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후는 아합 가문을 진멸한 후에 바알 숭배자와 바알 우상들을 제거한다. 이로써 여호와를 향한 그의 열심이 높게 평가받는다. 하나님께서도 예후를 칭찬하고 그의 후손 4대를 왕으로 세우시는 호의를 베푸신다. 하지만 예후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심으로 지키지 않고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를 섬긴다. 한때는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한 자였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눈에 악한 자로 끝나고 만다.
예후에 대한 기록은 성경 외 고고학 유물인 “검은 오벨리스크”에도 등장한다. 1846년에 발굴된 높이 2m,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4면체 기둥 모양의 기념비는 살만에셀 3세(주전 859-824)의 업적을 기린다. 다섯 줄의 그림 중 둘째 줄에 예후(또는 예후의 사신)가 살만에셀 앞에 엎드려 있는 모습이 나온다. 살만에셀이 ‘오므리의 아들 예후’로부터 공물을 받았다는 내용과 공물 목록이 적혀 있다. 이 해는 예후의 즉위년인 주전 841년으로 알려졌다.
1. 바알을 섬기는 자를 죽이기 위한 준비(18~24절)
아합 왕조를 진멸하라는 사명을 받은 예후(9:1~13)는 순종하여 진멸했고(9:14~10:17), 이제 북이스라엘의 바알 숭배자들까지 척결하려고 한다. 바알의 헌신적인 숭배자 이세벨이 최근까지 살아 있었기에 바알 신앙과 주술은 여전히 성행하였다(9:22). 요람(여호람)은 바알 주상을 없앴지만(3:2), 바알 신당 및 아세라 목상과 바알 석상(돌기둥)도 건재했다(27절). 이때 예후는 온 백성을 모아 자신도 아합에 이어 바알을 섬길 것을 공포했다. 그는 자신의 열심을 아합과 비교하며 “아합은 바알을 조금 섬겼으나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18절)”라면서 포부를 밝힌다. 하지만 이것은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멸하기” 위한 속임수(계책_19절)였다. “섬기다”와 “멸하다”는 “아바드”로 발음이 같다.
예후는 바알을 위해 큰 제사를 드리려 하니 바알 선지자와 제사장과 숭배자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부르라고 명령했다. 불참자는 살려두지 않겠다고 하여 바알 숭배에 대한 열정과 회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바알 숭배자들은 예후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합 집안을 대거 살육했기 때문에 혹시라도 그 여파가 자신들에게까지 미칠까 염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후의 선포는 이런 모든 그들의 염려를 기우로 바꿔주었을 것이다. 또한 예후가 바알 신앙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그가 새 왕조의 종교적 지지 기반을 다지려는 행보로 비칠 수 있었다. 이미 군사적 지지 기반은 든든하게 세워진 상태였기에 때문이다.
예후는 바알 숭배자들을 한꺼번에 모아 처단하여 여호와를 위한 열심(16절)을 입증하려 한다. 이스라엘 전역에 사람을 보내 바알 숭배자를 다 모은다. “한 사람도 빠진 자 없이 왔다”라는 설명(21절)은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라(“는 예후의 명령이 철저히 지켜졌음을 보여준다. 바알 숭배자들은 바알 신당을 다 채울 정도로 많았다(21절). 예후는 숭배자들에게 예복을 나눠주라고 지시했다. 이 명령은 무기를 소지할 수 없게 하고 숭배자를 가려내려는 의도에서였다. 예후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함께 신당에 들어간다. 회중에게 바알의 종들만 남고 여호와의 종들은 하나도 참석하지 못하게 살피고 보라고 명령했다(23절). 여호와의 종을 보호하고 바알의 종들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단호함이 엿보인다. 또 여기에는 우상 숭배자를 심판하고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뜻도 함께 들어 있다. 예후의 의중을 알 리 없는 바알 숭배자들이 희생 제사와 번제들을 드리려고 신당에 들어갔다. 예후는 80명의 호위병과 지휘관을 신당 밖에 배치했다.
2.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죽이고 바알 신당을 부숨(25~28절)
번제가 끝나자, 그들에게 숭배자 모두를 처단하라고 지시하면서 한 사람이라도 도망하게 하는 자는 스스로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군사들은 칼로 바알 숭배자들을 죽여 신당 밖으로 내던졌다. 그 후 바알의 신당으로 가서 아세라 목상들을 불태우고 바알 석상을 헐었다. 또 신당 자체를 헐어 변소를 만들어 그 자리에 신당이 다시 들어설 수 없도록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수많은 바알 숭배자가 바알을 위해 성대한 제사를 드리고 기도를 올렸지만, 바알은 자기 종들은 물론이고 자기 집과 신상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바알을 섬긴 사람들은 바알에게 아무도 구원받지 못하고 바알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는 바알이 참 신이 아니라 한낱 나무 기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바알이 진정한 신이라면 이런 재앙에서 자신의 숭배자들을 구했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섬기는 우상들이 여호와의 심판의 날에 너희를 구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예후는 이스라엘 안에서 바알을 완전히 제거하였다.
3. 예후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과 한계(29~31절)
예후는 아합 가문을 진멸한 공로로 하나님의 축복을 약속받지만, 우상숭배에서 떠나지 못하여 그의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 29~33절은 예후의 불순종(29절), 예후의 순종과 하나님의 축복(30절), 예후의 불순종(31절), 하나님의 심판(32~33절)의 순서로 진행된다. 하나님의 축복 속에 있는 예후의 죄가 드러난다.
예후에 대한 축복과 관련하여 하나님은 그가 아합 왕가를 진멸한 일을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일”이며 “잘했다”라고 평가하셨다(30절). 왜냐하면 그 일은 “하나님의 마음에 계획한 모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하나님은 상급으로 그의 자손 4대가 왕위를 유지할 것이라 예고하셨다. 이 약속대로 예후 이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2세, 스가랴까지 북이스라엘을 통치하게 된다. 또한 예후 왕조는 북이스라엘의 역사 209년(주전 930~722년) 중 약 90년(주전 841~753/2년)을 통치함으로써 가장 장수한 왕조로 남게 된다.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베푸신 은혜였다.
반면 열왕기 저자는 예후의 죄목을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한다(29, 31절). *여로보암의 죄란 왕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여로보암이 단과 벧엘에 만든 금송아지들을 섬긴 죄 그리고 왕이 자신의 불신앙과 잘못된 예배를 통해 백성의 영적, 도덕적 삶에 악영향을 끼친 죄를 가리킨다. 결국 이런 평가는 여호와를 위한 예후의 열심 속에 자신의 왕권과 왕조의 안위를 스스로 지키려는 욕망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바알은 후대에, 외부에서 들어온 신이기에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제거하기 쉬웠지만, 몇 백년 동안 북이스라엘 역사와 함께 이어져 온 잘못된 여호와 종교는 개혁 자체가 불가능해진 상태였다. 결국 이런 잘못된 여호와 종교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버리지 못하여 결국 북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한 번 잘못된 관습이 교회와 공동체 안으로 들어왔을 때, 이것을 없애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예후의 아합 가문 심판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조치로 평가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예후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것과 하나님 마음에 들게 아합 집에 행한 것을 칭찬하신다.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예후가 아합 집에 너무 가혹하게 한 것은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예후가 아합의 가문에 행한 일은 “여호와의 전쟁”이었다. 가나안의 우상과 그 거주민을 진멸하였듯이 예후는 아합 집과 그 우상을 제거하는 진멸 전쟁을 수행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이런 이유로 “한 사람도 남기지 않았다(11, 14, 17, 25절)”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예후의 순종에 대한 축복으로 하나님께서는 예후에게 4대 동안 왕위를 이어갈 수 있다고 약속하신다. 다만 다윗처럼 영원한 왕좌를 약속하지 않으신 것은 여로보암의 죄를 제거하지 않은 한계 때문이다.
4. 예후의 남은 업적과 죽음(32~36절)
예후의 죄를 언급한 후 아람의 침투를 기록한 것은 이 사건이 그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임을 암시적으로 나타낸다. 하나님은 아람의 하사엘로 북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함으로써 그 땅을 “잘라내기” 시작하셨다(32절). 하사엘은 북이스라엘의 요단 동편 지역을 휩쓸어 므낫세, 갓, 르우벤 지파의 기업을 손에 쥐었다. 32절에서 하사엘이 이스라엘의 “모든 영토”를 공격했다는 말은 과장법이지만, 요단 동편의 땅이 이 시기에 아람에게 빼앗긴다. 이후로 회복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요단 동편의 점령은 향후 서쪽 모든 곳을 자유롭게 침투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예후의 남은 사적과 업적은 역사 실록에 기록되었고, 그가 죽자, 아들 여호아하스가 그의 왕위를 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스라엘 안에 바알 잔재를 일거에 척결하기 위한 예후의 치밀하고 지혜로운 계획이 신중하게 진행되었다. 자신이 아합보다 더 열정적인 바알 숭배자인 듯 속이고, 강력한 경고로 모든 바알의 선지자와 제사장을 한데 모으려고 했다. 마침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바알 숭배자들을 한데 모으는 데 성공했고, 일거에 제거한다. 그리고 모든 바알의 산당과 목상들을 없앤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정면 대결이었다면, 예후는 우회적인 방법을 써서 승리한다.
-바알 신전이 비좁을 만큼 바알 숭배자들이 다 모였다.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던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처럼, 하나님 나라 이스라엘을 골고 썩게 만든 주범들이었다. 예후는 그들에게 예복을 입혀 신당으로 들어가게 하고, 여호와의 종과 바알의 종을 결코 같은 곳에 있게 하지 말고 바알의 종들을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한다.
-두 주인을 섬기는 자는 모두 우상숭배자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내 안의 우상을 용납하고, 어느덧 자리 잡은 우상을 파괴하지 않으면 내가 결국 파괴당할 것이다.
-그런데 예후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지는 못했다. 놀랍게도 바알 숭배 청산에 그렇게 열정적이던 그가 금송아지 숭배는 방치한다. 바알 숭배자 제거는 정적 제거가 포함되어 있지만, 금송아지 숭배는 북이스라엘 사람들의 지지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행한 것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백성을 불편하게 하는 일은 하지 않고 정적을 제거하는 일에만 전념했다. 지금 내가 열정적으로 임하는 일의 의도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진정 하나님을 위한 일이 맞을까? 고민하고 고뇌하게 된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말씀을 떠나 내 욕심대로 하는 것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예후가 하나님을 향한 충성의 마음을 나누자, 하나님도 이스라엘 땅을 나누어버리신다. 절반의 순종을 보인 예후에게 하나님도 절반의 축복만 주신다. 그의 왕위는 당장 빼앗지 않으시지만, 4대까지만 이어지게 하실 것이라고 제한 하셨다. 급기야 아람 왕 하사엘을 들어서 요단 동편 땅이 탈취당하게 하셨다.
-온전한 순종과 전적인 충성 없이는 온전한 축복을 기대할 수 없다. 기대해서도 안 된다.
*주님, 예후의 순종이 선택적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순종은 온전하게 해야 함을 더불어 깨우쳐 주셨습니다. 온전한 순종의 걸음이 되기를 결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