4:35)” 하실 때부터 계획된 여정이었다. 마치 귀신 들린 사람이 기다렸다가 주님을 맞이한 것처럼 묘사한다(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_2절). 그러나 주님의 거라사 지방 방문은 예고 없던 갑작스러운 방문이다. 1:23~24에서는 회당에서 주님께 격렬하게 반응하는 귀신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런 예들을 통해 살필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오심에 대해 귀신은 그 앞에 나오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마가는 귀신들린 자의 상태에 초점을 두고 자세하게 서술한다(3~5절). 먼저 주님을 만나기 위해 귀신은 “무덤 사이”에서 나왔다. 당시 무덤은 귀신들의 처소로 간주하였고 부정한 곳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 지역은 데가볼리 지역, 즉 이방인의 땅이다. 지역 자체도 부정한 땅, 그곳에서도 더욱(?) 부정한 무덤 사이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귀신 들림으로 인해 괴력을 발휘했던 것 같다. 쇠사슬로 묶어 놓아도 소용없었고,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쳤다(5절). 마가는 이 사람의 삶이 매우 비참했음을 상세하게 알려준다.
    
    
    
2. 주님과 귀신(6~13절)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 주님께 나와 덥석 엎드려 절을 한다. 그리고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는 놀라운 고백을 토해 낸다. 1:24에서 등장하는 귀신은 “나사렛 예수,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외쳤었다. 그런데 거라사 광인은 마가복음을 열었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주저 없이 선언한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예수가 누구시며, 주님의 오심이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주님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 자신을 통제하는 분이심을 “귀신같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서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7절; 1:24)” 라고 비명처럼 울부짖는다. 주님의 오심은 그에게 매우 괴로운 일이었다. 그를 파국으로 치닫게 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귀신은 그 사람에 대한 주도권과 소유권을 모두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사탄은 거짓으로 속이는 존재임을 간과하면 안 된다. 주님께서 이미 그에게서 나가라고 명령했기 때문에(8절)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7절)”라고 고백도 한다. 이렇게 괴로워하는 귀신에게 주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물어보신다. 귀신은 그의 이름을 “군대(레기온)”라고 답한다.
    
레기온(군대)은 6,000명으로 구성된 로마의 보병 부대를 일컫는 말이다. 이는 그 사람 안에 많은 귀신이 들어있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귀신은 자신의 이름을 말한 후 자신을 이 지방에서 내보내지 말아 달라고 간청한다(10절). 이는 귀신은 이미 그 사람에게서 나와야만 하는 상황임을 알고 있음을 드러낸다. 주저하지 않고 자신들이 나갈 곳을 지정해서 간청한다. 주변에 돼지 떼가 있었고, 일단 쫓겨나게 되면 귀신들을 새로운 거주지가 필요한데, 돼지 떼에게 들어갈 수 있도록 요청한다(11~12절).
    
주님은 이를 허락하신다. 그런데 더러운 귀신들이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 떼에게 들어가자, 바다를 향해 비탈로 내리달아 몰사한다(13절). 이 사건은 귀신 들린 사람 본인뿐 아니라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귀신이 떠나간 것의 가시적인 증거가 되었다.
    
    
    
3. 거라사 지방 사람들의 반응과 주님의 떠나가심(14~20절)
이 일을 목격한 사람들이 마을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알린다. 그러자 사람들이 이를 확인하기 위해 주님께 나아왔다. 그런데 그들이 발견한 것은 귀신 들렸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해져서 앉아있는 것이었다. 마가는 이와같은 묘사를 통해 귀신 들린 사람의 과거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준다. 사탄의 나라에 있었던 사람과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는 사람의 모습을 비교하려는 듯하다. 한편 사람들은 주님께 자기 마을에서 떠나가 달라고 요청한다. 그들에게는 돼지 떼 이천 마리의 경제적 손실의 타격에 따른 반응이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마을 사람들의 요청에 다시 배에 오르시고 떠나가시려고 했다. 그때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했다(18절). 하지만 주님은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네 집으로 가서, 가족에게, 주님께서 너에게 큰 은혜를 베푸셔서 너를 불쌍히 여겨 주신 일을 이야기하여라.” (새번역_19절) 라고, 명령하셨다. 그는 주님께서 자기에게 행하신 일을 데가볼리에 전파했다. 듣는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겼다.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이적을 행하신 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경고하시던 것과 사뭇 대조된다. 이는 이적들이 행하여진 장소와 관련이 있다. 유대 지역에서는 알리지 말라고 하셨으나 이방지역에서는 전하라고 하셨다. 이는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무엇인지 아시는 주님은 자신의 치유와 축귀 이적이 그들이 오해할 가능성이 있음을 아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방지역은 이런 오해가 생길 가능성이 없다. 그래서 데가볼리에 전하라고 하신 것이다.
    
    
    
나는?
-‘큰 광풍’에 이어 무덤 사이에 거하던 ‘군대’ 귀신에 사로잡힌 광인이 주님 앞에 나아왔다. 마치 아시고 오신 것처럼 큰 광풍을 뚫고 거라사 지방으로 오신 것이다. 주님은 사탄의 세력 아래 종노릇 하는 사람을 풀어주시려고, 유대인이라면 절대 가지 않을 무덤, 돼지 떼들,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셨다. 나는 어떤가? 우리 공동체는 어떤가? 이와같은 주님의 걸음을 뒤따르고 있을까? 혹시 안전하고 쾌적한 곳으로만 가려 하지는 않는가?
    
-주님은 또한 귀신을 쫓아내시고 귀신 들린 자를 온전하게 하신다. 주님께서는 귀신 들린 사람의 인격을 회복시키려는 사랑과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로 사탄의 손에서 그를 건져내시고 온전하게 하셨다.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사탄의 지배 아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귀신들은 주님의 정체에 대하여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을 쫓아낼 권세를 가지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주님의 정체와 능력에 대한 귀신들의 지식은 제자들의 무지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귀신들의 지식은 주님에 대한 순종이나 경배로 이어지지 않았다. 주님을 앎과 고백은 일상에서 순종하므로 드러나야 한다.
    
-거라사 지역 사람들은 주님께 떠나달라고 요청한다. 이들에게는 귀신 들린 자에게 일어난 회복보다 경제적 손실이 더 중요했다. 영혼의 구원보다 재물을 축적하는 데만 관심을 두면 구원받을 기회를 잃게 된다. 나 자신뿐 아니라 공동체가 천하보다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 주님을 본받아 한 사람을 구원하고 회복하는 일에 재능과 재물이 순수하게 사용되고 있을까?
    
-귀신이 떠나가서 온전하게 된 사람은 주님과 함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나 주님은 그에게 자신이 속한 가족에게로 돌아가 주님으로 인해 생긴 변화를 증언하라고 하신다. 증언하는 삶은 주님의 은혜를 경험한 이들이 감당해야 할 고귀한 의무이다. 이 증언으로 주님의 이름이 세상으로 들어가고, 증명된다. 변화된 삶을 통해 주님의 은혜를 증언하는 삶이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삶이다.
    
    
*거라사 지방에 무덤 사이에 거하는 귀신 들린 자는 유명했을 것이다. 누구도 그를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그에게 있는 귀신의 힘은 괴력을 발휘하게 했다. 쇠사슬로 묶었어도 소용없을 정도였다. 그는 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에게서 귀신이 쫓겨나고 온전한 모습을 본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 일을 행하신 주님에게 이 지방에서 떠나가 달라고 요청한다. 주님께서 돌아다니실수록 귀신들이 떠나갈테니 오늘은 이천 마리의 돼지떼 이지만, 내일은 얼마나 더 돼지들이 희생될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귀신에 붙들려 고통받는 영혼은 관심 밖이었다. 그저 내가 취할 수 있는 재물이 손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고 싶었다.
    
*거라사 지방의 사람들만일까? 오늘 우리 시대의 세상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질이 모든 가치의 정점에 우뚝 선 지금, 재물의 유혹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물질 중심의 사고와 선택, 결정이라는 길을 쉽게 선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영혼을 사랑하시는 변치 않는 모습, 하나님 나라가 선명하게 임하였음을 이방인들에게도 차별 없이 증거가 되게 하시는 것이 더 중요함을 잊지 않으시는 주님의 마음에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언제나 가득하여 있었다.
    
*나도 주님께서 보여주신 그 마음과 행동을 닮아가야지…. 귀신의 존재를 연구한다고 그들을 알고 이기는 것이 아니다. 주님을 바로 알아야 사탄과 악한 자를 이길 수 있다. 포악한 귀신의 때는 주님께서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가 임하므로 지나갔다. 지금은 은혜와 회복의 때이다. 두려움의 종이 되지 말고 자유와 확신 가운데 살아가야 한다.
    
 
    
    
*주님, 영혼이 먼저이신 주님의 마음이 내 마음 되게 하겠습니다.
*주님, 상황과 여건, 나의 명분과 소신보다 주님의 교회와 나라, 한 영혼이 먼저인 것에 철저하게 순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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