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해주시는 하나님 [시편 116:12-117:2]
 – 2024년 12월 29일
– 2024년 12월 29일 –
 
죽음에서 자신을 건지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고백이 주요 내용이다. 이어지는 117편은 열방이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노래하게 된다는 우주적인 찬양을 선포한다. 개인적인 감사시가 열방 가운데로 확장된다. 
 
 
 
1. 감사를 결단하다(116편 12~19절)
시편 116편은 시인이 죽음으로부터 건짐을 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시다. 1~11절은 여호와의 언약적 성실하심으로 시인을 구원하시고 생명의 땅에서 살아가게 하셨다. 다른 이들은 거짓을 말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므로 믿고 신뢰하겠다는 첫 번째 감사의 결단을 노래하였다. 본문은 시인의 감사 결단이 계속 이어진다. 크게 세 가지의 결단이 등장한다. 
 
먼저 첫째로, 12~14절을 살펴보면 12절은 시인의 질문인데, 사실상 수사 의문문이다. ‘내게 주신 은혜를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라는 질문은 내용상 “내게 주신 은혜를 갚기 원합니다”라는 뜻이다. 그 구체적인 감사의 내용이 13~14절을 통해 차례로 서술된다. 13절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무르겠다고 말한다. “구원의 잔”이란 실제의 어떤 포도주 잔을 의미할 수 있겠지만, 신앙적 맥락에서 이해하자면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겠다는 뜻이다. 즉, 구원의 잔이란 여호와의 구원하심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의미할 것이다. 이에 따라 13절 하반절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라고 노래한다. “여호와의 이름으로”라는 문구는 116편에서 세 번 등장하는데, 4절에서 시인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했고, 여호와께서 이에 응답하셨다. 13절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외치며 감사의 잔을 올려드리겠다고 고백한다. 17절에서도 역시 여호와의 이름으로 감사제를 드리겠다고 고백한다. 14절은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서원을 여호와께 갚겠다고 선언한다. 이 고백이 어떤 정황을 암시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시인은 이미 하나님께 서원한 내용을 갚았기에 이와 같은 고백을 드린 것이다. 동시에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앞으로 서원을 갚겠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된다. 즉, 시인은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을 온전히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갚음으로써 감사를 드리겠다는 의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두 번째로 15~16절을 통해 또 다른 감사의 결단이 나타난다. 특별히 은혜를 수여받은 자로서 자신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고 고백하는 내용이다. 15절에서 시인은 자신을 “경건한 자”로 번역된 단어는 “하시드”다. 그런데 사실 이 단어는 ‘거룩함, 경건함’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 단어는 명사 헤세드의 형용사로서 “인자한”이라는 뜻으로 독립적 용법으로 사용되어 “인자한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헤세드가 언약적 성실함을 의미하기에 하시드는 언약에 성실한 자라는 의미다. 시편의 하시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은총을 깊이 경험하여 자신의 삶에서도 언약적 성실성을 실천하는 신자의 삶을 표현한다. 특히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를 성실하게 유지해 나갈 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이웃들에게도 언약적 관계의 의무를 충실하게 다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15절은 이 하시드의 복수형인 하시딤(인자한 자들)을 사용한다. 그들의 죽음이 여호와께 귀중하다는 것은 “소중함”의 의미도 되고, 그러한 죽음이 “희소하다”는 뜻도 된다. 즉, 하시딤은 하나님께 언약적 성실성을 지키기 위해서 죽음이라는 대가도 기꺼이 지불할 수 있다는 결단의 의미가 될 수 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하시딤이 죽음에 빠지는 것을 좀처럼 내버려두지 않으신다는 내용도 될 수 있다. 시인이 죽음에서 건짐을 받은 후 이 노래를 불렀기에 결단과 보호하심의 의미를 중의적으로 이해해도 좋다.
 
여호와는 언약에 신실한 자들이 죽음을 당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며, 그것을 아는 언약에 신실한 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여호와를 따르겠다는 결단을 할 것이다. 그런 하시딤이 혹시라도 죽음의 대가를 지불하게 되면 여호와 보시기에 매우 귀중한 일이 된다. 
 
세 번째는  17~19절을 통해 드리는 시인의 마지막 감사와 결단이다. 내용상 13~14절과 거의 유사하고 그 의미를 반복한다. 다만 13~14절과 다르게 추가된 19절의 내용이 중요하다. 19절은 18절에 나오는 ‘그의 모든 백성 앞에서’라는 구절을 추가적으로 설명한다. 19절을 직역하면 “여호와의 집 뜰에서, 네 한가운데서, 예루살렘아!”이다. 이는 시인이 감사의 제사를 드리면서 서원을 갚은 곳이 여호와의 집 및 예루살렘이라는 뜻이다. 다만 “집”이라는 표현을 통해 하나님 나라 그리고 주님의 언약 공동체 전반을 가리키는 상징적 어휘로 이해할 수 있다. 시인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하시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하나님의 임재가 약속되어 있는 예루살렘을 귀중하게 여기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표현으로 언약 공동체 즉 교회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하도록 노력함으로써 우리에게 베푸신 크신 은혜에 대한 감사를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 열방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라(117편 1~2절)
117편은 “할렐루야”로 끝나는 115~117편의 마지막 시편이다. 1절에서 “할렐루 아도나이”라는 고백을 하기에 사실상 “할렐루야”로 시작하고 마치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 시편은 111~117편의 흐름을 사실상 완성하는 종말론적인 시편이다. “열방들이 여호와께 찬양해야 한다”는 명령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루살렘뿐 아니라 열방이 주님을 을 높여야 한다는 것은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어 열방이 언약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뜻이다. 
 
2절은 매우 놀랍게도, 열방이 여호와를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 때문이다. 인자와 진실은 출애굽기 34:6에 나타난 여호와의 언약적 성품으로 언약 공동체에게만 주어지는 은총이다. 그런데 이런 언약적 성실성을 열방이 찬송하게 된다는 사실은 열방이 여호와의 언약 공동체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표시한 것이다. 
 
117편은 111~117편의 흐름을 사실상 마무리하면서 열방을 다스리시는 여호와께서 언약 공동체의 하시딤들을 구원하셔서 그들의 감사의 헌신을 받으시고 열방까지 언약 공동체로 삼으시겠다는 종말론적 구원의 성취를 노래하고 있다. 이는 118편으로 이어져 여호와의 이름으로 죽음의 권세를 이겨내는 특별한 한 인물에 의해서 더욱 선명하게 설명한다. 
 
 
 
나는?
-죽을 고비에서 자신을 건지신 하나님의 역사를 생생하게 기억하면서 시인은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겠다고 다짐한다. 위기의 순간에 기도하면서 드린 서원을 여호와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갚겠다고 약속한다. 성도의 예배하는 삶은 받은 은혜에 대한 마땅한 화답이다. 그 무엇으로도 갚을 길 없는 은혜에 대한 보답 아닌 보답이 아닐까? 그리고 새로 얻은 내 삶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이다. 자랑할 수도 없고 대가를 요구할 수도 없는 것이 성도의 삶이다. 
 
-하나님께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면 그 은혜에 화답하는 생동하는 삶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구원받은 삶은 매 순간이 은혜의 순간이며 구원의 순간임을 깨달을 때 예배한다. 그 무엇으로도 갚을 길이 없는 은혜에 대한 보답 아닌 보답이 예배다. 내 삶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에서 예배가 나온다. 자랑할 수도 없고 대가를 요구할 수도 없는 것이 성도의 삶이다. 
 
-경건한 자기 백성의 죽음을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주의 종을 결박에서 풀어 자유롭게 해주셨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지만, 그 자체로 선하지 않으며 하나님은 의인의 죽음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 때가 이르기 전에 주의 종을 모든 죽음의 위협에서 지켜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담대하자. 나보다 하나님께서 내 안전에 관심이 더 많으시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경건한 자의 죽음은 하나님께도 무거운 일이다. 결코 가볍지 않다. 안타깝게 여기신다. 그래서 가만두지 않고 구원하시는 것이다. 시인도 그런 하나님이기에 그분께 자신은 종이라고 자신을 낮춘다. 노예처럼 속박당한 삶에서 결박을 풀어주실 것을 믿고 고백한다. 그렇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 자체로도 선하지 않다. 하나님은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 
 
-시인은 흔들림 없이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에 모든 나라를 초청한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적인 신실하심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창 12:3) 온 땅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 이스라엘의 대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하나님은 온 세상을 향한 자신의 신실하심을 증명하셨다. 
 
 
 
*주님,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구원의 역사에 늘 반응하고 감사하겠습니다.
*주님, 나를 나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주시는 사랑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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