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장로들과 노예들에 대한 자세 [딤전5:1-17-6:2]
 – 2024년 11월 09일
– 2024년 11월 09일 –
과부에 대한 지침이 주어진 후 장로들에 관한 지침이 이어진다. 17~20절은 장로를 세우고 대우하는 문제에 대한 지침을, 21~25절은 디모데 자신이 성도들을 대할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에 관해 설명한다. 그리고 6:1~2은 믿는 노예들에게 주어진 권면이다. 노예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아유인이 되었다고 해서 세상에서 자신들의 신분을 망각하고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1세기에는 목회자를 전문적으로 훈련시키고 안수하는 제도가 없었다. 당시에는 교회의 성도 중에서 장로들을 세워 목회적인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였다. 장로들은 각자의 달란트를 따라 교회를 돌보고 다스리는 일을 했다. 또 어떤 장로들은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기도 했다. 그들은 교회 봉사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헌신했으며 그에 따른 적절한 보수를 받기도 했다. 바울도 장로들에 대한 처우에 대해 “존경”을 강조하는데, 거기에는 실제적인 금전적인 대우가 포함되어 있다. 죄를 지은 장로들에 대해서도 디모데가 공평하게 편견을 갖지 말고 처리할 것을 주문한다. 디모데의 리더십은 자기를 깨끗이 지키는 것에서 세워지며 건강관리를 통해서 좋은 본을 보여야 한다. 노예들의 행동은 특히 그들의 주인이 비신자일 경우 존경에 근거해야 할 것을 권면한다.
    
    
    
1. 장로에 대한 권면(17~22절, 24~25절)
17~18절은 장로의 처우에 대한 권면이다. 먼저 “장로(프레스뷔테로스)”는 1절에서 “늙은이”로 번역한 단어와 같은 말이지만 문맥상 여기서는 장로를 가리킨다. 그들은 다스리는 일과 말씀으로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는 사람들이었다. “다스리는” 일은 교회를 관리하고 마치 가족을 돌보듯 관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말씀”은 설교하는 것을, “가르침”은 교리를 가르치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다스리는 일과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이 장로들이 맡은 주요한 일임을 알 수 있다. 추측하건대 장로들은 다른 생업 없이 이 일에만 전념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재정적으로 잘 지원하라고 권면한다.
    
바울이 말하는 “배로 존경”하라는 것은 재정적인 보상을 포함한다. 신명기 25:4과 누가복음 10:7의 인용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적당한 봉급을 받을 것을 권면한다. 이 원리는 성경적으로 땅을 소유하지 않았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근거한 것이기도 하다(민 18장). 하나님이 세우신 일꾼들이 신실하게 일할 때, 그들은 회중의 존경과 함께 합당한 재정적인 지원을 받는 것이 성경적이다.
    
19~20절은 현실적으로 장로가 고발당했을 때 디모데는 다시 한번 성경에서 말하는 원리에 따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인 없이는 받지 말 것을 권면한다. 또한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두세 사람의 증인) 그 죄가 드러났을 땐 공개적인 꾸짖음으로써 “나머지” 사람들이 두려워하게 해야 한다. 죄를 계속 짓고 있는 자들을 공개적으로 꾸짖음으로써 그들의 범죄를 중단시키는 효과를 기대하고, 또 숨겨진 죄를 밝혀 드러내 본보기로 삼으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나머지 사람들”은 좁은 의미로 다른 장로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으나 회중 전체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21절은 장로들의 범죄와 고발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편견 없이 공평을 유지해야 함을 권면한다. 개인적인 원한을 가지고 처리해서는 안 되며, 공평하게 모든 절차를 잘 밟아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엄숙히 명령한다고 권하면서 궁극적으로 디모데와 회중 모두가 하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이 낱낱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은 타락한 천사들과 대조되는 표현으로 거짓 교사와 거짓 가르침이 위협하던 그 당시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표현이다. 장로들의 범죄는 좁게는 거짓 가르침에 넘어가 말씀과 가르침을 잘못 수행했을 가능성과 도덕적으로 타락했을 가능성 모두를 포함한다.
    
22절은 범죄한 장로를 대체하는 새로운 장로를 세워야 할 경우에 너무 급하게 일의 필요에 따라 세우지 말라고 권면한다.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은 죄가 있는 장로를 너무 급하게 세워서 그들이 죄짓는 것에 참여하지 말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는 권면은 디모데가 죄를 지은 장로들과 같은 죄에 참여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24~25절은 23절에서 잠시 디모데에게 친밀한 조언을 하고 난 후 장로들의 범죄 문제를 결론적으로 다룬다. 바울의 지혜가 잘 드러나 있는데, 어떤 죄는 명백하게 잘 드러나지만 교묘하게 숨어있는 죄도 있으니, 시간을 두고 잘 판단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따라서 급하게 판단하는 일을 피하고 신중해지길 요구한다. 착한 행실도 마찬가지다. 금방 드러나는 것과 오랜 시간 후에 드러나는 것이 있으므로 이 역시 사람에 관한 판단은 늘 신중해야 한다.
    
    
    
2. 디모데를 향한 건강관리 권면(23절)
바울이 디모데에게 친밀하게 조언한다. “물만 마시지 말고”라는 표현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물만 마셨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22절에서 바울이 정결하게 하라는 의미가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는 의미라는 것을 곧이어 밝힌 것이다. 음식을 금지하는 행동은 거짓 교사들이 했다. 바울은 그런 행동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이미 밝힌 바 있다(4:3).
    
당시 포도주를 약으로 사용한 예는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널리 퍼져 있었다. 상대적으로 젊은 목회자가 거짓 교사들과 그들의 가르침이 난무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목회하면서 스트레스받았을 것이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자주 나는 병”이라는 표현을 통해 그 사역의 고단함을 금새 알아볼 수 있다. 바울은 디모데가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자신의 건강관리를 통해 그의 리더십도 함께 세울 필요가 있었다.
    
    
    
3. 종에 대한 권면(6장 1~2절)
바울 서신에 자주 등장하는 노예에 대한 권면은 바울이 세운 교회 안에 그만큼 노예들이 많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바울이 전한 예수의 복음은 자유의 복음이었다. 학자들은 1세기경의 로마제국 내에 적어도 전 인구(약 6천만 명 추산) 삼분의 일이 노예였던 것으로 추산한다. 그들에게 복음이 주는 자유의 메시지는(갈 5:1) 분명 소망이 되었을 것이다. 바울이 이해한 복음은 노예와 자유인 사이에 차이를 두는 것을 거부한다(갈 3:28). 바울이 개척한 교회들에 들어온 노예들은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 그들의 주인과 상관없이 그리스도인이 된 경우와 둘째, 그리스도인이 된 주인을 따라온 경우다. 당시 주인의 결정은 그 가족 전체(노예 포함)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1절의 권면은 그들의 주인과 상관없이 그리스도인이 된 노예에게 하는 것이다. 비신자인 주인을 둔 노예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주인에 대한 태도를 바꿔 공경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이 모욕당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것은 주인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막는 결과를 낳을 것을 우려한 것이다. 바울의 종이 관련한 권면은 전도와 선교의 관점에서 주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2절은 그리스도인 노예와 그 주인이 같은 교회에 속한 경우이다. 이 같은 경우는 바울의 다른 서신에서도 발견된다(엡 6:9; 골 4:1). 어떻게 보면 이 경우가 더 어려운 상황일 수 있다. 노예들은 주인이 신자라는 이유로 (형제라고) “가볍게(카타프로네오)” 여겨서는 안 된다. 이 단어는 “업신여기다”라는 의미로 4:12에서 번역된 단어와 동일한 동사이다. 이러한 노예의 태도는 바울이 전한 자유의 메시지(갈 3:28; 5:1)가 잘못 적용되었을 때 충분히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이전보다 더 잘 섬겨야 한다고 권면한다. 노예들이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된 주인들을 더 사랑하고 잘 섬길 수밖에 없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나는?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면서 잘 다스리는 장로(목사)들에게는 존경뿐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물질적인 지원을 하여 그들이 생활을 염려하지 않고 이 일에 더욱 매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17~18절). 장로는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지만(3:3), 그것이 경제적인 필요까지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 공동체도 더온누리 사역자들의 필요를 안팎으로 살펴서 하나님 나라 복음 사역에 매진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장로를 향한 존경의 표현을 그의 구체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말한다. 장로들이 오직 말씀을 연구하고 전하고 기도하는 일에 전무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바울처럼 특별한 이유로 자비량 사역을 하는 때도 있으나, 사역자에게 가난한 삶이나 지나친 헌신을 요구하는 것도 재고해야 할 것이다.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을 요구할 만큼 신중해야 한다(19~20절). 그것은 악의에서 비롯된 근거 없는 비난으로부터 장로를 보호하고 교회 내에서 그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죄가 드러나면 ‘모든 사람 앞에서’ 단호하고 엄격하게 처리해야 한다. 이는 다른 성도들에게 경각심을 주어 그들의 범죄를 사전에 방지하고 공동체를 성결하게 지키기 위함이다. 우리 더온누리 공동체도 올바른 치리의 방향성을 가지고 공동체의 순결과 리더십의 권위를 잘 지켜 나가기를 소원한다.
    
-젊은 지도자는 “신중”해야 한다. 너무 서둘러서도 안 되고 우유부단해서도 안 된다. 지도자는 말씀의 순수성과 영적인 정결함뿐 아니라 몸의 건강도 잘 지켜야 한다(21~23절).
    
-장로가 잘못을 범했다는 혐의가 있더라도 함부로 노출하지 말고 충분한 근거가 있을 때까지 신중해야 한다. 편견 없이 공평하게 해야 한다. 선행이나 죄는 금방 밝혀지는 것이 아니기에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인간의 모든 악행과 선행은 반드시 드러난다(24~25절). 악이 선으로 가장할지라도 숨길 수 없고, 선이 늘 당장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때가 이르면 열매를 맺는다. 그러니 어떤 사람의 죄나 선행을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공평하고 주의 깊이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믿는 종들은 자기 상전을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고 섬겨야 한다. 비록 믿지 않는 상전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공경해야 한다. 또 믿는 상전은 형제요 사랑받는 자이기에 그의 유익을 위해 더 잘 섬겨야 한다(6:1~2).
    
-종은 믿지 않는 상전에게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이 비방받지 않도록 마땅히 공경해야 한다. 또 믿는 상전을 향해서는 형제라고 가볍게 대하지 말고 오히려 더 잘 섬겨야 한다. 그것이 형제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하든 “주께 하듯” 하라는 말씀이다.
    
*장로(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대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성도들도 “말씀의 종”이라고 부르며 그 권위를 인정한다. 하지만 동시에 장로도 한 사람일 뿐이다. 똑같이 기도가 필요하고, 양육이 필요하며, 또 연약함에 대한 관대함이 조금 있다. 하지만 교회는 전자의 역할만을 강조하고 후자의 정체에 대해서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하지만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두 역할을 긴장감과 사명감으로 잘 유지할 것이다.
    
    
    
*주님, 우리는 지금 교회의 지도자를 어떻게 대접하고 있을까요? 주님을 대하듯 그들을 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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