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누가 지혜자와 같은가? [전 8:1-8]
 – 2022년 12월 11일
– 2022년 12월 11일 –
전 8:1-8 누가 지혜자와 같은가?
 
코헬렛은 “누가 지혜자와 같은가?”, “누가 사물의 이치를 깨달았는가?”라는 질문으로 지금까지의 담론들을 정리한다. 누가 참 지혜자인가를 묻는 의도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예들을 살피며 주저하지 않고 “사물의 이치”를 깨달은 자가 참 지혜자임을 말한다.
 
 
1.질문(1절)
지금까지 코헬렛은 여러 차례 지혜의 한계를 지적했었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사물의 이치”라는 어휘를 사용했는데, “이치(페쉐르)”라는 단어의 사전적인 뜻은 “해석(interpretation)” 이다. 꿈과 수수께끼를 해석하고 판단하며, 그것을 읽고 해석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지혜자 집단이었던 코헬렛은 아름다운 말, 진리의 말들을 수집하고 기록하여 지어내는 사람으로서 논리에 합당한 단어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사용했을 것이다.
 
코헬렛은 자신이 지혜자임에도 사물의 이치를 온전하게 깨닫지 못함을 탄식하고 독자들도 이에 동참하도록 의미심장한 질문을 건넨다. “누가 지혜로운 사람인가? 누가 사물의 이치를 깨달았는가?” 
 
*고민해봐야 할 것은 사물의 이치는 세상 물정을 꿰뚫는 것이라기 보다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행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코헬렛이 생각하는 지혜는 제갈공명보다는 스데반 집사님이라는 것이다.
 
 
2 .빛을 발하는 지혜(1절)
코헬렛은 지혜가 주는 유익과 가치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데, 사람의 지혜는 얼굴을 빛나게 하고 완고한 얼굴을 바꾸어 놓는 힘이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람이 가진 기술과 지혜의 한계를 이야기 하지만(7:29), 지혜는 결코 버릴 수 없는 좋은 것이다. 지혜를 소유한 자는 마치 하나님처럼 은혜롭고 유익하다. 얼굴을 빛나게 한다는 지혜는 하나님과 관계된 다른 성경 구절들을 떠올리게 한다.
 
시편 31:16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시편 67:1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신다
 
하나님이 그의 얼굴을 백성에게 비추시듯 사람의 지혜가 그의 얼굴을 빛나게 한다. “얼굴을 빛나게 한다”는 일종의 관용구인데,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와 진정한 복지”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굳은 얼굴, 사나운 얼굴”을 바꿔 놓는 지혜의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선물이다.
 
 
3.권력과 세상 속에서 지혜의 한계(2-8절)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어도 권력자와 상급자 앞에서는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빠진다. 지혜자는 그의 지혜 때문에 권력자나 상급자의 실수가 더 잘 보일 것이다. 이것이 괴로움인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권력자에게 권위를 주셨다고 받아들이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어떤 환경속에서도 주어진 지혜를 사용하여 꿋꿋하게 일을 감당해 낼 수도 있다.
 
또, 틀린 것을 거절하는 것이나 거절하는 때와 방법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치기어린 순수한 용기가 늘 지혜로움은 아니다. 또 신중하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 비겁함도 아니다.
 
코헬렛은 때와 방법을 분별할 만큼 지혜로운 사람이어도 죽음 외에 어느 것도 확실하게 판단할 수 없는 일들이 다분하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인간의 지혜의 한계이다. 지혜를 아무리 출중하게 가지고 있어도 자기가 원하는 만큼 생명을 연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신의 죽음도 맘대로 할 수 없고, 전쟁 속에서 자신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다.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도 물거품일 수 있다. 이것이 “해 아래에서” 지혜의 한계이다.
 
*지도자의 한계가 분명함을 안다면 그를 바라보는 내 자신의 한계도 분명하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지혜자의 특성은 모든 행동이 옳고 그른 때를 분별할 수 있으므로 “때와 순서”를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악을 피할 수 있는 때를 미리부터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것을 왕의 신하가 왕의 권력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예로 들며 설명한다(1-5절). 지혜자는 때와 순서를 미리 알고 행동하지만 그것이 다 옳은 지는 분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때에 따라 무기력하게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발한 지혜가 악재로 되돌아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 미래를 모두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어쩔 수 없는 외적 요인으로 인해 대처불가능한 무기력한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이러한데 하물며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어떻겠는가?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은 완벽하지만 이를 삶에 적용하는 인생은 완벽에 미치지 못하고 모순되고 불안하다는 한계를 자신의 과거의 삶에 비추어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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