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선지자의 입은 막을 수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까지 막을 수 없다. [암 7:10-17]
 – 2024년 12월 13일
– 2024년 12월 13일 –
    
본문은 북이스라엘이 아모스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보여준다. 여로보암 2세와 그 선지자 아마샤는 하나님의 회개 요청을 거절하였고, 그 결과 그들에게 심판의 메시지가 확정적으로 주어진다.
    
본문은 아모스 7장의 세 가지 환상과 8~9장의 두 가지 환상 사이에 삽입되어 있는 일화다. 북이스라엘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을 여로보암 왕에게 보고하였고(10~11절), 북 왕국은 아모스의 예언을 거절한다(12~13절). 이에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선언한다(14~17절). 이와 같은 예언 거절 사건은 이후의 두 가지 예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1. 아마샤가 여로보암 2세에게 보고하다(10~11절)
아모스서에 등장하는 유일한 역사적 기록이다. 7장의 세 가지 환상(메뚜기, 불, 다림줄)을 통 북이스라엘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가 본문을 통해 밝혀진다. 아모스의 예언(1:1~7:10)을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듣고 견딜 수가 없었다. 특히 우상숭배의 죄로 인해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이라는 아모스의 예언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자기 왕인 여로보암 2세에게 아모스가 “여로보암이 칼에 죽고 이스라엘은 포로로 잡혀갈 것이다”라고 예언한 것을 전한다.
    
아마샤는 여로보암 1세부터 금송아지 우상 제단에 제사를 드린 벧엘 성소의 제사장이다. 자신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고 생각했으나 모세의 율법 규정에 따르면 그 모든 제사는 우상숭배 행위일 뿐이었다. 아마샤는 스스로 보기에는 하나님의 제사장이었겠지만, 우상 제단의 제사장일 뿐이었다.
    
    
    
2. 하나님의 예언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답(12~13절)
본문은 여로보암 2세의 반응은 알 수 없다. 다만 12~13절은 아마샤가 아모스에게 전한 말이다. 문맥상 여로보암 2세의 응답을 말해주었을 것이다. 즉, 아모스의 회개 요청에 대한 여로보암 2세의 공식적인 대답이란 의미다. 내용은 물론 “아모스의 예언을 거절한다”라는 것이다.
    
12절은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거기서나 떡을 먹고 거기서나 예언하라”고 말한다. 아마샤는 아모스가 유다 출신인 것을 지적하면서(유다 땅 1회, 거기서나 2회) 북이스라엘에 대하여 말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13절에서 아마샤는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것은 나라의 궁궐이다.”라고 말한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고, ‘나라의 궁궐(베이트 맘 라카)’은 직역하면 ‘왕권의 집’이라는 말이다. 아마샤는 벧엘이 곧 하나님의 집이고 여로보암의 집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즉, “이곳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이며 그 하나님이 사랑하는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는 곳이니 엉터리 예언을 전하지 말라”는 메시지다.
    
아마샤는 아모스를 향해 너의 예언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명하게 반응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여 구원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이스라엘은 아모스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회개 요청 메시지를 공식적으로 거절한 것이다. 1~6장까지 계속 묘사되었듯 하나님은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회개를 요청하였으나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림줄을 내리시고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도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다.
    
    
    
3. 이스라엘과 아마샤에 대한 심판 선언(14~17절)
이에 아모스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먼저 14~15절에서 자신의 메시지가 진정성을 지니고 있음을 분명하게 선언한다. 자신은 원래 선지자도 아니었고 선지 생도도 아니었음을 밝힌다(14절). 그리고 원래 직업은 가축을 돌보는 목자였고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였다. 하지만 그런 그를 하나님이 부르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예언하라고 하셨다고 밝혔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셨기에 이 말씀을 전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자신의 선지자직의 진정성을 강조한 후 이스라엘과 아마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 먼저 아마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된다. 그의 아내는 창녀가 될 것이고 그의 자녀들은 칼에 엎드려질 것이며 그의 땅이 나뉠 것이고 그는 더러운 땅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 예언의 내용들은 아마샤 집안의 모든 부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저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로 주어지게 되는 것임을 신명기 28장에서 이미 선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게도 저주가 임한다. 이스라엘이 자기 땅에서 떠나 포로로 사로잡혀 가게 된다고 예언한다(17절 하). 이 저주 역시 시내산 언약의 저주에 속한다(신 28:63~64). 이는 이스라엘이 아모스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회개 요청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본문(7:10~17)은 열왕기하 13장의 여로보암 1세 때의 이야기와 매우 흡사하다. 그 역시 벧엘에서 금송아지를 숭배했고, 남 유다에서 온 선지자에게 심판의 선언을 들었다. 그 선지자는 돌아가는 길에 하나님의 명령(음식을 먹으면 죽을 것이다)을 어기고 식사를 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었고 그럼으로써 자신이 전한 메시지가 참임을 증명했다. 본문에서는 남 유다에서 온 아모스가 여로보암 2세에게 심판을 선언한다. 이 선언은 참된 하나님의 메시지가 분명하고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북이스라엘은 회개할 기회를 얻었지만, 그 기회를 자기 고집으로 인해 거절함으로 잃어버린다.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는 지점까지 이르게 되었다.
    
    
    
나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한 아모스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급기야 예언을 중단하라는 왕실의 위협을 받는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 철회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는 아모스의 경고가 정치적 반란을 꾀하는 것이라고 모함한다(10~11절). 아모스는 반란을 주도할 만한 위험인물이 아니지만 아마샤는 그의 예언을 곡해하고 왕의 분노를 자아낸다. 아마샤는 아모스의 예언 때문에 이 땅이 견딜 수 없다고 말하지만, 정작 이 땅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견디지 못한다는 것에는 철저하게 외면한다. 그는 겉으로는 하나님의 제사장이지만, 부패한 권력의 시녀일 뿐이다.
    
-하나님의 심정을 대변할 지도자가 과연 우리 곁에 있는가? 무겁고 불편하지만,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아마샤는 하나님께 받은 선지자의 종교적인 경고를 정치적 전복을 꾀하는 모반으로 모함한다. 이스라엘을 향한 그의 멸망 선언만 부각하고 그 이유는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이 가혹한 것처럼 과장하고 불순종이 낳은 형벌은 축소했던 에덴의 뱀처럼(창 3장) 사탄은 지금도 진리를 곡해하여 의심과 불신을 조장하고 말씀의 권위를 훼손한다.
    
-아마샤는 왕의 신임과 권력을 이용하여 아모스를 겁박하고 예언을 중단하게 한다. 심지어 아모스가 생계와 출세를 위해 예언하는 것처럼 매도한다(12~13절). 그는 하나님의 경고를 듣는 것이 자신과 이스라엘이 사는 길임을 몰랐다. 이스라엘의 장래보다 기득권 유지에 연연하던 아마샤에게 아모스의 예언은 불편하기만 했을 것이다. 제사장인 그는 수많은 속죄제를 주도했음에도 죄로 인한 심판의 메시지에 양심을 닫고 만다. 그는 하나님이 아니라 여로보암에 충성한 자였다.
    
-나는 누구의 말을 듣고, 누구의 입이 되어 살고 있을까? 하나님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입으로 꿋꿋이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모스는 자신을 변호하기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고백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세웠고 가야 할 곳과 전할 말도 알려주셨다고 말한다(14~15절). 아마샤가 모함하듯 “생계”가 아닌 “소명”을 위한 일이라고 말한다. 보냄을 받은 자에게 중요한 것은 화려한 이력도, 능숙한 언변도, 사람들의 반응도, 대가도 아니다. 자신을 보낸 하나님의 말을 충실하게 대변하는 것이다. 나는 세상의 자격 요건보다 하나님의 소명과 동행을 얼마나 더 중요하게 여기는가?
    
-아모스는 선지자로서 자기 자질을 변명하지 않는다. 전문 선지자가 아니라 목자와 농부였으나 여호와께 부름을 받아 그분의 말씀을 받고 전할 뿐이라고 전한다. 들을 사람의 감정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께 받은 대로 아마샤와 이스라엘에게 닥칠 심판을 선포한다. 자기 귀를 막고 선지자의 입을 막은 채 약속의 땅을 부정하게 만든 그들은 죽을 것이라고 선포한다.
    
-예언하지 말라는 아마샤의 협박에도, 아모스는 하나님의 심판을 주저 없이, 가감 없이 전한다(16~17절). 이스라엘이든 제사장 가문이든 결코 하나님의 심판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경고를 무시하며 악을 행하고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 숨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
    
-우격다짐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성찰하며 자신의 모난 생각과 행동을 다듬어야 할 것이다. 고집불통으로 자기 말만 하다가 이르게 될 패망의 길, 아니면 말씀에 순종하여 이르게 될 생명의 길 중에서 어느 길을 선택하겠는가?
    
*선지자의 입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까지 막을 수는 없다.
 
*아마샤의 모습이 혹시 우리 교회들에게 서려 있지는 않은가? 권력화된 교회의 악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음을 알고 있지만, 그 길을 서슴없이 걷는 일부 교회와 지도자들의 권력편향이 교회의 다음(세대)을 가로막는다. 교화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명하게 드러내되, 삶에서 공의와 정의로움으로 구현해 낼 때 선한 영향력을 사회에 끼칠 수 있다. 하지만 권력화되어 말씀조차 무지화된 종교인의 신념은 그 어떤 무기보다 더 치명적이라 할 수 있겠다. 본문은 그런 아먀샤와 같은 일부 종교인들과 지도자들에게 엄중하게 경고한다. ““네 아내는 이 도성에서 창녀가 되고, 네 아들딸은 칼에 찔려 죽고, 네 땅은 남들이 측량하여 나누어 차지하고, 너는 사로잡혀 간 그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다(새번역_7:19).”
 
*이 심판선언이 소름 돋을수록 나와 우리의 교회가 권력화되지 않기를 늘 분별해야 할 것이다. 오직 말씀에서 말씀으로 공동체를 돌보고 말씀이 일상에서 구현되는 빛과 소금의 일상을 우리 공동체부터 구현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의 삶이 아마샤와 되지 않기를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지켜주시기를…
   
    
    
    
*주님, 말씀을 전하는 자나 듣는 자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하고 가감 없이 듣고 받아들이게 하겠습니다.
*주님, 나의 사익 때문에 공의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말씀이 나를 판단할 때 겸손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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