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예후에 의해 성취되기 시작하는 하나님의 예언 [왕하 9:14-26]
 – 2024년 09월 19일
– 2024년 09월 19일 –
하나님께서 예후를 사용하여 나봇의 무고한 피를 신원하고 아합과 이세벨이 지은 죄를 심판하신다. 예후와 군대 장관들이 여호람을 제거하기 위해 이스르엘로 오는 동안 요람(여호람)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요양하고 있었다. 이후 그들은 나봇의 포도밭에서 만나게 되고 요람(여호람)은 예후가 쏜 화살에 맞아 죽고 만다. 이후 예후는 불의와 우상숭배로 이스라엘의 평안을 앗아간 아합 집안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음을 선언한다.
 
 
 
1. 이스르엘에 있는 요람(여호람) 왕의 상황(14~16절)
님시의 손자이며 여호사밧의 아들인 예후가 그의 무리와 요람(여호람)에 대해 반역을 모의하고 있을 때 요람(여호람)은 유다 왕 아하시야와 함께 아람 왕 하사엘에 맞서서 길르앗 라못에서 전쟁을 하다가 부상을 입어 이스르엘로 돌아왔다. 길르앗 라못에 여전히 주둔하던 예후의 군대는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반역이 성공하기 원한다면 이스르엘에 반역 소식이 알려지지 않도록 단 한 명의 도망자도 없게 하라고 당부한다. 반란의 성공 여부는 비밀 유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체적인 반란 계획을 결정한 뒤 예후는 병거를 타고 여호람이 병으로 누워 있는 이스르엘로 간다. 마침 그때 유다 왕 아하시야도 요람(여호람)을 병문안하기 위해 그곳으로 왔다. 이스르엘에 요람(여호람)과 예후와 아하시야까지도 모두 모이게 되었다. 예후가 병거를 이끌고 갔다는 것은 군대를 이끌고 갔다는 의미이다.
 
 
 
2. 예후에게 보낸 사자가 돌아오지 않음(17~20절)
이스르엘 망대에 있던 파수꾼이 예후의 무리가 오는 것을 보고 이 사실을 요람(여호람)에게 보고한다. 보고를 받은 요람은 말 타는 사람을 그에게 보내 그들을 맞이하라고 명령한다. 이 표현은 말 타는 사람이 왕의 사자이며, 왕이 빨리 가서 어떤 상황인지 알아보게 하려고 보낸 것이다. 병거를 타고 군대를 끌고 오는 경우는 적들로부터 퇴각해오거나 반란을 일으키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왕은 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하여 대비하고자 한 것이다.
 
예후는 왕이 보낸 사자가 샬롬(평안)이냐고 묻는 인사에 ‘너는 무엇이고 샬롬은 무엇이냐?’며 자신의 뒤로 돌아서라고 한다. 무슨 일인지 알 필요 없고 왕에게도 알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예후는 이스르엘에 도착할 때까지 자신의 의도를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말 타는 사람을 돌아가지 못하게 막았다. 이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던 파수꾼이 왕에게 사자가 그들에게 갔지만 돌아오지 않는다고 보고하였고 왕은 다시 사람을 보내 평안하냐고 묻지만, 또다시 예후는 그 질문을 무시하고 사자를 돌려보내지 않는다. 파수꾼은 역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보고하면서 병거를 모는 모양새가 미친 듯이 모는 것이 님시의 아들 예후 같다고 보고한다.
 
 
 
3. 아합의 아들 여호람을 죽인 예후(21~26절)
병거를 몰고 오는 사람이 예후라는 것을 알게 된 요람(여호람)은 유다 왕 아하시야와 함께 각각의 병거를 타고 예후를 맞이하러 나간다. 그만큼 아람의 하사엘과의 전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상황이 너무 궁금하여 기다리지 못하고 직접 마중을 나간 듯 하다. 그만큼 예후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렇기에 별다른 방비를 하지 않고 예후를 만나러 나갔다.
 
그런데 이렇게 병거를 이끌고 나간 곳이 마침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 자리였다. 아합 왕때 불법적으로 빼앗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으셨다. 나봇의 포도원이라는 장소는 왜 하나님께서 예후를 왕으로 선택하고 아합의 가문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하셨는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아합과 이세벨은 그 밭을 소유하기 위해 무죄한 나봇을 여호와를 저주하였다는 누명을 씌워 죽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죄에 대해 나봇의 무죄한 피값을 반드시 되갚아줄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아합의 회개로 잠시 그 심판이 지연되었지만, 이제 심판의 시간이 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모두 아신다. 다만 오래 참으시며 회개하기를 기다리시기에 그 진노가 더디게 올 뿐 심판을 생략하지는 않으신다.
 
요람(여호람)은 예후를 만나자 또다시 평안하냐고 묻는다. 예후가 미친듯이 병거를 몰고달려온 것이 별일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후는 매우 무례하고 도전적인 대답으로 응한다. 당신의 어머니인 이세벨의 우상숭배와 이교 행위들이 널리 시행되고 있는데, 어떻게 평안할 수 있냐는 것이다. 그의 이런 말은 자신의 반역이 이세벨의 우상숭배와 이교 행위 때문임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을 들은 요람(여호람)은 예후가 반란을 일으키고, 자신을 죽이기 위해 군대를 몰고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러고는 재빨리 자신의 성으로 들오가기 위해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한다. 자신과 함께한 유다 왕 아하시야에게도 반역이 일어났다고 경고한다. 이렇게 도망치는 요람(여호람)에게 예후는 힘껏 활을 당겨 요람(여호람)의 어깨 사이를 향해 쏘았고 그 화살이 그의 심장을 뚫고 나왔다. 요람(여호람)은 예후의 화살 한 발에 심장을 관통하여 즉사한다. 그의 아버지 아합도 도망하다가 우연히 한 병사가 쏜 화살에 맞아 죽었는데, 부자 모두 하나님의 심판의 화살에 맞아 주고 만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신 사람을 놓치는 법이 없으시다.
 
이렇게 요람(여호람)은 허무하게 죽었고 예후는 그 시체를 나봇의 밭에 던지라고 명령한다. 이는 여호와께서 아합에게 선언하신 심판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증명한다. 아합이 나봇의 토지를 뺴앗기 위해 나봇과 그 아들의 피를 흘렸기 때문에 아합의 아들의 피로 갚으신 것이다. 예후가 여호와의 심판 예언에 대한 성취를 선언하며 요람(여호람)의 시체를 나봇의 토지에 버린 것은 자신의 반란이 개인적 욕심을 취한 것이 아닌 아합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을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리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나님은 결코 죄를 잊지 않으신다. 또한 자신의 선포된 말씀도 이지 않으신다. 이런 하나님의 성품이 억울한 자에게는 소망이 되며 악한 자에게는 두려움이 된다.
 
 
 
나는?
-예후가 요람(여호람)을 배반한다. 예후는 이스르엘에서 부상을 치료하고 있던 요람을 먼저 찾아가기 전에 전장에 함께 있던 군대 장관들에게 반역 음모를 발설하지 말도록 지시한다. 그때 이스르엘에는 병문안을 온 유다 왕 아하시아도 함께 있었다.
 
-예후는 아합과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한다. 요람(여호람)은 아버지 아합처럼 병거의 방향을 바꾸어 도망하였지만, 아버지 아합처럼 활에 맞아 죽고 시신은 나봇의 밭에 버려진다. 탐욕 때문에 무고한 나봇의 피를 흐렸던 일을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셨고 가문의 죄를 끊지 못한 요람(여호람) 왕에게도 그 죗값을 치르게 하셨다(“갚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샬롬”의 어근과 동일하다).  이로써 이스라엘에게 진정한 평안(샬롬)을 가져다주었다.
 
-죄가 그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진정한 평안이 찾아온다.
 
-왕이 보낸 사자들과 예후는 전쟁터의 상황을 묻는 질문을 반복하지만(평안하냐?), 예후는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지금 예후가 추구하는 샬롬(평안)은 전쟁의 승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상숭배와 불순종을 통해 이스라엘을 파국으로 몰고 간 아합 가문을 심판하는 것이 참 평안의 길임을 자각한 것이다.
 
-예후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대로 행동하였다. 장관 빗갈을 시켜 요람의 시체를 나봇의 포도원에 던지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됨을 선포하는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억울함을 들어주시는 분이시다. 나봇과 그 아들들의 억울한 죽음(왕상 21:1-16)을 기억하셨다. 우너수를 갚아 주겠다고 약속하신 대로 시행하셨다. 당시의 “땅”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기에 왕이라도 함부로 빼앗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아합과 이세벨이 나봇의 땅을 빼앗은 것은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었다. 하나님은 약자의 억울함을 아시고 신원해 주신다.
 
 
 
*주님, 아합과 이세벨의 악행에 대한 심판을 약속하신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을 보게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얼마나 철저하고 완전하게 이루어지는지 깨닫기에 늘 하나님 말씀의 장막 아래 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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