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23:1-19 진실하게, 약자의 편에 서서, 절기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본다!
하나님 나라 법에 따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계속해서 가르치고 계신다. 본문은 아홉번째 말씀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말씀과 이스라엘 백성이 반드시 지켜야 할 절기에 대해 다룬다.
하나님은 진실하시다. 그 진실하신 하나님을 따라 사는 백성들도 진실해야 한다. 모두가 악한 길을 걸을 때에라도 하나님의 백성은 진실한 길을 걸어야 한다. 어떻게 진실한 길을 걸으며 살 수 있을까?
1.더욱 진실하게 살라 하신다(1-9절)
“근거 없는 말(거짓된 풍설)을 해서는 안된다. 거짓 증언을 하여 죄인의 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새번역_1절).” 이스라엘은 지금 막 자유인이 되었다. 자유인이 가지는 특권중의 하나는 “발언권”이다. 특히 재판의 자리에서 중요한 발언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자유인에게는 있다.
고대 이스라엘의 사회에 오늘날과 같은 법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고대의 재판이 가지는 특징은 “마을 원로들에 의해 판단 받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재판정은 마을 입구 성문 앞 광장이나, 지도자의 집 앞이었다. 또, 고대 재판의 특징은 “증거 우선주의”가 아니다. 오늘날의 재판은 “증거”가 유죄여부의 핵심이다. 하지만 고대의 재판은 증거를 찾아내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기에 “증언”이 이 역할을 하였다. 그러니 두 세사람의 증언은 가장 확실한 선고의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악한 세상은 가장 진실해야 할 재판자리에서 “거짓 증거”를 얼마든지 시도하는 참담한 세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 소문(풍설), 거짓 증언, 재판과 관련된 원수의 가축”을 예로 들어 하나님 나라 백성이 재판정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지 분명하게 가르친다. 그것은 “진실함”이다. 먼저 이 진실함은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2절은 이렇게 이어진다. “다수의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에도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되며, 다수의 사람들이 정의를 굽게하는 증언을 할 때에도 그들을 따라사서는 안 된다(새번역_2절).” 많은 이들이 지지하는 것이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다수가 따르고 인정하는 길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 고민하고 기도해야 한다. 혹시 다수의 의견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거부하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다수의 편에서 나와 “다수의 악”과 “다수의 부당함”을 “진실함”으로 맞서야 한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진실한 길을 걷는 고통과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 들이는 사람들이다. 많은 세상 사람들이 가는 편안한 넓은 길보다, 진실함의 좁은 길을 선택하는 믿음이 있기를 기도한다.
또, 어쩔 수 없는 상황 이었어 라는 “연민”보다 “진실함”을 더욱 붙잡아야 함을 강조하신다. “너희는 또한 가난한 사람의 송사라고 해서 치우쳐서 두둔해서도 안 된다(새번역_3절).” 재판을 받는 사람의 형편에 따라 두둔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연민의 마음으로 인해 거짓된 재판을 하는 것을 경계하신다. 이는 부유한 자의 재물과 힘에 휩쓸리지 말고, 가난한 자에 대한 연민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인해 거짓증언과 잘못된 판결을 내리지 말라는 의미다. 가난한 자와 같은 약자들에게 배려하는 마음과 자비로운 자세는 있어야 하나, 단지 가난하다는 것만으로 진실이 왜곡되게 해서는 안 된다.
*부자이든지, 가난한 자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진실함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신다.
진실하게 사는 것은 재판의 자리에서만이 아니다. 삶의 현장에서 더욱 진실한 자세로 살아내야 한다. 재판 송사 중인 원수의 소나 나귀가 눈에 띄면 반드시 그것을 임자에게 돌려주라 하신다(4절). 너희를 미워하는 이의 나귀가 넘어져 있을 때 일으켜 세워 도와 주라고도 하신다(5절). 거짓 고발을 물리치고, 뇌물도 받아서는 안 된다(7-8절). 함께 사는 나그네를 억압하면 안 된다. 이스라엘 민족들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기에 나그네의 설움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 때문이다(9절).
결국 “진실함”이란 삶의 태도가 하나님나라에서 살게 된다.
2.기억하며 살라 하신다(10-19절)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을 가르치신다. 먼저 네번째 말씀인 안식일 명령과 관련되어 “안식년과 안식일”(10-13절) 명령을, 그리고 “세 가지 큰 절기(무교절, 맥추절, 수장절_14-17절)”를 지키라 하신다. 또 제사를 드릴 때 “피와 누룩 넣은 빵”을 바치면 안되며, 절기 때 바친 기름을 다음날까지 남겨두면 안 된다(18절). 첫 소산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고, 어미의 젖으로 새끼 염소를 삶으면 안 된다(19절)는 것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을 기억하여 일상에서 지켜내며 살아야 한다. 20장의 안식일 명령에서는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는 목적으로 지키라고 명령하셨는데(20:8-11), 본문은 “쉼”과 “나눔”에 초점이 있다. 모든 일상이 엿새 동안 일하고 7일째 되는 날 쉬어야, “너희의 소와 나귀도, 여종의 아들과 몸붙여 사는 나그네도 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 얼마나 자비로우신가! “쉼”을 통해 “회복”하는 창조질서를 따라 살라 하신다. 무엇보다 “소, 나귀, 여종의 아들, 나그네…” 철저하게 약자들을 위한 명령임을 알 수 있다. 고대의 세계가 휴일이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하나님의 명령은 그야말로 파격적이었고 어떤 민족에게도 없던 정체성이었다. 어디 안식일 뿐인가! 안식년은 7년째에 경작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맺힌 열매들을 “가난한 자들”과 ‘들짐승’을 먹게 하라고 하신다(10-11절). 아! 놀라우신 하나님의 자비로움이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꼭 지켜야 할 국가적인 기념일을 제정하신다. “무교절”은 3월 중순(아빕월)에 보리 수확하는 시기에 누룩 없는 빵을 7일동안 먹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며, *빈손으로 나오면 안 된다. 보리 걷이를 시작할 때 유교절과 함께 지켰다. “보리수확 축제”이다.
“맥추절”은 무교절을 지키고 7주(50일)가 지난 후에 지키는 절기로 “칠칠절”이라고도 불렸다. 신약성경에서는 “오순절”이라고 표현했다. “밭 곡식수확 축제” -보리를 수확하고 7주 후에 밀과 다른 곡물들을 수확하며 감사하는 절기이다. *또한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한다.
“수장절”은 “초막절”이라고도 불리는데, 한 해의 끝에 거둬들인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잔치이다. 이스라엘은 “가을을 한 해의 시작으로 간주했다. 포도와 올리브를 수확하며 감사하는 “과일 수확 축제”이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보호 받던 것을 기억하면서 이 절기를 지켰다.
*그러고 보니 3대 절기는 모두 “추수와 관련된 절기”이다. 먹고 살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모든 농사의 시작과 마무리를 하나님과 함께 하라는 것이다. 보리, 밀, 과일을 각각 수확하게 되는 절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나는?
-삶의 어떤 모습보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진실한 삶”이다. 거짓풍설(소위 가짜 뉴스다)을 동조하거나 편승하지 말라는 것은 “말 한마디로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낼 수 있는 “증언”에 있어 특히 신중해야 한다.
-다수결의 힘은 충분히 부담스럽다. 그런데 사람들의 많은 의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선택하는 “소신, 믿음”이다. 사람들은 자기 이익과 명분에 따라 충분히 가짜뉴스에도 다수의 힘을 모을 수 있다. 확인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솔함은 늘 경계해야 한다.
-다수결보다 하니님의 진리의 말씀 안에 든든히 서야 한다.
-또, 가난하다 하여 재판에 있어 “인지상정”의 자세를 가져도 안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속성을 분명히 본다. 상황과 여건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따라 진실함으로” 판단해야 한다.
-인간관계의 정을 무시하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상황과 여건을 충분히 알수록, 관계가 돈독할 수록 하나님 나라의 법을 더욱 충실히 지켜야 함을 강조하는 것일 게다.
-그리고, 이방 나그네를 재판 과정에서 “압제(압박)”하지 말라 하신다. 단지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두지 말라는 말일까? 그것보다는 “학연, 혈연, 지연,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다른 민족, 다른 학연, 다른 지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공정”하라는 것이다. 그 이방인 역시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존재이며, 무엇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땅에서 이방인으로서 받았던 무수한 설움을 기억한다면, 더더욱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역지사지”의 마음이 “공의”를 만나면 피부색이 다르고 출신 지역이 다르다 하여도 “공정”한 기회를 제공 받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는 이런 부분에서 얼마나 떳떳할까? 지금 이 땅에 들어와 있는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타국에 가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고단함을 알고 있다면, 이 땅을 찾아온 고단한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고 보듬어 주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다운 삶이다.
-하나님께서도 애굽에서 이방인이었던 이스라엘을 먼저 찾아와서 보듬고 다독여 주신 은혜로 출애굽을 경험했으니 이스라엘 내에 이방 나그네들을 향하여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품어 주셨던 것처럼 품어 주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다.
-약자들을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우리도 약자들을 보살피는 배려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가난한 자들과 들짐승을 위한 안식년, 여종의 자식들과 나그네, 손와 나귀들을 위한 안식일…. 하나님의 약자들을 배려하시는 마음 본받아 오늘을 살아야 겠다.
-반드시 지켜야 할 3대 절기는 먹거리를 풍성하게 채우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배 하는 절기다. 또,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절기다. “기억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 답게 사는 척도이다. 기억하게 하기 위해 절기를 정하시고 삶의 우선 순위로 지키라는 명령은 다름 아닌 “은혜 안에 계속 거하게 하시려는 장치”이다. 보리를 수확할 때, 밀을 수확할 때, 각종 과일들을 수확하여 저장고에 들일 때 지키는 절기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해마다 확인하고 감사하며 예배(기념)하는 자리가 된다.
*주님, 주님의 진리를 따라 살겠습니다. 거짓된 다수의 의견이 폭력이 되어 강요할 때에도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흔들리지 않게 도와 주십시오!
*주님, 약자들을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흉내 내며 살겠습니다. 가난하고 연약한 이들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기억할 수 있게, 절기를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형식적인 지킴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절기들을 지키겠습니다.
하나님 나라 법에 따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계속해서 가르치고 계신다. 본문은 아홉번째 말씀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말씀과 이스라엘 백성이 반드시 지켜야 할 절기에 대해 다룬다.
하나님은 진실하시다. 그 진실하신 하나님을 따라 사는 백성들도 진실해야 한다. 모두가 악한 길을 걸을 때에라도 하나님의 백성은 진실한 길을 걸어야 한다. 어떻게 진실한 길을 걸으며 살 수 있을까?
1.더욱 진실하게 살라 하신다(1-9절)
“근거 없는 말(거짓된 풍설)을 해서는 안된다. 거짓 증언을 하여 죄인의 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새번역_1절).” 이스라엘은 지금 막 자유인이 되었다. 자유인이 가지는 특권중의 하나는 “발언권”이다. 특히 재판의 자리에서 중요한 발언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자유인에게는 있다.
고대 이스라엘의 사회에 오늘날과 같은 법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고대의 재판이 가지는 특징은 “마을 원로들에 의해 판단 받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재판정은 마을 입구 성문 앞 광장이나, 지도자의 집 앞이었다. 또, 고대 재판의 특징은 “증거 우선주의”가 아니다. 오늘날의 재판은 “증거”가 유죄여부의 핵심이다. 하지만 고대의 재판은 증거를 찾아내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기에 “증언”이 이 역할을 하였다. 그러니 두 세사람의 증언은 가장 확실한 선고의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악한 세상은 가장 진실해야 할 재판자리에서 “거짓 증거”를 얼마든지 시도하는 참담한 세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 소문(풍설), 거짓 증언, 재판과 관련된 원수의 가축”을 예로 들어 하나님 나라 백성이 재판정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지 분명하게 가르친다. 그것은 “진실함”이다. 먼저 이 진실함은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2절은 이렇게 이어진다. “다수의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에도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되며, 다수의 사람들이 정의를 굽게하는 증언을 할 때에도 그들을 따라사서는 안 된다(새번역_2절).” 많은 이들이 지지하는 것이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다수가 따르고 인정하는 길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 고민하고 기도해야 한다. 혹시 다수의 의견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거부하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다수의 편에서 나와 “다수의 악”과 “다수의 부당함”을 “진실함”으로 맞서야 한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진실한 길을 걷는 고통과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 들이는 사람들이다. 많은 세상 사람들이 가는 편안한 넓은 길보다, 진실함의 좁은 길을 선택하는 믿음이 있기를 기도한다.
또, 어쩔 수 없는 상황 이었어 라는 “연민”보다 “진실함”을 더욱 붙잡아야 함을 강조하신다. “너희는 또한 가난한 사람의 송사라고 해서 치우쳐서 두둔해서도 안 된다(새번역_3절).” 재판을 받는 사람의 형편에 따라 두둔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연민의 마음으로 인해 거짓된 재판을 하는 것을 경계하신다. 이는 부유한 자의 재물과 힘에 휩쓸리지 말고, 가난한 자에 대한 연민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인해 거짓증언과 잘못된 판결을 내리지 말라는 의미다. 가난한 자와 같은 약자들에게 배려하는 마음과 자비로운 자세는 있어야 하나, 단지 가난하다는 것만으로 진실이 왜곡되게 해서는 안 된다.
*부자이든지, 가난한 자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진실함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신다.
진실하게 사는 것은 재판의 자리에서만이 아니다. 삶의 현장에서 더욱 진실한 자세로 살아내야 한다. 재판 송사 중인 원수의 소나 나귀가 눈에 띄면 반드시 그것을 임자에게 돌려주라 하신다(4절). 너희를 미워하는 이의 나귀가 넘어져 있을 때 일으켜 세워 도와 주라고도 하신다(5절). 거짓 고발을 물리치고, 뇌물도 받아서는 안 된다(7-8절). 함께 사는 나그네를 억압하면 안 된다. 이스라엘 민족들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기에 나그네의 설움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 때문이다(9절).
결국 “진실함”이란 삶의 태도가 하나님나라에서 살게 된다.
2.기억하며 살라 하신다(10-19절)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을 가르치신다. 먼저 네번째 말씀인 안식일 명령과 관련되어 “안식년과 안식일”(10-13절) 명령을, 그리고 “세 가지 큰 절기(무교절, 맥추절, 수장절_14-17절)”를 지키라 하신다. 또 제사를 드릴 때 “피와 누룩 넣은 빵”을 바치면 안되며, 절기 때 바친 기름을 다음날까지 남겨두면 안 된다(18절). 첫 소산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고, 어미의 젖으로 새끼 염소를 삶으면 안 된다(19절)는 것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을 기억하여 일상에서 지켜내며 살아야 한다. 20장의 안식일 명령에서는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는 목적으로 지키라고 명령하셨는데(20:8-11), 본문은 “쉼”과 “나눔”에 초점이 있다. 모든 일상이 엿새 동안 일하고 7일째 되는 날 쉬어야, “너희의 소와 나귀도, 여종의 아들과 몸붙여 사는 나그네도 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 얼마나 자비로우신가! “쉼”을 통해 “회복”하는 창조질서를 따라 살라 하신다. 무엇보다 “소, 나귀, 여종의 아들, 나그네…” 철저하게 약자들을 위한 명령임을 알 수 있다. 고대의 세계가 휴일이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하나님의 명령은 그야말로 파격적이었고 어떤 민족에게도 없던 정체성이었다. 어디 안식일 뿐인가! 안식년은 7년째에 경작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맺힌 열매들을 “가난한 자들”과 ‘들짐승’을 먹게 하라고 하신다(10-11절). 아! 놀라우신 하나님의 자비로움이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꼭 지켜야 할 국가적인 기념일을 제정하신다. “무교절”은 3월 중순(아빕월)에 보리 수확하는 시기에 누룩 없는 빵을 7일동안 먹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며, *빈손으로 나오면 안 된다. 보리 걷이를 시작할 때 유교절과 함께 지켰다. “보리수확 축제”이다.
“맥추절”은 무교절을 지키고 7주(50일)가 지난 후에 지키는 절기로 “칠칠절”이라고도 불렸다. 신약성경에서는 “오순절”이라고 표현했다. “밭 곡식수확 축제” -보리를 수확하고 7주 후에 밀과 다른 곡물들을 수확하며 감사하는 절기이다. *또한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한다.
“수장절”은 “초막절”이라고도 불리는데, 한 해의 끝에 거둬들인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잔치이다. 이스라엘은 “가을을 한 해의 시작으로 간주했다. 포도와 올리브를 수확하며 감사하는 “과일 수확 축제”이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보호 받던 것을 기억하면서 이 절기를 지켰다.
*그러고 보니 3대 절기는 모두 “추수와 관련된 절기”이다. 먹고 살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모든 농사의 시작과 마무리를 하나님과 함께 하라는 것이다. 보리, 밀, 과일을 각각 수확하게 되는 절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나는?
-삶의 어떤 모습보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진실한 삶”이다. 거짓풍설(소위 가짜 뉴스다)을 동조하거나 편승하지 말라는 것은 “말 한마디로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낼 수 있는 “증언”에 있어 특히 신중해야 한다.
-다수결의 힘은 충분히 부담스럽다. 그런데 사람들의 많은 의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선택하는 “소신, 믿음”이다. 사람들은 자기 이익과 명분에 따라 충분히 가짜뉴스에도 다수의 힘을 모을 수 있다. 확인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솔함은 늘 경계해야 한다.
-다수결보다 하니님의 진리의 말씀 안에 든든히 서야 한다.
-또, 가난하다 하여 재판에 있어 “인지상정”의 자세를 가져도 안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속성을 분명히 본다. 상황과 여건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따라 진실함으로” 판단해야 한다.
-인간관계의 정을 무시하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상황과 여건을 충분히 알수록, 관계가 돈독할 수록 하나님 나라의 법을 더욱 충실히 지켜야 함을 강조하는 것일 게다.
-그리고, 이방 나그네를 재판 과정에서 “압제(압박)”하지 말라 하신다. 단지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두지 말라는 말일까? 그것보다는 “학연, 혈연, 지연,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다른 민족, 다른 학연, 다른 지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공정”하라는 것이다. 그 이방인 역시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존재이며, 무엇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땅에서 이방인으로서 받았던 무수한 설움을 기억한다면, 더더욱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역지사지”의 마음이 “공의”를 만나면 피부색이 다르고 출신 지역이 다르다 하여도 “공정”한 기회를 제공 받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는 이런 부분에서 얼마나 떳떳할까? 지금 이 땅에 들어와 있는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타국에 가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고단함을 알고 있다면, 이 땅을 찾아온 고단한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고 보듬어 주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다운 삶이다.
-하나님께서도 애굽에서 이방인이었던 이스라엘을 먼저 찾아와서 보듬고 다독여 주신 은혜로 출애굽을 경험했으니 이스라엘 내에 이방 나그네들을 향하여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품어 주셨던 것처럼 품어 주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다.
-약자들을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우리도 약자들을 보살피는 배려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가난한 자들과 들짐승을 위한 안식년, 여종의 자식들과 나그네, 손와 나귀들을 위한 안식일…. 하나님의 약자들을 배려하시는 마음 본받아 오늘을 살아야 겠다.
-반드시 지켜야 할 3대 절기는 먹거리를 풍성하게 채우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배 하는 절기다. 또,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절기다. “기억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 답게 사는 척도이다. 기억하게 하기 위해 절기를 정하시고 삶의 우선 순위로 지키라는 명령은 다름 아닌 “은혜 안에 계속 거하게 하시려는 장치”이다. 보리를 수확할 때, 밀을 수확할 때, 각종 과일들을 수확하여 저장고에 들일 때 지키는 절기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해마다 확인하고 감사하며 예배(기념)하는 자리가 된다.
*주님, 주님의 진리를 따라 살겠습니다. 거짓된 다수의 의견이 폭력이 되어 강요할 때에도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흔들리지 않게 도와 주십시오!
*주님, 약자들을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흉내 내며 살겠습니다. 가난하고 연약한 이들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기억할 수 있게, 절기를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형식적인 지킴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절기들을 지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