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예루살렘으로 가는 위로와 격려의 여정 [행 20:1-16]
 – 2024년 06월 13일
– 2024년 06월 13일 –
에베소에서의 3년 사역을 매듭짓고 마게도냐로 향한다. 거기서 교회들을 격려하고 고린도로 내려가 석 달을 머문 후, 2차 때처럼 배를 타고 곧바로 안디옥으로 귀환하려 했으나, 유대인들의 음모로 다시 마게도냐로 올라간다. 그리고 드로아로 건너가 일주일을 머문 후 오순절 내에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일정으로 신속하게 이동한다. 이 단락은 선교사인 바울의 우선권이 무엇이며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선교를 이끌어 가시는지 보여주고 있다.
    
    
    
1. 제자들을 격려하는 바울(1~3절)
바울의 선교 사역의 특징을 들라 하면, 단연코 “격려”이다. 어려움 중에서도 예수님을 따르는 신자들을 수시로 권면하고 격려하였다. “권하다(파라칼레오_1, 2절)”로 번역된 단어는 “권하다, 훈계하다”라는 뜻과 함께 “격려하다”라는 의미도 있다. 바울은 에베소의 소요가 끝나자, 두려움을 느꼈을 제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한다(1절). 그리고 19:20-21에서 밝힌 대로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이 여정의 특징이 “격려(권함)”이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마게도냐에 있는 교회,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등의 교회를 방문하여 긴 설교로 제자들을 격려한다. 그뿐만 아니라 헬라 지역에 석 달을 머물렀는데, 아덴, 겐그레아, 고린도에 교회가 있었다.
    
또한 바울은 이 지역을 순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사도행전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이 시기 마게도냐에서 바울은 고린도후서를 작성했다. 또 헬라의 고린도에서는 이 기간에 로마서를 기록하여 보냈다(롬 16:1, 23). 바울은 언제나 자신의 안전이 아닌 교회와 성도의 굳건함에 관심을 두고 이 일을 위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2.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사람들(4~6절)
‘누가’는 바울과 함께하는 선교팀에 대해 강조했다. 본문에서는 아시아까지 선교에 동참한 일곱 명의 명단이 소개된다(4절). 이들은 바울이 전도한 지역의 교회를 대표하고, 예루살렘 교회에 보낼 헌금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고전 16:3~4; 롬 15:27). 5절의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바울의 일행에게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누가’는 바울을 빌립보에서 만났고, 빌립보의 유대계 신자들과 무교절과 유월절(주후 57년 4월 7일)을 보내게 된다. 그 후 바울을 포함한 ‘우리’는 빌립보를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도착하여 이미 와 있던 선교팀을 만난다. “우리”가 바울을 기다리기도 하고, 바울이 “우리” 안에 포함되기도 한다(5~6절, 14절). ‘누가’는 의도적으로 이 표현을 사용하며 선교가 개인들이 아닌 ‘팀’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리고 있다. 그래서 선교팀이 언제 어디서 어떤 동료들과 합류하게 되는지 매우 상세하게 서술한다.
    
하나님은 바울 한 개인의 선교가 아닌 “우리”를 통한 선교를 이끌어 가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해서 선교와 목회를 가능하게 하신다.
    
    
    
3. 드로아에서의 강론과 유두고가 살아난 사건(7~12절).
바울의 선교팀은 드로아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 “우리”는 주간의 첫날, 곧 주일(일요일)에 떡을 떼려고 모였다. 이 모임은 정기적으로 열리는 주일 모임이었다. 당시는 일요일이 공휴일이 아니었기에 신자들은 낮에 일하고 밤에 등불을 들고 모였다. 식사로 모임은 시작되었고, 찬양과 기도와 가르침으로 이어졌다. 선교팀이 다음 날, 곧 동이 틀 때 출발해야 하므로 바울은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의 강론이 자정을 넘겼다.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이 많아서 유두고는 창문에 걸터앉아 바울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 많은 사람과 등불 때문에 산소가 부족해졌고 강론이 길어지자, 청년은 졸음을 견디지 못하다가 3층(현대의 개념으로는 2층)에서 집 밖의 바닥으로 추락해 숨진다. 본문은 청년의 죽음이 누구의 책임인지 묻지 않는다. 청년의 잘못도, 강론을 길게 한 바울의 잘못도 아니다. ‘누가’는 바울의 행동과 이동에 초점을 맞춘다. 바울은 강론을 멈추고 내려가 집 밖으로 나간다. 청년 위에 엎드려서 몸을 안았다. 바울의 모습에서 엘리야와 엘리사의 행동을 떠올리게 한다(왕상 17:19~22; 왕하 4:34~35). 바울은 “생명이 그에게 있다”라고 말하면서 3층에서 떨어진 그를 바울이 품자, 기적적으로 살아났음을 알린다. 지켜본 회중들도 유두고가 죽었다고 확신했으나 “살아난” 것에 큰 위로를 받는다.
    
‘누가’는 12절에서 사람들이 살아난 유두고를 데리고 다락으로 올라가 함께 먹고 바울과의 대화에 참여한 것을 기록한다. 드로아의 성도들은 유두고가 살아난 것뿐 아니라 바울이 밤새도록 그들과 함께 삶과 말씀으로 교제 한데서 위로를 받는다. 시간 순서를 보면 12절의 내용이 11절보다 앞서 일어났지만, ‘누가’는 바울이 떠난 장면을 설명한 후 사람들의 반응을 기록했다. ‘누가’는 이를 통해 유두고가 살아난 사건보다 바울이 새벽까지 대화를 나누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바울이 목자로서 자신이 떠나고 나서도 교회가 말씀 안에서 성령의 이끄심 속에 든든히 서 있기를 바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다시 보지 못할 성도들을 위해 계속 가르침의 시간을 주저하지 않았다. 시간을 쏟아붓고, 강론을 양보하지 않았다. 바울의 발걸음이 머문 초기의 교회마다 굳게 설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4. 드로아에서 밀레도까지(13~16절)
드로아에서 밀레도까지 이어지는 선교팀의 여정에서 바울의 선교팀의 선교 방식이 드러난다. 첫째, “우리”, 즉 선교팀이 강조된다. 바울의 여정은 개인이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팀의 이름으로 움직인다.
    
둘째, 여정마다 이루어지는 일정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과 관련된다. 13~16절의 이동 경로를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헬라의 고린도에서 석 달을 머문 것과 드로아에서 일주일을 머문 경우와 비교가 된다. 즉, 선교팀은 성도들이 있는 곳에서는 시간을 보냈으나 그렇지 않았을 때 급히 이동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려고 급히 움직인 면도 있다. 그러나 이 여정에서도 두로와 가이사랴에서도(21:4~6, 10~12) 여러 날을 머문 것을 보면 바울과 선교팀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세우는 목적을 위해 시간을 집중한 것을 알 수 있다. 선교의 최우선 과제는 사람을 살리며 회복하고 세우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 시간을 아끼고 집중해야 한다.
    
셋째, 설교뿐 아니라 형제애가 신자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된다. 바울은 오순절(주후 57년 5월 29일)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해 서두른다. 16절은 바울이 지체하지 않기 위해 “에베소를 지나” 가는 것을 결정한다. 에베소에 들러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기에 그보다는 이방 교회들을 대표하는 일곱 명이 직접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을 전달하면 말할 수 없는 용기와 위로를 얻게 될 것임을 확신하고 이 일에 더 집중한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를 믿는 것으로 인해 가족과 공동체에서 멀어져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닥친 기근은 성도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행 11:27~30). 바울은 이방 교회의 선물을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가 오순절이라는 명절에 기쁨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서두른 것이다. 오순절에 성령의 임재로 감격을 경험했던 교회는 새로운 오순절에도 위로와 기쁨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유대 교회의 헌신으로 이방 교회가 개척됐고, 이제는 이방 교회의 헌신으로 유대 교회가 힘을 얻게 된 것이다. 형제들이 마음으로 쏟는 헌신이 어려움 가운데 있는 형제에게는 엄청난 힘이 된다.
    
    
    
나는?
-에베소의 소요는 바울에게 떠날 때를 알려주는 신호였다. 계획한 대로(19:21) 마게도냐로 가서 제자들을 굳게 세운 후 헬라(고린도)에서도 석 달을 머물며 교회를 든든히 세운다. 하지만 늘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다. 거기서 수리아로 가려고 했지만, 또다시 살기가 가득한 유대인들이 가로막았다. 그래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우리의 삶의 여정이 순조로울 때든지, 막힐 때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더 깊은 뜻을 그때마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어떤 경우에든 그저 충성할 뿐이고 하나님의 더 깊은 지혜를 신뢰하면서 “막히면 낙담하기보다는 돌아가고 물러나고 멈추었다가 가면 된다.”
    
-디모데와 에라스도는 먼저 마게도냐로 가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을 마련하고(행 19:22), 이방인 신자들을 대표할 만한 일곱 명을 세워서 드로아에서 바울을 기다렸다. 바울은 그의 선교 여정에 늘 유대인들의 적대적인 비방에 시달렸다. 그러나 자신을, 이방인을 제물로 바치는 복음의 제사장으로서(롬 15:16),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평화의 중재자 사명을 받은 자(엡 2:13~15)로 알고 비난과 살기가 가득한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이 여정에서 바울은 드로아에서 찰 일을 머무는 동안에도 말씀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떠나기 전날 밤중까지 강론은 이어졌고, 유두고가 죽었다가 살아난 후에도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다가 새벽에 떠났다. 예루살렘에서 큰 시련이 자신을 기다릴 줄 알았기에 마치 다시는 못 볼 사람처럼 한 말씀이라도 더 전하고 더 들으려고 했다.
    
-말씀을 묵상하고 배울 기회가 항상 열리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열린 기회가 있다면 미루지 말고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며 붙잡아야 한다. 오늘이 바로 말씀과 함께 할 열린 기회이다.
    
    
*한편 바울은 자신이 전도한 제자들을 지속해서 돌본다(1~2절). 바쁘고 피곤한 와중에도 자시 제자들을 방문하여 말씀으로 격려하는 일을 언제나 먼저 챙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사역과 존재 이유가 하나님이 주신 영혼들을 굳게 세우는 일임을 잊지 않은 것이다. 나의 일상에서도 이렇게 시간을 내어 말씀에서 말씀으로 하늘 가족 공동체를 격려해야 하겠다.
    
*수리아로 가려는 처음 계획을 유대인들의 음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획을 전면 수정한다(3절). 때로는 죽기를 각오하고 직면해야 할 때도 있지만, 계획대로 열리지 않는 길을 “피해 가고 돌아가는” 지혜도 필요한 법이다.
    
*아시아에 있는 여러 교회의 대표자들이 “함께” 팀을 이뤄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어려움에 부닥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아시아에 있는 여러 교회가 헌금한 것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이때부터 바울의 여정은 홀로 가는 길이 아닌 “우리”로 함께 하는 여정이 되었다. 지치고 힘든 사역의 여정을 함께 감당할 동역자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격려가 된다.
    
*유두고의 죽음을 내가 어릴 적에는 그저 말씀을 듣다 졸음에 빠져 죽음에 이른 청년으로만 인식하도록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말씀을 묵상할수록 당시의 공식적인 휴일이 없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주일을 지키기 위해 낮에는 일하고 지친 몸으로 밤에 모여 예배와 말씀과 교제를 나눈 초대 교회의 일상이 그리 녹록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유두고는 하루 종일 힘든 일을 하고 피곤했으나 말씀 듣기를 사모하여 늦은 시간까지 졸음과 싸우며 긴 설교를 들은 것이다. 말씀을 듣는 자리에 이와 같은 사모함과 열심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특히 유튜브 영상(예배)에 익숙해져 있다면, 현장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의 중요성이 간과될 수 있는 유혹에 노출되어 있을 텐데, 과연 육신의 피곤함과 싸우며 말씀을 듣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유두고의 모습이 나에게 주는 도전이 무엇일까?
    
*하나님은 바울의 설교를 듣다가 창문에서 떨어져 죽은 유두고를 바울을 통해 다시 살려 주셨다. 특히 “안식 후 첫날”과 “성만찬”이 있던 날에 그가 살아난 것은 이 사건 속에서 막연하게 들었던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드로아의 성도들에게 실제가 되게 하는 사건이었다.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이, 죽은 유두고에게 임하여 생명을 회복시켜 주신 것이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위로받았다.
    
*”유두고”라는 이름의 의미는 “운이 좋은, 행운의”라는 뜻을 가진다. 이 사건을 경험한 유두고는 진정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그렇다면 누구보다 비교할 수 없이 행복한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바울의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의 키워드는 “격려”다. 바울은 할 수만 있으면 성도들을 만나 “말씀으로 격려”하기 원했다. 말씀으로 격려하기를 최선을 다했다. 드로아에서는 다음 날 떠나야 했기에 밤을 새우며 말씀을 가르쳤다. 말씀이 치열하게 가르쳐졌고, 그 말씀을 들은 교회는 든든히 세워져 갔다. 교회는 말씀이 제대로 가르쳐져야 건강하다. 우리 더온누리 공동체도 말씀을 치열하게 가르치고, 말씀으로 격려하는 공동체가 되어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주님,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여정은 말씀으로 격려하며 나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우리가 걸어가야 할 사명의 길은 말씀과 함께 해야 함을 다시 깨닫습니다. 늘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으로 격려받는 걸음 걷겠습니다.
*주님, 바울은 말씀을 권하고 권했습니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로 든든히 서 나가는 길은 결국 말씀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말씀으로 든든히 세워져 가는 교회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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