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에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권면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삶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헤아려 주시기를 간청한다. 그는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과 자기의 변호자가 되어서 보호하여 주셨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공정한 재판관과 증인이 되셔서 원수들의 행위대로 똑같이 보복해 주시고 원수들을 멸절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과거에 자기 기도를 들어주신 것을 회상한다. 그리고 지금도 그때와 같은 고난의 상황에 있으니, 자신을 구원해달라고 기도한다. 또한 원수들의 행위를 듣고 보신 하나님이 그들의 행위대로 보응해주시기를 기도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보응해달라, 저주를 내려달라, 멸해달라고 하면서 원수들의 멸망을 요청한다. 또 극심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시인은 인격적이고 공의롭다고 생각하는 하나님께 이런 불의한 상황을 만든 원수들을 물리쳐달라고 요청한다. 이런 구문들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마음의 감정과 공격성과 고난받는 사람의 감정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게 해준다.
1. 과거 자기 기도에 응답하신 여호와(55~58절)
예레미야는 이전에 자기 기도에 응답하신 여호와를 회상한다. 이는 하나님이 약속을 잘 지키시는 신실한 분이시라는 것과 예전에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시고 돌보아주셨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어둡고 힘들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예전과 같지 않다. 그럼에도 예레미야는 불안한 상황 가운데서 과거에 신실하셨고 나를 도와주신 하나님이 이제 다시 나를 도와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위해 하나님이 하신 이전 일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이를 보면 현재의 기도는 늘 이렇게 과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억하는 가운데 다시 힘을 얻고 능력을 얻게 된다.
예레미야는 현재 상태가 구덩이 빠져 죽기 일보직전이라고 고백한다(54절). 그리고 55절에서 예레미야는 과거로 돌아가 과거에도 자신이 가장 깊은 구덩이에 빠진 적이 있었음을,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음을 회상한다. 56절은 주님이 자신의 음성을 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현재 자신의 외침과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에 귀를 닫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다. 이는 과거에도 자신의 음성을 들으신 하나님이 현재 도움의 요청하는 소리에 귀를 닫지 말아 말아 달라는 것이다. 이는 과거에 자신의 음성을 들으신 하나님이 현재 도움의 외침도 들어주시리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요청이다. 41절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구름에 가려진 분이라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 자신의 상황을 기도가 원활하게 상달되지 않는 상태로 보고 있다. 구름에 가려졌다는 것과 귀가 가려졌다는 것은 모두 기도를 듣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57절에서는 자신이 여호와를 불렀을 때 여호와가 자신에게 가까이 오셨다고 말한다. 재차 자기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였다. 이 말씀은 예레미야애가 전체에서 유일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이다. 통상적으로 이 말은 여호와가 본격적으로 돕기에 앞서 곤경에 처한 사람을 안심시키기 위해 들려주시는 말씀이다. 그리고 예레미야의 선지자로서의 소명을 재확인시켜 줄 때도 이 말씀이 들려졌다(렘 1:8).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자. 상처 입은 자를 위로하신다. 예레미야는 이런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있고 그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려 한다.
58절은 여호와가 자신의 변호사가 되셔서 자신을 위해 싸워주셨다고 고백하며 자기 생명의 구속자라고 말한다. “속량하다(가알)”로 번역된 동사는 사람이나 물건을 대신 사주는 것을 말한다. 보통 “구속하다”로 번역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자신의 변호사 사건을 맡아 지신을 구원해 주신 구속자라고 고백한다. 이는 또 현재 상황을 기도하기 앞서서 과거에 자기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하신 것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지금 구원을 기대하는 것이다.
2. 나의 원통함을 보신 여호와(59~63절)
예레미야는 본격적으로 하나님께 요청하기 시작한다. 그동안 자신이 당한 고난이나 모함을 보셨다고 하면서 여호와께 세상의 재판장으로서 심판하여 정의를 구현해달라고 요청한다. 60절에는 예레미야가 왜 이런 요청을 했는지에 대한 이유가 등장한다. 여호와는 원수들의 보복과 그들의 악한 생각들을 모두 보고 계셨기 때문이다. 세상의 악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안 계시고 자신들이 왕이며 재판장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생각대로 남을 판단하고 재판하고 권력을 행사한다. 또한 악을 몰래 저지르는 사람은 아무도 자신의 악한 생각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분명히 하늘에 계시며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고 확신한다. 그렇기에 자신이 겪는 불의한 상황과 억울한 고난 속에서도 절대로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의 개입을 요청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61~62절은 여호와가 모든 것을 들으셨다고 고백한다. 여호와가 들으신 것은 예레미야를 향한 원수들의 비방과 모든 나쁜 생각과 대항자의 입술과 반복되는 노래다. 대항자의 입술이란 예레미야를 공격하는 자의 말이라는 의미다. 말로 예레미야를 공격하고 욕하고 모함하는 자들을 지칭한다. “울려 퍼지는 노래(학가욘)”는 널리 퍼지는 노래라는 의미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비방의 말을 계속해서 널리 퍼뜨린다는 비유적인 의미이다. 원수들은 예레미야에 대한 비밥을 하루 종일 끊임없이 한다. 예레미야는 이 모든 말을 여호와가 들으셨다고 확신한다.
63절은 다시 원수들의 앉고 일어서는 것을 자세히 봐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자신은 그들의 돌림 노래라고 한탄한다. 예레미야의 참담한 심정이 “돌림 노래”라는 표현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몸이 당하는 고난도 힘들지만, 원수들의 말에 의한 공격이 예레미야에게는 더 힘들고 참기에 어려웠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모든 말을 듣고 계시는 하나님이 악한 말을 죄로 여기심을 알고 있기에 항상 말조심해야 할 것이다.
3. 여호와여 보응하여 주옵소서(64~66절)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일어난 일들과 원수들이 자신에게 한 일을 모두 보고 들으셨다. 예레미야는 이것을 근거로 하나님이 보응해주실 것을 요청한다. 64절에서는 그들의 손이 행한 대로 보응해달라고 한다. 그들이 말로 범죄하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행동으로 범죄하였으면 또한 그에 상응하는 벌을 내려달라고 요청한다. 이는 사적 보복과 다른 것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65절은 악인들에게 거만한 마음을 두라고 요청한다. 거만한 마음은 “둔한 마음”이다. 이는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둔한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악인들에게 내려진 저주이다. 죄에서 회개하지 못하면 결국 심판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66절은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진노로 그들을 끝까지 추격하여 진멸해달라고 요청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쫓고 죽이신 것처럼(3:43), 자기 원수들도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모습은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를 기반으로 하여 하나님이 현재 고난의 상황에 개입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다.
나는?
-예레미야의 두려움을 이기는 신뢰의 기도. 선지자는 “멸절되었다”라고 할 만큼 삶의 막다른 골짜기에서도 두려워 말라고 응답해 주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다시 자신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귀를 열어달라고 간구한다. 그리고 이미 응답한 듯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다”라고 환호성을 지른다. 선지자는 현실은 변함없는데도 믿음의 눈으로 주께서 자신을 대신하여 싸워주심으로 원통함을 풀어주시고 생명을 살려주셨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으니, 원수들의 부당한 공격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억울함을 보시고 풀어달라는 것이다. 믿음과 현실이 대립하는 오늘날,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일관된 사랑을 신뢰하며 드리는 기도가 절실하지 않은가!
-다 아시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기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기도를 들으실 뿐만 아니라 그 백성을 향해 대적들이 비방하고 온종일 모해하려고 하는 말들을 다 들으시고, 마음속 음모까지도 아신다. 앉든지 서든지 쉴 때든지 일할 때든지 쉼 없이 이어지는 세상의 조롱 속에서도 우리가 인내하며 믿음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간구와 악인들의 불의한 시도를 다 아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근거 없는 비방으로 당한 고난과 그 진실을 나보다 주님이 더 잘 아신다.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보응하실 것을 확신한다. 자기 백성의 범죄와 패역함에 눈감지 않으시고 심판의 오른손을 드셨던 의의 하나님께서, 하물며 원수 바벨론을 그냥 두실 리 없다고 믿은 것이다. 그에게 저주를 내려서 천하에서 멸하여 주시리라 믿었다. 그날은 자기 죄에서 돌이키고 끝까지 인내하며 소망을 버리지 않은 자기 백성의 구원의 날이 될 것임을 알았다.
*멸절되었다고 할 만큼 깊은 구덩이에서(53~54절) 주의 이름을 부르며 탄식하고 부르짖자, 귀를 열어 그 음성을 들으셨다. 그리고 가까이하여 “두려워 말라”고 말씀해 주신다. 주의 손이 미치지 않고, 주의 귀가 들리지 않는 곳은 없다. 어떤 절망의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끈을 놓지 않고 의지한다면 응답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하나님은 “구속자”, “신원하는 자”, “보수자”이시다. 아직 실현되지도 않았지만, 이미 하셨다고 말한 것은 선지자의 강력한 확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원하여 달라는 기도로 마무리하는 것이다(58~60절). 살아가는 삶 속에서 분하고 원통한 일이 있는가? 직접 원수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야 할 증거가 여기 있지 않는가!
*자기 백성을 향한 치욕적인 질책(훼방)을 들으시고, 그들을 조롱하며 노래하는 것을 보신다. 원수의 마음속 음모(모해)까지도 알고 계신다. 우리가 고난 속에서 인내하며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고통을 들으시고 보시며 훤히 알고 계신다는 믿음 때문이 아니겠는가!(행 7:56). 잠시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낙망할 필요 없다. 내가 하나님 편에 있는 이상 하나님은 항상 내 편이시기 때문이다.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공의로운 하나님이심을 잊으면 안 된다. 자기 백성을 향해서도 심판의 손을 드셨지만, 회개한 자기 백성을 위해 원수(바벨론)에게 저주를 내려 그들이 천하에서 설 자리가 없게 하실 것이다(렘 18:23; 시 28:4). 행한 대호 보응하시는 하나님은 오늘 나를 어떻게 판단하실 것 같은가? 원수를 멸해달라고 요구할 만큼 나의 삶은 하나님을 위해 의로운 고난을 당하며 살고 있을까?
*주님, 나의 고난과 슬픔을 들으시고 보시는 주님, 귀를 가리지 마옵소서
*주님, 공의로우신 섭리를 기억하여 늘 주의 긍휼과 자비 안에서 살아내도록 이끌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