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23:1-20 막벨라 굴을 사다.
하갈과의 갈등(창 21:12) 후 자취를 감춘 사라가 죽음 기사와 더불어 다시 등장한다. 사라가 127세에 사망한다. 약 35년 동안 사라졌다가 나타난 것이다. 이에 대한 추론은 무성하다. 사라가 독자 이삭을 바치려는 아브라함과 큰 다툼을 벌여 헤브론으로 떠났다는 주장도 있지만, 오늘 본문을 보면 그릇된 추측임이 드러난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아브라함은 가나안에서 처음으로 약속의 땅 일부를 소유하게 된다. 사라가 127세의 일기로 죽자, 아브라함은 그녀의 매장지 구매에 나선다. 그는 성문에서 헤브론 주민인 헷 족속 대표들을 만나, 에브론의 소유인 막벨라 굴을 매입할 의향을 밝힌다. 아브라함은 장래 소유권 분쟁을 막기 위해, 과한 금액을 다 주고 그곳을 자신의 법적 소유로 공식화한다.
1. 사라의 죽음과 장례 준비(1~6절)
무대가 헤브론 지역으로 바뀌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 사건 이후 어느 때인지 모르지만, 브엘세바에서 헤브론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사라도 다시 등장한다. 본 장은 사라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사라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여인 중에서 유일하게 나이가 기록되었다. 아브라함과 함께 이스라엘의 시조인 그녀의 위상을 잘 확인 시켜준다. 헤브론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최초로 거처를 정한 마므레 상수리나무가 있는 지역이다(창 12:6; 13:18). 원래 이름은 ‘기럇아르바’였다(삿 1:10). 마므레가 곧 헤브론으로 불리기도 한다(창 23:19).
아브라함은 사라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울었다. 그는 사라를 매장할 묘지를 매입하기 위해 그 지역 토착민인 헷 족속에게 간다(3절). ‘그 땅 주민’은 성 전체 사람을 가리킬 수 있지만, 아마도 대표 장로들을 지칭할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에서는 장례가 생기면 당일에 매장하는 것이 관례였다(신 21:23). 아브라함은 자신이 개인 사유지가 없는 나그네와 체류자일 뿐이라고 밝히며 묘지를 쓸 토지를 매입할 의사를 밝힌다(4절). 아브라함이 아무리 막대한 재산을 가진 거부라고 해도, 결국 땅 한 필지 없는 외지인일 뿐이었다.
한편, 헷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깊은 유대 관계 속에 잘 지낸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아브라함을 ‘내 주여(아도나이, 한국적인 번역으로 ‘나으리’와 비슷하지 않을까?)’라 부르며 그를 ‘하나님의 귀인(지도자)’로 부른다(6절). 그들은 아브라함이 마땅히 좋은 땅을 묘지로 정해 사라를 묻어도 좋다고 말한다. 그들은 좋은 묏자리를 선택하라고 하지만, 이것이 그 묘지의 영구적인 소유권을 보장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계속 사용권을 보장 받아야 할 불안한 묘지가 아닌, 자신의 소유지로, 영구적으로 사용할 땅을 마련하려 한다. 그러나 헷 족속은 땅을 매각할 의사가 없었음이 분명하다.
2. 막벨라 굴 매입을 위한 협상(7~15절)
아브라함은 소유권이 없는 묘지 사용이 얼마나 불안한지, 결국 토지 주인으로부터 많은 부담을 지게 될 결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토지 매매를 허락해달라고 간청한다. 최고의 존칭을 듣는 그가 최저로 몸을 낮춘다. 아브라함은 그들 말대로 가장 좋은 묏자리를 구체적으로 지정한 뒤 구매 의사를 전달한다. 그 토지는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소유였다. 아브라함은 그 땅에 있는 막벨라 굴에 사라를 묻고 싶다면서 충분한 땅값을 내겠다고 말한다(9절). 추측하기로 평소에 염두해 둔 곳이 아닐까 싶다. 그는 대표단들이 중재하여 에브론을 설득해달라고 요청한다. 이런 상황은 토지 소유자가 매매를 꺼리고 있음을 드러낸다.
막벨라는 ‘두 개의 굴’ 혹은 ‘갈라진 굴’을 뜻할 수 있는 굴의 명칭이다. 이 굴이 어떤 형태의 굴인지 현재는 알 수 없고, 그 위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대표단의 일원으로 에브론이 있었기에 직접 아브라함과 협상한다. 그는 ‘성문에 들어온 모든 사람이 듣는 데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공언하기를 자신이 그 땅과 거기 있는 굴을 거저 주겠으니 사라를 매장하라고 말한다(10~11절). 이처럼 고대 근동에서 중요한 거래는 주로 성문에서 이루어졌다. 협상이나 거래에서 사람들 앞에서 공적인 약속을 하는 이유는 그들을 증인으로 삼아 그 발언의 법적 효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다.
에브론의 제안은 실제로 토지를 기부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고대 근동에서 사용하는 관례적인 협상 예법이다. 에브론은 굴과 주변의 토지를 좋은 값에 팔려고 상대방을 높이고 마치 자기는 욕심이 없는 듯 정중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에 아브라함은 다시 한번 대표단 앞에서 몸을 낮춰 예의를 표하고 에브론에게 공식적인 법적 효력이 있는(‘그 땅의 백성이 듣는 데서’) 협상안을 내놓는다. 재차 정당한 값을 주고 그 땅과 막벨라 굴을 사겠다고 말한다. 이는 에브론에게 금액을 제시하라는 격식 있는 요구다. 에브론은 아브라함의 말을 받아들여 땅값이 은 400세겔이긴 하나 우리 사이에 그런 돈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말하며 마치 무상으로 기부할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협상 예법의 하나였다. 결국 그는 은근슬쩍 땅값을 제시하는데, 아마 상당히 비싼 값을 제시하였을 것이다. 오늘날도 흥정하려면 일단 비싼 값을 부른 후 점점 낮춰가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가.
은 400세겔(약 4,5kg)을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어느 정도 크기의 땅을 살 수 있는 돈인지는 알 수 없다. 후대에 다윗이 50세겔을 지불하고 성소를 위한 땅을 매입한 것을 보면, 은 400세겔은 매우 비싼 토짓값인 것이 분명하다.
3. 막벨라 굴을 매입한 아브라함(16~20절)
에브론은 분명 아브라함에게 바가지 대금을 불렀다. 흥정을 계속하면 값이 더 내려갔을 것이고, 그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그가 제시한 값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는 은 400세겔 무게의 토짓값을 저울로 달아 에브론에게 지불한다. 아브라함의 물질과 계산에 대한 초연함을 볼 수 있다. 하기야 이미 앞선 이야기들 가운데 롯과 소돔 왕에게 양보한 모습이나, 멜기세덱의 백성에게 비싼 재산인 우물을 빼앗기고도 침묵하는 모습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 어떤 이유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신의 기업이요 재산임을 굳게 믿고 있었고, 자신을 통해 열국과 모든 사람이 복을 누리게 하는 복의 통로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겠다.
이렇게 헤브론의 막벨라 굴과 그 주변 땅, 거기에 심긴 나무들이 모두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되었다(17절). 아브라함은 사라를 막벨라 굴에 매장했다. 이렇게 함으로 아내 사라를 위해 최대한 예를 갖춰 그녀의 명예를 높였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최초로 가나안 땅에서 자신의 땅을 확보한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의 후손은 장차 가나안 땅 전체를 점유하게 될 것이다.
막벨라 굴과 헤브론은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중요한 장소가 된다. 이미 아브라함에게 땅과 후손들을 주겠다는 약속들이 주어졌다(창 13:14; 18:15). 이곳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비롯하여 그들의 가족이 묻힌 종교적 중심지가 된다(창 25:7~10; 50:12~13). 또한 이 성읍의 중요성과 군사적 가치는 민수기 13장에서 확인된다. 이스라엘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두 명의 정탐꾼을 가나안에 파견했을 때, 그들은 헤브론 지역을 집중적으로 염탐했다. 그곳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임을 확인해 주는 포도나무를 비롯하여 풍성한 과실수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라의 죽음은 아브라함에게 또 다른 위기였다. 이삭을 버리라는 요구가 자손에 대한 약속을 확인하는 시험이었다면, 매장지가 없는 상태에서 사라의 죽음은 땅의 약속에 대한 시험이었다. “땅”을 주신다는 약속 믿고 고생만 한 아내를 묻을 땅 한 평 없는 서글픈 처지가 더욱 슬퍼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안전하고 안정된 삶을 뒤로 한 채 인생이 절반을 떠돌이로 살았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였다. 아브라함은 ‘땅’ 주신다는 약속만 믿고 고생만 한 아내를 묻을 땅 한 평 없는 처지를 당했다. 그러므로 사라의 죽음은 아브라함이 ‘땅’의 약속을 얼마나 신뢰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시험이었다.
-헤브론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로 추켜세우며 매장지를 거저 주겠다고 했지만, 이것은 호의를 얻기 위한 상술일 뿐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로 분명히 밝히고, 정당한 가격을 치르고 사겠다고 한다. 헤브론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급박한 처지를 이용하여 막벨라 굴에 딸린 밭과 나무까지 모두 팔려고 한다. 그런 상술을 알면서도 아브라함은 협상도 하지 않고 모든 조건을 수용한다. 다급해서가 아니라 이 땅을 합법적으로 얻는 것이 중요한 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 계산법은 늘 세상의 수지 타산에 들어맞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은 400세겔이나 주고 밭을 산다. 아브라함이 깎을 것이라고 기대하여 부른 가격 그대로 주었기에 놀랍다. 아브라함은 계약이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남기지 않으려 한 듯하다.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한다는 고백을 위해서는 돈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4대 만에 돌아와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까지 사라뿐 아니라 아브라함, 이삭, 야곱, 리브가, 레아까지 모두 이 막벨라 굴에 묻힌다. 아브라함이 산 것은 땅만이 아니라 희망이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보화가 묻힌 밭을 산 농부처럼, 그는 인간적인 셈법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약속을 산 것이다.
*사라는 불임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었으나, 하나님은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셨다. 또한 사라의 죽음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땅에서 토지를 사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은 믿음의 자녀들이 힘겹게 걸어온 신앙의 여정을 기억하시고 갚아주신다. 심지어 죽음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성취되기까지 사라가 묻힌 막벨라 굴은 이 땅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임을 상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이곳에 묻혔고, 야곱도 애굽에서 임종을 앞두고 막벨라 굴에 장사 지낼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약속의 땅에 대한 아브라함의 열정적인 섬김이 그의 후손들을 다시 이 약속의 땅으로 이끌었다. 나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어떤 신앙의 이정표를 남기고 있을까?
*아브라함이 사라의 매장지를 사는 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향한 신뢰의 고백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아브라함의 모습과 같은 도전을 받을 때가 있다. 슬픔과 어려움이 닥칠 때, 하나님의 약속이 놓인 자리를 기꺼이 선택하는지, 약속의 장소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는지를 묻고 계시는 듯하다.
*아브라함은 헷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라고 소개한다. 그는 땅의 주인이 아니라 약속을 받은 자로서 자신을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헷 사람들은 그를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로 인정한다. 이 모습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이미 열방 가운데 복을 흘려보내고 계셨음을 보게 한다.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약속의 말씀이 이미 이루어져 아브라함의 삶을 채우고 있었다.
*막벨라 굴과 밭은 공식적으로 아브라함이 소유가 된다. 성문 증인들 앞에서 이루어진 이 거래는 법적으로 완전하게 확인되는 행위였다. 훗날 어떤 법적 분쟁도 허용하지 않게 만든다. 이 땅은 비록 작고 제한된 공간이었지만, 아브라함과 그 후손이 약속의 땅에서 소유한 영원한 첫 기업이었다. 하나님은 이 작은 시작을 통해 언약의 현실성을 보게 하신다. 일상의 작은 열매들을 통해 약속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바라보게 하신다.
*믿음은 완전하게 소유하고 누리면서 고백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작은 이루어짐을 보며 장차 완성될 큰 일을 확신하는 것이다. 작고 보잘것없는 일 가운데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이다.
*주님, 이미 약속하신 대로 이루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믿음의 한 걸음 내딛기를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작은 일부터 충실히 감당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