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인간적 연합이 가져온 하나님과의 분열 [왕하 8:16-29]
 – 2024년 09월 17일
– 2024년 09월 17일 –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자들과 사귀는 것은 죄의 길로 가는 지름길이다. 남 유다의 여호사밧이 아합 집안과 사돈을 맺은 후 그의 후계자인 유다 왕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아합의 길을 답습하여 여호와의 눈에 악을 행한다. 아합의 딸인 아달랴의 꾀임과 악영향에 그들은 자신들뿐 아니라 유다 백성까지 우상숭배로 이끌고 만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다윗과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기 위해 유다를 멸하지 않는 긍휼을 베푸신다.
    
열왕기상 17장부터 엘리야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열왕기 문학 양식이 깨지고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었다. 본문은 그 가운데서 유다 왕 여호람의 통치 이야기를 통해 전형적인 왕 등극 공식과 죽음 공식을, 이어지는 아하시야는 전형적인 등극 공식을 보여준다. 엘리사의 사역 이야기 중간에 남 유다 왕들의 이야기가 삽입된 것은 당시 시대적 배경에 대하여 좀 더 분명하게 인지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배치로 보인다.
    
    
    
1. 유다 왕 여호람의 등극과 평가(16~19절)
여호람은 유다의 다섯 번째 왕이다. 그는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했다. 이 결혼은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동맹을 위한 정략적인 결혼이었다. 이 때문에 여호람의 아버지 여호사밧은 아합과 동맹을 맺고 아람과의 전쟁에 참전했다(왕상 22장). 그러나 이 결혼은 이세벨이 이스라엘에 전파한 바알 숭배가 유다 땅에도 들어오는 계기가 되고 만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가서 아합 집 같이 행하였다고 여호람을 평가한다.
    
본 단락은 여호람의 등극 공식으로 그가 등극할 때 북이스라엘은 아합의 아들 요람(여호람)이 통치한 지 5년 되던 해였다. 독특한 것은 그가 왕으로 등극할 때 그의 아버지 여호사밧이 아직 살아있었고, 왕이었다. 여호사밧이 섭정왕으로 물러나고 아들인 여호람이 왕위에 오른 것이다. 그렇기에 실제적인 통치는 여호람이 했을 가능성이 크다. 왕이 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32세였다. 당시 레위인의 경우 제사장직을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나이가 30세였다. 여호사밧은 여호람이 성인으로서 왕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여겨 왕으로 세운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8년을 통치한다.
    
여호람은 오래 살지 못했는데, 열왕기에서 왕의 이른 죽음은 여호와의 심판 중의 하나였다. 이렇게 여길 수 있는 것은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다고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아합 가문의 길을 답습했기 때문이다. 이는 아합과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와 결혼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달랴가 시집을 오면서 바알 우상을 남 유다에 들여온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남 유다의 우상숭배를 곧장 멸망의 심판으로 다루지 않으셨다. 다윗에게 그의 자손들에게 항상 등불(생명과 번성을 의미함)을 주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다윗 왕가가 지속되고 번영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는 뜻이다. 즉, 현재 남 유다의 상황은 북이스라엘과 다를 바 없이 하나님을 떠나있지만, 다윗과의 약속 때문에 유다를 향하여서는 참아주고 계신다는 의미다.
    
    
    
2. 유다 왕 여호람의 행적과 죽음(20~24절)
여호람의 대표적인 행적이 소개된다. 여호람 때에 에돔이 유다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왕을 세웠다. 다윗 왕 때 속국을 삼았었지만(삼하 8장), 독립했다는 것은 여호람의 범죄 때문에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베푸신 호의를 거두셨다는 의미다. 다윗 왕 때 모든 전쟁에서 승승장구와 나라의 번성은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신실하였고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인생의 성공은 그 사람의 능력보다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인 경우가 심심찮다. 또한 여호와 앞에서 신실하게 살며 동행하는 것이 다윗이 형통할 수 있었던 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호람은 에돔의 배신을 응징하고 되찾기 위해 모든 병거를 모아 사일로 진군한다. 그리고 자신을 에워싸고 있던 에돔 군사들과 병거들을 밤에 기습하여 전쟁을 일으킨다. 하지만 결과는 완전한 패배였다. 군사들은 모두 흩어져 각자 집으로 도망하기에 바빴다. 여호람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도 여호람을 돕지 않았기에 이전에 누리던 영화가 하나둘씩 사라지게 되었다. 이 결과 에돔은 유다의 통치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22절).
    
또한 여호람 통치 때에 립나도 유다에게 반역을 일으켰다. 립나는 여호수아 10:30에서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 시에 싸워서 점령한 지역이다. 그런데 그토록 오랫동안 점령지로 남아 있던 립나도 독립하려고 반역하였다. 에돔과 립나가 같은 시기에 반역하였다는 것은 남 유다 여호람의 통치 시기에 그만큼 유다가 약화하였다는 것을 드러낸다. 여호와께서도 더는 유다를 지키지 않으셨다. 23~24절은 여호람의 죽음 공식이다. 여호람 왕에 대한 기록은 에돔과의 전쟁이 전부다. 그의 뒤를 이어 아들 아하시야가 유다의 왕이 된다.
    
    
    
    
3. 유다 왕 아하시야의 등극과 평가와 행적(25~29절)
남 유다의 여섯 번째 왕이 된 아하시야 또한 여호와 눈에 악한 자였다. 22세에 왕 위에 올라 1년간 통치한다. 그리고 예후에게 죽임을 당한다. 아하시야는 오므리의 손녀이자 아합의 딸인 아달랴가 어머니였다. 그의 부친 여호람과 다를 바 없이 아달랴의 악영향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역대기(대하 22:1~9)에서는 아하시야의 통치 기록에 “아합”이라는 이름이 여러 번 반복되었고 그가 아합 집안의 가르침을 따랐음을 거듭 강조하였다. 이를 통해 그의 죄악이 아합과 가문과 깊은 유대 관계에서 비롯되었음을 드러낸다. 이방인들에게 죽임을 당한 형들과 아달랴의 조언을 받아 바알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훼손하며, 성전의 모든 성물을 바알에게 바쳤다(대하 24:7). 즉 형들의 죽음이 바알 숭배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공의의 심판을 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아하시야를 살려두신 것은 여전히 그의 종 다윗에게 하신 약속(19절)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다윗과 유다 왕국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긍휼은 매우 단단하고 지대했다. 이에 반해 하나님의 긍휼 속에 목숨을 부지하고 왕좌에까지 오른 아하시야는 하나님의 은혜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달랴와 아합 집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심판을 재촉하였다.
    
그의 죽음은 조부 여호사밧이 아합이나 요람과 동맹을 맺고 전쟁에 나갔듯이 아하시야도 외숙부 요람(북이스라엘 여호람 왕)과 함께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우러 길르앗 라못에 갔다. 예전에 아합이 이곳을 탈환하려다가 상처를 입어 전사했었다. 그런데 요람과 아하시야도 이곳 전쟁의 여파로 모두 죽는다. 요람은 라마(길르앗 라못)에서 아람 군에게 다쳐 이스르엘로 돌아와 치료받고 있었다. 이후 아하시야가 병문안 목적으로 방문한다.
    
    
    
나는?
-하나님은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이시다. 유다의 여호람이 북이스라엘처럼 우상숭배를 하여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였지만, 북이스라엘의 왕들처럼 유다 왕조를 완전히 망하게 하지 않은 것은 다윗과 맺은 언약 때문이었다. 여호람뿐 아니라 많은 왕이 아합의 영향을 받아 바알을 섬겼지만, 하나님은 다윗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기에 남 유다를 은혜로 남겨 두신 것이다.
    
-남 유다 왕가와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가가 통혼하였다. 이에 남 유다 왕조가 타락하기 시작한다. 북이스라엘의 영향을 받아 아합의 길로 행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다. 아하시야는 아합의 딸인 어머니 아달랴의 영향을 받아 우상숭배 정책을 폈다.
    
-결국 파멸을 부른 남과 북의 연합이 되고 말았다. 여호람이나 그의 아들 아하시야나 남 유다의 왕이었지만, 북이스라엘 아합의 집(오므리 왕조) 영향을 받아 악을 행한다. 이는 여호람이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와 결혼하여 그들의 악행을 본받았기 때문이다. 더 강대한 나라를 꿈꾸며 혼인동맹을 맺었겠지만, 더 악한 나라를 만들고 말았다.
    
-연합은 좋은 가치이지만, 어떤 가치를 추구하느냐에 따라 더 큰 악을 만들 수도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외형만 키워 권력을 누리려는 악한 이합집산이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여실하게 보여준다. 야욕을 위한 연합은 “야합”일 뿐이다.
    
-힘을 키우려고 야합했지만, 오히려 더욱 쇠락해져 간다. 다윗 왕 때부터 속국이었던 에돔이 배반하고 이어 블레셋의 립나도 배반한다. 에돔을 응징하러 나아갔지만, 되려 간신히 도망쳐 나올 정도로 나라가 약화하고 만다. 그럴 뿐만 아니라 북이스라엘의 여호람(요람) 왕도 아람의 하사엘과 싸우다가 다쳐 이스르엘로 퇴각했다.
    
-아합과 이세벨을 중심으로 두 나라의 사이는 돈독했으나 하나님과의 사이는 악화할 대로 악화하고 만다. 하나님과 거리가 멀수록 하나님이 우리 눈에 작아 보이고 그 하나님의 영향력도 무시하게 된다. 사람과 권력, 경제와 명예를 가까이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보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늘 가까이하는 것이 복이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진 남 유다의 행적을 보면 이방 나라들처럼 심판받아 마땅하나 유다는 보존된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라고 하신 말씀을 지키셨다. 하나님의 잊지 않으시는 “기억”과 변치 않으시는 “사랑”에 힘입어 우리는 온전하여질 수 있다. 지금, 여기 하나님 나라, 하나님 안에서 사는 것이 가장 큰 은혜와 복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꺼지지 않는 등불을 주셨다. 예수님을 믿는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 백성이다. 그 귀한 은혜가 우리에게 늘 이어진다. 어떤 세상에서도 이 약속은 변치 않는다.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신실하게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지금 여기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누릴 수 있다.
 
    
    
    
*주님, 인간적인 탐욕이 클수록 죄는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함을 봅니다. 인간적인 연합이 가져온 영적인 붕괴가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 심각하게 되돌아보게 합니다.
*주님, 약속을 기억해 주시고, 성실하게 지켜주시는 사랑이 지금 우리가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함을 깨닫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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