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나아만 이야기_어린 소녀처럼, 종들처럼 복음과 순종을 들려주고 권하는 삶 [왕하 5:1-14]
 – 2024년 09월 10일
– 2024년 09월 10일 –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에 관한 에피소드다. 본문은 나아만이 나병에서 치료된 이야기이고 15~19절은 나아만의 회심 사건이 나온다. 20~27절은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의 거짓말과 그에 대한 징벌로 나병에 걸린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왕의 신임을 받는 자였으나 나병환자였다. 그 아내의 여종은 엘리사가 나병을 고칠 수 있다고 알려줬다. 이에 나아만은 왕의 서신과 예물을 가지고 이스라엘로 떠난다. 이스라엘 왕은 이 소식에 기겁하고, 엘리사는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나아만은 엘리사의 말대로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고, 나병에서 회복된다.
 
나아만 장군의 질병인 “나병(메조라)”은 원문은 광범위한 피부 질환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직역하면 “외상”이며, “비늘이 있는 피부”로 번역하기도 한다. 이 질병은 껍질이 벗겨질 뿐 아니라 부어오르거나 진물이 날 수 있었다. 현대의학의 관점에서는 한센병이라기보다는 “건선, 습진, 황선” 등 각종 감염으로 인한 피부병으로 볼 수 있다. 레위기에서 사람만 아니라 집, 가죽, 옷 등의 물질에 생긴 곰팡이도 “나병”으로 부른다(레 13~14장). 나병의 증상은 피부의 비늘과 얼룩이다. 종종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나병이 발병하기도 한다(민 12:10; 왕하 5:27; 15:5). 제사장에 의해 나병으로 부정하다는 진단을 받는 경우 스스로 자신이 나병환자임을 공포하고 진영 밖에서 일반 백성과 격리되어 살아야 했다. 나병에서 회복되면 제사장에게 가서 진단받아야 하며, 정결 예식을 행한 후에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다.
 
 
 
1. 이스라엘 소녀가 나아만에게 엘리사를 소개함(1~3절).
1~2절은 등장인물을 소개한다. 나아만은 아람 왕의 군대 장관으로 왕 앞에서 크고 존귀함을 받는 인물이었다. 아름을 구원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를 여호와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열방을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나아만은 아람의 용사이자, 왕에게 존귀함을 받는 자이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심각한 피부병 환자였다. 나병으로 번역된 “메쪼라”는 심각한 피부 질환을 가리킨다. 흔히 이해하는 한센병은 아니다.
 
나아만 아내의 여종은 이스라엘 땅에서 잡혀 온 어린 소녀였다. 이 여종이 여주인에게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를 소개하면서 그가 주인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한다.
 
 
 
2. 엘리사를 찾아 이스라엘로 가는 나아만(4~7절)
이 말을 들은 나아만은 자기 주인인 아람 왕에게 가서 소녀의 말을 전하며 이스라엘 땅으로 가서 선지자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왕에게 요청한다. 이에 왕은 나아만이 공식적으로 이스라엘 땅으로 가서 선지자를 만날 수 있도록 친서를 써준다. 나아만은 은 십 달란트(340kg)와 금 육천 개(90kg)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이스라엘로 간다.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막대한 양의 예물인데, 이는 그가 얼마나 간절하게 이 질병을 치유하고 싶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여종의 말만 듣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스라엘까지 나아간 것을 통해 그의 절실한 마음을 볼 수 있다.
 
한편 나아만이 들고 온 아람 왕의 편지를 받은 이스라엘 왕은 매우 당황한다. 옷을 찢으며 마치 큰 재앙이 닥친 것처럼 행동한다. 이스라엘 왕은 아람 왕이 자신에게 직접 나아만의 병을 고쳐주라고 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나님도 아닌데 어떻게 나병을 고치냐며 한탄하고 있다. 그로 인해 아람 왕이 전쟁할 빌미를 찾기 위해 터무니없는 서신을 보냈다고 말한다. 독자들은 여종과 나아만의 대화를 알고 있기에 이스라엘 왕의 오해인 것을 알지만, 이를 모르는 이스라엘 왕은 느닷없이 닥친 재앙이자 아람 왕의 선전포고로 보인 것이다.
 
 
 
3. 엘리사를 만난 나아만(8~12절)
이스라엘 왕이 아람 왕의 진의를 오해하고 옷을 찢으며 괴로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엘리사는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 사람을 자신에게 보내라고 말한다. 엘리사는 나아만을 자신에게 보내라고 한 이유를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하나님의 살아계신 권능을 드러내는 사람)가 있는 줄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나아만은 엘리사가 있는 곳으로 간다.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요단강 물에 몸을 담그라고 한 것을 보면 요단강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을 것이다. 나아만은 말과 병거 등 많은 병력을 거느리고 마치 위협이나 하려는 듯이 엘리사의 집 앞에 선다. 엘리사는 이런 분위기와 상관없이 사람을 보내 나아만이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면 피부가 원래대로 돌아와 깨끗하게 나을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을 들은 나아만은 어이없어하며 화를 냈다. 이유가 두 가지인데, 첫째는 자신은 어마어마한 선물을 가지고 왔는데 정중하게 맞이하기는커녕 나와보지도 않고 말만 전달하는 무례를 하였기 때문이다. 둘째는 엘리사가 어떤 제의적 행위도 하지 않고 그냥 요단강에 일곱 번 씻으라는 간단한 방법을 제시하였기에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11~12절을 통해 나아만은 자신이 생각하는 치료 방법(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상처 부위에 손을 대고 흔드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에 불쾌해했다는 것을 살필 수 있다. 그가 말한 방법은 아마도 당시에 이방 선지자들이 병을 고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아만은 불같이 화를 내며 그곳을 떠나려고 했다.
 
 
 
4. 병 고침을 받은 나아만(13~14절)
이때 종들이 나아만의 결정을 만류한다. 종들은 선지자가 어려운 일을 하라고 보냈으면 하지 않았겠냐며, 어려운 일도 아니고 씻으면 깨끗하게 된다고 하니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하여 주인을 설득한다. 나아만은 종들의 말을 듣고 물로 내려가 하나님의 사람 말대로 일곱 번 물에 담갔고, 정말 엘리사의 말처럼 피부가 회복되었다. 어른의 피부도 아닌 어린아이처럼 기대 이상으로 완벽하게 회복되었다.
 
특이하게도 나아만이 엘리사를 만나기 위해 이스라엘에 온 것도 여종의 말 때문이었고, 나아만의 병이 나은 것도 종들의 설득 덕분이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왕이나, 나아만처럼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상황만 보고 어리석은 판단을 하고 과장되게 행동하는 반면에, 포로로 잡혀 온 여종이나 나아만의 종들같이 가장 낮은 자들이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더 잘 알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사람 말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 이야기는 이 세상의 다수를 이루는 작은 자들, 연약한 자들의 믿음이 세상을 바꾸고,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며, 하나님의 기적이 이 땅에 일어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나는?
-나아만이 아니라 여종의 믿음이 돋보인다. 나병의 고통은 나아만의 권력과 지위 명예를 하찮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름 모를 이스라엘 여종은 비록 비천한 포로에 불과했지만, 선지자의 능력을 알고 믿었다. 그 믿음이 나아만의 회복의 문을 열고 있다.
 
-참된 복음은 “크고 존귀한 용사”라는 사람들의 찬사가 아니라 나병을 고칠 수 있는 선지자가 있다는 포로가 된 여종의 말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위협국인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에게 승리를 주셔서 존귀하게도 하시고 나병을 주셔서 수치를 겪게도 하신다. 하지만 여호와의 말씀을 인정하는 것을 보시고는 나병을 고쳐주셨다. 겉으로는 아람이 이스라엘의 운명을 쥐는 듯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아람이 이스라엘의 “나병”이 되게 하셨고, 이스라엘의 회개와 순종만이 치유의 길임을 알게 하신다.
 
-나아만은 사로잡힌 소녀의 정보를 듣고 즉각 행동으로 옮길 만큼 마음이 가난했다. 하지만 군대 장관의 격에 맞는 대접과 자기가 기대한 치유 방식을 포기할 만큼은 아니었다. 옛사람이 죽지 않고는 새 사람을 입을 수 없고 내 영광과 내 길을 포기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주권이 임할 수 없다.
   
*나아만이 아람 왕에게 아람 나라를 구하고 왕에게 인정받은 것은 그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배후에서 하나님이 높여주셨기 때문이다(1절). 나의 삶도 나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세우고 있음을 한시도 잊으면 안 된다. 나의 나된 것은 주님의 은혜라는 찬양이 오늘 내가 드리는 찬양이다.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아 온 여종이 나아만을 살리는 결과를 가져왔다(2~3절). 어린 소녀 종이 담대하게 하나님의 사람을 소개하였다. 너무나 절박했던 나아만은 이를 허투루 듣지 않았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었다. 포로로 끌려가 노예의 삶을 사는 것 자체가 얼마나 고단하겠는가? 그럼에도 자신이 믿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용기가 대단하다. 이 또한 하나님이 주신 용기가 아니겠는가?
 
*이처럼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을까? 특히 가장 무시당하고 연약한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이야기할 수 있는 믿음과 담대함이 나에게는 과연 있을까? 어느 곳에서든 하나님의 이름을 담대히 들려줄 수 있어야 하겠다.
 
*이스라엘의 여호람 왕은 모압 원정에서도 드러났듯, 염려와 낙심이 일상인 인물인듯하다. 나아만이 자신의 문제를, 왕을 통하여 부탁하는 바람에 외교적인 문서가 된 도움의 편지에 반드시 나아만의 병을 고쳐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먼저 느낀다(5~7절). 여전히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먼저 찾고 도우심을 구하기보다 내 능력을 먼저 생각하여 두려워하고 낙심하는 모습이 내게 반면교사가 된다.
 
*한편 나아만은 나름대로 자신의 치유와 회복에 대한 거창한 기대가 있었다. 자신을 맞이하는 것에서부터 치료의 과정까지 철저히 아람에서 자신의 신분에 걸맞고, 그 땅에서 우상 앞에서의 주술 과정과 비슷한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융숭한 대접을 받기 원한 것도 보인다(11~14절). 하지만 이런 형식과 절차가 그를 치유한 것이 아니다. 그가 철저하게 하나님의 사람 명령에 순종했을 때 완벽하게 회복되었다. 하찮은 일 같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곧 삶의 유익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
 
 
*나아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 그의 능력이 출중하여 존귀함을 받는 아람의 군대 장관까지 올라간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아람을 구원하였기(1절)” 때문이다. 또, 그 주변에는 사로 잡혀와서 여종이 된 소녀가 있었다. 그 아이가 엘리사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뿐만 아니라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 고언해 줄 수 있는 종들도 있었다. 그는 인복(人福)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어느 누군가에게 이처럼 그의 인복(人福)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아만 아내의 어린 소녀 종처럼 하나님 나라 복음을 그의 삶 속에 소개해 줄 수 있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포기하지 않도록 나아만의 종들처럼 마음을 다해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말이다. 상황과 감정대로만 살았다면 나아만은 평생 나병을 앓으며 살아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 비록 비천한 신분이었지만, 들어야 할 말을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것이 진정 인복(人福)이 아니겠나!
 
*나도 어느 누군가에게 복을 소통시키는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하겠다. 하나님을 찾는 이들에게, 그들의 삶의 어떤 지점에서 그들이 꼭 들어야 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우직하게, 담담하게, 확신있게 전해주리라. 복음을 들은대로 순종할 것을 고언해 주리라!
 
 
 
 
*주님, 하나님의 이름을 어떤 형편에서든지 기회가 열리는 대로 들려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주님, 내가 기대하고 그리는 나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대로 단순하게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그리하면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삶을 누릴 줄 믿습니다. 나아만처럼요.
*주님, 누군가에게 복의 통로가 되겠습니다. 또한 저에게도 인복(人福)을 풍성하게 부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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