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사사인가? [삿 14:1-20]
 – 2021년 11월 30일
– 2021년 11월 30일 –

삼손이 블레셋의 딤나에 사는 한 여인과 결혼하는 이야기이다. 하나님의 복을 받고 자란 삼손, 여호와의 영이 움직이는(13:24-25) 삼손의 모습이 맞나 싶다. 참람한 것은 블레셋의 40년간의 다스림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는 것에 그다지 가치를 두지 않는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1.삼손에게서 보이는 이스라엘의 상태(1-4절)
삼손의 부모는 아들이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인을 아내로 삼겠다는 말에 낙담한다(2-3절). 부모의 마음에 아랑곳 하지 않고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라고 조른다. 그리고서 부모와 함께 딤나로 내려가서 ‘상견례’를 한다. 딤나의 포도원에서 어린 사자 한 마리가 달려들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세차게 내리 덥쳐 아무런 도구 없이 맨손으로 사자를 염소 새끼 찢듯이 찢어 죽인다. 하지만 이 일은 부모에게 말하지 않는다(5-6절). 삼손은 딤나의 여인을 무척이나 좋아했다(7절). 시간이 지나 결혼식을 하기 위해 다시 딤나로 내려가는 길에 자신이 찢어 죽인 사자의 몸에 벌떼가 있고 꿀이 고여 있었는데(8절), 삼손은 이를 떠 먹는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부모에게 가져다 준다(9절).

*삼손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다. 하지만 삼손도 피 끓는 청춘이다. 이성에 대한 마음도 감출 수 없다. 문제는 블레셋 여인을 마음에 두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부모님에게 자신이 하려는 이방결혼을 끝까지 고집한다. 당시 세계관으로 용납할 수 없는 부모의 반대도 아랑곳 하지 않는 모습이 충격적이다. 아버지의 권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삼손은 사사로 부름 받은 과정이 앞의 11명과 다르다. 그들은 모두 성인이었을 때 세워졌지만, 삼손은 잉태 되기도 전에 부모의 특별한 준비로 구별된 나실인으로 길러졌다. 그런데 실망스럽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것에 따라 결정하고 움직였다. 나실인의 본문은 져버리고 정욕을 따라 행동한다. 딤나의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그 지역으로 들어가 7일 동안 잔치까지 벌이며 그 지역 청년들과 어울렸다. 사사로서의 구별된 모습은 도무지 찾아 볼 수 없다. 삼손은 나실인으로 태어나 자랐지만, 경건의 모양은 몸에 베어 있지 않다. 나실인으로서 가치와 철학을 따라 사는 삶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 보이는 대로” 기분과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즉흥적인 사람이었다.

*사사였지만, 함께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연대하지 않았고, 그저 홀로 기분따라 움직였다. 이런 이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라니….


*그런데 블레셋의 압제를 40년 동안 받고 있는 이스라엘의 상태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권위는 온 간데 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산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구별됨은 찾아 볼 수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결정하고 추구한다. 삼손이나 이스라엘이나 다를 바 없다.

*나는 과연 어떨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님께 떼쓰며 구하고 “내가 좋하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뜻과 방법은 상관하지 않고 그저 내 마음대로 행하는 것은 블레셋 여인을 좋아해서 딤나까지 가서 결혼하는 삼손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유구무언이다…. 삼손이나 이스라엘이나 나나….


2.그런데…(4절)
그런데 성경은 삼손의 이런 행동에 대하여 “이 일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기록했다.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 하기 위해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한 것”이라고 했다.

이 구절만 본다면 삼손은 블레셋을 치기 위해 결혼식을 가장하여 블레셋 딤나로 내려 간 것이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삼손은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삼손의 럭비공처럼 톡톡 튀는 삶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역사를 진행 하셨다는 의미다. 만약 삼손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결혼식을 이용해 틈을 벌였다면, 부인으로 맞이한 여인을 이스라엘의 가족으로 데리고 왔어야 마땅하다. 그것이 옳다! 여리고의 기생 라합처럼 말이다.

이런 계획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면 당연히 그래야 했다. 하지만 삼손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과 결혼한 여인을 “…그의 친구에게(20절)” 주고 만다. 도대체 말이 안되는 상황이다. 삼손의 됨됨이는 결코 경건하지 않다.


*그렇다면 삼손의 이런 막무가내 됨됨이를 통해서라도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베푸시려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역사가 시작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사라도 이처럼 엉망인 하나님의 백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구원의 역사의 도구로 사용하시려는 삼손이 엉망진창인 삶을 살고 있어도 그러한 삶이 하나님의 역사를 가리거나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드러나지 않지만, 흔들림 없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또, 삼손은 철 없이 딤나 여인과 결혼하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틈을 타서 블레셋을 치실 것이다.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의 작당에 이리 저리 몰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여인에게 배신을 당하지만 그 “틈”을 타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학대하는 블레셋을 보복하신다.

*무엇보다 심각하게 우려스러운 이스라엘의 블레셋화의 상징과도 같은 삼손의 이방결혼 이라는 자기 멋대로의 계획을 오히려 블레셋을 깨뜨리시는 “틈”으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제 멋대로인 삼손의 럭비공과 같은 삶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 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하셨다.


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자란 삼손, 여호와의 영이 임하여 산 삼손… 그런데 그 삶은 나실인으로 거룩하게 구별된 것이 아니라 “제 멋대로”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그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아 애굽에서 탈출했다. 그렇게 거룩하게 구별된 백성으로 세워 졌지만, 지금은 제 멋대로다. 황당하기 그지없다.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삼손 처럼 “제멋대로”다. 거룩하게 구별되는 것이 마음을 쏟기 보다, “내 마음대로, 내가 좋아하는”것에 더 심취한다. 삼손과 다를 바 없는 삶이다. 어이가 없다.

-하지만, 이런 제멋대로의 삶을 사용하시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을 블레셋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사랑이 놀랍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는 것은 나의 삶도 매한가지 아니겠나… 한량 없는 은혜로 부름 받아 살아가면서 여전히 제멋대로 살아가는데 삼손을 뭐라 할 수 없다. 삼손처럼 “틈” 많은 인생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활당하고 어이없는 “틈”을 놀라운 은혜로 메우시고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드러 내신다!

*삼손의 이야기는 그의 제멋대로의 삶을 감상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 제멋대로의 “틈”을 “기묘하게(신비스럽게) 메우시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드러내시는 이야기이다.


**주님, 늘 제멋대로 “틈” 벌려 살아온 인생이었는데, 주님의 역사하심으로 틈이 메워졌습니다. 좀 더 “틈” 벌리며 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주님, 사사인가 의심스러울 삼손을 사용하셔서 구원의 여정을 이루셨습니다. 지금도 한없이 부족하고 연약하기만 한 우리들을 포기하지 않아주시며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도 하나님 끝까지 붙잡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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