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38:1-20 거룩의 울타리, 휘장 문을 지나 물두멍으로 정결하게..
성막을 완공하고 성막 뜰에 있는 번제단(1-7절)과 물두멍(8절), 울타리와 휘장 문(9-20절)을 설치했다. 주 재료는 ‘조각목’과 ‘놋’이었다.
1.번제단(1-7절)
브살렐은 조각목으로 번제단을 만들었다. 놋으로 싼 정사각형의 형태이다. 성막의 기물들 중에서 가장 크다. 놋의 융해점은 1,083도이다. 번제단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 드리는 희생 제물이 번제로(불에 태워서 드리는 제사) 드려야 했기에 조각목으로 형태를 만들고 놋으로 완전히 감쌌다!
이 번제단이 위치한 곳은 성막의 안뜰이다. 이곳은 번제와 같은 제사만 드리는 곳이 아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을 먹는 화목의 장소가 뜰이었다. 희생과 화목…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이 이와 같았다. 성막의 뜰은 훗날 예수님께서 이루실 희생과 화목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소였다.
*제단에 드려지는 제물들의 희생이 나와 하나님 사이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그들의 희생이 하나님과 나의 화목함을 가져 왔다. 번제단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잘 드러내 보여 준다.
2.물두멍(8절)
물두멍은 놋으로 만든 대형 대야이다. 번제단의 앞, 성소의 입구에 설치 되어 있는데, 제사장들의 손과 발을 씻는 용도였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반드시 손과 발을 씻어 스스로 정결하게 한 후에 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씻지 않고 성소에 들어가면 그는 죽임을 당한다. 또한 번제단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기 전과 후에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어야 했다.
*브살렐은 이 물두멍의 재료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놋)거울로 만들었다(8절)” 기록으로 남은 공식 제작 연감에 물두멍의 재료를 기증한 특정계층을 언급했다. 여인들의 헌신이 정결함을 유지해야 할 제사장들을 위한 물두멍을 제작하는 재료가 되었다. 무시되던 여인들의 얼굴을 보는 놋거울이 정결함을 유지하는 도구의 재료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성별, 신분의 격차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상은 누가 한 것을 중요시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누가”했느냐 보다 “어떻게” 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누가 드렸는가의 판단이 아니라 어떻게 사용되었는가이다.
*교회 안에 다양한 모습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신 “거룩함”으로 연합되어 가는 도중에 “누구ㅡ”의 역할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순종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심각한 하나님 앞에서의 죄인이었지만, 주님께서 죄인인 나의 모습에 초점을 두지 않으시고, 회복할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모습으로 바라보시며 기꺼이 대신 생명을 내어 주신 것처럼…
*여인들의 놋거울이 제사장들의 생명과도 같은 정결함을 유지하기 위한 물두멍이 되었다. 그녀들의 헌신이 제사장의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도왔다.
3.울타리와 회막 문(9-20절)
성막만 덩그러이 만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시내산에 도착하여 자신을 만나러 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산 기슭에 경계선을 설치하신 것처럼, 성막도 울타리를 만들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의 한 가운데 성막이 있지만, 백성들의 장막과 구별없는 성막이 아니라 확연하게 구분되는 “거룩한 영역”을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백성들 안에 거하시지만, 백성들의 세속함에 묻혀 계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또렷하게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막의 공간을 구별지으신 것이다. 울타리는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구별되는 존재이심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경계선이었다.
그 구별된 공간을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바로 “휘장 문(18-19절)”이다. 울타리로 세운 휘장들은 가는 베실로 직조한 깨끗한 세마포였지만, 길이 약 9m, 넓이와 높이가 각각 2.25m의 휘장 문은 당시 가장 비싸고 귀한 재료인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를 놓으면 짠 것이었다(18절).
이렇게 아름답게 짠 휘장을 기둥 네 개로 연결하여 휘장으로 된 문을 만들었다. 성막을 출입하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고 교제하기 위해 오는 것 외에 임의로 출입할 수 없도록 단단히 구별 지으셨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함께 하신 하나님이셨지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고 유지한 매우 중요한 공간이었다.
*세상의 가치와 문화가 섞이지 않는 공간이었다. 세속에 물든 이가 하나님께 나아오기 위해서는 휘장 문을 지나 물두멍으로 정결하게 한 후에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었다. 성막 울타리 바깥이 아무리 세상가치에 함몰되었어도 성막 안으로 들어올 때는 그 모든 세상 가치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방법과 뜻, 말씀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했다. 그 경계가 바로 울타리와 휘장 문이었다.
*오늘날 교회가 그렇지 않겠나! 세상 문화 속에 있지만, 세상에 동화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로 오롯이 구별되어 존재하는 곳이어야 하지 않겠나! 시대와 환경에 따라 세상 가치는 변하지만 교회는 아무리 상황과 여건이 역사의 흐름에 따라 그 문화와 풍속이 달라진다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변치 않고 지켜지고 하나님의 통치하심에 우선 순종하는 구별된 곳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세속의 가치가 교회 안에 들어와 이것 저것 흐트려 놓고 하나님 말씀의 가치보다 더 중요시 여기며, 상황에 따라 말씀을 폄하하거나 왜곡하거나 외면한다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의 가치가 구별되어 남아 있어야 할 교회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겠는가! 아쉽게도 이렇게 섞여버린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더온누리교회는 말씀의 울타리를 잘 세워, 말씀의 문으로 출입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의 거룩함을 세상 속에서 오롯이 지켜 나가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세속에 찌들어도 이렇게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으로 순전하게 구별되는 공간이 있다면, 그곳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진리의 말씀들이 영향력을 흘려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울타리 제대로 세우고, 휘장 문 늘 열어 놓자. 그리하여 세상속의 교회가 교회답게 서 있을 수 있도록 구별별되어 보자… 생각과 행동과 가치가 세상의 그것들과 적절하게 섞이는 것 보다 변치 않아야 할 말씀의 구별됨을 오롯이 지켜내고, 다만 거룩함의 영역으로 언제든지 출입할 수 있도록 휘장의 문은 늘 열어두고, 물두멍의 물을 가득 채워두고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올수 있도록 “구별되나 연결되어 있는” 거룩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보자!
나는?
-성막의 뜰은 세상과 성막 사이에서 거룩한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모든 이들이 정결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오도록 준비시키는 공간이다. 여인들의 헌신으로 만들어진 물두멍은 제사장들의 정결을 유지시켜 주었고 성막의 뜰로 안내하는유일한 출입구인 휘장 문은 세상과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막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이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믿으면 그 이름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다. 그럼에도 아무곳에서나가 아니라 하나님과 만나는 거룩한 장소가 필요하다. 세상 속에 거하고 있지만 세속의 여러 유혹들을 구별하고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한 그곳이 필요하다.
-그곳이 바로 교회당이다. 코로나로 인해 이 거룩한 공간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배타적인 공간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과의 특별하고 집중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하다. 위드코로나 시행을 앞둔 지금, 세상은 더욱 노골적으로 자신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강조하며 자기욕망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만나고, 함께 감격의 예배를 드리는 구별된 장소가 이 세상에는 필요하다.
-그곳이 이미 우리의 교회당이다. 그리고 이 교회당이 구별되어 거룩한 장소가 되도록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구별된 마음이 더욱 요청된다. 교회 안에 세속의 가치를 투영한 제도를 만들려는 욕망을 물두멍으로 씻어 내야 한다. 내가 합리적으로 인정하며 받아 들일 여무를 결정하는 기준들을 세속의 기준이 아니라 “말씀”에 두도록 욕망의 생각들을 물두멍에 씻어야 한다.
-교회에는 세속 가치가 들어와 활개치고 세상의 사상, 철학, 제도로 움지여 지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왕 되신 곳,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에 순종하는 곳”이어야 하기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모든 영역에서 지켜지고 지켜지도록 순종해야 한다.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나의 교회가 세상 속에서 거룩하게 구별되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거룩함을 구별하려 세워신 울타리를 욕망에 취해 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유일한 통로인 “휘장 문”,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출입하여 세속의 부정함을 물두멍에 씻어야 유지된다.
-교회가 세상을 닮아가려고 해서도 안되고 세상이 교회에게 자신들과 같아 져야 한다고 요청해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은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과 구별되는 특별한 장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님, 세상 속에서 하나님 말씀하신대로 지켜내어 하나님 나라 백성 답게 서 있겠습니다. 말씀의 울타리를 늘 정비하겠습니다.
*주님, 세상에 오염되었어도 언제든 주 예수님의 이름과 성령님의 도우심의 물두멍이 나를 세상 속에서 거룩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주님, 세상 속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유지되는 공간을 지키겠습니다. 나의 마음, 나의 교회 힘껏 거룩으로 서겠습니다.
성막을 완공하고 성막 뜰에 있는 번제단(1-7절)과 물두멍(8절), 울타리와 휘장 문(9-20절)을 설치했다. 주 재료는 ‘조각목’과 ‘놋’이었다.
1.번제단(1-7절)
브살렐은 조각목으로 번제단을 만들었다. 놋으로 싼 정사각형의 형태이다. 성막의 기물들 중에서 가장 크다. 놋의 융해점은 1,083도이다. 번제단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 드리는 희생 제물이 번제로(불에 태워서 드리는 제사) 드려야 했기에 조각목으로 형태를 만들고 놋으로 완전히 감쌌다!
이 번제단이 위치한 곳은 성막의 안뜰이다. 이곳은 번제와 같은 제사만 드리는 곳이 아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을 먹는 화목의 장소가 뜰이었다. 희생과 화목…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이 이와 같았다. 성막의 뜰은 훗날 예수님께서 이루실 희생과 화목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소였다.
*제단에 드려지는 제물들의 희생이 나와 하나님 사이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그들의 희생이 하나님과 나의 화목함을 가져 왔다. 번제단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잘 드러내 보여 준다.
2.물두멍(8절)
물두멍은 놋으로 만든 대형 대야이다. 번제단의 앞, 성소의 입구에 설치 되어 있는데, 제사장들의 손과 발을 씻는 용도였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반드시 손과 발을 씻어 스스로 정결하게 한 후에 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씻지 않고 성소에 들어가면 그는 죽임을 당한다. 또한 번제단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기 전과 후에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어야 했다.
*브살렐은 이 물두멍의 재료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놋)거울로 만들었다(8절)” 기록으로 남은 공식 제작 연감에 물두멍의 재료를 기증한 특정계층을 언급했다. 여인들의 헌신이 정결함을 유지해야 할 제사장들을 위한 물두멍을 제작하는 재료가 되었다. 무시되던 여인들의 얼굴을 보는 놋거울이 정결함을 유지하는 도구의 재료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성별, 신분의 격차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상은 누가 한 것을 중요시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누가”했느냐 보다 “어떻게” 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누가 드렸는가의 판단이 아니라 어떻게 사용되었는가이다.
*교회 안에 다양한 모습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신 “거룩함”으로 연합되어 가는 도중에 “누구ㅡ”의 역할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순종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심각한 하나님 앞에서의 죄인이었지만, 주님께서 죄인인 나의 모습에 초점을 두지 않으시고, 회복할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모습으로 바라보시며 기꺼이 대신 생명을 내어 주신 것처럼…
*여인들의 놋거울이 제사장들의 생명과도 같은 정결함을 유지하기 위한 물두멍이 되었다. 그녀들의 헌신이 제사장의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도왔다.
3.울타리와 회막 문(9-20절)
성막만 덩그러이 만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시내산에 도착하여 자신을 만나러 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산 기슭에 경계선을 설치하신 것처럼, 성막도 울타리를 만들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의 한 가운데 성막이 있지만, 백성들의 장막과 구별없는 성막이 아니라 확연하게 구분되는 “거룩한 영역”을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백성들 안에 거하시지만, 백성들의 세속함에 묻혀 계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또렷하게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막의 공간을 구별지으신 것이다. 울타리는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구별되는 존재이심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경계선이었다.
그 구별된 공간을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바로 “휘장 문(18-19절)”이다. 울타리로 세운 휘장들은 가는 베실로 직조한 깨끗한 세마포였지만, 길이 약 9m, 넓이와 높이가 각각 2.25m의 휘장 문은 당시 가장 비싸고 귀한 재료인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를 놓으면 짠 것이었다(18절).
이렇게 아름답게 짠 휘장을 기둥 네 개로 연결하여 휘장으로 된 문을 만들었다. 성막을 출입하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고 교제하기 위해 오는 것 외에 임의로 출입할 수 없도록 단단히 구별 지으셨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함께 하신 하나님이셨지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고 유지한 매우 중요한 공간이었다.
*세상의 가치와 문화가 섞이지 않는 공간이었다. 세속에 물든 이가 하나님께 나아오기 위해서는 휘장 문을 지나 물두멍으로 정결하게 한 후에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었다. 성막 울타리 바깥이 아무리 세상가치에 함몰되었어도 성막 안으로 들어올 때는 그 모든 세상 가치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방법과 뜻, 말씀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했다. 그 경계가 바로 울타리와 휘장 문이었다.
*오늘날 교회가 그렇지 않겠나! 세상 문화 속에 있지만, 세상에 동화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로 오롯이 구별되어 존재하는 곳이어야 하지 않겠나! 시대와 환경에 따라 세상 가치는 변하지만 교회는 아무리 상황과 여건이 역사의 흐름에 따라 그 문화와 풍속이 달라진다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변치 않고 지켜지고 하나님의 통치하심에 우선 순종하는 구별된 곳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세속의 가치가 교회 안에 들어와 이것 저것 흐트려 놓고 하나님 말씀의 가치보다 더 중요시 여기며, 상황에 따라 말씀을 폄하하거나 왜곡하거나 외면한다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의 가치가 구별되어 남아 있어야 할 교회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겠는가! 아쉽게도 이렇게 섞여버린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더온누리교회는 말씀의 울타리를 잘 세워, 말씀의 문으로 출입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의 거룩함을 세상 속에서 오롯이 지켜 나가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세속에 찌들어도 이렇게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으로 순전하게 구별되는 공간이 있다면, 그곳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진리의 말씀들이 영향력을 흘려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울타리 제대로 세우고, 휘장 문 늘 열어 놓자. 그리하여 세상속의 교회가 교회답게 서 있을 수 있도록 구별별되어 보자… 생각과 행동과 가치가 세상의 그것들과 적절하게 섞이는 것 보다 변치 않아야 할 말씀의 구별됨을 오롯이 지켜내고, 다만 거룩함의 영역으로 언제든지 출입할 수 있도록 휘장의 문은 늘 열어두고, 물두멍의 물을 가득 채워두고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올수 있도록 “구별되나 연결되어 있는” 거룩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보자!
나는?
-성막의 뜰은 세상과 성막 사이에서 거룩한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모든 이들이 정결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오도록 준비시키는 공간이다. 여인들의 헌신으로 만들어진 물두멍은 제사장들의 정결을 유지시켜 주었고 성막의 뜰로 안내하는유일한 출입구인 휘장 문은 세상과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막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이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믿으면 그 이름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다. 그럼에도 아무곳에서나가 아니라 하나님과 만나는 거룩한 장소가 필요하다. 세상 속에 거하고 있지만 세속의 여러 유혹들을 구별하고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한 그곳이 필요하다.
-그곳이 바로 교회당이다. 코로나로 인해 이 거룩한 공간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배타적인 공간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과의 특별하고 집중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하다. 위드코로나 시행을 앞둔 지금, 세상은 더욱 노골적으로 자신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강조하며 자기욕망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만나고, 함께 감격의 예배를 드리는 구별된 장소가 이 세상에는 필요하다.
-그곳이 이미 우리의 교회당이다. 그리고 이 교회당이 구별되어 거룩한 장소가 되도록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구별된 마음이 더욱 요청된다. 교회 안에 세속의 가치를 투영한 제도를 만들려는 욕망을 물두멍으로 씻어 내야 한다. 내가 합리적으로 인정하며 받아 들일 여무를 결정하는 기준들을 세속의 기준이 아니라 “말씀”에 두도록 욕망의 생각들을 물두멍에 씻어야 한다.
-교회에는 세속 가치가 들어와 활개치고 세상의 사상, 철학, 제도로 움지여 지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왕 되신 곳,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에 순종하는 곳”이어야 하기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모든 영역에서 지켜지고 지켜지도록 순종해야 한다.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나의 교회가 세상 속에서 거룩하게 구별되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거룩함을 구별하려 세워신 울타리를 욕망에 취해 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유일한 통로인 “휘장 문”,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출입하여 세속의 부정함을 물두멍에 씻어야 유지된다.
-교회가 세상을 닮아가려고 해서도 안되고 세상이 교회에게 자신들과 같아 져야 한다고 요청해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은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과 구별되는 특별한 장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님, 세상 속에서 하나님 말씀하신대로 지켜내어 하나님 나라 백성 답게 서 있겠습니다. 말씀의 울타리를 늘 정비하겠습니다.
*주님, 세상에 오염되었어도 언제든 주 예수님의 이름과 성령님의 도우심의 물두멍이 나를 세상 속에서 거룩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주님, 세상 속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유지되는 공간을 지키겠습니다. 나의 마음, 나의 교회 힘껏 거룩으로 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