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8:15은 선지자의 능력을 보여주는 다섯 개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잃었다가 물 위로 떠오른 도끼(6:1~7), 저지당한 아람의 습격자들(6:8~23), 풀린 포위망과 예언의 성취(6:24~7:20), 회복된 수넴 여인의 재산(8:1~6), 왕으로 선택된 하사엘(8:7~15) 이야기이다. 특히 6~7장은 엘리사에게 병고침을 받고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선언하고 돌아간 나아만의 고향인 아람과의 전쟁을 다룬다.
엘리사에게 가르침을 받는 제자가 많아지자, 제자들은 요단 근처로 가서 새 지역에 새 거처를 지으려 한다. 나무를 자르던 중 한 제자가 빌려온 쇠도끼를 물에 빠뜨리고 만다. 이때 엘리사는 쇠도끼가 떠오르게 하여 그의 문제를 해결해준다. 한편 아람과 이스라엘 간에 전쟁이 일어난다. 엘리사는 매번 아람 왕의 계획을 이스라엘 왕에게 귀뜸을 해준다. 아람 왕은 이를 알고 엘리사를 잡으로 도단 성읍을 에워싼다.
1. 새로운 집을 지으려는 엘리사의 제자들(1~4절)
홀로 지내던 스승 엘리야와 달리 엘리사는 늘 사환이나 제자들과 함께 생활한다. 이런 공동체 생활은 삼상 10:10에서 이미 기록되어 있다. 엘리사와 함께 생활하는 제자들이 늘어나서인지, 제자들이 현재 처소는 비좁으니 요단으로 가서 그곳에다 자신들이 거할 처소를 짓겠다고 엘리사의 허락을 구한다. 그러면서 제자 중 한 사람이 엘리사도 같이 가면 어떻겠냐고 매우 조심스럽게 요청한다. 엘리사 또한 반드시 가겠다며 제자들의 말을 따른다. 요단에서 집을 짓기 위한 나무를 자르게 된다.
2. 도끼를 떠오르게 한 엘리사(5~7절)
그런데 한 제자가 나무를 베다가 도끼를 물에 빠뜨렸다. 제자는 매우 절망적인 목소리로 엘라사를 부른다. 빠뜨린 도끼가 빌려온 것이라고 절규한다. 집을 짓기 위한 변변한 도구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빌려서 간신히 일하고 있던 상황에서 값비싼 쇠도끼를 잃어버렸으니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모습은 엘리사와 그의 제자들이 얼마나 빈궁했는지릂 여실히 드러내 준다.
엘리사는 제자의 부름에 응답하여 어디에 도끼가 빠졌는지 묻고 나뭇가지를 잘라 도끼가 빠진 곳에 던진다. 그러자 놀랍게도 쇠도끼가 떠올랐고 제자가 그것을 잡아서 건져낼 수 있었다. 자연 질서를 초월한 기적이었다. 하나님은 자연 질서 안에 계신 분이 아니라 자연 질서를 초월하시는 분이심을 드러낸 기적이었다. 동시에 도끼를 잃어버린 절망스런 선지자의 제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는 것이었다.
3. 번번히 아람 왕의 공격을 막는 엘리사, 그를 잡으려는 아람 왕(8~14절)
8~22절은 아람이 이스라엘과 엘리사를 공격하려는 시도와 엘리사의 방어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그때에” 즉,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병 고침을 받고 간 후에 시작된다. 아람 왕은 이스라엘과 전쟁하면서 자신의 신하들과 의논한다.
그런데 아람 왕이 어떤 곳에 진을 치자고 이야기하면,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사람을 보내서 어떤 곳으로 지나가지 말라고 경고하는데, 그곳에서 아람 사람들이 공격할 것이지 때문이라고 한다. 엘리사의 경고를 들은 이스라엘 왕은 엘라사가 가르쳐준 그곳으로 군사들을 보내어 그 장소를 지켰는데 이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왕이 엘라사의 말을 따라 미리 방비했다는 것은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의 말을 신뢰했다는 의미다.
이는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나아가기 전에 이스라엘 왕에게 자신을 고쳐 달라고 말했는데, 매우 당황했었던 기억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과 신하들도 엘리사가 나아만의 나병을 고쳐주었다는 것을 들은 것이다.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의 말을 신뢰하는 것은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11~14절에서는 아람의 침입이 이스라엘 왕에게 계속 알려져서 이스라엘 침입이 계속 실패하자 아람 왕은 매우 화를 낸다. “불안하다(싸아르)”로 번역된 동사는 “화를 내다, 격분하다”라는 뜻이다. 아람 왕은 이런 상황이 자신들 가운데 간첩이 있어서 회의한 내용을 이스라엘 왕에게 전달하는 것 아니냐며 심하게 화를 낸다. 아람 왕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침입하기로 정한 곳에 족집게처럼 이스라엘 군대가 막고 있으니 의심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면서 내부의 간첩을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신하 중의 한 사람이 이 일을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준 사람은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라고 말한다. 그는 십지어 가장 은밀한 곳인 왕의 침실에서 하는 말까지도 알 수 있고, 그 말을 이스라엘 왕에게 전달해준다고 하였다. 이런 반응은 이들도 역시 나아만의 치유 과정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엘리사가 얼마나 뛰어난 하나님의 선지자이지 알려지게 되었을 것이다. 엘리사의 명성은 이미 이스라엘을 넘어 주변 나라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이 말을 듣자 아람 왕은 엘리사를 잡아들일 생각을 한다. 그도 엘리사의 능력을 믿었으므로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엘리사를 제거하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엘리사가 어디 있는지 알아보라고 하고 한 신하가 그가 도단에 있다고 알려준다. 이 말을 들은 아람 왕은 엘리사 한 사람을 잡기 위해 말과 병거와 많은 용사들을 도단으로 보내어 밤에 조용히 그곳을 에워싼다.
도단 주민들은 밤에 아람 군대에 에워싸인 줄을 모르고 있었다. 엘리사 선지자의 사환이 아침에 아람 군대를 보고 놀라서 소리친다. 아람 왕이 엘리사 한 사람을 잡기 위해 이렇게 많은 군대를 보낸 것은 엘리사와 엘리사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엘리사라는 선지자 한 사람의 존재로 인해 이스라엘은 천만 군대가 지키는 것보다 더 든든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아람 군대는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었다. 말씀을 따라 온전하게 살려고 발버둥 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은 증거될 것이다. 영적 싸움에서 이기는 비결은 하나님께서 대적을 상대하시게 하는 것이다. 내가 싸워야 할 것은 상대방을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하는 불신앙이다. 나의 한계와 상대방의 강함을 아는 것이 영적 싸움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지식이다.
나는?
-엘리사와 선지자의 제자들은 조화로운 협력을 통해 사역을 전개하고 위기를 극복한다. 선지자와 제자들의 소통이 돋보인다. 제자들은 비좁은 처소를 확장할 계획을 알리고 엘리사는 이를 승인한다. 제자들은 선지자의 동행을 요구하고 엘리사는 수락한다. 제자들은 쇠도끼를 잃어버린 위기상황을 선지자에게 알렸고, 선지자는 쇠도끼를 물 위로 떠오르게 한다. 도끼를 잡으라는 엘리사의 지시에 제자들은 충실하게 따른다. 단조로운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서 제자들과 엘리사의 상호의존과 순종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소통을 통해 형통을 경험했다.
-나의 사역 현장에서도 이런 소통에서 오는 형통함을 고대한다. 소신껏 사역할 수 있는 환경을 통해 자연스러운 의견제시가 이루어지고 의사결정이 이루어 지기를 바란다. 우리 교역자들, 혹은 장로님들, 그리고 교회 안의 무수한 사역자들과 상호 존중과 의존이 오해없이 이루어지는 건강한 소통을 꿈꾼다.
-너무 가난하여 독이 든 음식을 먹기도 했던 선지자의 제자들이 이번에는 빌려온 귀한 쇠도끼를 잃어버린다. 선지자의 제자들이라고 해서 고난과 불행이 비껴가지 않는다. 선민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이다. 엘리사를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물에 가라앉은 도끼가 떠올랐듯이, 침몰 중인 악한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것도 오로지 하나님의 능한 손에 달려 있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승리를 주신다. 하나님 앞에서 이방 왕들은 무력하기만 했다. 군사들을 보내 이스라엘을 치려고 했던 아람 왕의 시도는 침상의 말까지 다 듣는 하나님의 선지자 때문에 번번이 실패한다. 숱한 군사와 말과 병거가 하나님께 사로잡힌 한 사람을 당해낼 수 없었다. 하나님의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어도 내가 속한 곳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아무도 우리를 해칠 수 없다.
-인간의 치밀한 계획(아람 왕의 전쟁 계획)을 쓸모 없게 만드신다. 이스라엘이 타락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의 종 엘리사를 통하여 말씀해 주신다. 그의 백성을 대적으로부터 보호해 주신다. 세상의 지혜나 모략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믿음이 중요하다.
*주님, 상호 존중, 의존, 순종의 공동체를 이루어가겠습니다.
*주님, 하나님의 사라 단 한 사람 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봅니다. 지금 여기, 하나님 나라의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