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친구들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을 받겠노라! [욥 13:1-19]
 – 2023년 11월 17일
– 2023년 11월 17일 –
13장은 12장과 연결되며 세 친구 모두를 향하는 욥의 대답이다. 규범적 지혜로 고난 겪는 사람에게 적용하려는 시도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설명한다. 욥은 친구들에게 거짓된 변론을 그치고 자기 말을 들으라고 촉구한다. 또한 직접적으로 하나님과의 변론을 희망하며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한다. 욥은 친구들의 변론이 무가치하고 거짓되며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지만 불의와 궤휼을 말하는 것이라고 고발한다. 이들의 변론에 하나님의 책망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욥은 친구들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직접 자신의 무죄함을 변론하기를 바란다. 자신의 의로움을 인정받기 위해 생명을 내놓는 단호한 결단을 한다.
    
    
    
1. 친구들의 말에 대한 욥의 평가(1~12절)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인과응보라는 렌즈만을 가지고 세상을 이해하는 친구들을 책망한다. 그들에 비해 욥은 자신의 지혜를 이론적인 지식이나 피상적인 지혜가 아니라 눈으로 본 것이고 귀로 듣고 깨달은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먼저, 욥이 평가하는 것은 친구들의 지혜는 나도 알고 남들도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2, 12절). 그들이 욥에게 가르치려는 규범적인 지혜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엘리바스의 경우처럼 ‘환상’ 같은 신비한 체험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빌닷처럼 선조들의 지혜를 각고의 노력을 통해 갈고 닦아야 알게 되는 것도 아니다. 좋은 것을 뿌리면 좋은 열매를 나쁜 씨앗을 뿌리면 나쁜 열매를 맺는다는 기본적인 원리는 욥 자신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고(2절), 너무도 뻔한 남들도 다 아는 말들이다(12절).
    
12절의 “너희의 격언은 재 같은 속담이요 너희가 방어하는 것은 토성이니라”에서 “격언(지카론)”은 ‘너희의 기억’이다. 과거로부터 내려온 지혜를 기억하는 것은 규범적 지혜의 중요한 학습법이다. “재(에페르)”는 “토성(호메르)”과 더불어 크신 하나님과 대조된 작고 천한 인간을 상징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12절을 직역하면 “너희가 지키려는 그 조상으로부터 배운 지식은 지극히 인간적인 속담들에 불과하다”라는 뜻이 된다.
    
    
*그다음으로 평가하는 것은 친구들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4, 7절)는 것이다. 욥은 그의 친구들은 ‘거짓말을 퍼뜨리는 자들’, ‘돌팔이 의사’일 뿐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한다(4절). 그들의 말이 거짓일 수밖에 없는 것은 직접적인 경험에 입각한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욥이 사는 지역에 함께 살지 않았기에 욥이나 그의 자녀들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직접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신학적 신념에 따라 그들이 죄를 지었음이 분명하다고 단정한다. 욥과 자녀들이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독자들은 세 친구의 일방적인 가르침에 거북함을 느꼈을 것이다. 또, 욥이 친구들을 “헛된 치유자”로 규정한 욥의 말에서 친구들이 욥을 방문한 것이 위로에서 치유로 변질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는 명백하게 실패했다.
    
    
*욥은 친구들의 말을 너희의 말은 하나님을 변호하려는 것이다(7~8, 11절). 친구들이 거짓말을 하고 가짜 치유자 행세를 하려는 의도는 고난 겪는 욥을 살리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변호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욥과 그의 자녀들을 죄인으로 몰아가면서까지 그들이 “살리고” 싶었던 것은 하나님이다. 친구들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을 지켜내고 싶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편을 들면서 하나님을 위해 싸웠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를 거부하셨다. 38~41장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의 선함과 의로움을 변호하려고 시도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변호가 필요하실 정도로 약하신 하나님이 아니시다. 이는 곧 하나님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거짓을 말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두려워(경외)하지 않는 행위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욥은 고난 겪는 자들 앞에서 침묵하며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가장 큰 위로라고 말한다(5~6절). 친구들의 본래 방문의 목적이었던 위문과 위로를 위해서라면 첫 이레 동안처럼 욥과 함께 주저앉아 “소리 질러 울며” (2:12) 친구의 극심한 고통 앞에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2:13).
    
욥은 친구들의 진정한 지혜는 침묵이었다고 말한다(5절). 고통당하는 자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라고 말하는(6절) 욥은 그와 유사한 고난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2. 그러므로 부탁한다. 입 다물고 내 말을 들어라(13~19절).
욥은 13절은 “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가 말할 수 있도록”이라는 의미다. 친구들과의 논쟁은 무가치하고 불의하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나 결국 하나님 앞에서 판단 받을 헛되고 허술한 것들임을 고발한다.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 하나님과 변론하기로 결심한다.
    
이 결심은 너무도 단호하여 “하나님이 나를 죽이려고 하셔도, 나로서는 잃을 것이 없다. 그러나 내 사정만은 그분께 아뢰겠다.” (새번역_15절) 라고, 외친다. 욥은 친구들의 많은 말들과 평가가 있었으나 결국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굳은 결심을 내비친다.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사는 경건하지 않은 자는 그에게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지만, 욥은 오직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신을 변론하여 무죄함을 밝히는 것이 자신을 구원하는 길임을 알았다.
    
    
욥은 다시 친구들에게 “들으라.”(17절) 와 “보라”(18절) 를 외치며 친구들의 주의를 끌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변론할 때 법적으로 무죄함이 밝혀질 것이라는 확신을 보여준다. 자신의 무죄함을 생명을 걸고서라도 변론하리라는(13~16절) 단호한 결단에서 나온 “나와 변론할 자 누구이랴”(19절) 라는 도전적 질문이 욥의 결연함을 알 수 있게 한다.
    
욥이 이 정도로 확신에 차서 말한 이유는 친구들의 주장이 잘못된 것과 자신은 인과응보의 결과로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님을 그만큼 확신했기 때문이다. 또한 친구들과의 논쟁을 통해 자신의 무죄함을 인정받을 곳이 오직 하나님뿐이신 것을 알았기에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사정을 진술하려고 하는 것이다. 욥은 그만큼 절박하다.
    
    
    
나는?
-친구들이 주장하는 전통은 욥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욥 자신이 처한 실제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친구들의 말은 지혜를 주기는커녕 욥을 더 깊은 상처와 절망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므로 욥은 친구들이 아닌 하나님을 대면하여 변론하려고 한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과 지난 행실을 정확히 아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어떨까? 사람들의 인정과 대답도 필요하나,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인정과 대답임을 알고 확신하고 있을까?
    
    
-욥은 친구들이 하나님을 변호한답시고 충고하는 것에 대하여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쓸모없는 의원’이라고 비판한다. 고난에 처한 상심한 욥을 위로한다면서 실상은 거짓된 하나님의 이미지를 전달하여 고난의 원인을 잘못 진단하고 만다.
    
-혹시 나는 하나님을 변호한답시고 잘못된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지는 않는가? 마치 내가 답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굴면서 성급하게 조언하려 하지는 않는가?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신중하게 사려 깊은 말을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 직접 변론하려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매달릴 수 있는 희망이기도 했다.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만약 욥이 무고하지 않다면 하나님께 심판받게 될 것이고, 욥이 무고하다면 의로움을 인정하고 구원받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뢸 수 있을 만큼 경건하고 정직하게 살고는 있을까?
    
    
*고난을 만나면 판단력은 급격하게 흔들린다. 줄곧 붙잡은 가치관과 사고방식은 작동되지 않는다. 큰 혼란을 겪는다. 당사자도, 이를 지켜보는 이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원리와 원칙은 존중하되 그것에 굳어진 선입견인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욥과 친구들의 충돌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인과응보의 원리가 만사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없음을 자연 만물 속에서, 인간의 삶 속에서 얼마든지 발견될 수 있다. 인과응보의 원리가 상수라고 한다면 이렇게 원리에서 벗어나 발생하는 것을 변수라고 할 수 있겠다. 변수가 발생했을 때 상수의 시각으로 보게 되면 문제해결이 되지 못한다.
    
*고정된 사고에 철저하게 묶여 있으면 개선이나 발전은 요원하다. 자기 지식이나 전통적 사고를 고집스럽게 주장하기보다 때로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거나, 의심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어야 하겠다.
    
    
*욥이 호소하는 것 중의 하나는 자기 말만 일방적으로 쏟아내지 말고 자신의 항변도 좀 들어달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빌미로 자기주장을 내세우고,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교묘하게 보이는 편파적이고 공정하지 못한 행태를 그만두라는 것이다. 그래서 욥은 스스로 정직할 것을 주문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허상과 허위를 드러내실 것이라고 질책도 한다.
    
*화려한 언변, 옳고 바른 소리가 반드시 진실한 소리일 수는 없다. 사람은 얼마든지 말로 자신을 치장하고 감출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교묘하게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 항상 말에서부터 진실한 속사람이 담겨 있어야 할 것이다.
    
    
*욥에게 보이는 도전적인 부분은 친구들의 일방적인 질타에 자신의 마음을 꺾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쉽게 사람들의 말에 속는다. 그것도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에 더욱 그렇다. 참담하기 그지없는 고난의 시간 속에서 자신들을 위로하기 위해 달려온 친구들의 말이 일관되게 한 방향으로 흐를 때 얼마든지 동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욥은 그런 친구들의 말로 결론을 삼지 않는다.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나아가 판단을 구해보기로 결심한다. 비장하게 결과도 책임지겠다고 공언한다. 이는 죄가 드러나면 죽임을 기꺼이 당하겠다는 각오였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야 하겠다는 것이다.
    
*불의하고 경건치 않은 이는 감히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의로운 삶은 자신을 담대하게 만든다. 용맹한 사자처럼 흔들림이 없다. 주변의 말들이 자신의 의지를 흔들지 못한다. 굳은 결심의 끝은 하나님의 판단임을 잊지 않는다. 사람들의 말과 권면을 결론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판단 받는 것을 결론 삼겠다고 결연하게 결정한다.
    
*상황이나 여건, 사람들의 말로 쉽게 결론짓는 것보다 나의 인생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판단(뜻)을 늘 구하는 삶이어야 하리라.
    
    
*대체로 인간은 자기 경험과 자기 지식을 절대화하려는 경향이 다분하다. 확증편향이 괜히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 형성된 사관을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 자신을 깊이 돌아보기보다는 허위와 과장, 위선으로 포장하려 한다. 타협과 포기로 쉬운 길을 선택하려고도 한다.
    
*고난은 이런 이기적인 자신을 뒤집어엎는 소중한 시간이다. 자신을 깨트리고 거듭나게 하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주님, 욥의 항변이 처절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삶을 살았기에, 친구들의 확증편향에 담대하게 맞서고 있음을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판단을 구하겠노라고 생명을 겁니다. 나도 이렇게 하나님 앞에 떳떳한 삶이기를 바라봅니다.
*주님, 욥이 바라본 친구들의 모습은 고집불통에 뾰족한 자기주장의 칼을 고통과 아픔을 공감하지 못한 채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만 휘둘러 대는 이들이었습니다. 혹시 제가 주의 말씀을 전할 때 이렇게 일방적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딱딱하고 메마른 지식이 아니라 유연하게 살아있는 지식을 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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