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이스마엘의 악한 이기심이 무너뜨린 유다 재건의 꿈 [렘 41:1-18]
 – 2024년 07월 30일
– 2024년 07월 30일 –
그다랴는 요하난이 제보한 살해 위협을 일축했다. 결국 다윗의 가문 이스마엘은 그댜랴를 살해하고 예루살렘으로 순례하는 자들도 살해한다. 이에 요하난은 이스마엘의 뒤를 추격하여 사로잡힌 자를 구출하여 돌아오지만, 바벨론의 보복이 두려워 애굽으로 도피하려고 한다. 이에 따라 그다랴의 신속하고 효과적인 정치로 안정을 찾아가던 유다는 다시 극심한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본문은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살해한 동기나 목적에 관해 알려주지 않는다. 단지 이스마엘이 다윗 집안에 속한 자(1절)이고 그가 “바벨론 왕이 그 땅을 위임했던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살해했다(2절)는 정도만 밝힌다. 아마도 이스마엘의 살해 동기가 정치적이었음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는 정도인데, 다윗 가문 출신인 이스마엘은 자기 집안에 속하지 않은 사반의 손자 그다랴가 유다를 다스리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예루살렘 순례자들을 죽였다는 것을 보면 이런 정치적인 이유가 아닐 수도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멸망 이후 유다는 혼란 그 자체였다.
 
 
 
1. 그다랴를 살해하는 이스마엘(1~3절)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살해할 계획이라는 저항 세력 지휘관들의 제보가 옳았다. 이스마엘은 왕족 출신으로 다윗 가문에 속했고 고위직에 속한 자로 전쟁 중에 군부대의 지휘관이었다. 그는 그다랴에게 온 다른 지휘관들보다 혈통으로나 직분으로나 위에 있던 인물이었다.
 
이스마엘은 예루살렘이 멸망한 해의 일곱째 달 그다랴를 살해한다. 그다랴는 멸망 이후 채 두 달을 넘기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스마엘은 그다랴를 살해하기 위해 부하 열 명과 미스바에 왔다. 그다랴는 그들의 속셈도 모른 채 환대하고 함께 식사한다(1절). 이들은 식사 자리가 무르익었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 그다랴를 칼로 친다(2절).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유다 사람과 갈대아 군인도 죽인다(3절). 이스마엘은 그다랴의 신뢰를 저버렸을 뿐 아니라 “손님 접대”의 전통을 피로 물들인다.
 
문제는 그다랴의 암살로 유다 공동체를 재건하려는 시도가 수포가 된 것이다. 다윗 왕조의 혈통이었던 이스마엘의 이런 행동은 다윗 왕조가 예루살렘 멸망에 책임이 있을 뿐 아니라 마지막까지 유다를 혼란과 분열에 빠뜨린 주범으로 인식하게 한다. 여호야김(36장)과 시드기야(37~38장)의 불순종이 예루살렘을 불바다로 만들었고 백성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했는데, 멸망 이후 유다의 재건까지 물거품을 만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윗 왕조는 예루살렘과 유다를 멸망 시켰을 뿐 아니라 멸망 이후 새로운 출발마저 좌초시켜 버리고 만다. 이후 바벨론의 보복이 두려워 유다 땅에 남았던 자들이 애굽으로 피난처를 찾아 떠남으로써 결국 가나안 땅에 남은 자들이 없게 만들고 말았다. 그러나 41~44장에서 이렇게 도피한 애굽 피난민들이 어떻게 여호와의 구원 계획에서 탈락하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유다 땅에 남은 자들은 사라지고, 바벨론 유배 공동체만 남게 된 것이다(24:5~7; 29:4~14).
 
 
 
2. 순례자들을 살해하는 이스마엘(4~9절)
이스마엘은 유다 총독 그다랴만 죽인 것이 아니었다. 보호해 주어야 할 순례자들마저 살해한다. 그다랴가 살해되고 다음 날이 되었지만 아무도 미스바의 상황을 알지 못했다(4절). 이는 이스마엘이 미스바의 상황을 완전히 장악했음을 시사한다. 그다랴와 함께한 모든 사람을 살해한 이스마엘 일행은 도망하지 않고 미스바에 그대로 머문 것이다.
 
그때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에서 팔십 명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에 상처를 내고” 여호와의 집에 드릴 “소제물과 유향”을 가지고 왔다(5절). 예루살렘 성전은 잿더미가 되었지만, 제의마저 사라진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성전은 폐허가 됐고 제단도 없어졌고 제사장들도 대부분 사로잡혀 갔지만, 제사는 드려지고 있었다. 아마도 정상적인 제사보다는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자신들의 죄를 참회하며 성전의 파괴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탄식했던 것 같다.
 
이런 순례자들의 등장이 계획에는 없는 일이었지만 이스마엘은 당황하지 않았다. 자신도 순례자처럼 변장하고 그들을 맞이한다(6절). 의심 없이 이스마엘의 초대에 응한 순례자들이 성안으로 들어오자, 이스마엘은 부하들과 함께 그들을 살해하고 구덩이에 던져 버린다(7절). 그러나 순례자들 모두를 죽이지 않는다. 그들 가운데 열 명은 밭에 숨겨놓은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8절). 9절은 이스마엘에게 살해당한 사람들의 시신이 버려진 구덩이의 유례를 설명해 준다.
 
그런데 이스마엘이 왜 순례자들을 죽였는지에 대해 본문은 이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 어떤 추측도 가능하지만, 이스마엘의 이런 행동은 피에 굶주린 인간의 잔인함을 보여줄 뿐이다. 그렇다면 그다랴의 살해 동기도 정치적인 것보다는 그저 이스마엘의 광기가 아닐지 짐작해 볼 수 있겠다.
 
 
 
3. 암몬으로 도주하는 이스마엘과 애굽으로 피하려는 요하난(10~18절)
이스마엘과 부하 여덟 명은 포로들을 데리고 암몬으로 도주한다. 10절에 따르면 느부사라단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왕의 딸들”을 죽음과 유배를 면하게 하고 미스바에 남겨 두었다. “왕의 딸들”은 왕실에 속한 여자들을 가리킨다.
 
요하난과 지휘관들은 그다랴가 암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11절), 부하들과 함께 이스마엘을 추적한다. 이들은 기브온에 있는 큰 못 가에서 도주하는 이스마엘 일행을 만나(12절), 잡혀가던 사람들을 구출한다(13~14절). 수적으로 불리한 이스마엘은 여덟 명의 부하와 함께 암몬으로 도피한다(15절).
 
16~18절은 애굽으로 도피하려는 요하난 일행을 보여준다. 요하난은 갈대아인들의 보복이 두려워 애굽으로 도망가려고 사람들과 길을 떠나 베들레헴 근처 게롯김함에 머문다. 바벨론 왕에 의해 임명된 총독과 주둔해 있던 바벨론 군인이 살해되었기에 바벨론의 보복은 충분히 예상되었다.
 
 
 
나는?
-이스마엘은 그다랴의 호의를 배반한다. 그다랴가 베푼 신뢰와 친교의 식탁을 배반과 살인의 식탁으로 바꾸어 버린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수용하는 것보다 왕의 가족으로 다윗 왕가를 무너뜨린 바벨론과 그들에게 협력하는 자에게 앙갚음하는 것이었다. 어떤 공적이나 사적인 이익이 하나님의 보편적인 정의와 사랑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 어떤 대의명분이라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윗 왕가의 사람 이스마엘은 그다랴가 베푼 신뢰와 친교의 식탁에서 그를 배반하고 살해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유다 사람과 갈대아 군사들까지 죽인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반성보다 바벨론에 협력하는 세력에 대한 복수만 있었다. 하나님의 결정을 끝까지 수용하지 못하는 교만과 자기 입장만을 고수하는 옹졸하고 이기적인 그로 인해 간신이 시작된 소소한 평화가 산산이 부서졌다.
 
 
-이스마엘은 간교한 두 얼굴을 잘 보여준다. 그다랴를 속여 암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사실을 감추기 위해 성전 순례자 70명을 살해한다. 예루살렘 파괴에 대한 애도의 표시로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이 상한 채” 예루살렘을 향하던 순례자들이 미스바에 들어서기 전 우는 모습으로 접근하여 안심시킨 후 총독 그다랴를 면담하게 해주겠다고 속여서 유인한다. 사탄은 지금도 진실의 얼굴을 한 거짓으로 미혹한다. 격려와 축복과 평안으로 포장된 거짓 메시지로 심판의 경고를 감춘다. 듣기에 좋은 말이 늘 꼭 우리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은 아니다.
 
-이스마엘은 마치 남 왕국의 왕으로서 북 왕국을 무찌른 듯이, 유다 왕 아사가 이스라엘 왕 바아사에게 대항하기 위해 판 구덩이(왕상 15:22)에 시체를 던진다. 왜곡된 남 왕국 중심주의와 북 왕국을 향한 그릇된 적개심이 잔인한 학살을 낳았다. 멸망이라는 생사를 가른 큰 고통을 통과 했으나 그의 가치관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차가운 흑백논리가 다시 시작하는 이웃을 적으로 돌렸다.
 
 
-요하난은 모든 군 지휘관과 함께 인질을 데리고 암몬으로 떠난 이스마엘을 추격하여 기브온 큰 물가에서 그와 대치한다. 이스라엘 백성 상당수가 바벨론 왕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더니, 이제 남은 자들마저 다윗 왕가의 포로가 되어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떠나신 사람들의 실상이다. 평생 다른 주인으로 바꾸는 일만 되풀이할 뿐 뿌리내릴 곳이 없다.
 
-비겁하고 잔혹한 살인을 저지르고 이스마엘이 향한 최종 목적지는 암몬이었다. 그는 암몬 왕의 사주를 받아 바벨론이 세운 유다 총독을 죽인 반역자이자, 유다 백성을 암몬으로 데려가는 악한 사람이었다. 유다 왕실을 위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인물이었다.
 
-이스마엘에게 인질들을 되찾은 요하난과 군 지휘관들은 전후 사정을 모르는 바벨론의 무자비한 보복이 두려워 애굽으로 향한다. 현실적으로 보면 그의 처세와 정치적 감각은 탁월했다. 이스마엘의 총독 암살 계획을 간파하였고, 그를 제거하여 미연에 사태를 방지하려 했으며, 애굽의 그늘에서 바벨론의 칼을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먼저 알았어야 했다.
 
 
 
 
*주님, 멸망 이후 유다 땅의 혼란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부디 이런 상황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주님, 이스마엘의 악한 이기심이 이제 막 시작되려는 평화를 무자비하게 흩어버립니다. 내가 교회 공동체에 그런 존재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선포한 대로 이루어지다 [왕하 7:3-20]

하나님은 나병 환자 넷을 이용하여 사마리아를 전쟁과 기근에서 구하신다. 이로써 엘리사를 통해 예고하신 말씀을 성취하신다. 아람의 군사들은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큰 군대의 소리를 듣고 도망갔다. 이에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