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제자리에서 거룩하여 짐으로 [출 40:1-16]
 – 2021년 10월 30일
– 2021년 10월 30일 –

출 40:1-16 제자리에서 거룩하여 짐으로

성막과 집기, 도구들을 제작하고 검사까지 마친 후 기름을 발라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소로 세워간다. 하나님께서는 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고 관유를 가져다가 성막의 모든 것에 발라 거룩하게 하라고 명령하신다(9절). 모세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다(16절). 모든 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세워졌음을 반복하여 기록에 남긴다.


1.진정한 새출발(1, 2절)
하나님께서는 첫째 달 초 하루(1월 1일) 성막을 세우라고 명령하신다. 이동이 가능하도록 제작한 것 이기에 마치 자신들의 장막을 걷고 치듯이 하루 동안 이를 완성한다. 하나님께서 가라하면 재빨리 거두어 뒤따라 가고 멈추라하면 멈추어 다시 조립하도록 제작 되었기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애굽에서 탈출한 날 성막을 세우라고 명령하신 것에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애굽에서의 구원받은 날, 하나님께서 늘 함께 거하시겠다고 만들라하신 성막을 조립한 것이다.

진정한 구원은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깨닫게 하신다. 애굽에서의 탈출이 새출발의 전부가 아니다. 진정한 새출발은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삶이다.

*죄와 사망에서 건짐받은 것은 동시에 주님과 함께 거하는 삶의 시작이며, 그것의 핵심은 바로 예배임을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께 나아와 드리는 예배가 이렇게 중요하다.

*오랜 코로나 방역 기준에 따라 온라인 예배가 자칫 자신의 편리함의 수단이 된 듯한 모습에 경종을 울리는 깨우침이다.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삶은 나의 익숙하고 편안한 곳에서 편리하게 시청하는 예배가 아니라 방역기준을 철저하게 지키는 불편함을 감수하며 주님 앞에 모이는 구체적인 행동의 순종이 아닐까?

*그것이 적어도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장소나 마음가짐에 적용 해야 한다면 성령께서 나의 마음에 전을 삼고 들어오셨고 내가 걷는 모든 곳에 함께 하신 다는 것을 알기에 날마다 성령께서 주시는 말씀의 깨우침을 재료 삼아 성령님과 함께 거할 “말씀의 집”을 조립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즉 말씀을 읽고 생각하여 하나님과 함께 “말씀”안에서 일상의 모든 순간에 함께 하는 것일 게다.

*무엇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교회 공동체가 함께 모여 드리는 “회집 예배”에 코로나의 장벽을 뛰어 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총명”으로 방역 기준을 지키며 드리는 것이 아닐까? 느슨해지고 자꾸만 타협하고 싶은 예배에 대한 사모함과 집중력을 “오늘 처음 성막을 세우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으로 회복해야 하지 않겠나!

*구원 받았다는 현실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인데, 오늘날 무수한 형태로 각각의 성도들에게 확인 시켜 주시겠지만, 정기적으로 모여 드리는 예배는 그렇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의지적인 믿음과 고백으로 나아오는 실제적인 행동이기에 느슨해 있는 “예배”의 장막을 다시 견고하게 세울 때가 되었다.

*어쩌면 위드코로나가 선언된 이후 가장 먼저 다시 세워야 할 것은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이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의 장막일 것이다. 구원받은 성도의 삶에 늘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을 함께 모여 예배하는 시간의 장막, 장소의 장막을 다시 세워야 할 때이다.


2.제자리에(3-8, 16절)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제작한 것을 하나님께서 각각의 “제자리”를 다시 말씀하여 주신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각각의 성막과 성물과 집기와 도구들을 아무리 훌륭하게 제작하였더라도 그것들이 있어야 할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모세는 자신의 감동이나 생각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명령대로 “제 위치에 설치했다.

*모든 것을 만드는 것에 정성을 다하고 이제는 이 모든 것을 제 위치에 “들여놓고(3, 4절), 진설하고..켜고(4절), 두고…달고(5절), 놓고(6, 7절).. 달았다(8절)” 이렇게 해서 성막이 세워졌다.

*성막을 아무리 정성스럽게 만들었다고 해도 그것은 각각의 물건들로 진열되어 있어서는 안 된다. 그 물건들은 세우려고 만든 것이다. 세울 때 정한 위치에 세워야 한다. 이 마지막 과정까지 마쳐야 성막이 완공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받아 그 땅에서 나온 것이 구원의 완성이 아니다. 진정한 구원의 완성은 그렇게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받고(출 19장),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의 기준들을 약속하며(출 20장) 더 나아가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과 함께 거하여야 구원이 완성 되는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가는 여정이기에  성막을 만들어 함께 하시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움직이지 않으시고 늘 거하시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늘 함께 하기 위해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3.거룩함으로(9-16절)
성막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제대로 만들어 졌고, 명령하신대로 각각 제위치에, “제자리에” 세워졌어도 이와함께 중요한 것은 “거룩(구별)하게”하는 것이다.

성막의 모든 재료들이 그 자체로 거룩한 것이 아니다. 각각의 재료마다 다른 것들에 비해 거룩하다 할 수 없다. 본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세계는 그 자체로 선하고 아름다우며 거룩하였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의 범죄가 모든 것을 죄로 물들게 하였다. 그러니 더 이상 그 자체가 거룩하고 선한 것은 하나도 없다. 성막의 재료라고 해서 거룩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관유”를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그것과 그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하라(9절)”고 하셨다. 그렇게 하면 “그것이 거룩하리라” 선언하셨다. 성막의 어떤 장소, 어떤 집기도 예외 없었다. 관유로 기름을 발라야 “거룩하리라” 인정 되었다. 그렇다고 관유 자체가 거룩한 성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과정을 거쳐 “거룩하게 하신 것”이다.

제사장의 옷들도 마찬가지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가 씻고 관유를 부어 거룩하게 한 옷을 입히고 직접 그에게 관유를 부어 거룩하게 하였다. 옷만 거룩하게 한 것이 아니라 사람도 거룩하게 하셨다. 그리고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신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방법이었다. 건물이나 사람이나 어느 누구도 스스로 거룩하게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이런 절차와 방법을 통해 거룩하게 하셨다. 이렇게 하여 비로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임재 하실 수 있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거하기 위해 거룩하게 되는 과정을 꼼꼼하게 거쳤다. 애굽에서 탈출한 것이 구원의 완성이 아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함이 진정한 구원의 완성이다. 이제 하나님과 함께하는 그 누림이 시작 되었다.


나는?
*주님, 늘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맡겨주신 제 자리에서 거룩함의 기름을 덧입어 살겠습니다.
*주님, 주님과 어울리고, 이웃과 어울리며 균형 잡힌 삶을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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