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고난 중에서 하나님만 붙잡다! [욥 13:20-14:22]
 – 2023년 11월 18일
– 2023년 11월 18일 –
욥의 깊은 탄식이자 기도문이다. 욥은 친구들의 말을 조목조목 지적한 후에 다시 하나님께로 시선을 향한다.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걸고 변론하기 전에 기도하는 것이다. 무수한 도전적인 질문들에도 불구하고 대답 없는 하나님을 향한 탄식과 원망을 반복한다. 이런 모습이 인간의 연약함의 본질이다. 욥의 갈망은 자신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서라도 자신의 의로움을 입증받고 싶어 한다.
    
욥의 친구들은 그의 고난 원인을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아서라고 진단하였다. 원인을 이렇게 진단하니 엘리바스는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5:8)”라고 했고, 빌닷은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면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8:5)”라고 했다. 그리고 소발도 역시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11:13)”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친구들의 진단과 처방과는 달리 욥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향해 탄식하고 탄원한다. 세 친구와 첫 번째 논쟁을 마무리하면서도 변함없이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구한다.
 
    
    
1. 왜 저를 주님의 원수로 생각하십니까? (13장 20~28절)
욥이 하나님께 직접 변론하기를 소망한 것처럼(13:3), 이제 하나님께 직접 기도를 드린다(13:20~14:22). 기도를 시작하며 두 가지 전제를 먼저 요청한다. 먼저 지금 겪고 있는 고난에서 구해 주시고 변론한 기회를 주시기를 간구한다(20~22절).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이유를 알게 해달라고 요청한다(23~25절).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현재의 고난에 대해 깊이 탄식한다(26~28절).
    
욥이 세 친구의 충고를 통해 깨달은 것은 악인은 심판받고 의인은 구원받으나 욥 자신이 직접 겪은 것은 이와 같은 원리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욥은 마치 법정에서 자신의 무고함을 하나님께 직접 변론하기를 결심했다. 하지만 공정한 변론을 위해서는 먼저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시오며(21절)”라고 요청한다. 하나님의 손이 쳐서(1:11; 2:5; 6:9; 10:7) 고통을 당하기에 현재 당하는 고난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이 쳐서 당하는 고난으로 인해 오는 두려움을 제하여 주실 것을 함께 요청했다(21절). 이렇게 공정한 법정의 변론이 시작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하나님께서 소환할 때 하나님께 나아가 답변할 것이며 자신에게 변론할 기회도 주실 것과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고난에 대하여 합당한 답을 주실 것을 요청한다(22절).
    
그러나 욥이 자신이 당하는 고난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악과 허물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간청도 함께 한다(23절).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자신에게서 얼굴을 가리시고 자신을 향한 도움을 거두셨고, 오히려 자신을 원수같이 여기신다고 토로한다(24절). 자신을 날리는 낙엽, 마른 지푸라기와 같이 약하고 하찮은 존재인데 하나님께서 대적하여 쫓으시고, 어렸을 때의 죄로 인한 벌을 내리시며, 노예와 같이 차꼬를 채우심으로 자신을 낡은 가죽 부대와 좀먹은 구멍 난 의복처럼 무가치한 자가 되게 하셨다고(25~28절) 탄식한다.
    
욥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여러 비유로 토로하는 것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고난을 이해할 수 없어 하나님께 직접 토로하는 몸부림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고난이 인과응보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 상황을 스스로 이해할 수 없기에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다.
    
    
    
2.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14장 1~22절)
14장은 전체가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 혹은 탄원이다. 13장에서 욥은 하나님께 직접 변론하겠다고 생명을 걸고 나섰지만, 13장 20절부터 14장 전체의 내용은 욥의 변론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시 3장에서 고백한 것처럼 “너무 고통스러워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라는 호소가 다시 등장한다.
    
이는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난을 통해 깨닫는 인간의 연약함과 소멸할 인생의 한계를 고백하며 자신을 돌아보아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욥이 경험하는 인생의 허무함은 생명이 짧고(7:6, 16; 9:25) 걱정이 가득하며(7:3, 11) 꽃과 같이 시들게 된다는 것이었다. 창조주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는 삶의 허무함이 가져오는 한계를 경험하는 자신을 하나님께서는 죄인 취급하시고 재판하고 계신다고 토로한다(3절). 그럼에도 욥은 스스로 자문자답하며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인생이 죄인임을 고백한다(4절). 결국 인생의 생명 기간도 하나님이 정하셨고 그 기간을 넘지 못하도록 하셨으니(5절), 인생의 한계는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음을 나타내신다. 하지만 욥은 자신의 인생을 정하시고 주시하시는 하나님의 고정된 시선에서, 그의 감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품꾼이 맡은 바 일을 끝내고 쉴 수 있는 것처럼(6절) 고난 속에 있는 욥은 하나님께 자신의 남은 날들에 쉼을 가질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한 것이다.
    
7~12절은 소망 없는 인생에 대해 토로한다. 인생의 한계와 덧없음을 나무와 물에 비유한다. 나무는 밖으로 찍혀 가지가 죽고 뿌리가 늙으며 줄기가 죽는 듯 보여도 물을 주면 다시 움이 돋고 생명력을 보존한다. 하지만 사람은 나무에 비해 죽음으로 마감한다. 이것은 마치 바다에 물이 줄어 강물이 마름같이, 인생은 죽어서 자는 것 같이(7:21) 깨어나지 못하기에 소망이 없다고 했다. 욥은 피조물인 자연(나무와 물)과 비교하여 스스로 소멸할 소망 없는 삶을 살고 있음을 고백한 것이다. 피조물인 자신의 자리와 한계를 인정하고 있으며 진정한 소망이 인생에 속해 있지 않다고 표현한다.
    
13~17절은 하나님을 향하여 인생의 한계와 덧없음을 말하며(14:1~12) 자신 또한 그 인생 중의 한 사람이었음을 고백했다. 이제 욥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소망과 그때까지 참고 인내할 의지를 고백한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스올”에 감추어 주시기를 간구한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거나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피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스올에서라도 고난을 벗어나기를 원하는 욥의 간절함과 소망이 나타나(13절) 있는 것이다. 새번역은 13절을 “오, 주께서 나를 스올에 감추시고, 주님의 진노가 그칠 때까지 나를 숨기시며, 내게 기한을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번역한다.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때 스올이라 할지라도 깊이 피할 수 있기를 바라고, 하나님께 기억되기를 바라는 욥의 간절한 소망을 표현했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간절한 소원을 죽어서라도 인내하고 기다리겠다는 결의에 찬 의지를 표현한다(14절). 욥은 주께서 부르시면 바로 응답하리라는 결의를 보이며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자신을 소환하여 변론케 하시리라는 소망도 제시한다(15절). 이러한 소망이 있지만 욥의 삶은 여전히 하나님의 심판 속에 있으며(16절), 하나님께서 욥의 죄악을 잊지 않으시고 싸서 보관하신다고도 표현한다(17절). 이 모든 것은 욥이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소망과 견딜 수 없는 고난을 겪고 있는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 준다.
    
18~22절은 욥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마지막 부분이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자연을 소멸하시고 사람의 소망을 끊으시고 결국 인생이 죽음 가운데 거하게 될 것이라는 탄식이다. 자연과 인생이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 얼마나 덧없이 사라질 수 있는지를 나타낸다. 그러나 욥의 기도 마지막은 인생의 간절한 소망과 상관없이 사람을 이기셔서 죽음으로 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린다. 죽음의 세계에서는 산 자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지 못하고 고통과 슬픔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21~22절). 결국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는 자연도 인생도 덧없이 사라질 존재라는 것이다.
    
    
    
나는?
-욥은 정당한 재판이 되기 위해 주의 손을 대지 마실 것과 주의 위엄으로 두렵게 하지 마실 것을 요청한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손은 욥에게 해를 끼치는 부당한 손이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욥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에게 “하나님의 손”은 나를 부당하게 하시는 손일까? 아닐까?
    
-인생에서 고난이 닥쳐올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부당하게 징계하신다고 생각해 본 적은 과연 없을까? 한편으로 하나님의 징계와 관련하여 나를 부당하게 징계하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욥은 하나님께 호소한다. 하나님의 대답을 간절히 바랐다. 허물과 죄가 없는 자신을 이토록 원수 대하듯 하는 이유를 알려 달라고 한다. 죄가 있다면 책임질 수 없는 어린 나이에 지은 죄밖에 없음에도 썩은 물건과 좀 먹은 의복같이 쓸데없는 자 취급을 당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고통스러워한다. 철저하게 욥의 모든 길을 살펴서 죄를 찾아내시려는 그 집요한 의도를 욥은 알고 싶다.
    
-하나님은 죄를 범하도록 기다리셨다가 심판에 처하시는 분이 아니다. 고난의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아야 한다. 인내하는 자가 곧 승리를 맛볼 수 있다. 인내하는 자에게 충분한 답변과 복락을 허락하실 것이다.
    
-욥은 까닭 없는 고난 속에서 징벌의 원인을 찾을 수 없기에 하나님을 허무한 인생에 무리한 것을 요구하시는 분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잠깐의 휴식이라도 얻도록 하나님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허물을 들추어내기 위해 사람을 지으시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감시자와 징계자가 아니시다. 오히려 죄에서 구원하여 주실 구원자와 구원받은 삶을 살아내도록 도우시는 인도자와 보호자 되신다.
 
    
*인간은 고난을 겪을 때 자신이 알고 있던 하나님과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숨겨졌던 하나님을 만나기까지 긴 시간의 여정을 걸어가야 한다. 이 길을 걸을 때 무엇이 필요할까?
    
*하나님께 나아가기로 한 욥의 결심을 잊지 말자. 정당한 판단이 이루어지도록 먼저 부당한 가해를 멈춰 주시기를, 자신이 어떤 죄악을 범했는지 알려 달라고 호소하는 욥의 모습을 기억하자. 그럼에도 침묵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탄식하며 왜 자신을 피하는지 묻는 욥의 모습을 잊으면 안 된다. 정의로우신 하나님이시라면 고난을 가하시는 이유를 밝히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만약 어렸을 때 지은 죄 때문이라면 처벌이 부당하다고 항변한다. 이런 욥의 모습들이 나에게 도전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겠다는 굳은 결심을 따라 행동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간절하게 하나님을 만나겠다고 호소하는 욥은 대답을 듣지 못한다. 절망하며 인생의 덧없음과 허무함을 토로한다. 인간의 수명은 짧고 괴로움과 혼란의 연속이라고 탄식한다. 피었다가 시드는 꽃과 같이 쉬이 사라지는 존재라고 탄식한다. 하나님께서 이런 가련한 인생에 죄를 찾으신다면 인간에게 어떤 희망이 있는지를 되묻는다. 자신을 감시하는 눈을 돌려주셔서 자신이 잠시라도 숨을 돌리고 남은 시간을 살아낼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한다. 고난은 인간을 연약하게 만든다. 누구와도 나눠 질 수 없으므로 혼자만의 경험 속에서 고독하고 외로워진다. 삶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관계가 소원해 짐을 느낀다. 이 시간을 잘 감당해야 한다. 곧 만나게 될 하나님과 만나게 될 홀로 있는 고독의 시간을 꿋꿋하게 견디어 내야 한다.
    
*아무리 절망스러운 시간일지라도 하나님의 인정하심에 기대를 저버리지 말고 순전한 삶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신다. 이제까지 알았던 지식에서 더 놀랍고 깊은 지식으로 이끄신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희망과 순전함을 잃지 않는 가운데 고독한 고통의 시간을 잘 감당해 나가야 한다.
    
    
    
*주님, 욥의 탄식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이 무거움을 지나야 고난의 끝에 깨닫게 하시는 더 깊고 더 넓으며 더 높은 하나님을 깨닫게 될 것을 압니다. 저도 이 무거움을 지나야 할 때가 있겠지요? 욥을 생각하며 견디겠습니다.
*주님, 결국 욥은 고난 중에서 하나님만 붙잡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하나님을 찾습니다. 홀로 하나님 앞에서 견딥니다. 본받아 마땅한 믿음의 자세임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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