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다메섹, 게달과 하솔, 엘람을 향한 심판 예언 [렘 49:23-39]
 – 2024년 08월 13일
– 2024년 08월 13일 –
심판의 대상이 유다 주변에서 먼 북동쪽 민족들로 확대된다. 시리아 지방의 다메섹, 아라비아 사막의 게달과 하솔, 바벨론 동쪽의 엘람이 여호와의 심판 아래로 들어온다. 바벨론의 지배 아래 있는 모든 나라의 운명이 여호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1. 다메섹에 대한 신탁(23~27절)
시리아 지방의 아람 민족의 성읍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세 도성이 신탁의 수신자로 등장한다. “다메섹”은 남부 시리아를 대표하는 세력으로 앗수르의 서진에 강력하게 맞서다가 732년 디글랏벨레셀에 의해 멸망한다. “하맛”은 다메섹에서 북쪽으로 약 170km 떨어진 오론테스강 동편에 있는 성읍이다. 738년 앗수르에 빼앗겼던 영토를 되찾기 위해 720년 반기를 들지만 실패하고 앗수르의 한 지방으로 편입된다. “아르밧”은 하맛에서 북동쪽으로 약 150km 떨어진 시리아 북부의 핵심 세력으로 740년 디글랏빌레셀에 의해 함락되고 720년 하맛이 주도한 봉기에 가담했다가 멸망하고 만다.
 
하맛과 아르밧이 “흉한 소문”을 듣고 당황한다. 마치 바다가 거센 파도와 바람에 요동치듯이 하맛과 아르밧이 크게 낙담하고 동요한다(23절). “흉한 소문”이 어떤 내용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으나, 문맥상 무서운 적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인 듯하다. 소문만 듣고도 하맛과 아르밧은 전의를 상실하고 두려움에 빠진다. 이들보다 더 남쪽에 있는 다메섹은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힌다. 안전한 곳을 찾아 도망하고자 하나, 공포로 온몸에 힘이 빠져 달아나지도 못하고 해산하는 여인처럼 불안과 고통에 사로잡혀 어찌할 바를 모른다(24절). 한때 “찬송의(명성이 높던) 성읍, 나의 즐거운 성읍”이었던 다메섹이 버림을 받고 폐허가 된다(25절).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리던 거리가 젊은이들과 병사들의 시체로 가득 차고, 다메섹의 성벽과 궁전이 불꽃의 먹이가 된다(26~27절).
 
통상로를 장악하고 그 이름을 떨치며 번성하던 다메섹이 잿더미가 된다. 다메섹이 폐허가 되는 이유는 25절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타난다. 다메섹을 개역 개정 번역에는 “찬송의 성읍(이르 테힐라)”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테힐라”가 “노래하다(찬송)”로 주로 번역되기는 하지만, “빛나다, 과시(자랑)하다”라는 의미도 있다. 본문은 교역로의 중심에 있는 도시로서 풍부와 만족으로 인해 교만에 찬 도시, 타락한 성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이와 같은 문맥에 따라 26~27절은 다메섹은 여호와의 심판으로 멸망할 것을 선언한다.
 
 
 
2. 게달과 하솔의 신탁(28~33절)
게달은 시리아-아라비아 사막에서 양 떼를 치며 천막에 사는 아랍 부족이었다. 이사야 21:17에서는 활을 잘 다룬다고 기록되어 있고, 에스겔 27:21은 어린 양과 숫양과 염소들을 두로와 거래했다고 기록한다. 하솔은 아라비아 사막에 정착하여 농가에 사는 아랍 부족 전체를 가리키는 집합 명칭으로 “하솔 나라들”은 족장이 다스리는 아랍 부족들을 의미한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공격받은”은 599~598년에 일어난 아랍 부족들 약탈 사건을 지칭한다.
 
게달에 대한 신탁은 전투 명령으로 시작하는데, 이인칭 복수의 청자들에게 일어나 게달을 치러 올라가서 ‘동방의 자손들’을 짓밟고 그들의 생존 토대를 남김없이 파괴하라고 하신다(28~29절). 게달은 일상에 필요한 장막과 양 떼와 휘장과 살림살이와 낙타까지 다 약탈당하고 “사방의 두려움”만 남는다. “동방 자손들”은 팔레스티나 동쪽 아라비아 사막과 초원 지대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하솔에 대한 신탁은 도주 명령으로 시작한다. 목숨을 건지려면 하솔 주민들은 빨리 도망쳐 깊은 곳에 들어가 숨어야 한다(30a 절).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이들을 치기로 결정하고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30b 절). 하솔 주민들은 통상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았기에 외부의 침략에 대비하여 방어 시설을 갖출 필요가 없었다. 바벨론의 관심 밖에서 편안하게 살던 하솔 주민들은 느부갓네살의 계획 안에 들어오게 되어 이들의 편안한 삶도 끝이 난다. 적들은 하솔 주민들의 낙타를 노획물로, 이들의 가축을 전리품으로 빼앗아 간다(32절).
 
하솔의 멸망은 여호와의 의지에 따른 것이기에 멸망을 벗어날 길이 없다. 여호와께서 “살쩍을 깎는 자들”(아랍 족속들)을 사방으로 흩어버리시고 “재난”이 그들에게 사방에서 오게 하신다. 주민들은 떠나고, 인적이 완전히 끊긴다. 영원히 폐허가 된 하솔은 승냥이의 소굴이 된다(33절). *승냥이는 폐허가 된 곳에 사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하솔의 주민들을 이렇게 심판하시는 이유를 “살쩍을 깎는 자들(케추체페아)”이라는 표현으로 유추할 수 있다. “관자놀이의 머리를 민 자”라고 번역해도 무방하다. 렘 9:26과 25:23에도 하솔의 주민들을 언급할 때 이렇게 표현하였다. 당시 이스라엘 북동쪽 아라비아 사막의 아랍 부족들을 지칭할 때 사용된 표현이다. 그런데 머리카락 끝부분을 각지게 하는 풍습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우상을 숭배할 때 행하던 제의 의식을 통해 머리를 이렇게 깎았던 것을 표현한 말이다. 결국 하솔에 대한 심판도 우상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빼앗겨 상실해 버린 것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라 할 수 있겠다.
 
 
 
3. 엘람의 신탁(34~39절)
바벨론 동쪽 또는 페르시아만 북동쪽에 있는 엘람의 역사는 알려진 것이 많이 없다. 주전 13세기 중반부터 12세기 중반까지 엘람은 일시적으로 메소포타미아의 주요 세력으로 등장했으나 이후로는 영향력을 상실했다. 주전 639년 앗수르의 왕 앗수르바니팔에 의해 점령당했고 그 뒤에는 바벨론과 메대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페르시아 시대에는 엘람의 수도 수사는 제국의 행정 중심지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특이한 것은 예레미야에게 주어진 엘람의 신탁은 유다 시드기야 왕 통치 초기로 언급한다(34절). 이것은 신학적인 연관성을 가리키는데, 유다나 엘람이나 여호와께서 결정하신 바벨론의 굴레를 자진하여 받아들여야 한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 유다 뿐만 아니라 저 멀리 동편 끝에 있는 엘람까지 모든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신다.
 
구체적인 신탁의 내용은 여호와께서 “엘람의 힘의 으뜸가는 활”을 꺾으실 것이다(35절). 엘람이 자랑하는 활이 꺾였음은 그들의 군사력이 무력화되었고, 궤멸하였음을 의미한다. 이 멸망은 “바람의 비유”로 표현된다(36절). 여호와께서 하늘, 네 귀퉁이에서 네 바람을 엘람에 오게 하여 엘람 사람들을 사방으로 흩으신다. 겨가 광풍에 흔적 없이 사방으로 날려가듯이 엘람 사람들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진다. 이들이 들어가지 않은 나라가 없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멈추지 않으시고 적들 앞에 엘람이 무서워 떨게 하고 칼을 보내 멸망하기까지 뒤쫓게 하신다(37절). 적에 맞서 싸워야 할 용사들이 공포에 사로잡혀 도망하지만, 뒤따르는 적의 칼을 피하지는 못한다.
 
이렇게 여호와께서 엘람에 진노하고 재앙을 내리는 이유가 달리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하여 여호와의 우주적인 왕권을 드러내신다(38절). 여호와의 보좌가 엘람에 놓인다. 누가 엘람을 통치하는 왕인지가 분명해진다. 지금까지 엘람을 다스린 왕과 고과들을 없애버리시고 여호와께서 직접 통치하신다.
 
이스라엘과 주변 민족들의 심판을 통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은 물론 민족들의 왕이심이 분명해진다. 모압(48:47)과 암몬(49:6)처럼 엘람의 신탁도 먼 미래에 있을 회복의 말씀으로 끝을 맺는다. 여호와께서 훗날 엘람의 운명을 되돌리실 것이다(39절).
 
 
 
나는?
-하나님께서 애착을 가지셨던 찬송의 성읍, 기쁨의 성읍인 다메섹도 손에 힘이 빠질 만큼 낙담과 슬픔이 밀려왔다. 앗수르의 침공으로 북쪽의 하맛과 아르밧이 수치를 당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그들은 달아나고 싶었지만,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을 만큼 해산하는 여인의 공포가 발목을 잡았다. 그 두려움대로 청년들은 칼에 쓰러졌고 위용을 자랑하던 벤하닷 궁은 불에 타 잿더미가 되었다.
 
-열방의 흥망성쇠의 기록들은 우리의 삶의 가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해준다. 인생을 살면서 화려한 궁궐 같은 건물을 세우는 것도, 빛나는 업적을 남기는 것 보다, 영원히 주님 안에 거하고 우리가 주의 거처가 되어 주의 찬송과 기쁨의 삶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7:10) 라고, 고백한 시인처럼 자기의 기쁨과 찬송의 성을 쌓지 말고 주 안에 늘 거하는 삶이어야 하리라.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에게 약탈로 살던 게달과 하솔의 장막과 양 떼와 약대(낙타)를 약탈하라고 명령하신다. 그들에게는 사방에서 두려움이 오도록 하나님께서 계획하셨으니 멀리 깊은 데로 도망하라고 말해준다. 하나님께서 직접 살쩍을 꺾는 자들(게달 사람들)을 사방에 흩고 재난도 여러 곳에서 오게 하실 것이고, 하솔엔 인적이 끊어지고 큰 뱀의 거처가 될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다.
 
-활쏘기를 비롯하여 뛰어난 무력을 자랑하던 엘람을 무력하게 하실 것이다. 그들의 활은 사방에서 보낸 칼들에 의해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보내신 칼로 인한 심판을 보고 엘람의 원수들이 먼저 놀랄 것이다. 하지만 엘람의 심판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새로운 왕위의 시작을 열 것이다. 흩어졌던 자들을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심판은 없다. 잠시의 고난을 지나야 할 뿐이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마치 종처럼 보내셔서 게달과 하솔, 엘람을 멸망시키시는 하나님이시다(28~29, 34~36절). 겉으로 보기에 열강 간의 이권 다툼으로 보이겠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나님의 통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재한다. 열강들이 자신들의 이기적인 뜻과 힘에 따라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주권적인 이끄심을 따라 움직이는 것뿐이다.
 
*활 솜씨를 자랑하던 엘람도 사방 바람을 일으켜 초개와 같이 각처로 흩날리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35~38절).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지 않는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시 1:2, 4)는 말씀과 같다. 나의 힘과 재주는 한 시절뿐이다. 세상 권력도 내려오기 위해 오르는 것일 뿐이다. 나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삶이 아니라 시냇가에 깊이 뿌리 내린 나무와 같은 삶인가?
 
*진멸하실 정도로 진노한 엘람에도 희망의 약속을 남기신다(39절). 아무리 악한 죄를 지었더라도 회개의 가능성은 남겨 두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기회를 주시는 분이시다. 나에게도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지금”이라는 기회를 주셨다.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내야지.
 
 
 
*주님,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인생이 아닌 시냇가에 심긴 뿌리 깊은 나무처럼 구원의 자리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욱 의지하며 살겠습니다.
*주님, 회개의 기회를 헛되이 소멸하지 않겠습니다. 회개하며 지금 여기, 하나님 나라를 누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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