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가르침이 있는 동안 여호와의 눈에 정직하게 행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성전 보수 공사였다. 요아스는 성전 수리를 결정하면서 새로운 방식을 도입한다. 이 결단과 함께 백성의 순종과 자발적인 헌금, 지도자들과 제사장들의 협력, 감독자들의 투명한 공정처리, 전문 인력의 수고가 어우러져 공사가 완료될 수 있었다.
1. 요아스 등극 공식과 평가(1~3절)
요아스는 북이스라엘 예후 7년에 유다의 왕이 되어 40년간 통치한다. 40년간의 통치는 매우 긴 기간으로 다윗, 솔로몬, 여로보암 2세가 40년 정도 통치했다. 요아스의 어머니 시비아는 브엘세바 사람이다.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가르치는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올바르게 행하였다. 이는 여호야다가 요아스의 스승이자 보호자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아쉬운 것은 산당을 제거하지 않아서 백성들은 계속해서 산당에서 제사하고 분향했다.
여호와께 제사 드리는 것은 오직 여호와께서 지정하신 성전과 지방 성소에서만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산당은 주로 우상에게 제사하고 분향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열왕기 저자는 이런 이유로 산당에 대해 부정적으로 기록했다.
2. 성전을 수리하라는 요아스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제사장들(4~8절)
요아스는 왕이 된 후 성전 수리 공사를 주도한다. 여호람과 아하시야 왕은 아합 왕가의 영향으로 여호와 신앙에서 멀어졌고, 대신 바알 신당을 짓고 제단을 만드는 등 바알 숭배에 열심을 내었다. 그 결과 예루살렘 성전은 오랜 시간 동안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다. 이에 여호와 신앙에 열심을 내던 요아스는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하여 예배를 회복하려고 했다. 이는 11장부터 이루어진 유다 종교개혁의 절정이자 마지막 과제였다.
본문에서 성전에 거룩하게 드리는 모든 은, 즉 헌금의 종류가 등장하는데, ‘사람이 통용하는 은’은 출애굽기 30:12에서 생명의 속전으로 언급된 성전세이고, ‘몸값으로 드리는 은’은 레위기 27:2에서 언급된 사람의 값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한 값을 가리킨다. 또, ‘마음에서 우러나와 드리는 은’이 있는데 이것은 5절에서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사람에게서 받으라고 기록한다. ‘아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통상적으로 재무 담당관을 가리키는 관용구이다.
요아스는 성전에서 걷는 각종 세금과 헌금을 받아서 성전을 수리하라고 제사장들에게 명령했다. 하지만 제사장들은 요아스가 재위 23년이 되도록 이를 실행하지 않는다. 요아스가 언제 이 명령을 내렸는지 알 수 없지만, 상당 기간을 요아스의 명령에 따르지 않은 것이다.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짐작하기로 제사장들이 자신들의 몫을 챙기느라 성전 수리비가 남겨지지 않은 듯하다. 본래 성전세의 목적은 제사와 성전 관리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용도보다는 제사장들이 개인적으로 유용한 듯하다.
제사장들에게 맡긴 성전 수리가 지지부진하다, 왕은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불러 성전 수리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질책하고 제사장들에게 재무 담당관에게서 돈을 받지 말라고 명령한다. 이는 제사장들이 성전 수입에 손대는 것을 금지한다. 요아스가 이런 명령을 내릴 정도라면 그만큼 왕권도 강화되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요아스가 그만큼 성전 수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중요한 일로 여기고 있었음도 짐작하게 한다.
왕의 명령을 들은 제사장들은 성전 수입에 대한 권리도, 성전 수리에 대한 책임도 갖지 않게 되었다. 이는 제사장의 권한은 점점 약화하고 왕의 권력은 점점 강화되고 있었다.
3. 성전에 드린 은으로 성전을 수리함(9~16절)
왕이 결정하자 여호야다는 상자를 가져다가 뚜껑에 구멍을 뚫어 제단 곁에 둔다. 성전으로 가져오는 모든 돈을 문 지키는 제사장들이 받아 그 상자에 다 집어넣었다. 돈이 모이면 왕의 서기와 대제사장이 성전에서 받은 그대로 자루에 넣어 묶은 뒤 저울에 달아 계산하였다. 그 돈을 그대로 성전 관리하는 사람들에게 주면, 그가 성전을 수리하는 목수들과 건축자들과 미장이와 석수에게 주었고 또 필요한 물품들을 사는 데 사용하였다.
11~13절은 성전 수리를 위해 모인 돈이 얼마나 꼼꼼하고 적절하게 지출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성전을 수리하는 데 많은 돈과 일꾼들이 필요했다는 것을 말해주며 동시에 성전이 오랫동안 방치되어 수리할 곳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13~14절은 성전의 돈은 수리 이외의 용도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 15절은 성전 수리를 맡은 관원에 대한 평가가 등장한다. 그는 매우 믿을 만하여 맡긴 돈에 대해선 전혀 신경 쓸 일이 없었다. 이런 모습은 성전 수리 비용을 주었지만, 자신들이 사용하느라 성전 수리를 하지 못한 제사장들의 불성실함과 대조를 이룬다.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여호와를 잘 섬기는 성실한 인물이었지만, 제사장들은 여호야다만큼 여호와를 섬기는 데 성실하지 않았고 나태했던 것으로 보인다. 제사장들의 기강이 이토록 해이해져 있었기에 요아스가 대제사장을 직접 불러 이들이 수리하는 것을 못 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맡긴 것이다. 이는 또한 요아스와 여호야다의 종교개혁이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제사장들은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회복되면서 점점 재물이 늘고 수입도 많아지고 권위도 회복되자 그 번영의 열매에 정작 자신들이 섬겨야 할 여호와께는 소홀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6절은 제사장의 몫을 언급하는데, 요아스는 원래 제사장의 몫인 속죄제와 속건제의 은을 제사장의 몫으로 돌렸다. 제사장들이 지나치게 재물을 취하는 것을 막고, 그 대신 율법이 정하는 적절한 몫을 갖게 한 것이다.
4. 아람 왕 하사엘에게 공물을 바친 요아스와 그의 죽음(17~21절)
요아스 때 아람 왕 하사엘이 가드를 점령하고 예루살렘까지 쳐들어오려고 하였다. 이 시기에 앗수르가 아직 남쪽까지 힘을 발휘하지 않았기에 아람의 국력이 가장 강성하였다. 따라서 요아스는 하사엘이 예루살렘으로 오지 못하도록 하사엘에게 공물을 바쳤고, 하사엘은 그 공물을 받고 돌아갔다. 이때 요아스가 하사엘에게 바친 공물은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 여호와의 성물이었다.
저자는 유다 왕 여호사밧 때부터 요아스 때까지 모아두었던 성물과 금들을 모두 하사엘에게 주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당시 유다의 상황이 매우 절박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아쉬운 것은 이런 절박한 위기임에도 요아스는 여호와께 부르짖고 도움을 구하기보다는 여호와의 전의 재물을 내주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는 점이다.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가르침을 받을 때는 여호와 보시기에 바르게 살았으나, 왕권이 강화되고, 여호야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면서부터는 여호와께 대한 신앙도 약해졌다.
19~21절은 요아스의 죽음을 기록한다. 결국 요아스는 자기 심복들의 반란으로 밀로 궁에서 살해당한다. 그가 왜 심복들의 반란으로 죽임을 당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말년에 여호와를 온전히 의지하지 않고 여호와의 성전 기명을 하사엘에게 갖다 바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요아스는 반란자의 손에서 살아남아 왕이 되었지만, 결국 반란자의 손에 죽는 기구한 삶을 산 것이다. 요아스의 이러한 죽음은 유다의 종교개혁에 한계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오랜 우상숭배와 그릇된 여호와 경배에 대해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성전을 수리했지만, 산당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를 보면 남 유다 땅에 이교적인 것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었으며, 그것이 결정적인 순간에 영향을 끼쳐 여호와를 의지하기보다 돈과 권력이라는 세상의 방법을 의지하게 만든 것이다.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위에 올라 다윗 왕권은 계속 이어진다. 요아스의 온전치 못한 신앙의 길임에도 하나님의 자비는 그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요아스의 생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으나, 온전하지는 못했다. 처음에는 잘했지만, 끝이 좋지 못했다. “용두사미(龍頭蛇尾)”였다.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는 동안”은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들은 제거하지 못했다. 여호야다가 죽자, 그의 아들 스가랴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도리어 그를 죽인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배은망덕(背恩忘德)을 자행했다. 그래서일까? 요아스 역시 그의 두 심복의 배신으로 최후를 마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때 하나님의 길에서도 떠나게 된다. *내가 “주인”이 되면 하나님은 나의 “주변”이 된다.
-30세가 된 요아스는 성전 수리 명령에 순종하지 않은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준엄하게 꾸짖는다. 자신을 왕으로 세워준 사람이고 교훈을 전해준 스승이었지만,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잘못을 방조하지는 않았다. 성전 수리가 바로 진행될 수 있도록 재정 수급과 집행 절차를 바꾼다. 성전 헌물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제사장의 몫만은 따로 배려해 주었다. 이에 제사장들은 순종하였고 따로 회계할 필요가 없이 투명하고 성실하게 공사가 진행되었다.
-위기 때 드러난 연약하기만 한 신앙을 보게 된다. 하사엘의 침략을 받은 요아스는 하나님의 힘이 아닌 금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남 유다의 위기가 하나님을 떠난 요아스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위기의 순간은 우리의 현주소를 알게 해주는 기회이다. 요아스의 이런 모습은 그에게 하나님이 믿을 만한 대상이었으나 절대적으로 신뢰할 만한 대상은 아니었음을 드러낸다. 그의 믿음은 시작만 좋을 뿐 끝까지 지켜낸 신앙은 아니었다.
*초기의 요아스는 삶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식하며 살았다. 그는 7세에 왕이 되어 40년을 다스렸는데,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을 동안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 나는 믿음의 선배들의 충고를 열린 마음으로 잘 받아들이고 있을까? 무엇보다 말씀의 교훈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며 살고 있을까?
*요아스는 바알 신앙에 빠진 백성들의 여호와 신앙을 회복시키기 위해 먼저 성전을 수리한다(4~5절). 이를 위해 성전에 들어오는 모든 헌금, 개인이 바치는 의무 헌금과 감사헌금을 성전을 고치는 데 사용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놀라우신 구속의 은혜로 인해 성령의 전이 되었다. 그렇게 살아온 지 꽤 되었다. 내 마음의 성전은 수리하지 않아도 될까? 보수해야 할 부분은 어디일까? *무엇보다 주님 나라를 위해 우리 공동체의 재물은 건강하게 사용되고 있을까?
*초기 성전 수리는 무려 23년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었다(6~8절). 제사장들이 백성에게서 돈을 받지도 않고 성전 부서진 곳을 고치지도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려다가 여호와 신앙을 강화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사사로운 이익이나, 전통적인 입장 때문에 공동체의 개혁과 성숙을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나의 나태함이나 직무 유기가 하나님 나라의 진전을 훼방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재정을 투명하게 관리했다(9~15절). 재정에 대하여 투명하고 올바르게 집행하는 것이 성전을 수리하는데 탄력을 불어넣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재정을 이처럼 감당해야 할 것이다. 임의로 용도를 변경한다든지, 정직하지 못한 집행이라든지, 불법에 편승하는 재정 운용을 늘 경계해야 할 것이다.
*아람 왕 하사엘의 침공을 역대하 24장에서는 요아스가 바알을 섬긴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해석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도 회개하기는커녕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여 하나님을 기만했다.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 나라 백성은 가장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나의 걸음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돌아보아야 한다. 그래야 회복의 은총을 기대할 수 있다.
*요아스는 예루살렘 성 가장 깊숙한 요새 중 하나인 밀로 궁에서 자신의 심복들에게 살해당한다. 세상의 어떤 요새도 나의 죄를 가려 주거나 영원히 방어해 주지 못한다. 끝까지 하나님만 요새로 삼는 것이 곧 진정한 평안 가운데 거하게 한다.
*주님, 용두사미, 배은망덕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지, 요아스가 그 길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믿되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되 신실하고 온전하게 살아내며 나아가겠습니다.
*주님, 위기를 직면할수록 하나님만 바랍니다. 재물이나 사람이 먼저가 되지 않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