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진정한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 오직 여호와 하나님 [왕하 13:14-25]
 – 2024년 09월 26일
– 2024년 09월 26일 –

북이스라엘의 요아스 왕 시대에 엘리사가 죽음을 맞이한다. 엘리사는 제자를 예후에게 보내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운 사건 이후 전혀 등장하지 않고 있었다. 그 이후 이곳에서 엘리사의 죽음 이야기에 나온다. 이 시기는 엘리사가 예후를 왕으로 세운 지 대략 50년도 더 지난 때다.

 

 

  1. 요아스에게 활을 쏘라고 한 엘리사(14~19절)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세운 후 등장하지 않았던 엘리사가 50년이 지난 후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갑자기 등장한다. 예후가 왕이 된 이후 엘리사의 남은 행적은 열왕기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런데 엘리사가 죽을병이 든 모습으로 등장했다.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던 요아스는 직접 그에게 문병하러 간다. 이는 매우 예외적인 상황으로 이스라엘에서 선지자는 왕보다 신분이 낮음에도 그를 찾아갔기 때문이다. 왕이 선지자를 “내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엘리사와 요아스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음을 알 수 있다. 요아스는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말하며 그가 엘리사를 상당히 의지하며 도움을 받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미 열왕기하 2:12에서 엘리야가 승천하는 모습을 보면서 엘리사가 외쳤던 말과 동일하다. 일반적으로 “아버지여 아버지여”와 “병거와 마병”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보호자라는 의미로 엘리사가 이스라엘의 보호자로서 적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지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특히 7절에서 이스라엘은 아람과의 전쟁 후에 군사가 얼마 남지 않은 열악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존재는 더욱 중요했을 것이다. 그의 죽음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결정적인 전력을 잃는 일이었을 것이다. 엘리사의 죽음은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마지막 방어벽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다.

 

자신을 향해 절박한 심정으로 우는 요아스에 엘리사는 마지막 선물을 한다. 엘리사는 두 가지 상징적 행위를 요아스에 시킨다. 먼저 활과 화살을 가져오라고 한 뒤 요아스 왕에게 활을 잡으라고 한다. 요아스는 이해할 수 없는 엘리사의 요구를 그대로 순종한다. 엘리사는 활을 잡은 요아스의 손을 왕의 손 위에 얹고 동쪽을 향해 활을 쏘라고 명령한다. 왕이 활을 쏘자, 엘리사는 활쏘기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아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여호와의 구원의 화살이라고 하며, 왕이 아벡을 완전히 쳐서 점령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해 준다. 그런 후에 엘리사는 다시 요아스에게 화살을 잡으라고 명령하고, 그가 화살을 잡자, 땅을 치라고 한다. 왕은 화살로 땅을 세 번 친다. 엘리사가 명령한 대로 한 것이다. 이는 요아스가 엘리사의 권위를 그만큼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요아스가 땅을 세 번만 치자 엘리사는 매우 강하게 화를 내면서 대여섯 번 정도 쳤으면 아람을 완전히 멸망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이렇게 화를 낸 것은 요아스의 “믿음 없음” 때문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아람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앞둔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로 아람을 완전히 멸망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요아스는 이 소중한 기회를 소심함 때문에 날린 것이다. 엘리사는 분명하게 활과 화살이 아람과의 전쟁에서의 승리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려주었기에, 화살을 치는 행동의 의미도 연결하여 이해했어야 했다. 원문은 아람을 “치다”라는 단어와 땅을 “치다”라는 단어는 모두 같은 “나카”이다.

 

아쉽게도 요아스는 화살로 땅을 치라는 소리를 듣고 세 번만 친다. 요아스가 엘리사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았다. 만약 믿었다면 아람을 멸망시킬 만큼 격렬하게 쳤을 것이다. 이런 믿음 없음 때문에 위대한 선지자 엘리사가 생존해 있는데도 아람에게 약탈당하고 점령당한 것이다. 왕은 엘리사가 하늘의 군대로 불릴 수 있는 권능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믿지 못했다. 그래서 아람과의 전쟁 속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거나 엘리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하사엘이 왕으로 있는 아람은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왕들은 그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이들은 하사엘 왕도 여호와께서 세우셨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왕을 세우시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며, 나라를 일으키기도 하시고 멸하기도 하시는 역사의 주인이심을 정작 이스라엘은 믿지 못한 것이다.

 

 

 

  1. 엘리사의 죽음(20~21절)

엘리사는 아쉬움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그가 살았던 요단 근처에 매장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엘리사가 죽은 뒤 새해가 되자 모압에서 도적 떼가 그곳을 습격한다. 이스라엘의 새해는 봄(3~4월 정도)인데, 이 시기는 춘궁기이기 때문에 양식을 구하기 위해 이웃 나라의 도시들을 습격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엘리사가 묻힌 곳도 모압의 도적 떼가 습격해 왔고, 그때 마침 장례를 치르기 위해 시신을 메고 가던 사람들이 놀라 시신을 급한 대로 엘리사의 묘실에 던져 넣었다.

 

그런데 시신이 엘리사의 뼈에 닿자마자 살아나고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 엘리사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이적을 베풀었는데, 죽어서도 사람을 살리는 능력을 보여 준 것이다. 엘리사는 죽었지만, 엘리사를 통해 역사하시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그의 권능은 여전히 놀랍다는 것을 이 사건을 통해 보여 준다. 여호와께서 아직도 이스라엘에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희망의 메시지였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1. 이스라엘의 성읍들을 회복한 요아스(22~25절)

본문은 아람이 아무리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멸망시키려고 애를 써도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수 없다는 메시지를 드러낸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강하거나 아람이 약해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세우신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여전히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 돌보시며,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자신의 신학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스라엘의 왕들이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맹세한 시내산 언약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였으나 하나님은 시내산 언약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하신 무조건적인 선택과 은혜의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은혜를 베풀고 계셨다. 저자는 시내산 언약이 아닌 더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언약인 아브라함의 언약에 기대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있다. 이는 저자가 바라볼 때 시내산 언약만으로 판단하면 현재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버림받아 심판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24절은 아람 왕 하사엘이 죽고 벤하닷이 왕이 되면서 아람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변화가 찾아온 것을 드러낸다. 25절에서는 요아스가 벤하닷의 손에서 성읍을 다시 빼앗아 왔다. 엘리사의 말대로 세 번 아람을 쳐서 이기고 이스라엘 성읍을 회복한 것이다. 엘리사의 예언이 정확하게 성취되었는데, 이는 아직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계신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이런 은혜는 한계 없는 은혜가 아니다. 이스라엘이 그 은혜를 소홀히 여기면서 점점 그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나는?

-이스라엘의 활과 화살을 통해 보여 주신 하나님의 예언은 엘리사가 죽더라도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의지한다면 아람도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궁극의 활과 화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엘리사가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능력이 아니라 그가 의지한 하나님의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아스는 화살이 하나님의 승리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면서도 화살로 땅을 세 번 치는데 그친다. 하나님이 승리를 약속하셨지만, 절반의 기대와 믿음에 그친 왕 때문에 이스라엘은 미완의 승리만 누릴 것이다. 우리 삶의 한계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그만큼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찾아온다.

 

-이스라엘의 생명과 희망은 오직 하나님에게 있다. 엘리사는 죽었으나 그의 뼈에 닿은 시체를 살아나게 하심으로써 그가 한평생 신뢰해 온 생명의 하나님이 여전히 살아계심을 증명하였다. 엘리야의 승천을 통해서 보이신 생명의 능력을 엘리사의 시체를 통해서도 보여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기억하시어 죄에 물든 이스라엘이 멸망하지 못하게 보호하셨다. 늘 이스라엘에게 희망을 남겨두셨다. 그 “여지” 때문에 우리는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갈 엄두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엘리사가 죽을병이 들자, 요아스 왕은 그를 찾아가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의 눈에 비친 엘리사는 엘리야처럼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 마병대의 위력이 약화된 중에도 하늘의 병거와 마병을 의지하여 이스라엘을 지켜낸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의 인생 끝에 사람들이 나의 위대함보다 내 뒤에 계신 하나님의 위대함을 찬양하게 하는 삶이어야 하리라.

 

*믿음이 있든 없든 모든 인생이 죽음의 문을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람도 병이 들어 죽는다. 그런데 죽어서도 희생하는 사람이 있다. 믿음으로 생명의 주님께 맞닿아 있는 자이다.

 

*엘리사가 요아스에게 승리의 화살로 땅을 치라고 하자 왕은 세 번 치고 그쳤다. 요아스는 계속되는 아람의 공격에 시달린 나머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열정과 기대가 꺾여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나의 반응은 어떤가?

 

*죽음과 패배, 좌절만 있는 곳에서 새 생명의 역사를 시작하신다. 사람들이 엘리사의 무덤에 시체를 던졌는데,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다시 살아나 제 발로 일어섰다. 때가 되면 엘리사보다 더 큰 이가 오실 것인데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으로써 사망 자체를 멸망시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보여 주는 모습이 아닌가!

 

*진정한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요아스는 엘리사만 바라보았기에 그의 죽음이 절망이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엘리사가 그 땅에 없어도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을 기억하셔서 돌보시는 하나님이시다.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특정 사람에게 함몰된 마음과 시선으로 좌절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병거와 마병이 되어주셔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주님, 나의 영원하고 진정한 병거와 마병(보호자) 되시는 하나님만 더욱 바라보겠습니다. 의지하겠습니다.

*주님, 믿음 없이 행하는 요아스의 모습이 저의 모습이 아닌지 돌아봅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여주심을 보고, 역사하심의 증거도 있음에도, 믿음으로 내리치지 못하는 요아스의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나의 믿음 없음을 용서하여 주소서.

*주님, 진정한 생명의 주권자이고 사망을 이시긴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케 하는 증거가 여기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생명의 주권자를 더욱 의지하고 신뢰하며 사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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