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남겨두신 목적 [삿 3:1-11]
 – 2021년 11월 06일
– 2021년 11월 06일 –

사사기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범죄와 심판, 부르짖음과 구원이라는 패턴 속에서 옷니엘이 사사로 세움을 받는다. 2:22절에서 “시험”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이 시험은 조상들이 지킨 것 처럼 여호와의 도를 지키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본문에서 ‘시험’이라는 단어는 2번 반복하며(1, 4절) 첫 사사 옷니엘의 등장으로 연결한다.

본문의 시험은 ‘유혹, 미혹’이 아니다. “그들이 과연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조상들에게 내리신 명령에 순종하는지 순종하지 않는지를 알아보시려고 이런 민족들을 남겨놓으신 것(새번역_4절)”이라고 선명하게 밝히신 것 처럼 현재의 상황 속에서 믿음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평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험은 현재의 믿음의 상태와 수준을 보게하고 감사와 개선의 기회가 되는 귀한 기회였다. 만약 이 시험을 통해 교만해 지거나 드러난 문제점을 고치는 것을 회피 한다면 낭패를 당하게 된다.

하나님의 시험의 방법은 “남겨 두신 가나안 민족”이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을 분배 받고 아직 쫓아내지 못한 민족들을 당장의 유익과 편리함을 핑계로 “쫓아내지 않고”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게 한 그들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쫓아내지 않은” 그들을 이스라엘의 시험 도구로 사용하신다. 오히려 점차 이스라엘이 남겨 두신 가나안 족속들 가운데 거하게 함으로서 시험(test)하신다.


*목적(2, 4절)
이렇게 남겨두신 가나안 민족들을 통해 두 가지 목적을 두고 시험하신다. 먼저 “전에 전쟁을 겪어 본 일이 없는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들에게, 전쟁이 무엇인지 가르쳐 알게 하여 주려고 그들을 남겨 두신 것(새번역_2절)”이라고 밝히시며 “전쟁을 알게 하시려는 것 이었다. 또 하나는 과연 모세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대로 “순종”하는지 알아보고자 하셨다(4절).

결과는 참담했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이스라엘은 그들을 ‘쫓아내지 않고’ 있다가 시간이 흘러 ‘쫓아내지 못한’ 그들에게 패배하여 섬기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기는 전쟁을 잊어버린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먼저 “전쟁” 가운데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쫓아내야 할 민족들과 전쟁이 남아 있음을 자각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 그(가나안) 여러 민족의 딸을 데려다가 자기들의 아내로 삼았고, 또 자기들의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었으며, 그들의 신들을 섬겼다(새번역_6절). 싸워 물리쳐야 할 상대임을 분명히 알려주신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한 것이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의 여부도 “…주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겨,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다(새번역_7절).”

전쟁도, 순종도 모두 참패였다. 이로 인한 결과는 참담했다. 고대 전쟁의 ‘국룰’인 패배한 민족이 승리한 민족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이스라엘은 메소포타미아 왕인 “구산 리사다임(배나 악한 구스사람)”의 8년 압제를 받아야 했다(8절).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는 불순종이 인간 왕 구산 리사다임을 억지로 섬기게 되버렸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5-7절)
이렇게 된 것은 “제대로 싸움을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전쟁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말씀하신 대로” 살아내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할 전쟁을 직면할 때, “편리함과 유익함”의 유혹(시험, temptation)에 적당히 타협하여 자신이 통제할 수 있을 만큼의 족속을 남겨둔 자기 꾀에 걸려 들고 말았다.

*그들을 노예로 삼고 일을 하게 하는 적당한 편리함과 유익속에 감춰진 “전쟁 능력 상실(나태하여 준비를 소홀히 함)”이 가져온 “역전”을 가늠하지 못했다. 여기에 “남겨둔 가나안 족속들과의 통혼으로 인해 그들의 우상을 섬기는” 영적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 조차 우상들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시킴으로 하나님에게서 오는 전쟁의 승리를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 전략과 지혜로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망상이 가득 채워졌다.

*결국 가나안 정복의 역사적인 환호가 채 가시기 전 이스라엘은 “빠르게 하나님을 떠나갔다(새번역_2:17).


나는?
*나의 삶에 “세상 가치”를 남겨두신 이유
오늘날 나를 세상속에 남겨 두신 이유가 분명하다. 세상속에서 세상가치와 전쟁하는 법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 나라 가치대로 살아내기 위해 싸워야 할 세상 가치가 있음을 알고 그 전쟁에서 이기는 법을 알게 하시려는 거다. 놀랍게도 이 전쟁은 나의 힘과 능력으로 이길 수 있는 전쟁이 아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이기는 전쟁이다.

세상 속, 세상 가치의 영향력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 가치대로 정복해 나가도록 시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세상에 속해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찾고 또 찾아야 한다. 성도의 삶이 전쟁 가운데 있다는 것은 이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전쟁을 모른다면 결코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아내기 어렵다. 전쟁을 외면하거나 어설픈 세상과의 평화에 속으면 안 된다. 구원받아 구별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복음에 합당하게, 그 나라 백성답게 이 세상 나라 속에서 오롯이 살아내야 한다. 이 전쟁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하나님의 말씀(명령)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
모세는 신명기 8:3를 통해 “주님께서 당신들을 낮추시고 굶기시다가, 당신들도 알지 못하고 당신들의 조상도 알지 못하는 만나를 먹이셨는데, 이것은, 사람이 먹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당신들에게 알려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새번역)”라고 가르쳤다.

하나님께서 광야의 험한 삶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고 굶기시다 만나를 먹이신 이유는 분명하다. “사람은 먹는 양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명백히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였다.

인생을 광야라고 하고, 우리의 삶의 모습을 광야 생활로 빗댄다. 삶이 결코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것이다. 고통이 끊이지 않고 떨어지고 깨지는 자존감을 꼭 부여잡고 살아내는 삶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세상살이가 광야살이다.

그런데 세상살이는 먹고 살려고 발버둥치는 살이다. 하나님의 백성도 세상살이 가운데 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이 살아가는 세상살이와 분명이 다른 것이 있다. 세상살이는 먹고 살기 위해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말씀을 먹고 산다!”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 말씀에 순종하는 가를 시험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 결국 떡을 쟁취하는 세상살이라고 여기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 세상 속에서 살아내는 세상살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목전에서 행한 악(7절)
1928년 시리아의 우가릿(지중해 연안 도시)에서 고대 근동의 신화와 종교, 법률, 경제생활이 담긴 점토판들이 대거 출토 되었다. 연대측저 결과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전의 시기로 밝혀지면서 가나안 문명에 대한 이해의 근거가 되었다. 이 점토판들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당시 사회상들이 생생하게 드러났고, 왜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적대시 하셨는지, 그리고 가나안 족속들을 진멸하라(신 20:15)고 하셨는지에 대한 의도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일단 기록된 점토판 속 우가릿은 매우 세련된 문화를 이루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가장 번성했던 주전 15세기부터 12세기의 그들의 모습은 문자체계가 이미 완성되어 있어서 자신들의 고유 알파벳 30개, 성별, 단수와 복수, 쌍수의 구별이 명확하고 문장 어순이 확립되어 있을 정도로 문명이 발전하였다. 이런 우가릿의 종교관은 건기와 우기의 뚜렷한 구분은 하늘의 변화에 기인한다고 여겼고 하늘의 변화가 신들간의 전쟁에서 기인한다고 여겨서 자신들이 섬기는 풍요의 신인 바알, 아세라(아스다롯)과 같은 가족신들이 승리하기를 원하는 종교적인 제의를 정기적으로 치뤘다. 문제는 성적으로 매우 문란한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신전 매춘이 공공연하게 이루어 졌음을 “우가릿” 점토판을 통해 확인 되었던 것이다.

이런 가나안의 문화를 이스라엘은 받아들인 것이다. 그들의 딸들을 맞아 들였고, 자신들의 딸들을 그들에게 주어 통혼하였다. 악의 영향력은 매우 빠르게 끼치는 법인데, “그러나 그들은 사사들의 말도 듣지 않고, 오히려 음란하게 다른 신들을 섬기며 경배하였다. 그들은 자기 조상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걸어온 길에서 빠르게 떠나갔다. 그들은 조상처럼 살지 않았다.(새번역 2:17)”의 기록이 이를 대변한다.

하나님의 선함이 가나안의 악함에게 밀린 것이다. 하나님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의 백성이 너무도 쉽게 악의 영향력에 빠져 들었다. 가나안 전쟁은 땅을 차지하는 전쟁 이었지만, 결국 하나님의 백성 답게,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답게 가나안을 새롭게 세워야 할 전쟁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오늘날 세상 속에 있는 교회도 이와 같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 세상 가치에 빠르게 함몰되어 가는 힘 없는 교회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힘이 없어서가 아니다. 적당히 세상살이에 타협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분히 살 수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할 영적 기개를 “나의 만족함과 유익함, 편리함”과 바꾸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는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 이땅의 교회가 세상에 억압받게 된 것은 사사기의 외침에 무지했거나, 세상살이에 적당히 타협하는 것과의 전쟁을 외면 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이 한 없이 무겁고 무거운 아침이 되어 버렸다….

*위드코로나 속에서 위드지저스만이 전쟁을 이기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순종의 첨병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주님, 세상속에 교회를 남겨두신 목적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저 말씀대로 살아가보겠습니다. 전쟁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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