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13에서 바울은 두려워하는 디모데에게 용기와 격려를 해주었다. 이에 반해 2:14~4:8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주는 실천적이고 목회적인 권면이 이어진다. 이 중에서 본문은 디모데가 불의한 거짓 교사들과 구별되는 복음의 참된 일꾼으로 인정받는 자가 되도록 권면하고 있다.
거짓 교사들의 특징은 헛된 논쟁으로 말다툼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은 진리를 추구하는 건설적인 토론이 아니라 복음을 왜곡하여 성도들을 망하게 하는 것이다. 악성 종양처럼 신속하게 퍼져서 성도들의 믿음을 파괴한다. 바울은 그런 자들을 어떻게 상대하는 것이 지혜로운지 디모데에게 충고하고 있다.
1. 헛된 논쟁을 버리고 인정받는 일꾼이 돼라(14~19절).
바울은 두려워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담대하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자가 되라고 격려했다. 바울은 이제부터 실제로 거짓 교사들을 대하는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에베소 교회에 가장 시급한 것은 성도들 사이에 퍼져 나가고 있는 말다툼을 그치게 하는 일이었다. 물론 말다툼의 근원은 거짓 교사들의 헛된 논쟁이었다. 그것은 진리를 깨닫게 하는 건설적인 것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하고 도리어 듣는 자들이 망하게 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령하여 헛된 논쟁을 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령하라는 말은 그러한 논쟁은 잘못이며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깨닫게 하라는 뜻이다.
이어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씀을 옳게 분별하고 부끄러운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힘쓰라고 명한다(15절).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꾼의 조건은 두 가지다. 첫째,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디모데는 배우고 확신한 가운데 거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딤후 3:14). 둘째, 부끄러운 것이 없는 일꾼이 되는 것이다.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이란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사는 자를 가리킨다. 아무리 말씀에 대해 지적으로 알고 잘 알고 있다고 해도 삶과 인격에서 경건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16~18절에서는 바울이 거짓 교사들이 어떤 자들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먼저 거짓 교사들은 망령되고 헛된 말을 하는 자들이다. ‘망령되고 헛된 말’이란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가리킨다. 진리의 말씀과 반대되는 말이기도 하다. 망령되고 헛된 말은 성도들을 점점 더 불의한 길로 나아가게 한다. 이런 거짓 교사들의 말을 바울은 질병에 비유한다. 암을 치료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온몸에 퍼져서 생명을 잃게 하듯이 거짓 교사들의 암적인 가르침을 당장 중단하지 않으면 공동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대표적인 암적인 존재의 예로 “후메내오와 빌레도”를 언급한다. 그들은 에베소 교회의 이단적인 지도자들이었다. 그릇된 종말론과 부활에 대한 가르침을 전했다. 그들은 영지주의적인 가르침에 물든 자들이었고 바울이 선포했던 부활의 교리를 왜곡했다. 육체의 부활을 부인하고 영적인 부활을 주장하면서 자신들은 이미 영적으로 부활한 존재라고 자랑했다. 이러한 사상은 육체로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의 중요성과 가치를 소홀히 여기도록 만들고 반대로 정욕적이고 불의한 삶을 살면서도 스스로 영적이며 이미 구원받았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였다.
19절에서 디모데는 자신이 진리의 터 위에 굳게 서 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침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굳게 믿음으로 담대하게 거짓 교사들에게 맞서야 함을 권면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침받은 증거는 두 가지다. 첫째,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알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이는 민수기 16:5를 인용한 말인데, 반역자 고라가 스스로 제사장의 직분을 취하려고 할 때 모세가 그들에게 한 말이다. 하나님은 누가 참된 제사장인지 스스로 알고 계시기에 하나님의 판단에 맡기자는 말이었다. 바울은 디모데가 인침을 받은 자라고 확신한다. 둘째, 그가 불의에서 떠난 것이다. 이 말도 민수기 16:26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불의에서 떠나라”라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모세는 회중에게 고라 일당으로부터 떠나라고 명령했는데, 불의한 고라에게서 떠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에 대한 표시가 된다.
즉, 19절의 요지는 후메내오와 빌레도 같은 거짓 교사들로부터 떠나는 자들이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라는 뜻이다. 이 두 사람은 고라와 같은 반역자들이며, 그들과 함께하는 것은 고라와 함께 멸망했던 반역자의 일당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2. 깨끗한 그릇에 대한 비유(20~26절)
20~21절은 그릇에 대한 비유를 통해 디모데에게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되라고 권면한다.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되려면, 이단적인 가르침에서 떠나 자신을 깨끗하게 지켜야 한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귀한 그릇이 되어 모든 선한 일을 위해서 쓰임 받게 될 것이다.
22절은 바울이 디모데가 귀하게 쓰임 받는 깨끗한 그릇이 되기 위해 피해야 할 것과 추구해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한다. 먼저 청년의 정욕으로부터 피해야 한다. 정욕적인 삶은 거짓 교사들의 대표적인 삶의 특징이다. 그런데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은 이성적인 판단보다 본능적인 욕구에 따라 행동하기 쉽다. 아직 젊은 디모데는 이것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 “피하라”는 명령은 “도망하라”는 뜻이다. 마치 나를 사로잡으려고 다가오는 정욕으로부터 도망가듯이 적극적이고 긴급한 태도로 피해야 한다. 대신 추구해야 할 것이 있다. 디모데는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붙잡기 위해 쫓아가야 한다. “따르라”라는 말도 놓치지 않기 위해 추격해서 붙잡으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것들을 추구하면서 디모데는 깨끗한 마음으로 주를 부르는 자들과 함께 추구해야 한다. 혼자만의 거룩함과 경건이 아니라 다른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추구해야 한다.
23절은 어리석은 변론을 버리라고 권면한다. 14절에서 말다툼하지 않도록 금하라고 했던 것이 연결된다. 그런데 14절은 다른 사람들에게 말다툼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만, 23절은 디모데에게도 그러한 어리석고 무식한 논쟁을 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그것은 다툼을 생산하는 것이지, 디모데가 추구해야 할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24~26절에서 바울은 목회자로서 디모데가 해야 할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가르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먼저 다투지 말고 모든 성도들을 온유하게 잘 가르쳐야 한다. “다투는 것과 온유한 것”은 대조되는 덕목이다. 다툼은 거짓 교사들의 특징이지만, 디모데는 온유함으로 가르쳐야 한다. 둘째로 가르침의 대상 중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거역하는 자들에 대해서 설명한다. 거역하는 자들도 온유한 마음으로 훈계해야 한다. 훈계에는 책망의 의미가 들어있다. 그 책망은 미워함과 정죄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온유함에서 나오는 책망이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그들이 진리를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훈계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할 수도 있다.
잘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생각에서 깨어나 올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하는 일이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이 술에서 깨어나게 하듯이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들이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하는 일이다.
나는?
-교회 지도자들은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여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쓸모없는 말싸움을 금지해야 한다(14~18절). 바울 당시나 지금이나 이단들은 끊임없이 복음을 왜곡하여 성도들의 믿음을 무너뜨리기에 열심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일꾼들은 하나님 말씀에 깨어 있어 성도들이 진리에 이르도록 그 길을 곧게 해주어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기 위해 애쓰고 힘쓰고 있는가!
-바울은 디모데에게 “담대하게, 올바르게” 가르치라고 권면한다. 에베소 성도들이 거짓 교사들처럼 망령되고 헛된 말을 주고받으면서 다투지 말도록 엄히 명령하게 한다. 다툴수록 그들처럼 더욱더욱 경건치 않은 사람이 되며, 그들의 헛된 말들이 악성 종양이 온몸에 퍼지듯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두루 퍼져서 공동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사람은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다루고 범사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성도다. 입술의 고백이나 결연한 다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 대신에 복음의 진리를 전하고, 복음을 조롱하는 세상에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그 복음을 위한 고난의 삶에 나설 때, 주께서 우리를 인정하시고 받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교회의 든든한 기초를 세우고 말씀으로 보증해 주신다(19절). 그러므로 교회 안에 헛된 말을 하는 자들의 가르침이 결단코 교회를 흔들 수 없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아시고, 그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불의에서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교회를 흔드는 세력이 있지만 우리를 아시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계속해서 우리를 확실하게 지켜 주실 것이다.
-또한 거짓(교사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성도들을 대할 때는 “온유하게” 대하라고 명령한다. 에베소의 거짓 교사들은 이미 영적 부활이 일어났고 몸의 부활은 없으니 방종한 삶을 살아도 된다는 가르침으로 성도의 믿음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언제까지든지 안전할 것이다. 하나님은 누가 자신의 참 백성인지 아신다. 그러니 입술로만 주의 이름을 부르지 말고 불의에서 떠나야 한다. 거짓에 대해서는 단호해야 하지만, 거짓에 물든 사람을 대할 때는 온유해야 한다. 온유하게 가르치고 온유하게 훈계해야 한다. 진리를 지키려고 사랑을 포기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한 영혼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사랑에서 온유가 나오고, 거기서 회개와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
-불의를 떠난 하나님의 백성은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고 선한 일을 위해 잘 준비된 귀한 그릇과 같다. 그들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믿음, 사랑, 화평을 좇는 삶을 통해 정결함과 거룩함을 지킨 성도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에 휩쓸리지 않고 진리 안에 거한 성도다. 더 큰 그릇이 아니라 거룩한 그릇이 귀하게 쓰임 받는다.
-하나님께 귀히 쓰임을 받으려면 무엇보다 자기를 깨끗하게 해야 한다. 청춘의 욕망을 피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믿는 자들과 교제하며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추구하며 살 때 우리 자신을 순전하게 지킬 수 있다(20~22절).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나는 누구와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고 있는가?
-복음의 일꾼은 모든 사람을 친절히 대하며 싸우지 말아야 한다(23~25절). 사람을 온전케 하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사나우면 어떻게 되겠는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전에 나부터 먼저 말씀으로 변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복음을 거스르는 자들을 회개케 하셔서 진리를 깨닫게 하신다(25~26절). 진리를 알고 돌이키는 것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귀에게 붙잡혀 있는 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과 함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할 것이다.
*주님, 거짓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담대하게, 거짓에 빠진 자들에게는 온유함과 올바름으로 대하고 가르치겠습니다.
*주님,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고 부끄러움 없는 일꾼으로 인정되어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