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함께 동행 [출 33:12-23]
 – 2021년 10월 18일
– 2021년 10월 18일 –
출 33:12-23 함께 동행

33잘은 중보자 모세의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상숭배로 진노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백성들 가운데 죄악의 걷어내고 다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게 하려는 절박한 마음이 가득차 있다. 단지 일상의 불편함 없이, 보호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는 증표가 아니라 시내산에서 처음 만날 때 약속하신 것 처럼 “늘 하께 하여 주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로 회복을 갈망하며 간청을 주저하지 않는다.

실랑이다…하나님과의 실랑이… 왜 그랬을까? 간단하다. 모세는 광야를 지나 가나안을 정복하는 여정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지 않으시면 안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다. 하나님이시기에 인도하고 보호해 주시는 은혜와 능력이 절실하기에 “사자가 앞서 가며” 길을 열 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지 않으면 안됨을 절실하게 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없이 가는 길이냐… 하나님과 함께 가는 길이냐의 차이는 분명하다. 그것을 안다면 나도 하나님과 실랑이 하며 확답이 올 때까지 꿈쩍 않겠다!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려 하겠다! 차라리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서 여정을 마무리하는 것이 더 복된 길인 것이 확실하다. 그러니 모세의 실랑이는 생명을 건 실랑이가 되는 것이다.


모세의 간구(15-18절)
모세의 간절한 간구는 하나님께서 직접 함께 해 주셔야 한다는 것이다. 동행해 주시라는 거다. 이렇게 간구하는 근거는 “자신을 이름으로 불러주실 만큼 잘 아시고 저에게 큰 은총을 베푸신다(새번역_12절)”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주의 백성으로 여겨 달라고 호소한다(13절). 또한 하나님 대신 사자를 보내 주시겠다는 약속에 만족하지 않고 “여호와께서 몸소 함께 가주시도록(15절), 여호와의 영광을 자신에게 보여 달라고(18절) 간청한다.

사실 하나님의 영광(얼굴)을 보여 달라는 간청은 죽음을 각오한 것이다. 모세도 죄인이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은 자신이 죄에 대하여 거룩하지 않으면 죽음과 맞바꾸는 것임을 모를리 없다. 하지만 모세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임재 회복을 간청한다. 그리고 아무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일지라도 하나님과 함께 하시지 않는 그곳은 무의미함을 고백한다.

*지금 눈에 보이는 목표가 채워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소중한 것은 모든 순간, 모든 현장에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는 것이다. 모세는 이것을 너무도 중요하게 여겼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핵심이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중요성을 다른 가치와 바꾸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넓고 아름다운 가나안 땅을 얻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없는 땅은 허무한 땅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것만 누리면 된다는 식의 속마음이 드러날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나의 길을 인도하시는 것 보다 그저 나에게 문제 해결의 필요성이 보일 때 잠깐 나타나 주셔서 해결해 주시고는 쿨하게 퇴장해 주시는 하나님을 더 원하는지 모른다.

*내가 즐거워 하는 세상의 기쁨과 낙을 즐기는 현장에 굳이 등장 하실 필요 없고, 절실하게 문제해결이 필요한 곳에 반드시 등장하셔야 하는 하나님 이기를 기대한다. 죄와 벗하는 즐거움의 자리에 등장 하시는 눈치없는(?) 하나님 보다, 내가 필요한 현장에 ‘알아서’ 나타나셔서 곤란함들을 해결해 주시고 사라져 주시는 하나님을 늘 기대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지만 모세는 어떤 유익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맞바꾸지 않으려 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모세는 간구를 멈추지 않는다. 사자를 보내어 주시겠다는 약속에 만족할 수도 있다.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의 사자의 “앞서 행하심”보다, 가나안 땅을 받는 “육신의 만족함”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 즉 임마누엘”이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 살아계신 하나님 이심을 확답 받기 위해 작당한 대답에 만족하지 않고 끝까지 간구한다. 이런 분별력과 인내, 끈기가 놀랍기만 하다!

*부디 나의 삶에서도 이런 실랑이는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가 스스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다며 이 실랑이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염치없지만, 철면피 같지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기에 제한이 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대어 “함께 동행 하여 주시라고” 외치고 또 외치며 인생길 걸어가면 좋겠다!


하나님의 응답(19-23절)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는 모세의 간청에 응답하신다. 이는 모세가 시내산에 처음 올라 왔을 때 보여 주신 하나님의 친밀하심을 다시 회복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범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완전히 깨뜨려 버렸다. 모세 역시 죄인 이기에 함부로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고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없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20절).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긍휼히 여기시고 “등을 보여 주시겠다”고 말씀 하셨다(23절).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면 죽을 수 밖에 없기에 모세를 죽이지 않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등”을 보이시면서 까지 만나신다. 이미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의 진을 떠나 따로 회막을 치고 만나시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은 이스라엘에 있음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등”을 보여 주심으로 그 은혜와 긍휼을 몸소 보이셨다.

*하나님은 이처럼 은혜로우시다. 긍휼을 베푸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신다. 이 은혜와 긍휼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나타났고,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 언제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이제 됐다! 거친 광야 길…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신다니 됐다! “내가 너를 잘 알고, 또 너에게 은총을 베풀어서, 네가 요청한 이 모든 것을 다 들어주마.(새번역_17절)” 하나님의 최종 응답이 떨어졌다!


나는?
-점점 홀로 서야 할 시간들이 다가오면서 모세의 실랑이가 큰 위로와 격려가 된다. 나도 그래야지… 하나님께서 이 길을 가라하셔서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부터도 더욱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기 않으면 안갑니다! 여전히 나와 함께 하여 주신다는 “하나님의 영광(얼굴)”을 보여 주십시오!” 간구하며 최종 확인이 올 때까지 “회막”에서 꿈쩍 하지 말아야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목회 여정… 무엇이 두렵겠나! 하나님과 실랑이 할 만 하다! 실랑이 하다 더디 가는 듯하고 정체되는 듯 하여도… 그것이 안전한 길, 승리의 길… 무엇보다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기쁨의 길인데…..

-금송아지 숭배가 가져온 위기는 도리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갈망하게 하는 실제적인 사건이 되었다. “읍참마속의 3천명의 죽음”이 있었고, 하나님의 진노가 쉽게 사그라 들지 않아 “사자”만 보내겠다는 선언이 있었지만, 모세에게는 “자신을 잘 알고, 적재적소에 혹은 미리 은총을 베푸시며, 요청한 모든 것을 다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확인하고 더 가까이 동행하게 된 시간들이었다. 너무나 값비싼 댓가를 치루고 온 몸과 마음으로 절박하게 체득한 가치였다!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 성령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며 따라가는 것의 가치가 아무쪼록 “읍참마속”의 고통을 자초하며 걸어가는 길이 되지 않기를 성령께서 도와 주시리라 소망한다. “생각나게 하고, 깨우쳐 주실 때” 더 큰 낭패를 보기 전에 돌이키도록 주시는 사인을 외면하지 않아야지…

-하나님과 동행하며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말씀을 묵상할 때, 기도로 간구할 때, 믿음의 대화와 교제를 할 때, 성도들과 만나 친밀한 시간들을 보낼 때 나의 지각과 마음을 늘 깨우치고 깨우쳐 주셔서 동행해 주실 것을 믿는다.

-하나님의 영광(얼굴)을 보게 되면 살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모세의 간청에 응답하시며, 얼굴은 아니더라도 등이라도 그 증거를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확실한 응답해 주심이 감동이다! 실랑이 끝에 모세를 위해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심으로 확신과 담대함으로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라는 배려이다!

-“나의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바위 틈에 집어 넣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너를 나의 손바닥으로 가리워 주겠다. 그 뒤에 내가 나의 손바닥을 거두리니, 네가 나의 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얼굴은 볼 수 없을 것이다(새번역_22-23절).”

-내가 주님과 함께 걷는 이 길…. 모세는 주님의 등을 보았지만, 나는 주님이 내 마음에 함께 계신다. 늘 마음을 돌아보아 함께 계시는 성령 하나님과 즐겁게 신뢰 함으로 동행해야지… 주님여 내 손을 꼭 잡아 주소서!


*주님, 주님을 나의 필요만 채워주는 존재로 전락 시키는 목이 곧은 백성이 되지 않겠습니다.
*주님, 언제나 함께 하여 주신 것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주님, 나를 보호하시기 위해 보이신 ‘등’을 오해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나를 살리시려고 “등을 보이시는 사랑이”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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