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를 이을 아들도 없이 죽은 아하시야 왕과 다르게 엘리사를 후계자로 삼은 엘리야는 아하시야에 대한 예언을 끝으로 사역을 마감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승천한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승천하는 곳에 동행하여, 엘리야의 선지자 직과 권능을 계승한다. 본문은 엘리야가 승천하는 내용이고, 15~25절은 엘리사가 엘리야의 영감의 두 배를 받고 큰 권능을 행하는 이야기이다.
북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적 지도자의 이양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합 시대의 선지자 엘리야는 하늘로 승천하고, 이후 엘리사에게 선지자직이 위임된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지정한 장소들로 움직이며 끝까지 순종의 모습을 보여준다. 엘리사는 그를 따라가며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헌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마침내 엘리야는 엘리사의 눈앞에서 승천하고 엘리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음을 확증 받는다.
1. 엘리야와 동행하는 엘리사(1~6절)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하늘로 데려가려고 하신다.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리실 때”라는 표현으로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성경 전체에서 죽지 않고 하나님이 데려간 인물은 “에녹(창 5:24)”과 “엘리야” 두 사람뿐이다. 표현의 차이이지만, 에녹은 “하나님께서 데리고 가셨다”라고 했고, 엘리야는 “하늘로 올리셨다”라고 표현한다.
엘리야는 자신이 지상을 떠나야 할 때가 온 것을 알고 그동안 지내던 길갈에서 길을 떠난다. 이때 엘리사가 자신과 동행하려 하자 간곡하게 그에게 여기 머물라고 부탁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벧엘로 보내시니 자신만 가겠다고 한다. 엘리야는 자신이 떠나는 모습을 엘리사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사는 자신은 절대 엘리야를 떠나지 않겠다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까지 해버린다. 제자로서 스승의 마지막 가는 길을 꼭 배웅하고 싶었다.
엘리야는 엘리사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같이 벧엘로 올라간다. 그곳에서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와 ‘엘리야를 여호와께서 데려가실 것을 아느냐”고 질문한다. 엘리사는 자신이 잘 알고 있으며,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준다. 이런 제자들의 대화는 엘리야의 승천이 확실한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영이 엘리야뿐 아니라 엘리사와 선지자의 제자들에게까지 엘리야의 승천 소식을 알려 준 것이다. 엘리사는 자신도 알고 있으니 이 일로 수선 떨지 말라고 당부한다.
4~5절은 2~3절을 반복하지만, 장소만 바뀔 뿐이다. 5~6절도 또다시 반복적인 사건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엘리야가 요단으로 간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길갈(벧엘 북쪽 도시)에서 출발하여 벧엘(길갈의 남쪽)을 거쳐 여리고로 내려갔다가 요단강을 건넜다. 이런 경로를 밝히는 이유는 먼저 엘리사가 엘리야와 헤어질 준비를 하는 시간을 버는 역할이다. 둘째로 엘리야가 죽은 것이 아니라 승천했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확인한다.
2. 엘리야의 능력의 두 배를 요청하는 엘리사(7~10절)
-요단에 도착했을 때 50명의 선지자의 제자들이 요단강 강가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이 이후 엘리야 승천을 증언할 증인들이다. 이들이 보는 앞에서 엘리야는 겉옷을 말아 물을 쳤다. 그러자 물이 양쪽으로 갈라지고 마른 땅이 드러났다. 두 사람은 그 마른 땅을 밟고 요단강을 건넜다. 물을 쳐서 강을 가르는 모습을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홍해를 가르는 모습이나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요단강에 발을 담갔을 때 요단강에서 마른 땅이 드러나는 모습과 같다.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강하게 임하고 있다는 상징이자, 모세의 지팡이 대신 엘리야의 옷이 능력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여호와의 능력은 특정된 물건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무엇이 되었든 여호와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여리고 성 근처에 있는 요단강 건너편은 모세가 죽은 느보산과 멀지 않은 곳이다.
엘리야는 끝까지 자신을 따라온 엘리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다. 스승으로서 자신을 끝까지 따라온 제자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선물을 주려는 것이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의 갑절의 능력을 달라고 요청한다. “갑절(셰나임, 솃타임)”은 신명기 21:17에 나오는 표현인데 장자의 권리는 다른 아들의 두 배라고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 엘리사가 원하는 두 배의 능력은 엘리야의 능력의 두 배가 아닌 다른 선지자들의 능력의 두 배를 달라는 의미다. 이는 자신이 엘리야를 합법적으로 승계하는 장자로서 장자의 몫을 달라는 것이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어려운 일을 구한다”라며, 만일 하나님께서 자신을 데려가시는 것을 보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엘리야의 계승자로 삼을지 삼지 않을지, 그리고 두 배의 능력을 주실지 주지 않을지는 선지자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권한이기에, 엘리야가 약속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제자의 마지막 부탁도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맡겼다.
*엘리야의 모습을 곰곰이 묵상하게 된다. 사람들이 자신의 사역을 마치고 다른 이에게 넘길 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여 자기 생각대로 하려 하고, 그렇게 안 되면 매우 불안하여 억지로 자신이 원하는 후계자를 세우거나 특정 인물을 끌어내리려고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지만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자기 제자인 엘리사를 어떻게 사용하고 인도하실지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맡겼고, 엘리사에게도 그것을 알려 주고 있다.
3. 하늘로 승천한 엘리야(11절)
엘리야의 승천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진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데, 갑자기 불 수레와 불말이 나타나 둘 사이를 갈라놓고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에 휩싸여 하늘로 올라갔다. 이 모습을 엘리사의 관점에서 기록한다. 불 수레와 불말은 유대의 전승에서 여호와께서 타고 다니신다고 여겨지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데리고 가셨음을 보여주기 위해 등장한다.
이렇게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많은 선지자들에게 예고하신 것처럼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는 선지자로서 지상에서 사역할 때, 그 많은 하나님의 권능을 행하고도 아합과 이세벨 같은 악한 지도자들로부터 너무 많은 고난과 멸시를 당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가장 영광스러운 방법으로 데려가신 듯하다.
4. 엘리야의 옷으로 요단강을 건너는 엘리사(12~14절)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자, 엘리사는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하며 놀라서 부르짖는다. “내 아버지”라는 표현은 스승을 부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히브리어 원문은 “아버지”라는 단어와 병거와 마병이라는 단어가 같이 결합하면서 아버지는 보호자의 의미를 갖게 된다. 즉, 엘리사는 엘리야를 이스라엘을 지키던 보호자로 부른 것이다. 이렇게 부른 이유는 엘리야를 데리러 온 불말과 불 수레를 보았기 때문이다. 고대 근동지역에서 불 수레와 불말이 갖는 이미지는 신이 나타날 때의 이미지이다. 저자는 고대 근동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미지를 여호와의 이미지로 차용한다. 불 수레와 불말을 타신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데리고 간 사실을 알려 주려는 것이다.
엘리사가 부르짖는 사이 순식간에 엘리야는 사라진다. 엘리사가 다시 그를 보지 못했다는 것은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간 것을 확인한 엘리사는 자기 옷을 찢는다. 스승인 엘리야를 잃은 슬픔을 표현한 것이다. 다만 엘리야가 죽은 것이 아니기에 애곡하거나 재를 뒤집어쓰지 않았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겉옷을 집어 와서 그의 옷으로 엘리야와 동일하게 물을 치며 엘리야의 하나님을 부른다. 이와 같은 행동은 자신이 엘리야에게 부탁한 소원을 하나님께서 들어달라고 외친 것임을 알 수 있다.
물을 치니 엘리야가 한 것처럼 물이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소원을 들어주셨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시에 엘리사가 엘리야의 계승자로 인정받는 순간일 것이다.
나는?
-엘리야는 말씀을 따라 걷는 길을 마친 선지자이다. 말씀을 무시하고 죽은 바알을 숭배한 아하시야는 말씀대로 난간에서 떨어져 죽었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산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 않고 영원으로 들어간다. 엘리야는 가는 곳을 정할 때마다 “여호와께서 보내셨다”라고 고백했다. 곧 승천하겠지만, 마지막까지 말씀대로만 걸은 사람, 그가 엘리야였다.
-환대가 기다릴지, 냉대가 기다릴지 계산하지 않고 가라 하면 갔고, 가라 하신 곳으로 갔다. 날마다 말씀이 이끄는 대로 사는 것. 그것이 가장 죽음을 잘 준비하는 일이다. 고단한 현실 앞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고백하며, 지금 여기에서도 영원을 누리는 성도의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
-엘리야의 순종을 이어받은 엘리사이다. 엘리야가 “여기 머물라”라고 세 차례나 요구했지만, 엘리사는 끝까지 따르겠다고 다짐한다. 다른 선지자들의 회의 섞인 말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단호하게 침묵을 명령한다. 스승이 가는 길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고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길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엘리야는 겉옷으로 요단강을 둘로 가르고 건너간다. 그 모습을 본 엘리사는 갑절의 영감, 즉 선지자의 계승을 간구한다. 바알 숭배 시대에 엘리야가 마지막까지 보여주고 싶었던 분은 출애굽의 하나님이었다. 그분의 살아있는 권능이었다. 제자가 본받고 싶었던 분도 스승이 동행한 하나님이었다.
-갑절의 영감을 요구한 것은 어떤 지위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자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겸손한 인정이 아니었을까!.
-엘리야의 하나님을 이어받은 엘리사였다. 엘리야는 승천하고 엘리사만 남았다. 하지만 엘리사에게는 엘리야가 남기고 간 겉옷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가 의지한 하나님이 계셨다. 그래서 엘리야와 건너온 강을 여호와와 동행하여 건넌다. 죽은 바알 우상에 절은 땅, 반역의 땅을 향해 출애굽의 하나님과 함께 건너왔다. 이 음란한 우상의 땅에서 성령을 의지하여 여호와와 동행하는 삶이어야 하리라.
*하나님은 미리 준비시키시는 분이시다. 엘리야에게 벧엘과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여행을 떠나게 하셨다. 이 과정에서 엘리사를 검증하고 후계자로 준비시키셨다. 하나님의 준비하시는 손길을 신뢰한다면, 현재 주어진 때를, 최선을 다해 주님의 인도를 따라가면 된다. 요단강을 건널 때,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시기까지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기 뜻을 이루어 가셨다.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지금 열어주신 삶에 최선을 다해 순종하며 나아가면 된다.
*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승천시키시려는 계획을 벧엘과 여리고에 있던 선지자의 생도들이 알고 있었음을 기록한다. 엘리사의 대답을 보면 그도 역시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뉘앙스를 준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획을 미리 알려 주시며 인도하시는 때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도 주님의 다시 오심과 그때의 징조들을 이미 알려 주시고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신의 계획을 기록된 말씀으로 보여주며 인도하실 때 그 길을 믿음으로 잘 듣고 따라야 할 것이다.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충성을 다한다. 그는 어디든지 엘리야와 동행했다. 엘리야가 남으라고 했는데도 같이 가겠다고 한다. 하늘로 올리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았기에 더욱 간절하게 마지막까지 함께 하고 싶어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는 매우 충성된 사람이었음을 짐작게 한다. 하나님이 세우신 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충성을 다해야 하겠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직분만 물려받기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영적인 후계자가 되기를 갈망했다. 갑절의 영감을 구한 것은 성경의 상속법에 장자가 두 배의 몫을 받게 되어 있는 것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이를 통해 그가 단지 사역을 이어받은 존재이기보다는 진정한 후계자가 되기를 갈망한 것이다. 이처럼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주님의 제자로서의 갈망이 나에게는 간절한가? 예수님처럼, 더욱 예수님처럼 살아가기를 소원하는 간절함이 나에게 변함없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나는 주님을 즐거이 따르기로 한 제자인가?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감을 물려받는다. 자기 옷을 찢고 엘리야의 겉옷을 주워 요단강을 쳤을 때 물리 갈라진 것은 엘리사가 엘리야의 후계자가 되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12절)”라고 외친 것은 앞으로 그가 어떤 사역을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엘리사는 엘리야의 후계자로 소명을 받은 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그가 어떤 선지자로 설 것인지에 대하여도 알려 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엘리사는 주님의 능력을 덧입어 이스라엘의 악과 철두철미하게 싸우게 될 것이다.
*엘리사가 스승을 쫓아간다. 벧엘, 여리고, 요단… 놓치지 않고 따라간다. 그리고 스승의 뒤를 이어 우상의 땅에 예언자로 우뚝 선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고비의 순간마다 예언자들이 등장했었다. 그들은 죄와 불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오늘날 교회에서 약화된 부분이 아닐까? 영원한 스승되신 예수님을 본받아 어디에서든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 곳으로 나아가 전하는 야성이 오늘날 교회에게서 회복되어야 할 것이 아닐까!
*주님,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마지막까지 말씀대로 순종하며 산 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나의 길도 마지막까지 말씀대로 살다가 주님의 주름을 받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엘리사의 충성이 도전됩니다. 주님께 더욱 끝까지 충성하겠습니다.
*주님, 엘리사가 구한 갑절의 영감이 저에게도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로 올바르게 살아내도록 제게도 갑절의 영감을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