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에게 음식을 준비하지만, 이를 거절한다. 마노아는 또 그의 이름을 묻지만 사자는 ‘어찌하여’ 이름을 묻냐며 ‘기묘자’라고 대답한다. 마노아가 준비한 음식은 거절하고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라는 여호와의 사자의 말을 듣고 준비한 번제물에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일어나 하늘로 올라가고 여호와의 사자는 그 불꽃에 휩싸여 올라간다. 이를 본 부부는 그제서야 비로소 여호와의 사자인 줄 깨닫는다. 마노아는 하나님을 보았으니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이지만 아내는 오히려 담대하게 하나님을 신뢰한다.그렇게 삼손을 출산하고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의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임하였다.
1.기묘자(신비로우신) 하나님
고대인들의 사고방식에는 인간이 신의 이름을 알면 그 신을 자유자재로 부르면서 그가 가진 힘을 이용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당시 가나안 종교들에서는 흔한 사고방식이었다. 블레셋의 40년 압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고방식을 이방인과 다름 없이 변모 시켜 놓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사실 성경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로 특정하지 않는다.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려 졌다. 본문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의 이름을 “기묘자”라고 표현 하였다. 이는 실제로 이름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속성”을 표현 한 것이 틀림없다. “비밀, 신비”라는 뜻을 가진 기묘자(필리)는 “비밀스럽고 놀라운 것”을 뜻한다. 이 단어는 오직 하나님께만 쓰여진 것으로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표현이기도 하다(사 9:6).
결국 하나님의 이름은 알려주지 않았지만,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인간의 이해로 결코 납득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대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신다. 블레셋의 압제를 받는 40년 동안 하나님께 부를짖는 것 조차 잊어버린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구원을 준비하시는 신비스러운 하나님이시다. 당장 상황을 반전시킬 기적이나 인물을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 잉태될 아기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고 감추어져 있어 반응할 수 없지만 구원의 계획을 착착 진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인간의 이해 능력으로 모두 받아들이기에 벅찬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묘자”이시다. 인간의 상식과 이해를 넘어서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그렇다. 인간의 상식과 이해로는 도무지 수용불가한 구원의 역사를 하나님께서는 이루셨다.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위대한 역사가 바로 그것이다.
*본문은 마노아의 신앙보다 그의 아내의 신앙을 도드라지게 자세히 묘사했다. 자신이 구하여 만난 이가 하나님의 천사였음을 깨달은 마노아는 죽음의 공포에 두려워 하지만, 정작 그의 아내는 “만약 하나님께서 죽이려 했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라며 오히려 더욱 담대해진다.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 하리라 하였더라.”
*마노아보다, 아내가 훨씬 성숙하다.
2.아이의 이름은 삼손(빛나는!).
삼손의 이름의 뜻은 ‘작은 태양”이다. 직역하면 “빛나는”이라는 의미도 있다. 여호와의 천사가 나타나 수태고지까지 했지만 이름은 어떻게 지으라고 하지는 않았다. 이름은 마노아가 지었을 것이다. 아마도 제단의 제물에 불꽃이 일어나고 그 불꽃을 타고 올라간 천사의 모습을 본 경험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천사가 알려준 이 아이의 사명,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5절)”을 기억하고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블레셋의 압제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소망의 빛을 비추는 사람이 되라는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이름의 의미가 “작은 태양”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죄의 영향 아래 묶여 있으면서도, 이로 인해 블레셋의 압제를 받고 있음에도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도 잊어버린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빛이 비추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받아 들일 수도 있겠다.
마노아 부부는 소라 땅에 살았다(1절). 구원의 하나님의 이름을 “빛나게” 하도록 “주님께서 내리시는 복을 받으면서 잘 자랐다(새번역_24절).” 그리고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이다”는 말은 “휘젓다, 소란케 하다”라는 뜻이다. 삼손이 자라면서 블레셋의 압제에 눌려 있어 굳어진 이스라엘의 마음을 휘젓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도록 소란케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은 겉으로 보기에 평탄한(?) 삶을 흔드는 격동으로부터 시작한다. 죄에 무감각해져 있는 마음을 흔들고,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한 지식을 깨뜨려서 생동하는 말씀을 집어 넣으신다. “여호와의 영”이 움직이기 시작하여 구원의 여명을 비추실 때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다. 그렇다면 편안하다 여기는 일상에서 마음이 격동되고 삶이 소란하게 되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는 그 “소동”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나아가야 한다.
나는?
*주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기묘한 부분까지 주님의 뜻 아래 섭리되고 있음을 믿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을 직면할 때 더욱 주님만 의지하겠습니다.
*주님, 마노아의 아내의 신앙이 탁월합니다. 저에게도 슬기로운 아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일어나는 소란을 기다립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코로나로 인한 소란이 다시 복음으로 회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시작인 줄 믿습니다. 여호와께 더욱 돌아가겠습니다.
오직 여호와만 송축하리로다 [시편 115:1-15]
할렐루야 시편 모음집의 다섯 번째 시편이다. 115~117편은 각 시편의 맨 마지막 구절에 “할렐루야”라는 명령형이 나온다. 열방이 섬기는 우상의 헛됨을 지적하며 이스라엘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동시에 여호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