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평안을 누릴 때 더욱 지켜야 할 말씀… [삿 10:1-18]
 – 2021년 11월 23일
– 2021년 11월 23일 –

아비멜렉 사후에 ‘돌라(잇사갈 지파)’가 사사로 세워져 에브라임의 산간지방 사밀에서 23년동안 활동했다. ‘야일(길르앗 사람/므낫세 지파)’은 22년동안 사사로 활동했고, 길르앗에 ‘하봇야일(야일의 촌락들)’을 형성 하며 살았다. 그리고 입다가 사사로 세워지기 전 그이 출현 배경을 먼저 설명한다. 극심한 종교적 타락과 하나님의 진노, 요단 동편 길르앗 지역에서 시작된 암목 족속의 억압이 유다, 베냐민, 에브라임 지역으로 확대 된다. 무려 18년 동안의 압제였다.

“그때에야(새번역_10절)” 부르짖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직접 말씀하시며 ‘나를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긴 백성들에게 신물이 나셨을음 드러낸다. 지금 너희들이 선택한 신들에게나 부르짖고 구원해 달라고 하라(13-14절)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곧장 자신들의 죄악을 인정하며 “그러나 오늘만은 우리를 구출하여 주십시오(새번역_15절)”라고 간청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섬겼던 이방 신들을 제거하고 주님만 섬기겠노라고 행동한다. 이 모습을 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고통을 보고만 계실 수 없었다(새번역_16절).

하지만 겉모습은 그렇게 변했을지 몰라도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을 떠나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쉽사리 변화되지 못했다. 백성과 지도자들은 누가 먼저 암몬과 싸우겠는가? 그 사람이 길르앗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고 외친다(17-18절). *하나님께 부르짖었으나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한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으나 끝까지 신뢰하지 못한다. 자신들의 계획으로 암몬을 물리치려 한다. *변화는 참 어려운 것이다.


1.점점 무너져가는 이스라엘(1-5절)
돌라와 야일에 대한 기록은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무난하게 사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역은 그렇게 했더라도 하나님께서 세운 사사로서의 과연 합당 할까 라는 의구심이 생긴다.

먼저 ‘돌라’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는 분명한 업적을 소개했다. 하지만 ‘잇사갈 지파’사람 이었음에도 ‘에브라임 지파의 산지 사밀’에서 거주하다 그곳에 묻힌다(1-2절). 각기 지파별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기업이 분명히 있는데, 그는 왜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서 그것도 산지에서 살았을까? 사사기 후반부에 등장하는 하나님께 분배 받은 땅을 이방민족에게 빼앗기고 자신들이 거주할 땅을 찾아 나선 ‘단 지파’ 이야기를 예고하는 듯 하다.

반면 ‘야일’은 사사로서의 업적에 대한 기록이 없다. 단지 아들 30명을 두었고 그들이 어린 나귀 30을 탔으며, 30개의 성읍(하봇야일_야일의 마을들)을 가졌다고 기록한다. 마치 기드온처럼 많은 부인을 두고, 왕이 누릴법한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렸음을 암시한다. 특히 사사들 중에서 성읍을 소유하였다고 처음 기록에 나타난다.

*돌라는 분배 받은 기업을 떠나 살았고, 야일은 하나님의 땅을 자기의 것 인양 소유하고 축재 하며 살았다. 하나님께서 주신 대로가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사사”였다. 혹자는 이들의 사사로서의 업적이 더 중요하지 않겠나 항변할 수 있겠다. 그런데 사사기 저자는 그들의 삶을 축약하며 사사로서의 업적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살았는가?에 더 초점을 두었을 수도 있겠다.

*돌라와 야일은 사사로서 특출한 업적이 없다. 그만큼 평안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가장 성실하게 지켜져야 할 “가나안 땅” 분배의 의미, 즉 하나님께서 이 땅의 주인이며 어느 곳이든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따라 살겠노라 선언하였던, 가나안 땅 정복 전쟁 초입의 “세겜 언약”을 정면으로 어기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 맞게, 상황에 따라, 자신의 지위(직분)에 걸맞는 스스로의 기준을 따라 삶의 열매를 남겼다. 내가 생각하는 삶의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맺혀진 열매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다음세대가 산다!


2.입다 등장 배경(6-18절)
입다가 등장하게 되는 시대 이전 돌라와 야일이 사사로 활동하던 시기와 분명한 변화를 먼저 언급한다. 그것은 사사기의 전형적인 하나님에게서 떠남의 징조인 “다시(또)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악을 저질렀다”의 구체적인 죄의 대상인 우상이 바알과 아스다롯에 국한 되지 않고 확대 되었다는 점이다.

죄는 반드시 전염되고 불어난다. 영향력은 축소되지 않는다. 확대 재생산된다. 먼저 우상의 종류가 그저 바알 신들, 아스다롯에 머문 것이 아니라, 아람(시리아)과 시돈(가나안 북부)의 신들과 모압과 암몬(가나안 동부), 블레셋(가나안 남서 해안) 사람의 신들을 섬겼다고 기록한다. 가나안 땅을 놓고 사방의 이방 족속들의 우상들을 거침없이 섬겼다는 것이다.

“그러므로(새번역_7절)”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블레셋과 암몬 사람들의 손에 이스라엘을 내어 주셨다. 지리적으로 보면 동쪽과 서쪽 양쪽에서 이스라엘을 핍박하게 하신 것이다. 무려 18년 동안이나 말이다.

그런데 18년 동안 억압하고 학대 당한 것을 암몬 족속이 요단강 동쪽 길르앗 지방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억압하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하신다. 블레셋의 억압은 향후 삼손을 통해 일하실 것이다(13:1). 또, 암몬 족속의 억압은 단지 요단 동편에 머문 것이 아니라 요단강을 건너 유다, 베냐민, 에브라임 지파가 분배 받은 가나안 중앙에서 남단에 이르기까지 확대되어 고통이 이루말 할 수 없었다(7-9절).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9절).” “곤고(야차르)”는 “매다, 갑갑하다, 비좁다, 곤란하다”라는 뜻이다. 매우 쓰라린 고통 중에 있음을 드러낸다. 특히 유다, 베냐민, 에브라임 지파는 남서쪽의 블레셋과 요단 동편에서 침략하는 암몬 족속의 억압에 의해 더욱 그랬다.

개역 개정은 번역되지 않았지만, 10절은 ‘그 때에야(새번역)’로 시작해도 무방하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할 때에야 ‘그 때에야’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 기간이 18년이 지난 “그 때에야”부르짖었다. 돌라와 야일이 사사로 있을 때 45년의 평화 이후에 18년 동안 하나님 목전에서 우상을 섬기다가 암몬 족속에게 심한 곤고를 당하고서야 “그 때에야”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슬프셨다. 벌써 몇 번째인가? 너무도 괴로우셨다. 그래서 인지 이번에는 곧바로 구원을 행하시지 않는다. 출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사사들을 세워 구원하여 주셨던 것을 먼저 상기시키신다(11-12절). 그리고는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여 주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다(13절). 너희들이 그토록 섬긴 이방신들에게 가서 구해 달라고 하라(14절)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우 당황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물러서지 않았다. 자신들이 18년동안 성겨오던 이방 신상들을 깨뜨리며 “오직 주님만 우리를 구하실 수 있으니 구해 주십시오!” 매달리는 이스라엘을 보시고 근심(고심) 하지 않을 수 없으셨다(15-16절).

*염치 불구하고 이 길밖에 없음을 외치며 우상을 제거하며 하나님을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하나님께서 아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방으로 둘러싸인 이방 우상들을 애초에 쫓아냈어야 했다. 애초에 진멸했어야 했다. 자초한 곤고함에 하나님의 고민이 깊어간다.


나는?
-명백하다. 돌라와 야일이 사사로 있을 때의 평화는 하나님만 온전히 섬길 때 그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평탄한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원하는 왕이 없어도 평화로울 수 있음도 알게 하신다.

-돌라와 야일의 업적이 없는 것은 도리어 그만큼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분명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돌라가 분배받은 땅이 아니라 에브라임 산지에 거하며 살다 죽어서도 고향 땅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것은 그 평화가 제한된 평화 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또, 야일의 “왕 같은 삶”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신 평화를 누리며 다시 말씀과 상관 없는 삶을 살다 간 사사의 모습이어서 씁쓸하다. 기드온이 이렇게 살다가 아비멜렉이 출현하지 않았던가!

-자녀들에게 풍족한 삶을 남겨주기 보다 하나님 의지하는 삶을 남겨 주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넘치도록 풍성한 삶은 아비멜렉과 같은 이단아가 나올 수도,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만들어서 다시 이방 우상들에게로 넘어가는 출발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평화로움도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누릴 때 변질되지 않는다.” 지키라 하신 명령을 꿋꿋하게 지켜 살아 낼 때 지금 누리는 평화가 다음 세대에게도 평화가 된다. 나의 자녀들에게 남겨줄 세상이 지금 나의 올바른 말씀 안에서 삶에 따라 그 향방이 결정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주님, 평안을 누릴 수록 더욱 주님 말씀을 붙잡는 지혜를 주십시오.
*주님, 너무도 잘 아시기에 근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죄송합니다. 좀 더 잘 믿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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