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멜렉이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해 형제들 70명을 처형할 때 유일하게 탈출한 요담이 그의 잔인함을 세겜 사람들에게 비유로 전한다. 감람, 무화과, 포도나무는 왕이 되는 대신 풍성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자신들의 사명에 집중하겠다고 하며 나무들의 간청을 고사한다. 그런데 가시나무는 달랐다. “자신의 그늘에 들어오라”며 외치면서 그렇지 않으면 불로 태우겠다고 위협한다(7-16절). 요담은 이 우화를 마치고 격렬하게 외친다.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너희들이 이와 같이 될 것이다 라고…(17-21절).
1.요담의 용기(7절)
요담은 “스스로 숨어서(숨어 있었으므로_5절)” 살아남았다. 형제들을 바위 위로 끌고 갈 때 이미 숨었을 가능성이 크다. 요담의 은둔은 아비멜렉의 몇몇 비류들에게는 골치 아팠을 것이다. 하지만 요담을 끝내 찾아내지 못하고 세겜으로 돌아가 즉위식을 거행 했을 가능성이 크다.
요담은 은둔을 거듭하다가 사람들이 전하는 즉위식을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목숨을 두려워 하여 더 깊은 음지로 숨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선다. 세겜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그리심산에 올라 큰 소리로 그 백성들을 향해 외친다.
-이런 행동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의 상황이 아비멜렉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이미 세력을 결집했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요담에게 그 일을 알리매…(7절)”라고 시작하고, ‘스스로 숨은’ 요담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면 이미 아비멜렉을 대항하는 세력이 조직을 갖추었다고 생각된다.
-요담의 용기는 함께 지지하는 사람들의 지지가 커서가 아니다. 요담은 “…세겜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그리하여야 하나님이 너희의 말을 들으시리라(7절 하)”라고 외쳤다. 하나님 앞에서 이 소리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세력이 조직을 갖추었다고 한 들 아비멜렉의 세력과는 비교할 수 없었을 테다. 그럼에도 요담은 “하나님 앞에서” 이 일을 행한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행하였던 아비멜렉과 선명한 디조를 이룬다.
-하나님의 뜻을 알리고 외쳐야 할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순수한 마음으로 해야 함을 깨닫는다.
2.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16절)
용기있게 그리심산 정상에서 세겜을 향해 외치는 말은 “너희가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16절)” 였다. 나무들이 자신들의 왕을 뽑는 이야기를 통해 아비멜렉이 가시나무와 같은 이 임을 만천하에 고발한다.
나무들에게 먼저 추대 된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자신들이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기름과(9절) 단 것과 아름다운 열매와(11절) 포도주를(13절) 내는 것이 만족하고 기쁜데,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9, 11, 13절)”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왕이 되는 것보다 지금 자신들이 감당하는 본연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더 의미있고 기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시나무는 기가 찰 “호언장담”을 내 뱉는다. ‘너희가 정말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너희의 왕으로 삼으려느냐? 그렇다면, 와서 나의 그늘 아래로 피하여 숨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가시덤불에서 불이 뿜어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살라 버릴 것이다(새번역_15절).’
기름도 없고 열매도 없으면서 날카로운 가시만 내는 나무 주제에 나무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선뜻’ 왕 노릇 하겠다는 것이다. 가관도 아니다. 제안을 받는 그 자리에서 “엄포”를 놓으면서 아픙로 가중될 백성들의 고통과 결국 하나님을 떠나 멸망 당할 미래를 내다보게 한다.
가치없고 고통과 불편만 주는 해악덩어리인 가시나무와 같은 아비멜렉을 세겜 사람들은 선택한 것이다. 이 선택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라고 묻는 것이다.
-아비멜렉의 삶의 흔적은 왕이 되기 위해 세겜 사람들에게 보여준 모습이 그 자체다. 사람들에게 아무런 열매를 보여 주지 못했다. 그런 그가 왕이 되고 싶어 시도한 것은 비겁한 “분노유발”, 망국의 “혈연과 지연” 붙잡기, 폭력으로 억압하기”였다. 왕이 된다면 이런 것 쯤이야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긴 것이다.
-삶의 열매 없는 그가 다른 이들의 열매를 짓밟으며 그들의 왕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런 해악덩어리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세겜 사람들의 선택도 역시 악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바알이 싸우려는 자의 아들들을 따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기드온이 미디안으로부터 자신들의 조상을 구원하여 준 것도 잊어 버린 채, 미디안에게 비참하게 진멸 당할 뻔한 지경까지 몰린 자신들을 구해주신 하나님을 버리고 섬기는 바알의 대적을 따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기드온의 자손이면서 자신들과 혈육인 아비멜렉을 대신 섬기는 것은 좋은 선택지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비멜렉의 악함은 문제 되지 않았다. 왕의 재목이 아니지만, 자신들의 구미에 딱 맞았기에 “악인과 동행”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모든 백성을 고통 가운데로 몰아가는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3.진정한 왕, 하나님께서 계시기에
요담의 우화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어떤 삶이어야 하는지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왕이 되어 달라는 추대에도 자신들의 사명을 딸라 사는 삶에 만족하고 즐거워 하는 감람, 무화과, 포도나무들은 공교롭게도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들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왕이 되고자하는 욕망보다 왕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즐거움과 열매를 내는 삶이고, 이를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사시대의 고통은 “사명 따라” 사는 삶에는 관심 없고 “욕망 따라” 사는 삶을 추구하다 반복된 열매들 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 가운데 남겨 둔 이방 민족의 삶의 체계를 눈 여겨 보게 된다. 이스라엘이 힘이 있었을 때는 상관 없었지만, 그들이 세력을 키우고 안정되며 이스라엘 충분히 넘겨보고, 나아가 억압하는 상황이 반복 되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왕을 바라보게 된다.
그들의 강성함이 왕의 존재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들처럼 우리도” 왕을 세워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셔서 그들의 조상의 삶에 평화를 주셨어도 이를 바라보지 못했다. 진정한 왕이신 하난미의 통치가 얼마나 평안인지 “여호와 샬롬”을 누리지 못했다. 세상 왕의 강성함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이에 이스라엘이 “우리도 저들처럼” 왕을 세워 달라고 요청하기를 반복 한 것이다. 특히 이전의 4명의 사사 이야기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기드온에게 간청한 우리를 다스려 달라는 백성들의 간청은 이를 뒷받침 한다(삿 8:22).
-하지만 요담의 이야기에서 분명한 하나님의 의지가 돋보인다. 감람, 무화과, 포도나무들의 이구동성의 고백들, ‘내가 어찌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이 풍성한 기름 내는 일을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새번역_9절)’, ‘내가 어찌 달고 맛있는 과일맺기를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새번역_11절)’, ‘내가 어찌 하나님과 사람을 즐겁게 하는 포도주 내는 일을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새번역_13절).’
-“내가 어찌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세상 나라의 삶과 다르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사명을 따라 그 안에서 열매 맺고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고 행복하게 하면 살아가는 인생이다. 이 귀한 사명을 버리고 “어찌 세상을 다스린다며 날뛰겠는가?”
-이 땅에서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산물로 주신 “기름을 내고, 과일을 맺으며, 포도주를 내는” 사명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여기에 행복이 있다.
-하나님께서 왕이 되셔서 우리를 통치하시면 된다. 우리는 그의 통치 안에서 사명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기쁨과 행복을 누리면 된다. 인간 왕은 필요하지 않다!
나는?
-주제도 모르고 왕이 되겠다는 그를 나의 욕망과 일치한다고 해서 지지하고 세우는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사실 아비멜렉의 악함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세겜 사람들의 죄악을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자기들의 이익에 맞기만 하면 어떤 악함이나 악인과도 손잡고 합종연횡하는 그들의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상태를 성토하는 것이다.
-이런 세겜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소름끼치도록 일치하는 오늘날 대한민국의모습이 보여서 두렵고 떨린다. 너무나도 심각하게 들어 맞는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사사기 9장의 이야기가 재현 되고 있다.
-아무쪼록 열매도 없고, 가치도 없으며, 인품도 미천하고, 큰 소리치고 호령만 하는 가시나무와 같은 이가 “스스로 제왕”이 되겠다는 이 판에 세겜 사람들처럼 맞장구치며 추임새를 놓고 있는 이 나라가 개탄스럽다. 과연 이런 현재가 진실하고 의로운가?
-기쁨과 행복 축제가 되어야 할 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이 “분노와 편가르기”에 증오와 미움을 양산하게 하여 대립으로 이끌어가는 “세겜 사람들”과 같은 이들의 농락에 놀아나야 하겠는가! 과연 이것이 진실하고 의로운가?
*주님, 내가 먼저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라는 외침에 반응하겠습니다.
*주님, “진실하고 의로운” 선택을 위해 나를 돌아보겠습니다. 주님의 뜻을 더욱 구하겠습니다. 용기 있게 외치겠습니다.
오직 여호와만 송축하리로다 [시편 115:1-15]
할렐루야 시편 모음집의 다섯 번째 시편이다. 115~117편은 각 시편의 맨 마지막 구절에 “할렐루야”라는 명령형이 나온다. 열방이 섬기는 우상의 헛됨을 지적하며 이스라엘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동시에 여호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