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30:17-38 거룩, 거룩, 거룩으로 만나야 할 하나님
물두멍 제작과 사용법, 관유와 향료 제조법과 사용법에 대하여 가르쳐 주신다. 물두멍을 통해 성막에서 섬기는 이들이 얼마나 정결해야 하는지(19-21절), 성막의 모든 것을 거룩한 향기름으로 발라 거룩하게 해야 하며(26-30절), 그 거룩한 향을 만들어 지성소 안 증거궤 앞에 두어 향기를 발하도록(36절) 가르치셨다. 이 모든 일은 사사롭게 만들거나 사용하면 죽임을 당하게 될 것(37-38절)도 경고하신다. 물두멍이나 관유, 향료는 모두 “거룩함”과 연관 된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필히 거룩해야만 한다. 제사장은 스스로 거룩하게 하지 못하므로 물과 기름과 향을 통해 거룩하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야 살았다!
1.물두멍(17-21절)
놋으로 만든 물두멍은 성막에서 제사장들이 손발을 씻는 물을 담는 큰 그릇이다. 성막과 번제단 사이에 위치했다. 솔로몬 성전 때는 번제로 드릴 짐승을 씻을 때도 사용되었다. 본문에는 크기가 나오지 않지만 솔로몬 성전의 물두멍은 직경이 약 2m였다(왕상 7:38).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20, 21절)”이 두 번 반복된다. 제사장들이 번제를 드린 후나 회막에 들어가기 전에 물두멍의 물로 손발을 씻었다. “죽지 않게 위해서” 였다.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면 반드시 몸을 씻고 영혼까지 정결하게 지켜야 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늘 정결(거룩)해야 함을 일깨운다. 성막뜰에 자리잡은 물두멍은 언제나 제사장들이 손과발을 씻을 수 있도록 예비되었다. 하나님 앞에서의 성결은 이마에 붙이는 호아금패로 효과를 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씻는 것에서부터 였다.
*오늘도 나의 마음을 주님의 말씀의 두멍에서 길어오른 말씀으로 정결하게 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리라. 말씀이 나의 생각과 마음과 결정들을 정결케 하도록 내어 드려야 하겠다.
2.거룩한 향기름(22-33절)
향기름을 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치신다. 중요한 것은 이 거룩한 향기름 제조법은 성막 외에서는 통용해서는 안 되었다. 오직 성막에서 쓰는 향기름 제조에만 사용 되어야 했다.
향기름을 만드는 재료와 분량은 몰약(감람나무 진액즙) 500세겔(11.4g*500=5.7kg)+육계(킨나몬_계수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것) 250세겔(2.85kg)+향기로운 창포(갈대) 250세겔(2.85kg)+계피(킷다_계수나무 껍질) 500세겔(5.7kg)+감람유 한 힌(3.6l)이다(23-24절).
향을 제조하는 법을 따라 “잘 섞어서” 거룩한 향기름을 만들라 하셨다. 이 향기름은 “거룩한 관유(성별하는 기름)”이 될 것이라 하셨다(25절). 이렇게 만든 향기름은 “성막(회막), 증거궤, 상(떡상)과 모든 기구, 등잔대와 모든 기구, 분향단과 번제단과 모든 기구, 물두멍과 그 받침(26-28절)”에 발라서 모든 것을 거룩한 것으로, 거기에 닿는 모든 것이 거룩하게 될 것이다(29절)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발라 거룩하게 하라고 하시면서 “이것은 너희가 대대로 성별하는 데만 써야 하는 기름(새번역_31절)”이라 하셨다. 그렇기에 ‘아무의 몸이나 부으면 안 된다. 제조법을 따라 똑같이 만들어도 안 된다. 왜냐하면 “거룩한 것이니, 너희가 거룩하게 다루어야 한다(새번역_32절)”고 하셨다. 거룩한 향기름을 만드는 재료들을 사용하여 똑같이 만들고 아무 사람에게나 사용한다면 누구든지 그 백성에게서 끊어질 것이다(새번역_33절).
*지정하신 재료로 구별하여 만든 향기름의 사용처는 “성막과 그 모든 기구들과 제사장”에게만 발라 거룩하게 해야 한다.
*물두멍에서 “스스로” 씻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제사장은 거룩한 향기름을 몸에 발라 더욱 거룩하게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제조하고 죽음의 경고로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 사용하도록 거룩하게 구별한 기름을 출입시마다 발라야 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이렇게 거룩함을 요구했다.
*제사장의 손에 닿는 모든 성막 기구들에게도 기름을 발라 “거룩하게 구별”하여 사용하도록 한 것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되는 모든 것에 최선의 구별됨으로 세상과 섞이지 않고 거룩함으로 서게 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과연 이렇게 최선의 거룩함을 추구해 본 적이 있을까?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위해 나의 몸과 마음을 이토록 정결하게 준비하고 경건하게 서 본 적이 있을까? 거룩, 거룩해야 할 제사장들의 하나님 앞에서의 행실이 무척이나 도전이 되는 아침이다.
3.가루향(34-38절)
거룩한 향 제조법도 가르치셨다. “소합향(나무에 상처를 내고 태양빛을 받아 배출하는 진액으로 만든 재료) , 나감향(조개껍질을 깨뜨리고 빻아서 만든 재료), 풍자향(‘페룰라’ 라는 식물에서 채취한 재료)를 유향(‘보스웰리아 세라타’의 진액을 말려서 만든 재료)을 각각 1:1로 섞어서 “향을 제조하는 법”을 따라 만든 다음 소금을 쳐서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라고 하셨다(34-35절).
*향기름을 발라서 거룩하게 하고 증거궤 앞에 향을 두어 냄새가 나게 하여 이를 통해 또 다시 거룩하게 하였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이처럼 “거룩함의 추구”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만든 향 얼마를 곱게 찧어 회막 안 증거궤 앞에 두어야 한다. 제사장 외에 누군가 이 냄새를 맡으려고 성막 밖에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으로 향을 만들면 “죽게” 된다.
*스스로 물두멍에서 씻어 거룩하게 하고, 거룩하게 구별한 향기름을 몸에 발라 거룩하게 하며, 또 거룩한 향 내음으로 거룩하게 하나님을 만나라 하신다. 그야말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때 거룩, 거룩, 거룩하게 서라 하신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오며 그의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나의 마음과 생각과 행실을 이토록 거룩 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는지… 그 노력을 일관되게 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이렇게 하지 못하고 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옷을 입혀 주셔서 아무리 더럽고 추하여도 그 옷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으니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그러므로 더욱 물두멍, 관유, 향기름에 담긴, 거룩하고 거룩하며, 거룩하여 하나님 앞에 서
나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은 함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했다. 성막안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오직 하나님께서 선택한 아론과 그의 아들들만이 출입이 가능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순종해야 할 것이 있었다.
-먼저 스스로 깨끗하게 씻어야 했다. 성막으로 들어와서는 다시 물두멍에서 물로 손발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향 냄새를 성소안에 가득하게 함으로 거룩함을 받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인해” 이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더구나 나아갈 때 마다 거쳐야 하는 성결의 절차도 거치지 않는다.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보혈로 정결함을 받았다고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주님의 은혜로 받은 정결함은 “말씀대로 살아가며, 몸과 영혼의 정결함을 “지켜 나가야만” 한다.” 어떻게 말씀대로 지켜 나갈 수 있을까?
*본문은 물로 씻은 몸을 “거룩한 향기름”을 발라 또 거룩하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기름을 발라, 기름 부으심으로”…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을 감당케 할 종을 세우실 때 “기름을 부으셨다”.
왕을 세울 때 그랬고, 선지자들을 세울 때 그랬다. 예수님께서도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신 “메시아”셨다!.
*기름부음 받은 이는 거룩하게 구별되어 성령의 능력을 따라 살며 거룩한 삶을 유지한다. 노력만으로 불가능하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분명히 선포한다. “여러분 가운데 이런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으로 씻겨지고, 거룩하게 되고, 의롭게 되었습니다(새번역_고전 6:11).”
*예수님 때문에 거룩하게 되었으니, 성령의 도우심으로 “더 예수님처럼” 생각과 말과 행동을 추구하며 거룩한 삶을 유지해야 한다.
*예수님의 은혜, 성령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거룩한 삶을 살 수 없다.
*신앙이란 더럽혀진 인간의 본성을 물로 씻어 깨끗한 상태로 돌리는 것이다. 물은 인간의 구원의 수단이었다. 요한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성막에 출입하는 제사장들은 수시로 손발을 물로 씻어야 했다.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 기름이 발라진 모든 기구들은 거룩해졌고 그것에 접촉하는 모든 것은 거룩하여 졌다. “이것에 접촉하는 것은 모두 거룩하리라(29절)” 부정한 것이 거룩한 것에 닿으면 모든 것이 거룩해 지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 이르지 않은 것이 금기시 되어 여전히 우리에게 압박을 주는 것이 있다. “거룩한 것이 부정한 것에 닿으면 “부정 탄다!”는 것이다. 천만에! 예수님은 거룩한 분이셨지만 부정한 대상을 스스럼없이 만지셨다. 죄인을 가까이 하셨고, 병자를 만나주셨으며, 시체에 손을 대셨다.
성령의 충만함과 이끄심을 받는 그리스도인은 죄 많은 세상 속에서 죄를 무력화하고 거룩함으로 정복하는 존재라는 말이다. 예수님처럼 부정한 것을 꺼리면서 거룩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부정의 자리에 있더라도 거리낌 없이 거룩의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주님, 물과 기름과 향으로 거룩하게 사는 것이 “사는 길”임을 압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살 길”을 걷겠습니다. “살 길”을 알려주는 삶이 되겠습니다.
물두멍 제작과 사용법, 관유와 향료 제조법과 사용법에 대하여 가르쳐 주신다. 물두멍을 통해 성막에서 섬기는 이들이 얼마나 정결해야 하는지(19-21절), 성막의 모든 것을 거룩한 향기름으로 발라 거룩하게 해야 하며(26-30절), 그 거룩한 향을 만들어 지성소 안 증거궤 앞에 두어 향기를 발하도록(36절) 가르치셨다. 이 모든 일은 사사롭게 만들거나 사용하면 죽임을 당하게 될 것(37-38절)도 경고하신다. 물두멍이나 관유, 향료는 모두 “거룩함”과 연관 된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필히 거룩해야만 한다. 제사장은 스스로 거룩하게 하지 못하므로 물과 기름과 향을 통해 거룩하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야 살았다!
1.물두멍(17-21절)
놋으로 만든 물두멍은 성막에서 제사장들이 손발을 씻는 물을 담는 큰 그릇이다. 성막과 번제단 사이에 위치했다. 솔로몬 성전 때는 번제로 드릴 짐승을 씻을 때도 사용되었다. 본문에는 크기가 나오지 않지만 솔로몬 성전의 물두멍은 직경이 약 2m였다(왕상 7:38).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20, 21절)”이 두 번 반복된다. 제사장들이 번제를 드린 후나 회막에 들어가기 전에 물두멍의 물로 손발을 씻었다. “죽지 않게 위해서” 였다.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면 반드시 몸을 씻고 영혼까지 정결하게 지켜야 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늘 정결(거룩)해야 함을 일깨운다. 성막뜰에 자리잡은 물두멍은 언제나 제사장들이 손과발을 씻을 수 있도록 예비되었다. 하나님 앞에서의 성결은 이마에 붙이는 호아금패로 효과를 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씻는 것에서부터 였다.
*오늘도 나의 마음을 주님의 말씀의 두멍에서 길어오른 말씀으로 정결하게 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리라. 말씀이 나의 생각과 마음과 결정들을 정결케 하도록 내어 드려야 하겠다.
2.거룩한 향기름(22-33절)
향기름을 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치신다. 중요한 것은 이 거룩한 향기름 제조법은 성막 외에서는 통용해서는 안 되었다. 오직 성막에서 쓰는 향기름 제조에만 사용 되어야 했다.
향기름을 만드는 재료와 분량은 몰약(감람나무 진액즙) 500세겔(11.4g*500=5.7kg)+육계(킨나몬_계수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것) 250세겔(2.85kg)+향기로운 창포(갈대) 250세겔(2.85kg)+계피(킷다_계수나무 껍질) 500세겔(5.7kg)+감람유 한 힌(3.6l)이다(23-24절).
향을 제조하는 법을 따라 “잘 섞어서” 거룩한 향기름을 만들라 하셨다. 이 향기름은 “거룩한 관유(성별하는 기름)”이 될 것이라 하셨다(25절). 이렇게 만든 향기름은 “성막(회막), 증거궤, 상(떡상)과 모든 기구, 등잔대와 모든 기구, 분향단과 번제단과 모든 기구, 물두멍과 그 받침(26-28절)”에 발라서 모든 것을 거룩한 것으로, 거기에 닿는 모든 것이 거룩하게 될 것이다(29절)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발라 거룩하게 하라고 하시면서 “이것은 너희가 대대로 성별하는 데만 써야 하는 기름(새번역_31절)”이라 하셨다. 그렇기에 ‘아무의 몸이나 부으면 안 된다. 제조법을 따라 똑같이 만들어도 안 된다. 왜냐하면 “거룩한 것이니, 너희가 거룩하게 다루어야 한다(새번역_32절)”고 하셨다. 거룩한 향기름을 만드는 재료들을 사용하여 똑같이 만들고 아무 사람에게나 사용한다면 누구든지 그 백성에게서 끊어질 것이다(새번역_33절).
*지정하신 재료로 구별하여 만든 향기름의 사용처는 “성막과 그 모든 기구들과 제사장”에게만 발라 거룩하게 해야 한다.
*물두멍에서 “스스로” 씻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제사장은 거룩한 향기름을 몸에 발라 더욱 거룩하게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제조하고 죽음의 경고로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 사용하도록 거룩하게 구별한 기름을 출입시마다 발라야 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이렇게 거룩함을 요구했다.
*제사장의 손에 닿는 모든 성막 기구들에게도 기름을 발라 “거룩하게 구별”하여 사용하도록 한 것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되는 모든 것에 최선의 구별됨으로 세상과 섞이지 않고 거룩함으로 서게 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과연 이렇게 최선의 거룩함을 추구해 본 적이 있을까?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위해 나의 몸과 마음을 이토록 정결하게 준비하고 경건하게 서 본 적이 있을까? 거룩, 거룩해야 할 제사장들의 하나님 앞에서의 행실이 무척이나 도전이 되는 아침이다.
3.가루향(34-38절)
거룩한 향 제조법도 가르치셨다. “소합향(나무에 상처를 내고 태양빛을 받아 배출하는 진액으로 만든 재료) , 나감향(조개껍질을 깨뜨리고 빻아서 만든 재료), 풍자향(‘페룰라’ 라는 식물에서 채취한 재료)를 유향(‘보스웰리아 세라타’의 진액을 말려서 만든 재료)을 각각 1:1로 섞어서 “향을 제조하는 법”을 따라 만든 다음 소금을 쳐서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라고 하셨다(34-35절).
*향기름을 발라서 거룩하게 하고 증거궤 앞에 향을 두어 냄새가 나게 하여 이를 통해 또 다시 거룩하게 하였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이처럼 “거룩함의 추구”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만든 향 얼마를 곱게 찧어 회막 안 증거궤 앞에 두어야 한다. 제사장 외에 누군가 이 냄새를 맡으려고 성막 밖에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으로 향을 만들면 “죽게” 된다.
*스스로 물두멍에서 씻어 거룩하게 하고, 거룩하게 구별한 향기름을 몸에 발라 거룩하게 하며, 또 거룩한 향 내음으로 거룩하게 하나님을 만나라 하신다. 그야말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때 거룩, 거룩, 거룩하게 서라 하신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오며 그의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나의 마음과 생각과 행실을 이토록 거룩 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는지… 그 노력을 일관되게 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이렇게 하지 못하고 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옷을 입혀 주셔서 아무리 더럽고 추하여도 그 옷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으니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그러므로 더욱 물두멍, 관유, 향기름에 담긴, 거룩하고 거룩하며, 거룩하여 하나님 앞에 서
나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은 함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했다. 성막안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오직 하나님께서 선택한 아론과 그의 아들들만이 출입이 가능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순종해야 할 것이 있었다.
-먼저 스스로 깨끗하게 씻어야 했다. 성막으로 들어와서는 다시 물두멍에서 물로 손발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향 냄새를 성소안에 가득하게 함으로 거룩함을 받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인해” 이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더구나 나아갈 때 마다 거쳐야 하는 성결의 절차도 거치지 않는다.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보혈로 정결함을 받았다고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주님의 은혜로 받은 정결함은 “말씀대로 살아가며, 몸과 영혼의 정결함을 “지켜 나가야만” 한다.” 어떻게 말씀대로 지켜 나갈 수 있을까?
*본문은 물로 씻은 몸을 “거룩한 향기름”을 발라 또 거룩하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기름을 발라, 기름 부으심으로”…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을 감당케 할 종을 세우실 때 “기름을 부으셨다”.
왕을 세울 때 그랬고, 선지자들을 세울 때 그랬다. 예수님께서도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신 “메시아”셨다!.
*기름부음 받은 이는 거룩하게 구별되어 성령의 능력을 따라 살며 거룩한 삶을 유지한다. 노력만으로 불가능하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분명히 선포한다. “여러분 가운데 이런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으로 씻겨지고, 거룩하게 되고, 의롭게 되었습니다(새번역_고전 6:11).”
*예수님 때문에 거룩하게 되었으니, 성령의 도우심으로 “더 예수님처럼” 생각과 말과 행동을 추구하며 거룩한 삶을 유지해야 한다.
*예수님의 은혜, 성령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거룩한 삶을 살 수 없다.
*신앙이란 더럽혀진 인간의 본성을 물로 씻어 깨끗한 상태로 돌리는 것이다. 물은 인간의 구원의 수단이었다. 요한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성막에 출입하는 제사장들은 수시로 손발을 물로 씻어야 했다.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 기름이 발라진 모든 기구들은 거룩해졌고 그것에 접촉하는 모든 것은 거룩하여 졌다. “이것에 접촉하는 것은 모두 거룩하리라(29절)” 부정한 것이 거룩한 것에 닿으면 모든 것이 거룩해 지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 이르지 않은 것이 금기시 되어 여전히 우리에게 압박을 주는 것이 있다. “거룩한 것이 부정한 것에 닿으면 “부정 탄다!”는 것이다. 천만에! 예수님은 거룩한 분이셨지만 부정한 대상을 스스럼없이 만지셨다. 죄인을 가까이 하셨고, 병자를 만나주셨으며, 시체에 손을 대셨다.
성령의 충만함과 이끄심을 받는 그리스도인은 죄 많은 세상 속에서 죄를 무력화하고 거룩함으로 정복하는 존재라는 말이다. 예수님처럼 부정한 것을 꺼리면서 거룩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부정의 자리에 있더라도 거리낌 없이 거룩의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주님, 물과 기름과 향으로 거룩하게 사는 것이 “사는 길”임을 압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살 길”을 걷겠습니다. “살 길”을 알려주는 삶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