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아하시야의 죽음 [왕하 1:13-18]
 – 2024년 09월 02일
– 2024년 09월 02일 –
하나님의 신탁을 전달받은 아하시야 왕은 엘리야를 데려오라고 명령하며, 오십부장과 부하 50명을 연이어 보냈다. 엘리야는 동행을 거부하는 대신 하늘에서 불을 내려 오만하고 불신앙적인 아하시야와 신하들에게 여호와만이 권능의 참신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렇게 두 번이나 여호와의 힘을 보고서도 아하시야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오십부장과 부하 50명을 보내 힘겨루기를 한다. 이렇게 엘리야를 잡으러 간 세 번째 오십부장은 인간의 생사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인정하며 엘리야에게 생명을 귀하게 여겨달라고 간구한다. 하나님은 그와 부하들의 목숨을 건져주신다. 엘리야는 여호와의 명을 따라 아하시야 왕을 대면하여 심판의 말씀을 전달한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하시야는 병상에서 내려오지 못한다. 그의 죽음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의 결과였다. 
 
 
 
1. 살려달라고 간구하는 오십부장(13~14절)
두 번이나 오십부장과 그의 부하들이 죽는 사건(9~12절)이 발생했음에도 아하시야 왕은 포기하지  않고 또 다시 오십부장과 50명의 부하들을 보낸다. 하지만 이 오십부장은 이전의 오십부장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왕이 선지자를 부를 때 오십명의 군사들이 필요했을까? 그렇지 않다. 왕의 사자 한 두 사람을 보내어 와달라고 해도 충분하다. 그런데 아하시야의 이런 행동에는 군사력으로 엘리야를 위협하여 강제적으로 데려가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엘리야가 동행하지 않겠다고 하면 강제로 끌고 가겠다는 심산이었던 것이다. 
 
엘리야는 이런 상황에 매우 위협과 두려움을 느꼈다. 이는 15절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한 말에서도 드러난다.  하나님께서는 궁지에 몰린 엘리야를 구하기 위해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를 보호하심으로 여호와의 권능을 보여 주신 것이다. 엘리야는 아합의 시대에 이미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과 대결할 때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로 대결에서 승리한 경험(왕상 18:37~38)이 있었다. 권능의 하나님께서 엘리야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세 번째 오십부장은 엘리야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최대한 겸손한 태도로 요청한다. “생명을 귀하게 여겨주소서”라고 간청한다. 이렇게 간청하는 모습을 통해 이전에 두 번의 사건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엘리야와 여호와에 대한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아합의 시대에도 하늘에서 불을 내리고 가뭄을 멈추게 하는 여호와의 큰 권능을 행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아하시야와 그의 신하들이 엘리야를 무시하였다는 것은 그들이 이전의 하나님의 역사를 철저히 잊어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합 시대 갈멜산에서 여호와의 권능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시에는 여호와께 돌아왔지만, 아합과 이세벨의 시대에 바알 신을 숭배하며 여호와의 권능을 점점 잊어갔다. 아하시야와 그 시대 백성은 여호와는 물론 엘리야도 알지 못했다. 계속 바알을 섬길 뿐이었다. 신명기의 가르침이 상기된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신 큰 역사와 구원을 가르치고, 여호와의 율법이 자손의 입에서 떠나지 않도록 교육하라(신 31:19)고 하신 것은 괜히 하신 말씀이 아니었다. 
 
 
 
2. 왕 앞에 선 엘리야(15~16절)
오십부장의 간곡한 청을 들은 여호와의 사자는 엘리야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함께 내려가라고 명령한다(15절). 엘리야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군사들이 계속 찾아오는 것에 대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두려워했음을 알 수 있다. 왜 그랬을까? 엘리야는 아하시야의 선대 왕 아합의 시대에 철저히 핍박받는 선지자였다. 늘 도망자 신세였다. 가뭄을 선포한 이후에도 아합을 피해 사르밧으로 도망하였고 갈멜 산 대결 이후에도 이세벨의 위협 때문에 광야로 도망해야 했다. 아합은 엘리야를 향하여 “나의 대적자(왕상 21:20)”라고 부를 정도였다. 엘리야는 이렇게 불의하고 우상숭배에 빠진 시대에 여호와의 선지자로서 늘 도망 다니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살았다. 이런 삶이 너무 고달파서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간구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은 그런 엘리야와 늘 함께 계셨다. 광야에서도, 동굴에서도, 산에서도, 이방 땅에서도 늘 그와 함께 하셨다. 먹을 것을 공급하여 주셨고 그를 살려주시고 보호해주셨다. 이번에도 아하시야가 군사를 보내 위협하자 하늘에서 불을 내려 보호해 주신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두려워하지 말고 가라고 명령하자 아하시야에게 나아간다. 엘리야의 이런 행동은 자신은 세속 권력자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여호와의 사람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왕 앞에 선 엘리야는 변치 않은 여호와의 신탁을 반복한다. 아하시야의 죄목은 여호와를 버리고 노골적으로 이방신을 의지하고 섬긴 것이다. 아하시야는 자기 아버지 아합과 마찬가지로 엘리야에게 죽음의 삼판 선언을 들었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 아합은 엘리야의 심판 선언을 듣고 금식하고 삼베옷을 입고 여호와 앞에 겸비하여 회개하는 모습을 보인다. 비록 그의 회개가 삶의 방향을 바알에게서 여호와께로 완전히 바꾸지는 못했다. 하지만 여호와의 심판 선언을 들을 때 여호와의 존재가 얼마나 두려운 분이신지 알았기에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린 것이다. 그렇지만 그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반면, 아하시야는 아합과 달리 하나님의 죽음의 심판 선언을 듣고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엘리야의 선언 이후 곧바로 아하시야의 죽음에 대한 보고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아하시야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거나 돌이키지 않았다는 것을 대변한다. 
 
아하시야는 이스라엘 역대 가장 악한 왕이라고 평가 받았던 아합보다도 더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도 돌이키지 않는다. 이런 그의 모습 자체가 여호와께서 아합 집에 내린 심판임을 드러낸다. 이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아합 집에 내린 심판을 차근차근 실행하고 계셨다. 
 
 
 
3. 아하시야 왕의 죽음(17~18절)
아하시야는 결국 엘리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처럼 죽었다. 17절에서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심판이 이루어졌음을 증명한다. 아하시야가 그토록 무시한 여호와께서 아하시야 왕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온 열방에 증거한다. 자기에게 죽음을 선언한 엘리야를 군사적인 힘으로 위협하고 두렵게 만들었던 왕 아하시야도 결국 진정한 왕이신 여호와 앞에서는 쉽게 시드는 들풀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아하시야가 죽은 후 그의 동생 여호람이 왕위를 계승한다. 아하시야에게는 후계자가 없었다. 후계자가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아합과 아하시야 가문을 하나님이 심판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보내 아합에게 하신 심판 선언(왕상 21:21~22)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는 아버지의 죄에서 돌이키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일찍 생을 마감한다. 아하시야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배신감을 느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배신했을 때 얼마나 무서운 심판을 당하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나는?
-세 번째 오십부장은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였다. 동시에 엘리야의 권위를 인정한 것이다.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권위 앞에 엎드려 자비를 구한다. 이는 하나님의 종이 되기로 결정했다는 뜻이다. 동시에 반복되는 재앙에도 불구하고 말씀의 권능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도전하며 반역하기를 멈추지 않는 이스라엘 왕이 종이 되기를 거부하겠다는 뜻이다. 
 
-한편, 왕은 자기 부하들의 죽음에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세 번째 오십부장은 부하들의 생명을 살려달라고 요청한다. 말씀의 권위를 인정한 오십부장이었다.
 
-여호와의 사자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여호와의 말씀뿐이다. 아하시야의 군사가 두 차례나 무력시위를 벌이며 “내려오라”고 위협할 때는 꼼짝하지 않았던 엘리야가 여호와께서 “내려가라”하시자 “일어난다” 그리고 죽음의 위협도 불사한 채 왕의 면전 앞에서 조금도 에두르지 않고 왕이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직설했다. 
 
-나의 앉고 일어섬의 근거가 무엇일까? 이럼으로 나를 담대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엘리야는 말씀을 따라 움직였다. 
 
-우상숭배하면 “반드시” 죽는다. 우상을 버리지 않으면 동시에 하나님을 섬겨도 소용없다.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아하시야는 아들도 없이 죽는다. 이미 말씀하신대로 오므리 왕조를 여기서 끊어 더 이상 미래가 없게 하셨다는 뜻이다. 
 
-무력의 힘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내려오게” 하려던 왕은 무모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맞서더니 하늘에서 내려온 불이 내려오지 못하리라 선고대로 되고 만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자 무력과 힘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내려오게” 하려던 왕은 무모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맞서다가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불에 부하들을 잃더니, 이제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리라”라는 선고대로 되고 만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자 왕의 말은 하나도 실현되지 못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고스란히 현실이 되었다, 말씀에 맞서지 않고 그 권능에 대한 신뢰를 늘 유지 하여야 할 것이다.
 
 
*세 번째 오십부장의 지혜로운 행동이 눈여겨 보여진다. 앞선 자들이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다 죽임을 당한 것을 보고 엘리야에게 무릎을 꿇고 긍휼을 구해 살아남았다. 다른 이의 죄나 실수를 거울삼아 그에 따른 징벌을 받지 않는 것이 바로 지혜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실수를 통해 나를 바라보고 있는가?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한다. 비록 아하시야와 그의 군대에 대해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아하시야를 두려워한다고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소홀히 여기지 않고 더욱 순종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아하시야에게 사자를 통하여 마땅히 행할 바를 가르쳐 주셨다. 주의 사자를 통해 엘리야에게 세 번째로 온 오십부장 일행과 함께 아하시야에게 내려가라고 지시하셨다. 그러면서 아하시야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는 아하시야보다 더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 엘리야와 함께하시고 그를 보호하시겠다는 약속이다. 하나님은 그의 명령을 따르는 자를 지켜 주신다. 
 
*역사는 하나님 말씀의 성취의 연속이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신실한 분이고, 어떤 말씀이든 그대로 행하실 수 있다.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다. 
 
*아하시야는 결국 죽었다. 그리고 그의 삶은 모두 이스라엘 왕의 역대지략에 기록되었다. 나의 모든 행동을 하나님이 기억하신다고 말씀하시는듯하다. 하나님의 책에 아름답게 기록될 인생을 살고 있는가? 혹, 정죄와 심판의 기록으로 남을 인생을 살고 있는가?
 
*아합과 아하시야 부자가 같은 해에 연이어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데 폭군이 죽었다고 새로운 세상이 오지는 않았다. 여호람로 부창부수였다. 북이스라엘의 비극은 20명의 통치자들이 하나같이 하나님을 거역했다는 것이다. 새로운 왕이 등극하면 기대감이라도 일어날법한데, 아합이 죽은 후 아하시야의 등극은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래서 암울하다. 지금 우리의 지도자들의 상황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어쩌다 아합과 이세벨같은 지도다가 이 나라에 세워졌는지 모르지만, 다음 지도자가 아하시야와 같은 자가 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할 것이다. 깨어 기도해야 할 때이다.
 
 
 
 
*주님, 엘리야의 일거수일투족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드러나고 있음을 봅니다. 우리가 지나고 있는 어렵고 힘든 시대의 기록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드러나는 여정으로 기록되기를 힘쓰겠습니다. 
*주님, 악한 지도자가 이어지는 북이스라엘의 역사가 참담합니다. 우리가 이런 참담함 속에 빠지지 않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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