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디모데가 성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 논의한다. 1~2절에서 전체적인 권면을 한 후에 3~16절에서는 과부의 문제에 집중한다.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 함께 살아 나가야 할 방식에 대한 바울의 실제적인 권면을 볼 수 있다. 디모데는 모든 교회 구성원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아직 “연소한” 디모데는 자기보다 연장자인 사람들뿐 아니라 비슷한 나이의 교인들과도 적합한 관계를 통하여 그의 리더십을 확립해야 한다. 디모데가 해결해야 할 문제의 중심에 교회 안의 과부들 문제가 있었다. 그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한 바울의 권면은 대단히 구체적이며 초대교회의 상황을 잘 드러낸다.
로마의 법 제도는 만약 결혼할 때 지참금이 지급되었을 경우, 남편을 잃은 과부를 돌볼 책임은 새로운 가장(보통 아들이 된다)이 지게 되어 있었다. 만약 아들도 없고 가정이 완전히 붕괴한 경우, 집을 팔아서 형성된 재산으로 지참금을 되돌려 받고, 과부는 자기의 부모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만약 지참금이 지급되지 않았고 과부가 돌아갈 부모도 없게 된 경우, 그녀가 사는 도시에서 돌볼 책임이 있었다. 실제로 당시 이 법이 잘 집행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많다. 본문에서 바울이 권하는 것은 로마의 법에 의지하기보다는 교회 공동체가 과부를 돌볼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1. 교회 안의 여러 대상을 향한 태도(1~2절)
1~2절은 남자 성도들을 향한 디모데의 태도에 대한 권면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보다 나이 많은 성도를 훈계해야 할 때는 매섭게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권면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꾸짖다”에 해당하는 단어, “에피플레이쏘”는 매서움과 엄격함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그들을 권면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마치 아버지를 대하듯 권면하여야 한다. 즉, 당시 문화에 걸맞은 어른을 향한 합당한 존경을 보이라는 의미다. 한편 젊은 남자들은 “형제처럼” 대하고 사랑하되 내려다보이는 태도로 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2절은 나이 든 여자 성도들에 대한 태도다. 나이 든 여자 성도들은 어머니에게 하듯, 젊은 여자 성도에게는 자매를 대하듯 해야 한다. 바울도 로마에 있는 루포의 어머니를 지신의 어머니처럼 대했다(롬 16:13). 특히 자매들은 “온전한 깨끗함(성적인 순결)”으로 대해야 한다.
바울의 개념은 교회를 가족으로 보는 것이다. 나이 드신 분들은 존경하는 태도와 애정, 온유함으로 대하고, 같은 세대 사람들은 평등하게 대하며, 이성 간에는 절제와 순결로 대하며, 이 모든 사람을 한 가족 구성원으로 묶는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성도들을 가족처럼 대하라는 권면이 인상적이다.
2. 과부(3~8절)
1세기에는 어떤 도시든지 많은 과부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사춘기를 막 지난 어린 여자아이들이 자기보다 훨씬 나이 많은 남자들과 결혼하는 것이 성행했으며, 잦은 전쟁으로 인해 남자들의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젊은 과부들이 어디에나 넘쳐났다.
구약에서 볼 수 있는 과부에 대한 배려가 초대교회에서도 계승되었는데, 사실상 교회 공동체의 중요한 사역 중이 하나가 과부에 대한 도움과 배려였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사역이었다. 교회에는 공식적인 과부 명부가 있었고 그것을 관리하는 것은 가르치는 사역과 함께 교회 지도자의 중요한 임무였다. 특히 에베소 교회는 거짓 교사들의 훼방과 외부 대적자들의 공격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가족을 잘 세워나가는 것과 관련하여 교회 안의 중심 문제였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참 과부”를 걸러내어 그들을 “존대”하는 것이다. 과부를 재정적으로 돕는 일은 우선 친족들의 몫이지만, 친족이 없는 과부는 교회가 책임지는 것이 원칙이다. “참 과부”라는 표현은 본문에서 세 번 등장한다(3, 5, 16절),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거나 지참금이나 자신을 돌봐줄 친척이 없는 궁핍한 과부를 의미한다. 즉, 참으로 도움이 필요한 과부가 참 과부다. “존대”는 인격적인 존중과 감정적인 지원을 넘어서 재정적인 도움까지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4, 8, 16절). 한편 자녀나 손자가 있는 경우에는 그들이 과부를 돌보아야 한다고 기록한다(4b절).
고대 사회에서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덕목이다. 만약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도리를 다하지 않으면 불신자보다 “악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8절). 바울은 가족 간의 돌봄과 사랑을 당연한 보편적인 진리로 간주하고, 교회를 이상적인 “하나님의 가족”으로 표현하고 있다.
바울은 과부를 세 그룹으로 분류한다. 참 과부는 60세 이상으로 재혼할 수 없고 자기 가족에게서 돌봄을 받지 못하지만, 경건한 과부들(3, 5~7, 9~10절)이다. 또 자녀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과부들(4, 8, 16절)과 아직 젊어서 재혼 가능성이 있는 젊은 과부들(11~15절)로 나누었다. 한편 참 과부는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주야로” 기도와 간구에 힘쓰는 자들이며, 향락에 빠져 영적으로 죽은 과부들과 대비되는 사람들이다. 이런 과부들은 공동체가 돌봐주어야 한다.
3. 젊은 과부(9~16절)
과부 명부에 올리기 위한 조건이 셋 있다. 연로함, 결혼 생활의 신실함, 선행이다. 첫째 명부에 올릴 과부는 60세 이상으로 한 남편의 아내였어야 했다. 한 남편의 아내가 필요조건이 되는 이유는 두 번 이상 과부가 된 사람들은 여러 번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조건은 재혼을 금한다기보다는 가정생활에 대한 신실함을 보라는 의미겠다. 또한 선한 행실의 증거가 필요했다. 구체적인 선한 행실의 항목으로는 자녀 양육(자녀가 사춘기를 지날 때까지 양육해 주는 것이 당시 부모의 의무), 나그네 대접(이것은 과부뿐 아니라 지도자의 덕목이었고, 모든 성도들의 덕목이기도 했다), 성도들의 발 씻김(이것은 보통 노예들이 하던 일, 하지만 겸손과 손님의 환대를 상징)이다. 또한 환난당한 자들을 향한 구제, 이런 행실의 증거가 있는 과부들만이 공적인 명부에 등재되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과정으로 과부 명부에 올라 인정받은 교회의 일꾼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젊은 과부들은 이 명부에 등재될 수 없었다. 그 이유로는 그들이 정욕에 이끌려 재혼할 가능성이 있고(11~12절), 그렇게 되면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젊은 과부들을 명부에 올리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이 과연 봉사의 책임에 전심을 기울일 수 있을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오히려 봉사의 책임보다 집마다 돌아다니며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여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을 것이다. 바울의 표현을 통해서 실제 이런 일이 공동체 안에서 빈번하게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바울의 권하는 해결책은 그들이 정당하게 재혼하여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는 것이다(14절). 젊은 과부들은 재혼하면 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에 게으르고 망령된 폄론을 하며 돌아다닐 수가 없게 되고 자연스럽게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주지 않게 된다. 그래서인지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일을 적극적으로 감당하라고 권면한다. 이미 사탄을 따라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15절). 하지만 재혼할 형편이 안 될 경우, 교인 중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성도가 과부들을 도와주어야 하고 교회에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권면한다(16절).
이와 같은 바울의 권면을 통해 과부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교회가 돕지 않았으며, 교회의 구제는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주어졌음을 알 수 있다.
나는?
-바울은 젊은 디모데에게 나이와 성별에 따라 성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가르친다. 나이 드신 분은 부모를 대하듯 공경하는 태도로 정중하고 온유하게 대하고, 젊은이는 형제처럼, 젊은 여인은 자매를 대하듯 온전히 깨끗함으로 대하라고 권한다(1~2절). 이처럼 지도자는 교회 안의 성도들을 돌보고 사랑하고 책임져야 할 가족처럼 대하고 섬겨야 한다. 외연을 확장하느라 성도를 사랑으로 돌보지 못하거나 종교적인 일에만 몰두하다가 이웃사랑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비록 궁핍하고 늙고 외로우나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기도하며 사는 경건한 과부를 홀대하지 말고 존대해야 한다. 향락에 빠져 영적으로 죽은 자와 다름없이 사는 과부는 경책하며 “책망받을 것 없이” 살도록 도와야 한다(3, 5~7절). 주님 뵐 날을 소망하며 늘 자신을 살피고 석양만큼이나 아름답고 기품 있는 신앙의 노년을 맞이해야 하겠다. 우리 공동체도 홀로된 지체들에 관해 관심을 기울이며 돌아보아야 하는 것도 물론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지….
-바울은 디모데에게 늙은이는 아버지를 대하듯 하고 늙은 여자는 어머니를 대하듯 하고, 젊은 여자에게는 자매를 대하듯 하라고 권면한다. 한마디로 가족을 대하듯 성도들을 대하라는 뜻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지도자라고 해서 지나치게 위압적인 권위를 행사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성도들은 육적인 가족만큼이나 끈끈한 돌봄과 관심을 주어야 할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
-과부에게 가족이 있으면 그들이 먼저 돌보게 해야 한다. 이것은 자녀와 친척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이며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는 일이다. 또한 교회가 정말 궁핍한 자를 도울 수 있도록 그 짐을 덜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십자가의 사랑을 말하면서도 이 일을 게을리한다면 그는 스스로 믿음을 부정하는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이다(4, 8, 16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종교와 사랑에 대한 담론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의 필요를 살피는 눈과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마음, 나눔을 행하려는 의지와 실천하는 손과 발이다.
-과부 명부는 60세 이상으로 가정에 충실하고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는 이들만 올렸다(9~10절). 그들은 도움을 받을 뿐만 아니라 지난 삶의 경험을 토대로 교회를 돕도록 부름을 받았다. 걱정 없는 노후를 사는 것은 축복된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값진 것은 부르신 사명에 충성하면서 주님 뵐 그날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에베소 교회 안에는 과부가 많았던 것 같다. 당시에는 전쟁이 잦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교회는 오갈 데 없고 기댈 데 없는 과부들의 가족이 되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돌볼 가족이 있으면 그 가족에게 맡겨야 하고 젊은 과부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다시 잘 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교회는 자비를 베풀되 잘 분별하여서 해야 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대로 해주어야 할 것이다.
-성도들을 가족처럼, 사랑을 행하되 질서 있게….
*교회는 다양한 나이와 직업을 가진 이들이 모인다. 지역,학력, 능력이 다 제각각이고 취향도 다양하다. 이렇게 모여 공동체를 이루어 간다는 것은 기적같은 일이다. 국가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듯, 교회도 당연히 교회안의 약자들을 돌봐야 한다. 바울은 그 일을 가족에게 하듯 하라고 권면한 것이다.
*주님, 우리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의 관심과 사랑에서 제외되는 이들이 없도록 잘 살피며 섬기겠습니다.
*주님, 성도들을 가족처럼 대하라는 바울의 권면이 깊이 와 닿습니다. 위압적이고 권위적이지 않아야 함을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