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아달랴를 끊어내고 요아스로! [왕하 11:1-21]
 – 2024년 09월 23일
– 2024년 09월 23일 –
유다 아하시야가 재위 1년 만에 예후에 의해 죽었다. 그의 아내 아달랴는 왕의 후손들을 다 죽임으로써 다윗 왕조가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로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가 살아남는다. 요아스가 7세 되었을 때 제사장 여호야다가 반역을 도모하여 아달랴를 제거하고 요아스를 왕으로 세운다. 다윗 왕조가 끊어질 위기에서 벗어난 유다 백성이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언약을 갱신한다.
    
    
    
1. 아달랴가 6년 동안 유다를 다스림(1~3절)
예후가 북이스라엘을 개혁하는 동안 남 유다에게서는 죽은 아하시야를 대신하여 아하시야의 어머니인 아달랴가 일어나 왕의 자손을 모두 멸절하고 자신이 왕으로 등극한다. 왕의 어머니인 태후의 자리가 아니라 직접 왕이 되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아달랴는 남 유다에서 다윗의 씨를 멸절하려고 시도했다. 남 유다가 대대로 다윗 왕가에 의해 다스려졌기에 후손이 하나라도 살아있으면 언제든 아달랴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반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달랴는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 자기 친손자도 죽이는 무정하고 잔인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한다. 요람의 딸이자 아하시야의 누이인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빼돌린 것이다. 요아스는 여호와의 성전에서 숨어 살게 된다. 여호세바는 두 가지 역할을 하는데 먼저, 다윗 왕가의 씨를 보존한 것이고, 그다음으로 성전에서 자란 아이가 아하시야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신원보증인의 역할이었다. 여호와의 성전은 제사장만 출입할 수 있는 지역이 많아서 제사장들이 요아스를 보호하면 아달랴가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아달랴의 반역은 성공하고 그녀는 6년 동안 남 유다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다. 남 유다 역사상 유일한 여왕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아달랴가 남 유다를 어떻게 통치했는지에 관심 없다. 단지 왕이 된 지 6년 후 여호야다의 반란으로 폐위되었다고만 기록한다.
    
    
    
2. 제사장 여호야다의 반란(4~12절)
4~8절은 반란을 준비하는 여호야다의 모습을 묘사한다. 7년째 되던 해 여호야다는 요아스를 앞세워 반란을 준비한다. 가리 사람과 호위병의 백부장들을 불러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 반란을 일으키기로 약속하고 여호와 앞에 맹세하게 한 뒤 요아스 왕자를 만나게 한다. 여호야다는 반란을 일으킬 세력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으로 옮길지 명령한다. 당시 요아스의 나이는 7살에 불과하기에 여호야다가 대리청정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호야다는 안식일을 반역의 날짜로 잡고 치밀하게 준비해 나간다. 특히 8절은 왕을 호위하는 것에 대하여 모두 무장하고 방어선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무조건 죽이라고 명령한다.
    
여호야다의 명령으로 백부장은 안식일에 근무하는 부대와 안식일에 쉬는 부대를 모두 데리고 제사장에게 온다. 여호야다는 성전에 있는 다윗의 창과 방패를 백부장들에게 준다. 성전에 있는 다윗의 창과 방패는 전쟁을 위한 무기라기 보다는 의전용으로 왕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했을 것이다. 이렇게 모인 호위병이 성전의 오른쪽부터 왼쪽까지 제단과 성전 곁에 섰다고 묘사하는데, 이는 성전을 완전히 둘러쌌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반란을 지지하는 세력이 많았음도 확인시켜 준다.
군사적 배치를 마친 여호야다는 요아스 왕자를 데리고 나와 머리에 왕관을 씌우고 왕권을 상징하는 조서를 주고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운다. 성전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왕을 축복하며 요아스를 왕으로 인정한다.
    
    
    
3. 아달랴를 죽인 여호야다(13~16절)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던 아달랴는 호위병들과 백성들이 왕을 축복하는 소리와 환호성을 듣고 급히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백성들에게 간다. 14절은 아달랴가 성전에 들어갔을 때 본 광경을 묘사한 것이다. 왕은 규례대로 단 위에 서 있었고 장관들과 나팔수들은 왕 옆에서 왕을 호위하고 있었으며, 그 땅의 모든 백성은 즐거워하고 있었다.
    
아달랴는, 이 광경을 보자 옷을 찢으며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 하고 외치면서 이들이 불법적인 행동을 했다고 격하게 표현한다. 어찌 됐든 아합의 아들과 딸이 장악한 정권을 하나님께서는 불법으로 규정하시고 반란을 통해 이들을 모두 왕좌에서 끌어내리신다. 이런 아달랴의 모습을 본 여호야다는 그녀가 왕권에 승복하지 않을 것을 알고 그녀와 그녀를 따르는 무리를 성전 밖으로 몰아내 죽이라고 명령한다. 성전은 거룩한 곳이기에 시체와 피로 부정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성전에서 쫓겨난 아달랴와 호위 부대는 왕궁으로 가는 길에 여호야다의 호위 부대를 만나 죽임을 당한다. 아달랴도 요람처럼 왕궁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죽임을 당한다.
    
    
    
4. 유다를 여호와께 돌아오게 한 여호야다(17~21절)
요아스가 왕이 된 후 여호야다는 왕과 백성들이 여호와와 언약을 맺게 하여 여호와의 백성으로 돌아오게 했고, 백성과 왕 사이에도 언약을 세워 요아스를 모든 백성이 인정하는 명실상부한 유다의 왕으로 공인받게 하였다.
    
여호와의 백성이 된 유다 사람들은 바알 신당과 제단과 우상을 파괴하고,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여 유다 땅에서 바알 숭배를 완전히 제거하였다. 현시점에서 7년 전에 북이스라엘에서 예후가 행한 것을 남 유다는 이제야 행한 것이다. 명실공히 아달랴의 죽음으로 남 유다에서 바알 숭배가 사라지게 된다. 아달랴의 죽음과 요아스의 등극으로 남 유다에 평안이 찾아왔다.
    
    
    
나는?
-아달랴의 잔혹한 탐욕이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유다)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아달랴는 남편(여호람)과 아들(아하시야)이 다스릴 때도 그들을 앞세워 유다 왕궁에 바알 숭배를 조장했다(왕하 8:17~18, 26~27절). 그런데 아들이 예후에게 죽임을 당하자, 왕권을 장악하고 본격적으로 바알 신앙을 뿌리내리게 하려고 다윗 왕조 제거에 나섰다. 그러나 아달랴의 잘못된 야망과 거지 신앙은 하나님의 특별한 약속(삼하 7:11~16)이 있는 다윗 왕조의 맥을 결코 끊을 수 없었다. *마찬가지다. 개인의 탐욕이 그럴듯한 하나님 나라 사명으로 포장된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항상 말씀으로 내면의 깊은 곳까지 점검받아야 한다.
 
-누구에 의해 영향을 받느냐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누가 지도력을 갖느냐는 한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음을 이세벨과 아달랴의 모습을 보면 분명히 깨달을 수 있다. 작은 공동체이든 큰 나라이든 지도자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하나님이 중심인 지도자가 하나님의 공동체를 건강하게 이끌 수 있다. 나의 중심에 늘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서 있기를 추구하고 또 추구해야 할 것이다. 나라와 민족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기도가 절로 되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지도자의 어리석음이 근심이 된지 오래다.
    
-왕족이 진멸되는 위기 앞에서 여호야다는 요아스를 구해내어 아달랴의 통치 6년 동안 성전 제사장의 침실에 숨긴다. 자신의 목숨보다 다윗 왕조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선택한 믿음의 행동이었다. 어떤 선택의 상황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서야 한다. 우직하게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여호야다는 놀라운 리더십을 발휘한다. 백부장들에게 요아스의 생존 사실을 알리고 그들과 언약을 맺어 요아스를 왕으로 세울 전략을 주도면밀하게 마련한다. 철통같은 경호 속에 요아스를 왕의 자리에 앉게 한다. 제사장의 헌신과 시기 분별, 백부장들의 협력, 지혜로운 전략, 과감한 결행 등이 어우러져 다 꺼져버린 줄 알았던 하나님 나라가 장엄한 횃불로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앞뒤 안 가리는 열정이기보다, 때를 기다리는 마음과 철저한 준비, 용기 있는 실천력, 공동체와 아름다운 협력으로 하나님 나라는 든든히 서 간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요아스를 유다의 왕으로 세우기 위해 백부장들을 불러 여호와의 전에서 언약을 세운다. 이는 백부장들의 순수한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찬가지다. 공동체에 주어진 공동의 사명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같은 마음으로 동역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살펴야 할 것이다.
    
-여호야다는 어려운 시기에 자기 아내 여호세바와 더불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귀하게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 뜻을 이루어 가는 것에 마음과 열정을 모아야 할 것이다.
    
-아달랴는 “말”에 밟혀 죽은 어미 이세벨처럼, 왕궁의 ‘말’이 달리는 길에서 죽임을 당한다. 두 나라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궁 안까지 바알 숭배를 가져왔던 두 여인은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를 외치며 죽는다. 그 외침은 하나님을 반역하도록 이스라엘과 유다를 이끈 그들의 생을 요약한 말이었다. 그들의 인생은 화려하기 그지없었지만, 하나님께는 그저 반역한 인생일 뿐이었다.
    
-요아스는 아달랴가 들여온 바알 숭배의 근거지를 철저히 파괴하고 바알 제사장을 죽인다. 그때 온 백성에게 즐거움과 평안이 찾아왔다. 참 희락과 샬롬의 길은 우상숭배가 아니라 철저한 우상파괴와 온전한 말씀 순종에서 온다.
 
*요아스를 숨겨 기른 여호세바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이자, 요아스의 고모이다. 이렇게 다윗의 계보는 이어졌다. 하나님의 섭리가 참으로 놀랍다. 그녀에 의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의 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여호세바가 아니었다면 큰일날 뻔 했다.
 
 
    
    
*주님, 사람이 끊을 수 없는 하나님 나라임을 봅니다. 아달랴가 잔혹하게 끝장낸 듯 보이나 하나님의 기막힌 섭리는 여호야다를 통해 다윗의 후손을 성전에서 숨겨 키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이어가는 것을 믿습니다.
*주님, 바알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회복하기 위해 제사장, 백부장, 백성이 마음을 모읍니다. 그리고 바알을 끊어냅니다. 오늘 나에게도 끊어야 할 바알과 같은 신앙이 있다면 끊어 버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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