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이어지는 제사장과 백성을 향한 경고 [말 2:1-16]
 – 2024년 12월 17일
– 2024년 12월 17일 –
 
레위 지파 제사장들을 향한 경고가 이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과 레위인에게 그들이 ‘레위의 언약’을 망쳐놨음을 책망하신다. 생명, 화평, 하나님 경외가 포함된 이 언약을 다시 실천함으로써 그들은 진정한 제사장과 레위인이 되어야 한다. 한편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이혼과 이방인과의 결혼을 질책하신다. 하나님은 한 남편과 언약의 아내를 통해 하나님의 경건한 자손 얻기를 기대하신다.
 
“레위의 언약(4절)”에 대한 설명은 성경 안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 언약은 예레메야에 언급되었지만(렘 33:21), 하나님과 레위 사이에 이미 언약이 성립되었음을 나타낼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출애굽 후 금송아지 사건 때 레위인들이 하나님 편에 서서 헌신한 일(출 32:26~29)과 관련하여 가능성을 볼 수 있겠다. 이외에 광야 바알브올 사건(민 25:11~13)을 통해서 하나님과 제사장과의 ‘평화의 언약’이 수립되고 민수기 18장에서는 ‘소금 언약(민 18:19)’을 통해 레위인이 먹을 수 있는 제물을 지칭하는 약속이 세워진다.
 
 
 
1. 제사장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1~9절)
하나님의 두 번째 경고이다. 첫째 경고가 1:6~14을 통해 예배를 통한 영적 생활에서 하나님 경외하기를 저버렸음을 선언했고, 본문을 통해서는 언행에 있어서도 하나님 경외하기를 저버렸음을 보여준다. 1절은 제사장들에게 제사장의 의무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로 작정하고 순종하라는 ‘이 명령(4절)’을 선언한다.
 
제사장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중 장자를 대신하여 거룩하게 구별되었다(민 3:12~13). 그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중개자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이스라엘을 축복하는(민 6:23; 신 21:5) 특권을 가졌다. 이 특권에는 제사장의 하나님 경외와 신실함과 헌신이 요구된다.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계속 저주를 내리고, 그들이 받을 축복까지도 저주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그 이름을 마음에 두지 않았으므로 이미 하나님의 저주가 내려졌다. 그들은 제사나 절기에 다루던 짐승의 똥이 얼굴에 바려 부정하게 되고, 그 결과 더는 제사를 드릴 수 없어 성전 밖 재 버리는 곳(진영 밖)에 똥과 함께 버려질 것이다(출 29:14; 레 4:12; 렘 16:4). 이렇게 심판을 기술하는 목적은 제사장들이 누구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하여 제사장의 의무를 다하도록 하려는 데 있었다. “하나님의 이름(2, 5절)”이 궁극적으로 경외함의 대상이 되고, 크고 영화롭게 되어야 함을 제사장들의 거룩한 구별을 통해 드러나도록 요청하시는 것이다.
 
4~9절은 레위와 맺으신 언약을 다룬다. 하나님이 레위와 맺으신 언약은 레위인과 제사장으로서의 특권과 그들의 책임을 암시한다. ‘레위의 언약’은 예레미야에 한 번 언급된 것(렘 33:1) 전에 출애굽의 “바알브올” 사건에서 하나님과 제사장들 사이의 “평화의 언약”이 성립되었다(민 25:11~13). 하지만 이를 레위의 언약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적절하다. 그럼에도 4절은 하나님께서 1~3절의 명령을 내신 이유를 레위와 맺은 언약이 지속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5절은 이 언약의 핵심이자 특징이 생명과 화평이며, 결국 이것은 하나님 경외함과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2절의 ‘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해야하는 의무와 경외함을 연결하여 강조한 것이다. 6절은 과거 레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음을 확인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법을 입에 담았고 오직 의와 화평과 정직함을 실천하며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이러한 레위인들의 말과 행동은 많은 자들을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였다. 모세도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고 언약을 지키는 데 힘썼음을 인정했다(신 33:9). 이와같은 구체적인 예는 금송아지 사건(출 32장), 바알브올 사건(민 25장)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처럼 레위인들과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에게서 가르침을 구할 수 있어야 한다. 제사장의 직무에 관하여 레위기 10:10~11은 크게 두 가지로 알려준다. 첫째, 거룩한 것과 속된 것,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구별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명한 규례들을 백성에게 가르쳐야 한다. 이스라엘은 레위인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어떻게 해야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들은 만군의 여호와의 신실한 사자가 되어야 한다(7절).
 
하지만 말라기 시대의 레위인과 제사장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부패하게 만들었다(8절_깨뜨렸다). 지신들만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가르침으로 많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고 악에 빠지게 하였다(8절). 이런 모습은 포로기 전 예레미야의 선포에서도 나타난다(렘 23:13~14). 이렇게 하나님이 제시한 길을 따르지 않고 사람들에게 공정치 못한 제사장들은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을 것이다(9절).
 
 
 
2. 백성들을 향한 경고_결혼 생활의 성실하지 못함을 책망함(10~16절)
세 번째 계시 단락인 본문은 백성을 지목하여 결혼 문제, 특히 이방인과의 결혼과 이혼을 책망한다. 말라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다 한 아버지를 가졌으며 한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10절). 이 구절에서 ‘아버지’는 ‘하나님'(1:6)을 가리키고, ‘한 조상’은 아브라함 또는 야곱(1:2; 12절)으로 볼 수 있다. 본 구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이방인과 구별되었음을 말한다. 말라기는 구별된 거룩한 백성이면서 어떻게 형제들에게 ‘거짓을 행하고, 조상들의 언약을 모독하느냐’라고 한탄한다.
 
10절에서 16절까지 반복되는 5회 반복되는 “거짓을 행하다(10, 11, 14, 15, 16)”라는 동사은 “신의 없이 대하다, 불충실하다, 불성실하다”라는 뜻으로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모독하는 가증한 일을 저질렀음을 가리킨다. 11절 이후에서 이 표현이 결혼 생활에서의 불충실함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라기는 포로 귀환 백성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모독하고 이방 신의 딸과 결혼했다고 꾸짖는다. 당시 귀환자들은 수적으로 규모가 크지 않았고, 다시 돌아온 유다 땅에는 이방인들이 상주하고 있었으므로, 이스라엘이 같은 종족과 결혼하여 하나님의 자손(15절_경건의 자손)을 낳는 일이 중요했다. 그러므로 이방인과 결혼하는 자는 누구든지 언약 백성에서 내쳐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방인과의 결혼 문제는 말라기 전후에 사역한 에스라와 느헤미야 때에도 큰 문제거리였다(스 9~10장; 느 10:30; 13:23~27). 특히 에스라 시대에는 제사장과 레위인을 비롯한 백성이 이방 여인과 결혼했고, 방백과 고관들이 이런 일에 앞장 섰다고 고발한다(스 9:1~2). 이때 에스라의 기도에 찔림을 받은 자들은 이방인 아내와 자식을 본국으로 돌려보내기도 했지만(스 10장), 말라기 때에도 이방인과의 결혼 문제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제 백성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와 울고 탄식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헌물을 받지 않으신다. 그들은 “무엇때문입니까?”라며 묻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14절). 그 이유는 젊었을 때 하나님을 증인으로 언약을 맺어(잠 2:17) 합법적인 아내로 삼은 여인들을 남편들이 내쫓고 학대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직 생명이 있어 경건한 자손을 낳아 양육할 수 있으나, 이스라엘은 그들과 이혼하고 학대를 일삼았다.
 
성경은 음행의 이유로 이혼이 허락되기도 하였으나(신 24:1~4),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맺어준 부부 관계를 지속하라고 명령한다(마 19:8~9; 고전 7:10~11).
 
 
 
나는?
-말라기 시대의 제사장들이 말씀을 가볍게 여겼다. 제사장은 제사를 드리는 자이기 전에 하나님의 백성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자다. 그 입술에 불의가 아니라 진리를 담고, 주님과 동행하는삶을 통해 얻은 ‘산 지식’으로 죄인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여호와의 사자’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마음에 두지도 않고 하나님 이름을 영화롭게도 아니했다. 그랬으니 가문이 끊어지게 하실 것이고, 성전 밖에 태워 제해야 할 똥을 그 얼굴에 발라 부정한 자가 되게 해버리실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가장 고상하고 거룩한 척하지만 가장 더럽고 추악한 악행을 아무런 두려움 없이 자행하는 지도자들을 결코 모른 척하지 않으실 것이다.
 
-제사장이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대로 하나님도 제사장을 대하신다. 제사장들은 사람의 얼굴(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을 보고 자의적으로 율법을 적용하였다. 이제 그들이 자기 이익과 목표를 위해 말씀을 왜곡하고, 하나님을 불공평한 분으로 만들고 말았다. 제사장이 정도에서 떠나 하나님을 멸시하고 그 이름을 더럽히고 말씀은 지키지 않고 율법도 자기 유익을 따라 편파적으로 적용했으니, 하나님도 사람들 앞에서 그들이 멸시와 천대를 받게 하실 것이다.
 
-모범이 되어야 할 제사장들부터 결혼 관계를 소홀히 한다. 그러니 백성이 가증한 일을 자행하고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여인과 결혼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그것을 이방신과의 결합이나 우상숭배와 다름없게 보셨다. 그래서 당사자뿐 아니라 이 일을 돕거나 방조하거나 심지어 그를 위해 제사를 대신 드려준 자들마저 언약 공동체에서 끊어지게 하실 것이다. 불성실한 결혼 관계는 언약 공동체 안의 한 형제 됨을 위반하는 일이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포기하는 죄이기 때문이다. 맹약한 짝을 버린 이들이 하나님께 헌물을 드려도 돌아보지 않고 받지도 않으신다. 그때는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적셔도 소용없을 것이다.
 
-이어지는 경고의 소리는 점점 더 단호해지고, 선명해진다. 어찌할까….
 
*제사장들의 죄와 백성의 죄는 내용은 다르지만,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렸다는 것에는 동일하다. 제사장들은 레위의 언약을, 백성들은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였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말라기를 통해 엄중 경고하신 것이다. 포로에서 돌아와 약 9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시들해진 하나님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시는 것이다. 신앙은 언제나 부침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부침을 겪을 때 다시 힘을 내어 회복할 수 있는 이유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 때문이다. 부침을 겪는데 더욱 절망스럽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고 느낄수록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자신부터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게 계시니까….
 
 
 
 
*주님, 포로에서 돌아와 꽤 시간이 지났지만, 하나님 백성의 성숙함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제사장들부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결혼생활의 본도 되지 못합니다. 이런 모습이 오늘날 이 시대의 목회자 상은 아닌지 소름끼치도록 두렵습니다. 저를 목사로 부르심 주님, 목사다운 삶을 살도록 긍휼로 이끌어 주십시오.
*주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는 목사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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