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9장은 아모스가 본 마지막 심판 환상(1~10절)과 이스라엘의 궁극적 회복에 대한 예언(11~15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궁극적인 심판이 임할 것이나 그 심판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회복 또한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아모스가 본 다섯째 환상이다. 아무도 이 재앙을 피할 수 없음을 강조하신다. 피할 수 있는 장소는 없다.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과 다른 민족이 별 차이가 없다. 하나님의 시선은 늘 범죄한 나라에 있고 죄를 범한 민족은 누구나 심판받는다. 그럼에도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을 약속하신다.
선지서에서 심판과 회복의 선언이 번갈아 나오는 것은 일반적이다. 심판 선언이 상대적으로 많은 양을 차지하지만, 중간중간에 회복의 선언을 넣음으로써 균형을 이룬다. 하지만 아모스서는 예외적으로 심판 선언만 기록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회복의 선언이 등장한다. 이 선언은 대다수 선지자가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그 땅에서 다시 통일국가를 이루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함을 누리는 것으로 표현한다. 이 회복에는 다른 이방 민족 또한 하나님의 백성에 포함되는 것으로 그린다.
하나님께서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을 끝까지 심판하실 것이지만, 그 심판을 통하여 구원받게 되는 남은 자가 있을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의 나라가 궁극적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예언이 전달된다.
1. 다섯째 심판 환상(1~10절)
아모스가 본 다섯째 심판환상은 우상 제단에 대한 심판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떤 제단인지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지만, 우상 제단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실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그 제단 곁에서 계신다. 하나님은 제단의 기둥머리를 부수시고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셔서 깨진 것들이 제단을 섬기는 모든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신다. 머리를 맞은 자들은 죽은 것으로 추정되나 거기서 살아남은 자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죽이신다(1~4절). 그들이 땅 밑의 스올에 숨어도 찾아내실 것이고 하늘로 올라가도 붙잡아 내릴 것이고, 갈멜산 꼭대기에 숨어도 찾아내서 붙잡아 내릴 것이고, 바다에 숨어도 뱀을 명령하여 물게 하실 것이고, 원수 앞에 사로잡혀 갔다가 살 뻔하더라도 칼에게 명령하여 죽이겠다고 하신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상 제단에 경배한 자들을 용서하지 않으시며 모두 죽이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화를 내리시고 복을 내리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5~6절에서는 이러한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더 상세하게 묘사한다. 땅을 만져서 녹게 하시며(5절), 온 땅이 강처럼 솟아올랐다가 나중에 애굽 강처럼 낮아지게 하시는 분으로 하나님을 묘사하는데, 이는 땅에 지진이 일어나게 하셔서 땅을 직접 주관하신다는 의미다. 6절은 하나님을 두 가지 측면으로 묘사한다. 먼저 하늘을 만드시고 궁창을 만드신 일을 언급하며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설명한다. 또 창조 질서를 뒤엎을 수 있는 분으로 묘사한다.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거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 행위조차 되돌리실 주권이 있으신 분이다. 이렇게 창조주로서 심판하실 수 있는 능력은 노아 홍수 사건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7~1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남은 자를 두셨을 가능성에 대해 강력하게 암시한다. 7절은 하나님께서 민족들을 만드신 분이라는 사실에 대해 언급한다.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셔서 왕국으로 발전하게 하셨고, 마찬가지로 블레셋 민족과 아람 민족에게도 나라가 될 수 있게 하는 은혜를 주셨다는 것이다. 이어 8절에서는 이런 민족 중에서 범죄한 나라가 나오게 되면 땅에서 그러한 나라를 멸절하겠다고 선언하신다. 하나님은 민족을 만드실 권세도 가지셨고 그 민족을 멸하실 권세도 가지셨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8절은 하나님이 범죄한 나라를 땅에서 완전히 멸망시킬 하나님은 아니다. 이어지는 9절은 하나님께서 열방 전체를 체에서 흔들어 걸러낼 때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한 알갱이도 떨어지지 아니할 민족도 있음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남은 자가 되게 하시는 사람들은 심판을 벗어나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남은 자들은 10절이 말하는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자들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 즉,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삶에는 관심조차 없다. 그렇다면 구원받는 남은 자는 어떠한 사람들일까? 두말할 필요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돌이키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2. 회복될 다윗의 집(11~15절)
아모스의 마지막은 지금까지 심판 예언을 한꺼번에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한다. 11절은 무너지고 있는 다윗의 장막을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키실 것을 예언한다. “다윗의 장막”이란 다윗 언약에 나타난 다윗 왕조를 가리키는 말이다. 북 왕국과 남 왕국으로 나뉘었고 이제는 북 왕국의 멸망으로 인해 더욱 무너지게 되는 다윗의 나라를 언급하는 표현이다. 즉 다윗의 나라 이스라엘의 회복이다.
12절은 다윗의 나라 회복이 결국 만국을 기업으로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말한다. 다윗의 장막이 회복되면, 다윗의 나라는 열방을 소유하게 되고 온 피조 세계가 하나님을 따르게 되는 구원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의미다. 이는 아모스 1:1~2:3의 열방 심판 사이클과 2:4~5의 유다 심판 사이클과 상응한다. 열방 심판 이야기가 아모스의 서론이라면 본문의 회복 이야기는 아모스의 결론 부분이 된다. 특히 11~12절은 사도행전 15:16~17에서 예루살렘 회의의 야고보에 의해 인용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열방을 향해서 전파되는 중요한 신학적 기여를 하게 된다.
13~15절은 다윗의 장막이 회복된 결과를 아름다운 그림으로 묘사한다. 파종하는 자가 곡식 추수하는 자의 뒤를 잇는다는 것은 추수하자 마자 다음 곡식을 파종한다는 의미이고,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잇는다는 것도 포도를 거두자 마자 다시 씨를 뿌린다는 뜻이다. 이런 표현들은 땅을 쉬지 않고 운영해서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4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신다고 말씀하시는데, 사로잡힌 것을 돌이킨다는 표현은 포로 생활에서의 귀환을 의미할 뿐 아니라 인생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인생의 길과 방향성이 바뀌는 “전환점”이 있게 될 것을 뜻한다. 황폐한 성읍이 포도원으로 바뀐다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결국 하나님은 그 택하신 백성들의 삶에 그들을 심으실 것이다.
나는?
-다섯째 환상을 통해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에 철저한 심판을 선고하면서, 동시에 남은 자들에 대한 구원과 다윗 언약의 성취를 약속하신다.
-심판의 하나님으로 제단 곁에 서신다. 그곳에서 예배를 폐하시고 성전 파괴를 주도하신다. 죄악의 온상이 된 성전을 향해, 희생제물로 거짓과 탐욕을 치장한 종교를 향해, 성전을 이익의 수단으로 삼는 종교 권력을 향해 복을 거두시고 화를 선언하신다(1~4절). 은혜의 장소를 우상숭배의 공간으로 바꾸어버린 이스라엘을 끝까지 찾아내어 진멸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땅의 교회들을 바라보시면 과연 어떤 마음을 품으실까? 우리 공동체는 과연 진실한 하나님의 처소인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모든 자연 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심판을 주관하지 못하실 이유가 없다. 선민이라는 특권은 하나님의 정의를 상실한 백성에게 면죄부를 주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민이요 유일한 상속자라는 교만함에 빠져 하나님의 심판에 안일했다(5~10절).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을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열방의 흥망성쇠도 주관하신다. 나의 죄와 불순종을 쉽게 정당화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데 익숙하지 않은가?
-유다와 이스라엘의 멸망과 왕조의 몰락 속에서도 다윗 언약을 기억하시고 성취하실 것이다(삼하 7:12~13). 아모스 당시 다윗 왕조는 ‘장막’으로 대변될 만큼 왕조로 불리기에 미약하지만, 하나님은 퇴락한 다윗 왕권을 회복하셔서 오랜 원수인 에돔뿐만 아니라 주변 나라까지 다스리게 하실 것이다(11~12절). 이 언약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 성취된다. 이처럼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긍휼을 거두지 않으시고 약속된 미래를 보게 하신다.
-약속의 땅을 회복하시고 다시는 뽑히지 않게 하신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백성들은 추수를 끝마치기도 전에 파종을 시작하고, 포도주 만드는 일이 한창인데도 새 씨앗을 뿌려야 할 정도로 풍성한 수확을 경험할 것이다(13~15절). 하나님은 새롭게 출발하는 백성에게 다시는 그 땅에서 뽑히지 않게 하겠다는 말씀으로 용기와 소망을 주신다.
*철저하게 심판하신다. 창조하셨으니, 심판도 하실 것이다. 세우셨으니 무너뜨리기도 하실 것이다. 모으셨으니 흩으시고 하실 것이다. 은혜의 장소인 제단 곁에 서서 성소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철저히 파괴하여 백성과 제사장들을 멸하고 한 사람도 달아나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은혜를 베풀려고 세상 곳곳을 샅샅이 뒤지던 하나님께서 심판하기 위해 자기 백성을 추격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이스라엘에게 ‘출애굽’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 일은 구스와 블레셋과 아람에게도 있었다. 지금 이스라엘의 번성은 다윗 시대의 재현이 아니다. 축복도 아니다. 하나님은 이 나라를 허물고 다시 다윗의 영화를 회복하실 것이다. 그때는 에돔에서도 열국에서도 자기 백성을 부르실 것이다. 이스라엘의 특권 유효 기간은 만료되었다.
*약속의 땅은 마치 에덴처럼 회복될 것이다. 포로가 된 백성이 돌아오면 그 땅은 너무 소출이 많아서 밭을 갈 때가 되어도 추수가 안 끝나고 씨를 뿌릴 때가 됐는데도 포도주 만드는 일이 끝나지 않을 만큼 번성할 것이다. 마음의 할례를 받은 백성으로 새 창조하실 것이기에, 다시는 하나님 나라에서 뽑히는 일이 없게 하실 것이다.
*제단을 파괴하는 이는 대적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은 제단을 붙들고 있으면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불패 신앙이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허울뿐이고 음란한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그 제사의 기초 자체를 파괴하신다. 하나님의 칼로부터 피할 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산꼭대기에 숨을지라도 찾아낼 것이며, 바다 밑에 숨더라도 찾아내어 반드시 심판하신다. 심판이 끝나기 전까지 하나님은 절대 쉬지 않을 것이다. 음란한 제단이 철저하게 무너질 때까지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서운 경고를 하신다. 마음의 음란한 우상, 사회 깊이 뿌리박힌 불의한 죄, 하나님을 잊어버린 패역한 모든 삶을 하나님께서는 집요하고 철저하게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신다. 무엇보다 이것만큼은 절대 안전하다 여기는 것까지 철저하게 무너뜨리실 것이다. 죄의 근원을 철저하게 심판하신다.
*세상의 모든 주권과 세상 나라의 모든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 절대 일지 말아야 할 것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자유를 준 이유는 자원함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참담하게도 그 자유가 다른 이방신을 섬기는 데 사용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이유였다.
*한편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엄위하게 심판하시면서도 긍휼의 정신을 잊어버리지 않으신다. “야곱의 집은 온전히 멸하지는 아니하실 것이고”,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실 것이다.” 심판과 포로의 삶을 경험한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다시 하늘 백성으로 맞아주시겠다는 하나님 나라 회복의 약속이다.
*하나님께서는 회복된 백성을 하나님 나라에 심고 다시 뽑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회복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 은혜에 달려 있다. 우리의 소망은 엄위하신 하나님이 긍휼의 씨를 남겨놓으시고 때가 되면 회복시켜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심판의 주권과 구원의 은혜가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며 무릎으로 주께 나아가야 한다.
*주님, 철저하게 심판하시나, 회복을 준비하시는 긍휼하심이 오늘 나의 걸음을 믿음 안에 걷게 하심을 믿습니다.
*주님, 다윗의 장막을 다시 일으키시겠다는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 이미 성취 되었고 그 은혜와 자비안에 우리가 살 수 있도록 긍휼을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롭게 심어진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아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