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베스도의 고민_아그립바 왕과 바울에 대하여 논의하다[행 25:13-27]
 – 2024년 06월 24일
– 2024년 06월 24일 –
바울이 가이사에게 항소할 것을 천명하고 베스도가 이를 수용했지만, 당장 로마로 보내진 것은 아니었다.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자신을 예의 차원에서 방문했을 때 바울에 관한 사건을 이야기한다. 그는 이 기회를 통해 로마 황제에게 보낼 보고서의 내용에 포함할 증거와 자료를 얻으려 한다. 이 기회를 통해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 서게 되고 예수가 바울을 부를 때 하셨던 말씀처럼 세상 임금 앞에서 복음을 전하게 된다. 바울이 가장 거대하고 막강한 권력 집단(정치, 군사) 앞에 선다. 그를 죽이고자 하는 유대 종교 권력과 그의 무죄 선고를 꺼리는 정치권력이 각자의 방식으로 작동하는 듯 하지만 실상 그 모든 권력은 바울을 로마로 보내시려는 성령의 능력에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바울의 운명은 성령이 쥐고 계신다. 권력자들은 다만 바울의 입술에서 복음을 듣는 기회를 얻고 있을 뿐이다. 
 
 
 
1. 아그립바 왕이 총독 베스도를 예방하다(13~22절)
바울이 가이사에게 항소 하면서 로마법에 따라 베스도가 기소 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이 때문에 바울이 당장 로마로 호송되는 것은 아니었다. 13절에 등장하는 아그립바 왕은 헤롯 아그립바 2세로서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이다. 아그립바 1세는 야고보 사도를 죽이고 베드로까지 처단하려다가 주의 사자가 치므로 벌레에 먹혀 죽었던 장본인이다. 당시 로마는 아그립바 2세를 팔레스타인 북동쪽을 다스리는 분봉왕으로 세웠다. 또한 그에게 대제사장 임명권을 주었다는 사실은 로마가 그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보여준다. 아그립바는 종교적인 면에서 신실한 유대교 신자였고 유대교와 관련된 문제에 있어 상당한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끝난 유대 전쟁에서 로마의 편을 들었다. 버니게는 아그립바 왕의 한 살 어린 누이동생이다. 벨릭스의 아내 드루실라도 아그립바의 누이동생이다.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에게 바울의 기소 사건과 관련해 자문을 구한다. 이것은 베스도 역시 바울 기소 건은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문제라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14~21절은 누가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베스도가 아그립바 왕에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정리했다. 특징은 바울의 기소 사건을 로마인의 관점에서 들려준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킨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음모를 꾸며 무고한 사람을 처단하려는 것을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의 법이 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오늘날 한국사회와 교회는 어떨까?
 
베스도는 부임 직후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처음으로 이 사건을 접했다. 그때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바울 건을 다시 들고 나왔고 바울을 처벌하여 주기를 원헀다. 하지만 베스도는 이러한 일방적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철저하게 로마법에 근거하여 피의자가 기소 내용을 듣고 반론을 제시할 수 있는 공정한 재판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벨릭스 재임 기간에 어떤 일이 있었든지 간에 정의를 실현한다는 차원에서 이 사건을 다시 다룰 수 밖에 없었다. 베스도는 유대 지도자들이 도착하자 마자 바울을 “지체하지 아니하고” 소환한다. 그는 유대 지도자들의 강력한 처벌 요구하는 것을 보며 바울이 매우 심각한 죄를 범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원고들이 일어서서 바울의 죄목을 늘어놓았지만, 베스도가 생각했던 죄목은 하나도 제시되지 못했다. 베스도는 이 문제의 핵심이 “자기들의 종교”에 관한 것임을 깨닫는다. 헬라어 원문은 “자기네들 종교”라는 다소 비하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슈는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부활했다는 바울의 주장이었다. 이로 인해 바울이 성전을 더럽혔다는 혐의는 문제의 핵심에서 사라지고 부활이라는 주제가 문제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렇기에 베스도는 부활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는 바가 없었고 어떻게 부활이라는 주제가 고발의 대상이 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명을 하게 된다. 베스도는 이 사건이 핵심이 유대인들의 신앙과 관련이 있고 구체적으로 예수라는 사람이 죽었는데 다시 살아났다는 바울의 주장에 있다고 판단했다. 베스도는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열 것을 바울에게 제안한다. 표면적인 이유는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25:9)”였다. 하지만 아그립바 왕과 사적인 대화의 자리에서 자신이 이 제안을 하게 된 동기는 피의자를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망설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베스도도 무죄 판결을 내려 바울을 석방하기를 꺼려 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바울은 베스도 총독의 제안을 거부하고 로마 황제에게 항소하기로 결정했다. 로마 정부가 자신을 보호해 주기를 원하면서 로마의 최고 사법 기구가 자신에게 무죄 판결을 내려 자신의 신앙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전파할 수 있도록 해주기를 원했다. 아그립바 왕은 자기도 바울의 진술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원한다는 뜻을 전한다. 
 
 
 
2. 베스도의 판결(23~27절)
아그립바는 바울에 대한 소식을 대충 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전임 총독 벨릭스의 아내 드루실라가 자신의 친누이였기에 때문이다. 베스도는 아그립바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튿날 곧바로 대면이 이루어졌고 아그립바는 누이 버니게 뿐 아니라 천부장들과 도시의 고위 인사들도 동석시킨다. 
 
누가는 바울이 주님께서 누가복음 21:12에서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가려니와”라고 하신 말씀과 사도행전 9:15의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는 말씀을 성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베스도는 자신의 소견으로 바울은 사형에 처할 만한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밝힌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 황제에게 항소하였으므로 그를 로마로 보내기로 결정했노라고 덧붙인다. 또한 26절을 통해 바울을 아그립바 왕을 비롯해 여러 고위 인사 앞에 세운 이유를 설명한다. 그는 이 심문을 통해 바울을 로마 황제에게 보낼 때 피고인에 대한 죄목을 좀 더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는 증거와 자료를 얻으려 한다고 말한다. 겉으로 보기에 자신의 임무에 매우 충실한 듯 보이지만, 결국 죄수를 보내면서 혐의가 없다는 보고서를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잘 알고 있기 자신의 안위를 위한 염려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베스도는 진리보다 실리를 택한 사람이다. 바울에게는 문제 삼을 만한 죄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각하지 않고 “어떻게 심리할지 몰랐다”고 발뺌하는 무책임함을 드러낸다. 더구나 예루살렘 공화 재판에 떠넘기려고 까지 했다고 밝힘으로써 자신의 직무유기를 스스로 인정하고 만다. 그는 힘없는 바울 한 사람보다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 다수를 만족시키려고 한 사람일 뿐이었다. 
 
-벨릭스에 이어 베스도까지 정치적인 고려에 따른 결정들을 연이어 함으로서 바울이 권력자들의 허세와 직무유기의 희생자가 된 듯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를 통해 왕 앞에서 복음을 증명하게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셨다(9:15).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권력자들이 아니라 죄수의 신분으로라도 묵묵히 복음을 증거하는 이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어가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수치스러운 영화의 자리보다, 영광스러운 수치의 자리를 선택하는 삶이어야 하겠다. 
 
-베스도는 겉으로 보기에 법치를 존중하는 듯 보이지만 거짓의 사람이었다. 그는 왕과 높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법치주의에 충실한 사람인지를 자랑한다. 또한 바울을 죽일 만한 죄가 없다는 것을 그에게 밝혔는데도 바울이 상소하여 어쩔 수 없이 로마로 보내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본문에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가이사랴에서의 바울은 “억울함” 가운데 있었다. 그의 무죄는 확실했으나 총독의 정치적인 실리 추구때문에 희생양이 된 듯 보인다. 그런데 바울은 “억울해” 하지 않는다. 무죄인 자신을 벨릭스와 베스도, 아그립바는 연이어 심문 자리에 세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자신의 삶이 결정 당하는 억울한 상황을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었다.
 
*만약 바울이 자신의 로마 시민권으로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않았다면 이런 상황은 예루살렘에서 반복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유대지도자들이 공모하고 있었던 것처럼 암살을 당하거나 예수님처럼 억울하게 처형당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무죄임에도 가이사에게 항소한 것이다. 이로 인해 로마로 갈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을 죄수의 신분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왜 그랬을까? 결국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서 복음을 증거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바울이 이방인 선교에 집중할 때 그는 당시 대도시에서 전략적으로 복음을 증거했다. 그것도 교통의 요충지가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그는 사람들이 왕래하고 모여드는 곳의 중요성을 알았다. 그런 도시에서의 사역은 복음을 듣고 지역으로 돌아가 복음을 전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정착하게 만들었다. 동일한 이치였다. 지도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비록 죄수의 신분으로라도 감당하려는 이유는 그런 이들에게 평범한 시민이 복음을 전할 기회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당시 로마 황제에게 항소하여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변론의 시간에 복음을 드러내고자하는 마음을 굳힌 것이다.
 
*자신의 계획은 로마 교회의 후원을 받아 스페인 전도를 꿈꿨지만, 가이사랴에서의 2년은 성령께서 그 꿈을 지도하신 기간이었으리라. 황제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바울은 자신의 무죄판결과 바꾼 것이다. 이런 마음이 충분히 억울한 상황에서 억울해 할 수 있는 그가 억울해 하지 않았던 것 아닐까?
 
*바울 그는 참으로 사명자가 맞다. 억울한 상황 속에도 억울한 감정에 휘둘리기 보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마음을 집중 시켰을 그가 위대해 보이는 아침이다. 나는 어떨까? 목회의 과정에서 무수한 억울할 법한 상황을 직면하는데, 그로 인해 마음 아파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이 바울의 의연한 모습과 선명하게 비교된다. 목회자에게 생기는 억울한 일은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고 하나님 나라 복음이 드러나는 좋은 기회일 것을 믿음으로 붙잡고 억울한 감정에 함몰되지 않아야 되겠다.
 
 
 
*주님, 예나 지금이나 정치가들의 협잡이 문제입니다. 상황과 관계에 얽매인 판결이 아닌 공의로운 담대한 결정이 그립습니다. 
*주님, 억울한 상황은 도리어 복음이 드러나기 위한 확실한 기회임을 믿고, 억울함에 마음을 뺏기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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