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시는 분, 기억하시기에 이루시는 분 [시편 105:24-45]
 – 2024년 08월 28일
– 2024년 08월 28일 –
본문은 앞서 설명한 아브라함의 언약에 관한 내용을 이어서 설명한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요셉의 인생 가운데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설명함으로써 하나님을 언약에 성실하신 분으로 묘사한다. 모세와 아론을 통해 행하신 하나님의 언약적의 공의(24~27절)와 이를 열 가지 재앙과 광야 생활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28~41절) 언약을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천명한다(42~45절). 이 내용들은 5절과 7절이 설명한 하나님의 “미쉬파트”에 대한 부연 설명이기도 하다.
 
 
 
1. 모세와 아론을 통해 행하신 하나님의 언약적 공의(24~27절)
공의란 단순히 심판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것을 가리킨다.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들어가 나그네가 되었다(23절). 비록 나그네였으나 애굽에서의 삶은 하나님의 언약적 공의가 함께하는 삶이었다. 24절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번성하게 하셨다고 했다. 여기서 ‘자기 백성’이란 ‘그의 백성’이라는 의미인데, 출애굽기 6:7로부터 비롯되는 언약 공식의 형태 중의 하나이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백성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자기 일을 참으로 비밀히 행하신다. 25절은 애굽인들의 마음이 변하게 하시어 이스라엘 백성을 미워하게 하고 교활하게 행하게 하셨다고 했다. 이스라엘이 고난 가운데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난은 19절에서 본 바와 같이 이스라엘을 단련하고 훈련하여 언약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한 도구였다. 26절은 여호와께서 이 고난에서 이스라엘을 건지시고 언약을 이루기 위해 그의 종 모세와 택하신 아론을 보내셨다고 설명한다. 27절은 하나님께 보냄을 받은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표적과 징조들을 함의 땅인 애굽에서 행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행한 표적과 징조들을 28~41절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 예들은 언약을 주도적으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공의(미쉬파트)를 보여주는 실례들이다.
 
 
 
2. 언약적 공의의 예 _ 열 가지 재앙(28~36절)
본 단락은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을 예로 들며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드러낸다. 특징적인 것은 열 가지 재앙을 순서에 따라 언급하지 않는다. 흑암 재앙(28절), 피 재앙(29절), 개구리 재앙(30절), 파리와 이 재앙(31절), 우박 재앙(32~33절), 메뚜기 재앙(34~35절), 장자 죽음(36절) 등 여덟 가지 재앙을 언급한다. 순서에 따라, 혹은 열 가지 재앙을 모두 나열하지 않았기에 나름대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30절 개구리 재앙을 제외한 나머지 일곱 가지 경우는 모두 동사의 주어가 “여호와”이다. 이 모든 재앙을 행하신 이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강조하는 형태이다. 31절(파리), 34~35절(메뚜기)의 경우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재앙들을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또한 이를 통해 언약 백성을 구원해 내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재앙들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어휘들은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와 연관되는 주제들이 상당수 등장한다. 28절의 흑암은 첫째 날의 빛과 어두움의 주제와 연관된다. 또 넷째 날 만드신 광명체를 하나님께서 직접 그 뜻대로 주관하신다는 증거가 된다. 29절에서 물을 피로 바꾸신 것은 창조 둘째 날에 물을 다스려서 윗물과 아랫물로 나누신 역사, 즉 물에 대한 하나님의 권세를 드러내신다. 30~31절의 “개구리와 파리, 이” 재앙은 5일과 6일에 창조하신 물, 공중, 땅에 사는 짐승들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을 말한다. 32절의 우박을 내려 나무들을 치셨다는 것은 제3일에 만드신 나무들에 대한 통치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준다. 36절의 장자 죽음은 재앙의 절정인데, 창세기 1장 창조의 절정인 인간 창조와 대비된다. 하나님은 인간의 창조자이시므로 그 생명을 주권적으로 거두어 가실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재앙들은 창조 세계를 다스리는 참 주권자가 여호와이심을 증거한다. 이와 함께 재앙들을 언급하는 것은 창조주가 되신 여호와가 창조 세계를 다스리는 참 주권자이심을 증거하는 것이다. 동시에 창조주가 언약의 주권자가 되사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그 창조의 능력으로 이루고 계심을 보여준다.
 
 
 
3. 언약적 공의의 예 _ 광야에서(37~41절)
본 단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는 과정 및 광야에서 도우신 역사를 기술한다. 37절은 은금을 가지고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 중에 비틀거리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는 말은 열두 지파 중에서 빠진 지파 없이 온전하게 백성 전체가 출애굽 했다는 의미이다. 이는 구속 역사에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능력을 잘 보여준다. 38절은 애굽이 이스라엘의 출발을 오히려 기뻐했음을 말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애굽에 두려움을 내리셨기 때문이며, 이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드러내는 것이다.
 
39절은 구름 기둥/불기둥의 역사를, 40절은 메추라기를 보내셔서 식량으로 삼게 하신 역사를, 41절은 반석에서 물이 나와 식수로 사용할 수 있게 하신 역사를 기록한다. 이와 같은 내용들은 출애굽 사건 직후 일어난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록한 것으로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공의(미쉬파트)를 계속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4. 언약을 이루신 여호와 하나님(42~45절)
본 단락은 시편 105편의 결론부다. 1~11절에서 언급한 아브라함 언약에 관한 서술을 마무리한다. 27~41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는 분명한 의도와 목적 가운데 시행되었는데, 그 이유가 42절에 뚜렷하게 나타난다. 바로 하나님께서 거룩한 말씀과 그의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다.
 
“기억하다”는 동사는 5절과 7절에 이미 등장했었다. 언약 백성에게 “여호와의 판단(공의_미쉬파트)을 기억하라”고 말했고(5절),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기억하시기 때문(7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고 나서 여호와께서 아브라함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해 행하신 일들을 설명했다. 이제 42절은 이 모든 일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 언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임을 다시 언급하여 7절의 설명에 대한 예증을 마무리한다.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시는 분”이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도 그 여호와를 “기억해야” 한다. 43~44절은 하나님의 기억하심으로 말미암아 출애굽 하게 된 결과를 묘사하는데, 기쁨으로 출애굽 하였고, 가나안 땅을 소유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45절은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율법을 부여받게 되었음을 언급한다. 이렇게 부여받은 율법에 대한 순종의 관점에서 106편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조망한다.
 
 
 
나는?
-진정한 평안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만 있다. 하나님께서는 고센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보다 더 강대하게 하셨다. 하늘의 별과같이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성취하신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강성한 나라가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시려는 나라는 아니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애굽이 자기들보다 더 많아진 이스라엘을 위협으로 여기고 그들을 미워하게 하신다.
 
-이스라엘은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면, 많은 자손과 비옥한 땅, 풍부한 소산이 넘치더라도 그것이 결코 그들에게 쉼과 평안(샬롬)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 삶의 환경이 나아지기를 구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더 편하게 내 삶에서 왕 노릇하실 내 마음의 환경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광야가 초장이 된다. 이스라엘은 전리품을 취하여 안전하게 애굽을 나왔고, 잇따른 재앙으로 혼이 난 애굽은 이스라엘이 떠나는 것을 기쁘게 여겼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메추라기와 만나를 먹이시고, 반석에서 강 같은 물이 터져 나오게 하셨다. 구름과 불로 낮과 밤의 행진을 지켜주셨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광야가 초장이 될 것이다. 마른 땅이 강이 될 것이다. 팍팍한 내 삶도 주님 장중에 붙들리면 안전하고 안위 받는 삶으로 변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말씀과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셨기에 이스라엘은 구원의 즐거움과 기쁨을 노래할 수 있게 되었고,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그 땅의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율례를 지키고 따르는 신실한 백성을 창조하는 데 있었다. 예수님을 통한 온전한 구원 역시 말씀으로 주의 통치에 복종하고 주의 형상 닮은 백성을 새롭게 창조하는 일이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은 나그네였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의 본향이 따로 있어서 이 세상에 마냥 다 누려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나그네처럼 가볍게 살 수 있도록 영적인 다이어트가 꼭 필요하다. 영적인 노매드(유목민,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애굽은 이스라엘이 곁에 있을 땐 미워했다. 하지만 그들이 떠나자 기뻐한다. 이는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의 삶을 산다면 세상은 우리를 미워하든지 두려워하든지 어떤 모양으로든 반응할 것이다. 세상이 믿음의 삶에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세상과 다를 바 없다는 방증이 아니겠는가!
 
*약속의 백성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복을 받을 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요셉과 모세가 세상의 무대에서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역할을 갈 감당하고 뒤로 물러난 것처럼, 지금 이 시대의 무대에 오른 우리도 하나님 보시기에 흡족한 삶을 살다가 퇴장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결국 언약의 하나님은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셨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 약속하신 온전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본문의 시점은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유대인들이다. 포로로 끌려와서 오래 전 자기 조상들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했던 시절을 돌아보며, 그때 아브라함의 약속을 기억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변함없는 하나님이라면 고백한다. 그때의 하나님이 지금의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역사는 비슷하게 반복된다. 그런 과정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조상들이 겪었던 치욕과 고통을 지금, 여기에서도 당할 수밖에 없다. 말씀에서 들려주는 하나님의 세계사를 귀 기울여야 할 이유가 아니겠나!
 
 
 
*주님, 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루시기 위해 오늘도 열심을 멈추지 않으시는 은혜가 오늘 나를 붙잡고 있음을 믿습니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하나님 나라 통치가 이 땅에! [시편 114:1-8]

 이 시편은 할렐루야 시편 모음집(111~118편)의 네 번째 시편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를 언급하며 시작한다. 그들과 함께하시고 나타나신 하나님을 회고하는 서술적인 찬양시이다. 찬양하라는 직접적인 권고의 말은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 [시편 112:1-10]

 111편과 쌍을 이루는 지혜 시편이다. 동시에 할렐루야 시편 모음집의 두 번째 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에 대하여 묘사하는데 이 사람이 지닌 신앙적 성품은 111편이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다윗이 바라본 메시아 [시편 110:1-7]

 본 시편은 150개의 시편 중에서 신약성경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자기 변증에 1절이 사용되고(마 22:44; 막 12:36; 눅 20:43), 히브리서 5:6절은 4절을 인용한다.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