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여호와 이레, 하나님을 향한 절대 신뢰 [창 22:1-24]
 – 2026년 04월 09일
– 2026년 04월 09일 –
창 22:1-24 여호와 이레, 하나님을 향한 절대 신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고자 나타나신다. 아브라함이 오랜 세월을 기다려 얻은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하신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는 순간 천사가 나타나 이를 멈춘다.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하ㅏㄴ님은 그와 맺은 언약을 다시 한 번 더 확증하신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그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희생할 정도로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을 보였다.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이와 같은 헌신과 희생은 독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 우리 죄의 사함을 위해 죽게 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시험하다(나사)’라는 동사는 ‘어떤 대상이 알려진 대로 실제로 그러한지 검증하는 일’을 가리킨다. 구체적으로 어려움과 시련을 통해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다양한 시련과 어려움을 주면서 시험하셨다(출 15:25; 16:4; 20:20; 신 8:2, 16). 시험은 그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는지를 검증하고 낮추기 위해서이며, 시험을 통과한 백성에게 복을 주기 위함이다. 
 
 
 
1.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1~2절)
‘그 일 후에’는 다시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을 암시한다. ‘그 일’은 앞서 아비멜렉과 조약을 맺은 일을 가리키는데, 아브라함은 거기서 오래도록 거주하는 중이었다(창 21:34). 하나님께서 그곳에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기 위해 나타나신다. 애초에 본문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시험하시기 위해서임을 선명하게 밝히고 시작함으로서 독자(獨子)를 희생시키라는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 혼란과 오해를 사전에 제거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름을 부르시고 아브라함은 이에 응답한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으로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3중적으로 표현하시는데, “네 아들, 네 독자, 네가 사랑하는 이삭”이다. 이것은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어떤 아들인지를 잘 말해준다. 하나님은 그런 아들 이삭을 데리고(취하라는 뜻도 있다), 모리아 땅의 곧 지시할 산으로  가라 하신다. 주목할 것은 “모리아 땅으로 가라”는 명령형은 창 12:1의 갈대아를 떠나라의 명령형과 동일하다. 둘 다 ‘매우 힘든 포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두 명령에 순종하는 것에 대한 복이 강조 되며, 모리아 산에서의 순종은 더 큰 복으로 이어진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모리아 땅은 역대하 3:1에서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곳이다. 성경에서 모리아라는 지명이 나오는 곳은 이 둘뿐이다. 즉, 솔로몬의 성전터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한 장소다. 한편 이삭은 지금 충분히 자랐다. 그가 ‘나아르’로 불리는데(5절) 십대 청소년에 해당한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미 이스라멜을 잃은 바 있다(떠나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마저 요구하시고 그것도 인신제사로 바치라고 하신다. 인신제사는 성경에서 엄격하게 금지한다(삿 11:31~40; 왕하 3:27; 17:17). 구약 율법은 첫 아들을 하나님께 봉헌하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레위인들이 그들 대신 성전에 봉헌되어 종신 직무를 감당한다.
 
본문은 전통적으로 이삭을 약속의 아들로 주셨는데, 그를 다시 제물로 바치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스스로 모순 된 분은 아닌지 질문하게 한다.
 
 
 
2. 아브라함의 순종(3~14절)
3~8절은 이삭을 바치기 위해 모리아산으로 떠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챙겨 떠날 준비를 한다. 짐을 나를 나귀와 두 명의 종, 그리고 번제용 장작도 미리 준비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일러주신’ 곳으로 떠났다(3절). 이미 하나님께서는 그가 가야 할 목적지인 그 산을 정확히 적시하셨음을 알 수 있다. ‘3일째’에 아브라함은 모리아 땅에 도착했다.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나귀와 함께 기다리라고 하면서 자신은 이삭과 함께 가서 제사를 마친 뒤 ‘우리가 돌아오겠다’고 말한다. 종들과 나귀를 동반하지 않은 이유는 성소에 제사를 바치러 갈 때 헌제자만 들어가야 하는 관례인듯 하다. 주목할 것은 아브라함이 ‘내가 돌아온다’고 하지 않고 ‘우리가 돌아오겠다’고 말한 점이다. 이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지만, 히브리서 저자는 아브라함이 이 시험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믿고 바쳤다(히 11:17~19)고 해석했다.
 
아브라함은 장비를 챙기고 번제용 장작은 아들 이삭이 지게 한다(6절). 곧 있으면 장작에 눕게 될 처지에 놓인 이삭이 그 장작을 지고 간다. 이 모습은 십자가에 못 박힐 예수께서 그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장면과 겹쳐 보인다. 두 사람은 침묵하며 걸었을 것이다. 그렇게 오르는 모리아 산의 여정이 얼마나 비장했을까? 침묵을 깨고 이삭이 아브라함을 부른다. 서로 ‘아버지’, 그리고 ‘아들아’라며 대화하는 부자(父子)간에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이삭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냐고 묻는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실 것이라고 대답한다.
 
9~14절은 이삭을 바치려 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은 뒤 이삭을 ‘결박하여’ 나무 위에 올려 놓았다(9절). 이것은 이삭이 저항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는 순순히 결박을 받아들였다. 이삭은 도수장에 끌려가는 흠 없는 어린 양이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고 제사를 감행하려는 순간 하늘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급히 부른다. 하나님은 제사를 중단하라 하신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이 독자까지도 아끼지 않는 것을 칭찬하신다. 아브라함은 주변에서 뿔이 수풀에 걸린 숫양 한 마리를 발견하고, 아들 이삭을 대신하여 번제로 바친다(13절). 그것은 여호와께서 미리 준비하신 제물이었다. 아브라함은 그 일을 기념하여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칭한다. 그 뜻은 ‘여호와께서 준비하실 것이다’이다.
 
 
 
3.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15~19절)
순종의 대가로 많은 복이 보장된다. 시련-순종-축복은 구약에서 흔히 발견되는 일반적인 도식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의 이름을 불렀다. 이제 독자마저 아끼지 아니한 그에게 막대한 축복이 약속된다. 이 복은 앞서 약속된 복의 반복이지만, 나아가 더 큰 복으로 발전한다.
 
‘바다의 모래와 같을 것이다’라는 새로운 수식어와 더불어 후손의 약속이 더욱 강화된다. 또한 땅의 약속도 확증된다. 후손이 대적의 성문을 차지한다는 것은 성의 점령을 의미하고, 이는 가나안 땅 정복에 대한 예고다. 나아가 궁극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열국이 복을 받을 것이다. 최초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는 순종의 조건이 없는 일방적인 약속이 주어졌다(창 12:1~2). 그러나 다시 맺은 아브라함 언약은 일방적인 편무 언약이 아니라 쌍무적인 특징이 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에서 브엘세바로 복귀하여 거기 거주한다.
 
 
 
4. 나홀의 후손들(20~24절)
갑자기 나홀의 족보와 후손들이 열거된다. 추측하기로 수년이 지난 후(‘이 일 후에’) 우연한 계기로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땅의 친족 나홀의 소식이 전해졌다. 나홀가 결혼한 밀가(창 11:29)가 여러 자녀를 낳았다. 그들은 이삭의 출생 이전에 태어났을 것이다. 나홀의 자녀는 본처인 밀가가 낳은 여덟 명, 후처 르우마가 낳은 네 명을 합하여 열두 명이다. 이들 중에서 특히 두드러진 인물은 브두엘과 그의 딸 리브가다. 브두엘이 마지막에 소개되며 리브가를 낳았다. 갑작스러워 보이는 이 족보의 등장은 리브가의 주의를 끌기 위함이다.
 
 
 
나는?
-본문은 결국 자손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장면이다. 하나님만이 생명의 주권자 되심을 인정하는지 알아보시는 시험이라는 의미다. 그 방법으로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내리신다. 이는 스스로 ‘자손’의 약속을 위태롭게 하시고 자신이 혐오하는 인신제사를 요구하신다는 점에서 하나님 자신의 위기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시험은 아브라함을 향한 불신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확신에서 시작되었음을 유츄할 수 있다. 마치 욥을 믿으시기에 시험을 허락하셨듯이 아브라함을 믿으셨기에 모리아 산 시험을 명령하신 것이다. 마찬가지다. 어떤 측면에서 우리를 믿으시기에 지금도 감당할 만큼 시험 주심으로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비상식적인 명령에 적극적으로 순종한다. 이스마엘을 내보낼 때처럼 아무런 이의 제기 없이 묵묵히 ‘아침 일찍’ 채비하여 가라 하신 곳으로 떠난다. 눈을 들어 갈 곳을 바라본 후, 사환은 두고 이삭만 데리고 떠나겠다고 한다. 아브라함은 혼자가 아닌 이삭과 함께 돌아오겠다고 하고, 실제 그 확신대로 이루어진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바라본 것은 모리아 산만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었다.
 
-번제할 양이 어디 있냐고 묻는 이삭에게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실 것”이라고 대답한다. 더 이상 그는 자기 힘으로 기업을 이을 자를 만들어내려던 아브라함이 아니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드리려고 한다. 그래도 하나님의 하나님 나라 약속은 이뤄질 것이라고 믿었다. 이 이삭은 사라의 생물학적인 능력이 아니라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신” 창조주의 능력의 결과(롬 4:17)이니, 이 이삭의 생명 또한 능히 다시 살릴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히 11:19).
 
-하나님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신하게 된다. 아들을 버리고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고서 그가 기대한 대로 숫양을 마련해주셨다. 독자를 아끼지 않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은 자손을 다시 약속하신다. 나의 이삭을 드리기 전에는, 믿음의 눈으로 모리아 산을 보기 전에는, 하나님만 예비하실 수 있는 이 복을 누릴 수 없다.
 
*-여호와 이레… 이 고백이 나의 기대와 소망을 담은 바램의 수준이 아니라 몸으로 증명해 낸 영광스런 고백이라는 깨달음에 고개가 숙여진다. 나도 역시 삶으로 증명해 낸 고백의 정수가 되기를 기도한다. 
 
*네 아들, 네 독자, 네가 사랑하는 이삭…. 이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경외) 하며 살아야 하리라. 
 
*겉으로 보기에 비상식적인 명령…. 그러나 확연하게 드러나는 아브라함의 즉각적인 순종…. 이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또 하나님의 아브라함의 순종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우리에게 기록되어 남겨지지 못할 위대한 이야기이다. 야고보서의 가르침은 분명한 진리이다. “사람이 감당치 못할 시험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이 말씀에 비추어 아브라함을 보자면 하나님은 이미 아브라함이 담담히 이 시험을 통과할 것을 알고 계셨다. 
 
*창 22장의 이야기 속에 감추어진 이 위대한 이야기를 사모하며 살고 싶다.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서도 나를 확신하셔서 주어지는 모든 상황을 믿음으로 감당해 내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진정한 “여호와 이레”의 은혜의 고백을 삶의 열매로 기록하고 싶다. 
 
*본문은 몰상식한 이야기로 비치지만, 초상식의 이야기인것도 간과하면 안된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아브라함에게 몰상식한 하나님의 명령을 받는 순간, 이미 절대 신뢰와 믿음이라는 초상식이 자연스럽게 작동한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굳건하고 건강한 아브라함이기에 상식적 수준으로만 하나님과 관계하지 않고 상식을 넘어서는 깊은 신뢰와 교제가 가능했던 것이다.
 
*위와 같은 묵상에도 개인적으로 본문은 늘 고민하게 하는 이야기다. 인신제사를 혐오하시는 하나님이 이런 명령을 왜?,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는 그렇게 중보했으면서 정작 자기 아들을 바치라는 명령에는 왜 이리 입을 꾹 다무는지… 사라와는 왜 소통하지 않았는지… 이 일 후에 이삭과의 관계는 정말 괜찮았는지… 사라가 이토록 중요한 일에 왜 등장하지 않았는지… 그것 참 양파 껍질 벗기듯 까도 까도 절망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래놓고 “여호와이레”라니… 하지만 곰곰히 더 가늠해보면 감당할 만한 시험을 주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아브라함에게 내린 명령에 전제된 그의 믿음과 순종의 행동을 선명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었고 탄탄했을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믿음의 영역인 것이다. 그저 넘사벽이다. 그렇다면 “여호와이레”라는 지명에 담긴 함의는 단순하게 형통의 의미로 사용하기에는 그 깊이가 만만치 않을 듯하다.
 
*그래서 더욱 주님께 나의 믿음의 걸음을 의탁하리라. 모리아산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행동에 순종적으로 받아들인 이야기에 함의된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이 얼마나 놀랍고 대단한 것인지 더욱 체감하게 된다. 이 순종이 예수님의 순종의 모습을 바라보게 한다. 나도 그런 순종의 수준에 이를 수 있을까?
 
 
 
*주님,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상식을 넘어선 믿음의 걸음을 주저하지 않고 나아간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향한 절대 신뢰를 닮겠습니다. 
*주님, 도무지 넘볼 수 없을 수준의 이 믿음과 순종을 애써 붙잡고 조금씩 나의 걸음에도 이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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