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다윗이 바라본 메시아 [시편 110:1-7]
 – 2024년 12월 22일
– 2024년 12월 22일 –
 
본 시편은 150개의 시편 중에서 신약성경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자기 변증에 1절이 사용되고(마 22:44; 막 12:36; 눅 20:43), 히브리서 5:6절은 4절을 인용한다. 본 시편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 주께서 다윗의 주가 되시며 하나님의 통치권을 실현하신다는 내용으로, 장차 이 땅에 임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보여준다. 시편 자체의 맥락에서는 다윗 언약의 회복을 노래한다. 
 
이 시편은 다윗에게 속한 시로서 왕정 시대에 기원을 둔 왕의 시다. 고대 이스라엘 왕의 즉위식 기간에 낭송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곱 절로 구성된 매우 짧은 노래지만, 번역과 해석이 매우 까다로운 시다. 많은 주장들이 있으나 다윗이 통일 왕국의 왕으로 취임했을 때 부른 노래로 알려져 있고, 다윗 사후 새 왕이 취임하는 예식에서 불렸다는 해석이 더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본 시편은 처음 기록된 역사적 정황을 초월하여 신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시로서 메시아에 대한 예언적 노래 또는 승리한 메시아의 노래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1. 보좌 우편의 주님에 대한 여호와의 첫 번째 신탁(1절)
1절은 여호와께서 시인이 “내 주”라고 부르는 어떤 존재를 향해 신탁을 주시는 장면이다. 본 구절은 시편 110편의 해석에 있어서 가장 이슈가 발생한다. 해석의 핵심은 시편 110편의 화자가 누구이며 동시에 보좌 우편의 존재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다. 이를 해석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시편의 화자를 제의적 제사장으로 보고 보좌 우편에 계신 존재는 다윗으로 이해하는 방법이다. 다윗은 다윗 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는 왕적인 존재로 이해되기 때문에 큰 맥락에서는 어느 정도 가능하다. 하지만, 시편 제 3권(73~89편)에서 다윗 왕권이 무너진 것으로 보았고 제4권(90~106편)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한 왕권을 다윗 왕권의 실패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했기에 5권에 속하는 110편에서 다윗을 다시 왕적인 존재로 묘사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둘째, 화자를 다윗으로 보고 보좌 우편의 존재를 하나님과 구별되는 어떠한 신적 존재로 이해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본 시편의 표제와 잘 어울리고, 예수께서 1절을 인용하시면서 화자를 다윗으로 이해하신 것과 통한다. 여호와의 왕권을 주용하게 생각하는 시편 4~5권의 흐름과도 적절하게 조화된다.
 
이로써 시편 110편의 화자는 다윗이며, 1절에 묘사된 “보좌 우편의 주님”은 다윗보다 뛰어나시고 여호와로부터 왕권을 부여받는 신비한 존재로 이해하려고 한다.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보좌 우편의 주님’을 향해서 자신의 오른쪽에 앉으라고 하신다. 여호와의 오른쪽에 앉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같은 신적인 존재로서의 통치권을 가진다는 의미다. 또한 여호와께서는 보좌 우편의 주님에게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리하’고 약속하셨다. 원수들을 발판이 되게 한다는 것은 전쟁에 대한 승리를 가리킨다. 원수들과 전쟁을 한 후 그들을 포로로 잡아와서 그들을 자신의 발 앞에 무릎 꿇리고 그들의 등을 자신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보좌 우편의 주님에게 여호와 급의 통치권을 약속하셨고, 그 통치권으로 열방의 왕들까지 모두 다스리게 될 것 또한 약속하신 것이다. 이런 존재를 향해 다윗은 “나의 주님”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이 존재가 바로 신약에서 성육신하셔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시편의 맥락에서는 다윗이 왕권을 지녔고(1~3권), 그 다윗의 왕권이 무너진 것 같은 상황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본질적인 왕권을 강조했는데(4권), 이제 5권에 이르러서 그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권을 위임받아 다스리는 새로운 왕의 모습을 묘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2. 보좌 우편의 주님에 대한 시인의 묘사 1 (2~3절)
2~3절은 보좌 우편의 주님을 향해 “당신”이라는 2인칭을 사용하여 말한다. 이 장면은 다윗이 보좌 우편을 향해서 기도하면서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5~7절도 다윗이 보좌 우편의 주님께 말씀드리는 것으로 보이기에 1~3절과 4~7절이 “여호와의 신탁과 시인의 고백”이라는 공통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2절은 여호와께서 보좌 우편의 주님에게 권능의 규를 주시기에 그 준미께서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시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보좌 우편의 주님은 열방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다. 3절은 그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의 권능의 날에 그분의 백성들이 자원함으로 그분께 나아가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3절의 통상적인 해석은 ‘청년들의 새벽 이스라같은 순수함과 신선함’에 초점을 맞추지만, 실상은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의 자원하는 헌신이 “보좌 우편의 주님”께 드려지게 된다는 점에 있다.
 
 
 
3. 보좌 우편의 주님에 대한 여호와의 두 번째 신탁(4절)
4절은 보좌 우편의 주님이 왕권뿐 아니라 ‘제사장권’까지 지니게 되신다는 것을 선포한다. 이스라엘이 국가로 제도화된 이후로 왕권과 제사장권은 명확하게 분리되어 왔다. 그런데 이 보좌 우편의 주님은 1~3절을 통해 왕권을 지닌 존재일 뿐 아니라 4절은 제사장권까지 지닌 분으로 묘사된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왕권만 있는 다윗보다 더 뛰어난 존재임이 다시 한 번 확인 된다.
 
특히 4절의 제사장권은 아론 계열이 아닌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른 제사장이다. 멜기세덱은 “나의 왕은 의롭다”라는 뜻으로 그 이름 자체에 왕권의 의미가 들어 있으며, 창세기 14장의 멜기세덱 역시 왕권과 제사장권을 함께 지닌 존재였기에 보좌 우편의 주니에게 수여되는 제사장권은 다윗 왕권 즉 다윗 언약의 수준을 뛰어넘어 역사하는 하나님의 통치권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비롯되는 것임을 밝히 알 수 있다.
 
 
 
4. 보좌 우편의 주임에 대한 시인의 묘사  2 (5~7절)
5절 첫 구절인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를 직역하면 당신의 오른쪽에 계신 아도나아”이다. “당신”은 여호와를. “아도나이”는 보좌 우편에 계신 분을 가리킨다. 이미 1절에서 여호와께서 보좌 우편에 서 계신 이에게 “내 오른쪽에 앉으라”하신 점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시인(다윗)은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을 “아도나이”라고 부른다. 즉, 왕이시고 제사장이신 보좌 우편의 존재를 온전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아도나이”라고 참된 고백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분은  진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멸하실 것이며, 많은 땅의 지도자들을 멸하신 후에, 시냇물을 마시고 머리를 드실 것이다.
 
6절에서 열방의 ‘머리’로 번역된 단어와 7절에서 보좌 우편의 주님이 드실 그분의 ‘머리’는 같은 단어이다. 열방의 머리는 멸함을 당하지만, 보좌 우편에 계신 분의 머리는 들릴 것이다. 다시 말해, 이분께서 열방의 주인으로서 통치자로 세워지실 것을 다윗이 노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편 110편 메시지의 핵심은 여호와의 통치권이 보좌 우편의 주님에게 임하여 언약의 중보로서 열방을 다스려야 하는 다윗 왕권이 온전히 감당하지 못한 사명을 이 보좌 우편의 주님이 대신 성취해주신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영광스러운 그림을 다윗 자신이 인식하고 있다는 것 역시 중요하다. 다윗은 성부 하나님께서 이루실 위대한 구원의 계획을 맛보았고, 그 은혜 가운데 믿음의 고백을 드렸다.
 
 
 
나는?
-여호와께서 다윗의 “주”가 원수들을 이기고 그 원수를 발등상 삼을 때까지 권능의 자리인 “우편”에 앉게 하실 것이다. 그에게 하나님의 거처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지파잉를 보내서 그 하나님의 권능으로 원수들을 다스리게 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친히 자신이 이”주가”가 되신다고 밝히셨다(마 22:44; 막 12:35~37).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악의 세력을 이기시고, 최후의 원수인 사탄을 완전히 이기고 그 왕권을 하늘 아버지께 돌려드릴 때까지(고전 15:24~26) 하나님의 왕권을 위임받아 이 땅을 다스리고 계신다. 예수님은 이 세대의 정사와 권세,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까지 이기고 주장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예수님 안에 있기에 세상에 대하여, 세상 속에서 담대할 수 있는 것이다.
 
-주께서 싸우러 나가실 때 주의 거룩한 백성도 그 전쟁에 참여할 것이다. 그들은 생명을 소성케 하는 아침 이슬처럼 하나님 나라를 향한 순전한 열정을 갖고 즐거이 헌신하는 자들이다. 하나님 나라의 전쟁은 성결의 전쟁이며 정결의 전쟁이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태초의 약속(창 3:15)이래로, 하나님은 역사상 대대로 대리 통치자들을 통해서 악한 마귀의 역사를 격퇴해 오셨다. 이제 마지막 날 아들을 보내어 그들을 궤멸하시되, 피곤해도 소생할 수 있는 시냇물을 주어 그 전쟁을 완수하게 도우실 것이다(시편 2편).
 
-멜기세덱 이후로 구약에서는 왕이면서 제사장인 인물이 아무도 없었다. 이는 분명 다윗의 후손으로 유다 지파에서 난 왕이요,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다보는 약속이다. 이 약속대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통치하고 보호하는 왕이실 뿐 아니라,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체휼하시면서 도우시고, 우리를 위해 하나님 우편에서 간구하시는 제사장이시다(히 5:1~10).
 
-다윗의 “주”는 왕이면서 제사장이었던 아브라함 시대의 멜기세덱 같은 메시아로 오실 것이다. 제사장으로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자신을 헌신하여 하나님께 드리고, 왕으로서 자기 백성을 위해 대적들과 싸워주시는 메시아로 오실 것이다. 하나님의 이 약속은 다윗의 후손으로 유다 지파에서 난 왕이요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통치하시고 보호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체휼하시면서 도우시고 간구하시는 제사장으로 오셨다(히 5:1~10).
 
-다윗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이미 시작된 승리의 역사를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지속하실 것이다. 그 싸움터로 우리를 부르셨다. 겁낼 필요 없다. 주께서 친히 싸우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룩한 백성들이 당연히 이길 것이다. 순결한 백성들이 이긴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며, 대제사장이며, 군대 대장 이시다. 그 주님께서 영원히 통치하신다. 
 
 
 
*주님, 다윗이 바라본 메시아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미리 알려주셔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정하신 뜻대로 이루어졌음을 깨닫습니다. 그 은혜 감사합니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왕, 제사장, 군대 대장으로 따르는 전적 순종의 걸음을 걷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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