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감사와 찬양이 절로 나온다. 놀라운 치유를 맛본 나아만은 하나님의 능력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고 이에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으며, 오로지 그분만을 섬길 것을 고백한다. 한편 엘리사는 나아만이 강권하여 주려 한 예물을 하나님 앞에서 거절하므로서 모든 공로를 하나님께 돌린다. 하지만 예물에 마음이 뺏긴 게하시는 나아만에게 거짓말을 하고 예물의 일부를 얻어낸다. 결국 그의 거짓은 들통이 나고 나아만의 나병이 그에게로 간다.
1. 나아만의 예물을 거절하는 엘리사(15~16절)
엘리사의 말대로 행하여 병이 낫게 된 나아만은 군대를 이끌고 엘리사에게 다시 온다. 그때서야 나아만은 엘리사를 만날 수 있었다.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땅에는 신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고백한다. 교만하고 자기 과시적인 모습에서 변화하여 매우 겸손하게 이스라엘에 계신 신만이 진정한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며, 자신을 “당신의 종”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준비한 예물을 받아 달라고 한다. 하지만 엘리사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절대로 예물을 받지 않겠다고 거절한다.
그러나 나아만은 엘리사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예물을 받으라고 강요하다시피 했으나 엘리사는 끝내 거절한다. 여기서 한번 생각하게 된다, 4장에서 나타난 엘리사나 엘리사의 제자들은 경제적으로 늘 어려웠다. 당시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왕과 귀족들을 비롯하여 일반 백성까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선지자 엘리사와 선지자의 제자들을 돌보는 사람도 없었다. 은 몇 개, 떡 몇 덩이를 가져와 하나님의 신탁을 구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기에 그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엘리야도 늘 쫓겨 다니며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나아만이 주는 어마어마한 예물은 선지자와 선지자의 제자들의 삶을 좀 더 편안하고 윤택하게 바꿔줄 수 있었지만, 엘리사는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돈과 바꾸는 일을 하지 않았다. 엘리사는 그저 하나님께서 행하라고 명령하신 대로 아무것도 받지 않고 하나님의 권능을 행하였고,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믿고 하나님께서 살라고 하신 가난한 삶을 선택했다.
그 믿음 대단하다.
2.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맹세한 나아만(17~19절)
엘리사가 완강하게 거절하자 나아만은 엘리사의 말을 따르기로 한다. 다만 노새 두 마리에 실을 수 있을만큼 흙을 달라고 요청한다. 본문에서는 정확하게 그 이유를 말하고 있지 않지만, 흙을 달라고 하면서 이제부터는 다른 신을 위한 번제와 희생제사를 드리지 않고 오직 여호와만을 위해 제사를 드리겠다고 선언한다. 그는 여호와의 놀라운 권능을 체험한 순간 여호와만이 참 신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말하며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아만이 흙을 달라고 하는 것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제단을 만들기 위해 이스라엘의 흙을 가지고 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고대 근동에서 신들은 각 지역에 묶여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고 계시는 이스라엘의 흙을 아람으로 가지고 가서 자신이 사는 곳에서도 문제 없이 하나님을 섬기려는 생각에서 나온 요청이었을 것이다.
이런 나아만의 모습은 당시 북이스라엘 백성의 모습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엘리야와 엘리사로 이어지며 수많은 권능을 보고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북이스라엘의 백성들과는 달리 나아만은 단 한번의 기적을 체험하고도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한 가지 양해를 구한다. 자신의 주인인 아람 왕이 림몬 신당에 들어가 절할 때 왕이 자신의 손을 의지하기 때문에, 자신도 림몬 신당에 들어가 절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왕이 자신의 손을 의지한다는 것은 자신이 왕의 오른팔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비록 지금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신앙을 고백하였으나 그의 육신의 주인인 아람 왕을 완전히 떠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가 림몬 신을 섬기지 않기 위해 아람 왕을 떠나는 것은 결심한다고 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여호와만을 섬기기로 영적 주인을 바꾸었지만, 육신의 주인인 아람 왕은 버리지 못한다. 대신 앞뒤로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길 원한다는 말을 반복하며 매우 조심스럽게 엘리사의 허락을 구한다.
이런 나아만의 간곡한 부탁에 엘리사는 “평안히 가라”고 답해준다. 이 자체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데 죄에 대하여 유보사항을 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한다. 죄는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죄에서 과감하게 떠나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엘리사가 “평안히 가라”고 마치 그 요청을 승인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가 이제 막 개종한 이방인으로 신앙이 아직 연약한 자였기 때문이다. 또, 비록 개종하였지만, 이스라엘에서 살지 않고 아람으로 돌아가 다른 신을 섬기는 이방인들 사이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속에 살아야 할 나아만에게 완전한 율법 준수를 요구한다면, 어려움 속에서 믿음을 잃거나 그와 그의 가족이 전부 죽을 수도 있었다. 따라서 엘리야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처지를 인정해준 것이다. 바벨론 땅에서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킨 다니엘과 세 친구와 같은 순교적 믿음을 이제 막 회심한 이방인 나아만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3. 나아만에게 예물을 받은 게하시(20~27절)
20절부터는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에게 초점이 맞춰진다. 그는 주인 엘리사가 나아만의 병을 고쳐주고도 그가 가지고 온 예물을 하나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분개한다. 따라서 그 뒤를 달려가서 반드시 뭐든지 받아내겠다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만다. 이런 게하시의 모습은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는 엘리사의 맹세와 분명 대조가 된다. 엘리사는 여호와의 권능을 돈을 얻는 일에 이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게하시는 이런 호의를 베풀었으면 많은 돈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아만은 이방인이고 부자이니 돈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게하시는 나아만의 뒤를 좇아가서 인사한 뒤 나아만에게 엘리사가 자신을 보냈고 선지자의 제자 두 명이 왔으니 그들을 위해 은 한 달란트와 옷 두벌을 달라고 말씀하셨다고 거짓말을 한다.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 엘리사가 말을 번복하고도 남는 핑계를 만들기 위해 두 명의 제자까지 들먹인다.
이런 게하시의 말을 나아만은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면서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건네준다. 나아만의 입장에서는 엘리사가 워낙 강하게 거절하였기에 아무것도 드리지 못하고 온 것이 내심 걸렸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차에 게하시의 요청에 기쁜 마음으로 건네 줄 수 있었다. 그는 게하시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나아만에게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챙긴 게하시는 엘리사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언덕쯤에서 미리 전대와 옷을 받아 자신의 집에 숨겼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모를 엘리사가 아니다. 엘리사는 게하시를 불러 어디 다녀오느냐고 묻는다. 마치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동생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즉, 엘리사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회개의 기회를 주려고 한 질문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게하시는 그 기회를 놓치고 결국 엘리사를 통해 나아만이 해방된 나병에 걸리게 되었다. 이렇게 둘의 운명이 바뀐 것을 통해 하나님 백성의 불신앙과 이방인의 신앙을 통해 하나님 백성이 얼마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나아만은 어린아이 같은 새 살만 얻은(14절)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마음도 얻었다. “엘리사의 하나님”을 “자신의 유일한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그분께만 제사하겠다고 다짐한다. 이스라엘의 강을 경멸하던(12절) 나아만이었지만 이스라엘의 흙을 달라고 요청하고, 선지자가 자기 앞에 서기를 요청하던(11절) 이가 선지자 앞에 서서(15절) 용서를 청하며(18절) 선지자의 사환마저 수레에서 내려와 맞이할 만큼(21절) 겸손한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여 전 존재가 치유함을 받으면 하나님과 사람과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과 삶의 방식이 새로워지는 일, 이것이 진정한 회심이 아니겠는가!
-엘리사는 나아만이 강권한(16절) 예물을 거절하여 오직 하나님의 치유 능력만을 드러냈다. 하지만 사환 게하시는 엘리사를 빙자하여 나아만을 속였고 그의 강권을 물리치지 않고(23절) 예물을 취한다. 그 과정에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였고, 이방인 나아만을 향해서는 “이 아람 사람 나아만”이라고 표현하며 경멸적이고 국수적인 태도를 보였다(20절).
-한편 나아만은 경배할 신을 바꾸었지만, 섬기던 나라를 떠날 수 없었기에 아람 신의 예배에 빠질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나아만은 자기 몸이 우상숭배의 자리에 있지만, 마음만은 여호와께로만 향했으니 용서해달라고 청한다. 엘리사는 그의 평안을 빌어주어 간접적으로 이를 허용해 준다. 이처럼 지금도 “숨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만 하는 박해받는 나라의 성도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한 세상 속에 살지만 마음만은 세상에 물들지 않고 신앙의 절개를 잘 지켜나가야 할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에 물들지 않아야 한다.
-게하시는 재물을 얻는 대신 나병도 함께 얻는다. 나아만을 속여 얻은 재물은 숨길 수 있었지만, 그 탐욕의 행태마저 숨길 수 없었을 것이다. 이방인 나아만은 재물과 자존심, 자기 신을 버려 나병을 잃었지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 게하시는 부패한 욕심으로 재물을 얻고 나병도 얻었다.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 주심으로 자신을 참 하나님으로 드러내셨다. 이것으로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이 증거되었다. 이방인 나아만의 입을 통해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며 온 세상의 신이신 그분만 섬겨야 함이 드러나게 되었다.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드러내지 못하니 이방인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신다. 오늘,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지 못하면 세상 사람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게 하실것이다.
*경제적으로 궁핍할 때, 선지생도들의 곤고함이 이어지고 있을 때 나아만이 가져온 예물이 왜 탐이 나지 않았을까? 그러나 엘리사는 상황과 여건을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선지자였다. 엘리사는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겠다는 심정으로 아무것도 받지 않은 것이다.
*이런 엘리사의 마음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새겨져야 할 하나님의 사람의 기개가 아닐까? 하나님이 함께 하는자,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라는 것을 선명히 드러나는 길은 가장 본질적인 유혹 앞에 상황과 여건을 따른 타협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게하시는 이 부분에서 물질에 눈이 어두워졌다. 욕심에 이끌려 나아만을 뒤쫏아가서 엘리사의 부탁이라며 거짓말을 하여 선물을 취한다. 게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부요함을 보지 못한 채, 이 땅의 재물에 집착했다. 재물에 마음이 빼앗긴 그는 나병에게 몸을 빼앗기고 만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것에 마음이 빼앗기면, 반드시 하나님의 갚음이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탐심을 철저하게 경계하신다. 숨겨진 죄라도 드러내셔서 징계하신다(26~27절). 하나님이 모르신다고 생각하여 은밀하게 덮어 두려는 죄가 있다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여야 한다. 그래야 산다.
*주님, 오직 하나님의 권능과 이름을 드러내려고, 가장 흔들릴 수 있었던 막대한 물질조차 단순하게 거절한 엘리야의 순종을 배우겠습니다.
*주님, 그러나 게하시의 탐심과 같은 마음이 언제라도 내 마음에 스며들 수 있음을 경계하며 살겠습니다.
*주님, 나아만의 완전히 새롭게 된 몸과 마음, 그리고 신앙의 각오가 눈에 띕니다. 그러나 이제 막 하나님과 동행을 시작한 그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엘리사의 배려도 보입니다. 저도 하나님을 찾는 이들을 향해, 이제 막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이들을 더욱 세밀하게 배려하고 챙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