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여호와의 인자하심에 감사하라 [시편 106:1-12]
 – 2024년 08월 29일
– 2024년 08월 29일 –
본 시편은 시편 제4권을 종결하는 마지막 시편이다. 여호와의 왕 되심과 그분의 통치 주권성을 핵심 주제로 다루어온 4권은 105편에서 106편까지 아브라함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내시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자세하게 다룬다. 이스라엘 백성은 불순종하여 언약 관계를 깨뜨렸지만, 여호와는 성실하셔서 그 언약 관계를 끝까지 지켜내셨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이며, 본문은 홍해 사건을 그 첫 번째 예로 들고 있다.
 
106편의 핵심 어휘는 “인자하심(헤세드)”이다. 한글 성경은 “인자, 인애, 자비, 사랑, 은혜, 은총” 등 다양한 어휘들로 번역되었다.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약속에 대한 성실함”이라는 함의를 가진다. 사랑의 개념이지만, 단순한 감정적 사랑 정도가 아니라 의지적 사랑까지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이는 구약의 구속사 맥락에서 매우 중요하다. 시내산 언약과 다윗 언약의 핵심 구절들에도 이 단어가 등장한다. 출애굽기 34:6~7에서 여호와께서 자신의 언약적 성품을 계시하실 때 이 “헤세드”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다. 사무엘하 7장에서는 다윗에게 언약을 내려주실 때 이 “헤세드”를 영원히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1. 여호와께 감사하라_명령(1절)
1절은 시편 제4권의 주제인 “여호와께 감사하라”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그 이유는 바로 여호와께서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이 표현에서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먼저 첫째 “여호와는 선하시다(토브)”라는 진술이다. “선하다”의 의미는 “좋다, 선하다”라는 뜻을 지녔고 단순한 감정적인 좋음이나 성격상의 선한 성품 정도를 넘어서서 구약성경에서는 상당한 종말론적인 함의를 지니고 사용된다. “토브”는 창세기 1장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는 과정에서 둘째 날을 제외하고 모든 날에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사용되었다. 이 뜻은 단지 감정적 기쁨을 넘어서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 완성되었기에 기쁨을 누리셨다”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둘째로,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라는 진술이다. 이 구절은 사실상 사무엘상 7장 다윗 언약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다윗에게 약속하신바 그의 나라가 영원하며, 절대로 멸망하지 않고, 다윗의 후손을 통해서 하나님의 집이 완성될 것이다. 그런데 시편 4권이 수집된 시기는 다윗 언약이 무너진 것처럼 보이는 포로기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다윗 언약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것이 4권이 추구하는 신학적인 질문이고, 이에 대한 대답이 106편에서 직설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다윗 언약은 영원하며, 절대로 멸망하지 않음은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 누가 여호와께 감사해야 하는가?. (2~5절)
2절은 수사의문문을 활용하여 여호와의 권능이 매우 크다고 선포한다. 그를 찬양하는 것은 아무리 많이 해도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능력을 선포하려는 자들의 자격 조건은 무엇인가? 찬양하는 자들에게 어떤 신앙의 사람이 되라고 106편은 권면하고 있는가?
 
3절은 “정의와 공의”를 지키며 행하는 자라고 말한다. 정의와 공의(쩨다카와 미쉬파트)는 사무엘하 8:15에서 사용된 어휘 조합이다. 다윗 언약을 받은 다윗이 언약의 당사자로서 행했을 때 맺은 열매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즉, 정의와 공의는 하나님의 언약적 통치가 이루어졌을 때 나타나게 되는 언약의 열매요 언약적 통치의 원리이다.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성실성이 영원하므로 그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은 항상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1절과 3절은 사실상 다윗 언약에서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그 은혜의 약속을 받은 자들의 삶을 서술하고 있다.
 
4절은 여호와께 드리는 간구의 기도인데, 여호와께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요청한다. “기억하다(자카르)”는 이미 105편(6, 8, 42절)에서도 등장했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기억하시므로 우리가 그분의 언약적 행하심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105편의 흐름에 따라 4절에서 여호와를 향하여 “기억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에 근거한 기도임을 알 수 있다.
 
5절은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게 하소서”라고 간구하는데, “형통함(토바)”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그 택하신 자가 누리게 해달라는 것으로, 하나님의 언약적 성실성을 경험하게 해달라는 요청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누리면 어떤 결과가 오게 될까? 5절 하반절은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나누고 가지게 되며, 주님의 유산을 자랑하게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유산(나할라)”으로 번역된 단어는 “기업”으로 번역되는 단어인데, 기본적으로 “나할라”는 기업으로 나누어 주는 땅을 뜻하며, 더 깊이 들어가면 기업으로 누리게 되는 하나님 나라의 분깃을 의미하게 된다. 4~5절은 이런 측면에서 하나님의 언약적 성실성에 기초하여 자신들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요청하며, 그 결과로 누리게 될 은총에 대해서 기대하고 있다. 이 은총을 기대하는 삶은 정의와 공의를 지켜 언약적 백서의 삶을 살아야 할 것도 함께 강조한다.
 
 
 
3. 언약 백성의 범죄에 관한 서술(6절)
1~5절이 언약 백성의 이상적인 삶을 묘사하는 것인데,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이와 같지 못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였다. 6절은 우리가 범죄하여 악을 지었나이다 라고 고백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다운 삶을 살아내지 못했다. 이와 같은 시인의 부르짖음에 담긴 실제 의미는 “우리가 잘못하였기에 다윗 언약이 끝난 것입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은 더 이상 없는 것입니까?”라는 질문과 다름없다.
 
그런데 자신들의 범죄 사실을 조상들의 범죄와 연관시켜 자기들처럼 조상들도 죄를 범하였다는 것을 고백한다. 시인은 왜 조상들의 범죄 사실을 언급했을까? 그것은 과거를 돌아보며 과거의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통해 현재 상황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4. 홍해에서 범죄와 인자하신 하나님의 구원(7~12절)
그래서 홍해 사건을 예로 든다. 홍해 사건 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했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7절은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 주님의 “인자하심”을 기억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주님의 인자하심을 기억해야 할 조상들이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리에 이르고 말았다.
 
이런 거역한 백성을 향해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는가? 이에 대한 대답이 8~11절을 통해 길게 서술된다.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다(8절), 홍해를 꾸짖으셔서 그 바다를 마른 광야를 지나가듯 건너가게 하셨다(9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원수의 손에서 건지셨다(10절), 그 대적들을 물로 덮으셔서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다(11절),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찬양하는 데까지 이르렀다(12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지 않음으로 그 신앙이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고, 오히려 창조의 권능으로 그들을 구원하셨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이름, 즉 언약의 이름인 “여호와 되심”을 드러내려 하셨기 때문이다. 1절에서 선포한 다윗 언약에 나타난 “헤세드”는 다윗 언약 때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그 이전부터 하나님은 이미 “헤세드”의 하나님이셨고, 한 번 계획하시고 약속하신 것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심을 출애굽의 역사 속에서 선명하게 보여주셨다.
 
 
 
나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 악한 백성 이스라엘의 구원은 하나님의 선하심 때문이었다. 변절과 변심을 반복하던 이스라엘의 구원은 언약을 기억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이었다. 주의 기이한 일들과 인자를 기억하지 못한 이스라엘의 구원은 하나님의 기억하심 때문이었다.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의 명예를 위하여 또 온 세상이 하나님의 권능을 알게 하시려고 이스라엘을 통한 역사를 쉬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불신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과 권능을 믿게 하셨고, 불평의 입에서 찬양의 노래가 나오게 하셨다. 그러므로 아무도 하나님과 그 구원 외에는 자랑할 수 없다. 조금이라도 영광을 취하거나 찬양을 받아야 할 사람은 없다.
 
-여호와의 권능을 다 헤아려 말하고 주께서 받으실 찬양을 그 영광에 어울리도록 선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진정으로 주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찬양은 입술의 노래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대로 정의를 지키고 공의를 행하는 것이다. 찬양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인정이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동의이며 따라서 마땅히 삶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삶으로 참여하는 찬양이 주님께 합당한 찬양이다.
 
-공동체와 함께하는 것이 성도의 도리이다. 시인은 복을 구할 때에도, 죄 용서를 구할 때에도 자신의 운명을 공동체와 함께하였다. 시인은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로 자신을 기억하고 구원을 가지고 찾아와 달라고 간구하지만, 혼자만의 구원을 바라지 않는다. 선택받은 다른 지체들이 형통해지고, 그들과 회복된 나라를 즐거워하며,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해달라고 구했다. 공동체가 누리는 구원과 복에 자신이 참여하기를 바란 것이다. 자신 역시 조상들이 주의 역사와 인자하심을 잊고 반역한 죄를 지었다고 고백한다.
 
 
 
 
 
*주님, 주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인자하심을 따라 구원의 은혜를 입었으니, 공의와 정의를 따라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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