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또”, “그도”, 어? 이런 사람들이? [삿 3:12-31]
 – 2021년 11월 07일
– 2021년 11월 07일 –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측량할 수 없다. “또(다시, 12절)”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다. 40년간의 평안이 지나고 또 다시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다. 이번에는 모압와 에글론을 사용하셔서 18년을 이스라엘이 섬기게 하였다. 그 깊은 탄식의 시대를 끝낸 사사는 왼손잡이(왼손에 장애가 있는) 에훗이었다. 그는 모압 왕 에글론에게 조공을 바치는 척 접근하여 해치웠다. 그리고는 에브라임 산지에서 거병하여 여리고에서 도망치는 모압의 군사들을 요단 강 나루를 점령하고 만 명을 죽인다. 모압 땅으로 건넌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80년동안 이스라엘이 평안하였다.  사사 삼갈은 소를 모는 막대기만으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쳐 죽이며 이스라엘을 구원한다.


1.뼈아픈 배신… 그럼에도
옷니엘 죽은 이후 40년간 누린 평안이 이스라엘의 배신으로 끝나버렸다. 이제 다시 고통의 시대가 도래했다. 모압 왕 에글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가장 먼저 점령한 ‘종려나무 성읍(여리고)’을 빼앗고 억압했다. 그리고서 이전 압제 기간보다 더 긴 18년 동안 압제한다.

이스라엘의 이런 배신에 대하여 저자는 “또(야사프)”라는 단어로 요약한다. 야사프는 ‘반복하다, 추가하다, 다시 하다’라는 의미이다. 에훗이 등장하게 된 하나님을 배반한 그들의 모습이 “반복되고” 있음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같은 배신을 반복하는 이스라엘은 점점 형식적인 회개의 덫에 빠져드는 듯 하다. 40년전 바알과 아세라에 빠져 구산 리사다임에게 고통을 받았던 것을 “잊어버리고” 또(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12절).” 이번에는 모압 왕 에글론을 사용하셔서 종려나무 성읍을 차지하고 이스라엘을 억압하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에훗을 들어 이들에게서 구원하시고 80년이 평안 하였다.

하지만 사사 삼갈의 짤막한 기록이 이어지는데, “역시” “또” 이스라엘이 범죄하고 블레셋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심판했고 또, 하나님께 부르짖어 삼갈을 세워 구원하였다는 사실이 압축 된 것이었다.

*결국 “형식적인 회개”가 반복된 “또”의 덫에 걸리게 만들었다. 완전한 변화의 회개가 아니라 그저 형식만 갖춘 회개였던 것이다. 오늘날도 형식적인 홰개가 가져오는 신앙의 매너리즘은 심각하다. 매 주일 형식적인 회개의 기도는 드리지만, 삶의 변화가 없다.

*진실한 회개는 확연한 변화를 가져온다. 형식적 회개는 문제를 가릴 뿐이다.


2.어? 이런 사람으로도?!
에훗과 삼갈은 옷니엘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옷니엘은 갈렙과 함께 아낙 자손을 물리친 역전의 용사다! 갈렙의 사위이기도 하다. 소위 모범생이다. 옷니엘의 활약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에훗과 삼갈은 조금 생각해 봐야 한다.

일단 에훗은 베냐민 지파 출신이다. 한참 후의 일이지만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 안에서 정쟁 관계가 된다. 유다 지파의 후손 다윗, 베냐민 지파 출신의 사울왕의 대립이다. 다윗이 왕이 된 이후에도 베냐민 지파는 다윗에게 비협조적이었다. 또, ‘왼손잡이’는 원문을 직역하면 ‘오른손에 제약이 있는(오른손이 묶인)’으로 번역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베냐민 사람(15절)’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문자적으로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히브리어에 ‘왼손’으로 표현하는 단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단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오른손에 제약이 있는’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에훗이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고려해야 할 것은 사 20:15-16절에 등장하는 ‘왼손잡이’는 군사적인 목적에 따라 왼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때 에훗이 군사적인 능력이 특출난 특수부대원(?)일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그럼에도 이 특출난 재능을 공물을 갖다 바치는 사소한 일에 활용했다. 훈련받은 대로 살지 못한 사람이었다.

또 삼갈은 아낫의 아들이라고 소개한다. 아낫이 가나안 땅에서 섬기던 전쟁의 여신 ‘아낫’이라면 그는 이방신을 섬기던 자다. 그렇다면 그는 심판의 대상이지 하나님의 심판자가 될 수 없다. 이런 추측을 뒷받침하는 표현이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31절)”에서 “그도”이다. 즉, 전혀 예상 하지 못한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했다는 것이다. 이는 “소 모는 막대기”로 행한 일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고 “전쟁의 여신 아낫”을 섬기는 자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아무튼 에훗이나 삼갈이나 전혀 의외의 인물이 이스라엘을 모압과 블레셋에서 구원하였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내 안에 있는 선입견을 깨뜨리시는 하나님을 자주 경험했다. 나 역시 어떻게 그런 사람이… 라는 상황에 수없이 직면 했었다. 하나님의 주권을 제한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역시 그럴 수 있다.

*훈련받은 대로 살지 못하는 에훗을 들어 모압왕 에글론을 해결하신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전쟁의 여신 아낫을 섬기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삼갈이 그것도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도록 사용하신 것이다. 사람의 생각과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하나님의 창의성이 놀랍다.

*”어? 이런 사람으로도” 하나님의 구원은 막힘이 없다. 하나님은 역시 대단하시다. 이스라엘은 이런 하나님을 왜 그리 배반하기만 할까?…. 그럼에도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의 언약이 부르짖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주셨다.


나는?
-“또”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찾기란 쉬울 것이다. 그럼에도 그 깊은 사랑의 언약을 따라 오늘도 나를 구원하여 주신다. 그 사랑안에 내가 거하고 있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의외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도구가 되었다.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을 사람이기도 하고, 몸에 장애가 있을 수도 있는 에훗을 통한 구원 이야기는 통쾌하기 그지 없다. 일제 36년을 책으로만 배웠지만, 해방의 기쁨의 현장에 마치 나도 있는듯 흥분하고 열광 할 수 밖에 없는 영락없는 한국인인 나도 십분 공감되는 통쾌함이다. 그런데 그 놀라운 일을 ‘에훗’을 통해 일하셨다. 삼갈은 어떤가? 사사기 저자 조차도 “그도”라는 표현으로 기록할 만큼 의외성을 가진 인물이었고 의외성의 도구로 이뤄낸 구원이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면 이리 된다. 아무리 스스로 엉망이라고 생각하고 내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루저처럼 여겨지는 이라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면 18년의 고통을 끝내게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된다. 아무리 하나님과 상관없이 나의 마음에 끌리는 대로 다른 우상을 같이 섬기는 듯한 흐물 흐물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가졌더라도, 그가 손에 쥔 것이 겨우 ‘소 모는 막대기’라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면 블레셋을 물리치게 된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면… 이다!!!


*주님, “또”의 렉에 걸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주님, “그도”와 같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 역사하심으로 오늘 제가 구원의 자리에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 ‘장애, 약한 능력(소 모는 막대기)’이 제약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음을 믿지 못하는 믿음이 “내 삶의 제약”임을 깨닫습니다. 믿음을 굳게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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