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이르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러 세상에 임할 것이다. 하나님은 미리 그의 길을 준비할 언약의 사자를 보내어 백성을 정결케 하실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명령을 어긴 자들은 심판하실 것이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하시며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책망하시고 권고하신다.
“만군의 여호와(3:1)”는 직역하면 “많은 군대, 무리의 여호와”라는 뜻이다. 구약에서는 총 250회 사용되며, 말라기에서는 24회가 사용됐다. “만군(쩨바오트)”은 “무리들, 군대들, 용사들”의 뜻으로 전쟁과 관련하여 자주 등장한다. 이 칭호와 관련된 무리들은 “이스라엘의 군대, 또는 천사나 천체로 구성된 하늘 군대들”을 지칭한다. 이 호칭은 예언서에서 이스라엘과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하여 종종 사용되었고, 특히 포로기 이후의 예언서인 학개, 스가랴, 말라기에 자주 사용되었다.
1. 사자를 보내리니(2:17~3:5)
본문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네 번째 논쟁이다. 이스라엘이 말로 하나님의 정의를 불신하고 어지렵혔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말씀을 곡해하고, 타인에게도 이 생각을 서슴지 않고 전하는 이스라엘의 행위가 하나님을 괴롭게 했다. 이스라엘은 또 “우리가 어떻게 괴롭혔나이까?”라며 반문한다. 도리어 행악자가 하나님의 눈에 선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기뻐하신다고 빈정거린다.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떠든다(2:17). 하나님은 이러한 패역함에 대하여 심판주로서 직접 예고 없이 임하실 것이라고 응수하신다. 자신이 직접 오기 전에 사자를 보내 그 길을 준비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신다(3:1).
하나님은 늘 하나님의 사자들을 부지런히 보내셔서 이스라엘이 돌아오게 하셨다. 특히 이사야 40:3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처럼, 이 사자는 하나님이 오시는 길에서 장애물을 없애고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임무를 맡았다. 4:5에서는 이 사자가 엘리야로 예고된다. 예수님은 그가 세례 요한이라고 하셨다(마 11:10, 14). 하나님이 이 사자를 보낸 후 죽이자, 언약의 사자가 갑자기 성전에 임하실 것이다. 이 ‘언약의 사자’는 하나님과 같이 이스라엘의 주인(1:6)이자, 성전의 주인이며(3:1), 이스라엘의 즐거워하는 대상(3:1)이자,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은 자다. 언약의 자사는 메시아, 그리스도이다. 언약의 사자 역할은 제련공과 표백하는 자로서 백성들을 정결케 하는 것이다. 그를 견디거나 그 앞에 당당히 설 자는 없다(2절).
언약의 사자가 오시는 것이나 ‘불’과 ‘잿물’의 연단을 통해 백성이 다 죽는다는 뜻보다는, 용광로의 불이 광석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전한 은과 금을 만들어내고, 표백하는 잿물이 얼룩을 제거하고 깨끗이 하듯, 그가 하나님의 백성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뜻이다. 특히 제사장과 레위 자손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자신과 백성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했으므로(2:1~9) ‘레위 자손(3절)’을 먼저 정결케 하여 그들이 공의의 제물을 바칠 수 있게 하실 것이다. 이로써 레위인과 백성이 성결하게 되어 악행(1:7~8, 13~14)을 버리고 규례에 따라 예배하며 예물을 드릴 때, 과거처럼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다(4절).
이렇게 연단의 과정을 거친 후에 하나님께서 직접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이미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책망과 경고를 하셨고 그의 사자와 언약의 사자를 통해 정결하게 되어 돌아올 기회를 주셨다. 하지만 끝까지 거부한 자들에게는 지체없이 그 죄악을 법정에서 증언하고 판결하실 것이다. 우상을 섬기고, 점을 치며 간음하여 가정을 무너뜨렸다. 이웃에게 거짓 맹세하고 마땅히 줘야 할 삯을 주지 않고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착취하는 불의를 저질러 사회질서를 어지럽혔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기초로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마음이 없는 자들의 모습이다.
2. 십일조와 헌물에 대한 책망과 권고(3:6~12)
앞서 1:6~14에서는 희생 제물에 대한 제사장과 백성의 태도와 행위를 지적했다. 본 단락은 십일조와 헌물에 대한 잘못을 책망(6~9절)하고 이에 대한 권고(10~12절)가 이어진다. 다섯 번째 하나님의 경고에 해당한다.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며 야곱의 자손들이 소멸하지 않을 것을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1:2 하나님의 야곱에 대한 언약적 사랑에 변함이 없었고 지금도 미래에 변함이 없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야곱의 후손들은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규례에서 돌아섰고, ‘내게로 돌아오라! 그러면 나도 너희에게 돌아가리라(7절)’라는 권고를 받지 않았다. 이 구절은 스가랴 1:3의 인용으로 하나님께서 포로 귀환자들에게(주전 520년) 그들의 조상들에 대해 하신 말씀이다. 포로 전에도 악한 길과 행실에서 돌아오라고 권고했으나(렘 18:11; 31:18) 돌아오지 않았다. 그 결과 포로로 끌려갔고, 그들은 바벨론에 가서야 자기들이 마땅한 심판을 받았음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돌아왔다. 이런 스가랴 시대로부터 적어도 70~80여년이 지났음에도 이스라엘의 대답은 ‘우리가 무슨 방법으로 돌아가리이까(7절)’라며 완악하고 어리석은 반응을 보인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와 헌물을 약탈하는 것을 반역의 증거로 들지만,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어떻게 약탈했느냐고 반문한다(8절). 희생 제물은 죄와 관련된 제물이고, 십일조와 헌물은 의무로 드려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희생 제물과 십일조를 열심히 바쳤고, 다른 제사와 절기들을 빼먹지 않고 열심히 지켰음을 강변한다. 예물이나 절기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형식적, 위선적, 습관적으로 행했을 뿐, 실생활에서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공의를 행치 않았다. 그런데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은 십일조나 헌상품마저 바치지 않았으며, 일부를 드리거나 상한 것을 드리면서도 할 바를 다했다고 대답한다. 이런 상태임에도 하나님께서는 이례적인 제안을 하시면서 다시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그 제안은 하나님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린 후 그가 하늘의 창문들을 열고 이스라엘에게 복이 쌓을 곳이 없도록 쏟아부으시는지 아니하는지 시험을 해보라는 것이다. 적어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시험하면 안 되는데(신 6:16), 자기를 시험하라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십일조를 하면 해충을 금하고 열매가 떨어지거나 맺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고, 이스라엘은 ‘즐거움의 땅’이 될 것이며, 이방인들로부터 행복하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12절).
나는?
-선과 공의를 판단하시는 하나님이시다(17절). 내게 좋은 것은 선이며, 나에게 나쁜 것은 악이요, 나에게 불이익이 오면 그것을 불공평하다고 하고 나에게 이익이 되면 공평하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는 가정과 일터 그리고 교회에서 판단하는 자이기보다,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언약을 저버리셨다고 생각하며 에 자기 힘만 믿는 이들에게 “언약의 사자”를 보내실 것이다(3:1). 그전에 사자(4:4)를 보내 그 길을 옙하시겠지만, 완악한 자들에게는 주의 임재가 예기치 못한 일이 될 것이다.
-사자는 이후 세례 요한으로, 언약의 사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기다려온 메시아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언약의 사자를 보내실 것이라는 예언은 예수님의 오심을 가리킨다. 우리는 그렇게 예언된 대로 이미 오신 예수님이 “홀연히”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고 있음을 늘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
-언약의 사자는 금을 연단하는 불이나 표백하는 잿물과 같이 임재하셔서 맨 먼저 유다 백성을 더럽힌 제사장의 찌꺼기를 떨쳐내고 얼룩을 씻어낼 것이다. 당장 심판해야 마땅하나 앞서 보낸 사자의 소를 듣고 돌이킨 자들을 소멸하지 않고 정결케 하셔서 하나님의 크신 이름을 모든 백성 앞에서 영화롭게 하는 참된 섬김의 길을 가게 하실 것이다.
-금을 연단하여 정결하게 하듯이 레위 자손(택한 백성)을 깨끗하게 하여 의로운 제물을 드리게 하신다(3:2~4). 하나님은 형식적인 제사가 아닌 진실한 제사를 원하신다. 지금도 우리를 새롭게 하셔서 깨끗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실 것이다. 우리의 의로운 모든 삶이 하나님의 기쁨임이 틀림없다.
-백성은 여호와께서 행악하는 자를 선히 여기시고 그들을 기뻐하셨다는 거짓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였다.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는 말도 공의를 간절히 기대하는 의인의 탄식이 아니라 지도자부터 백성까지 모두 악을 행하는 세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침묵을 조롱하는 오만함이었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증인과 재판장이 되셔서 심판하실 것이다. 술수, 간음, 거짓 맹세, 과부와 나그네를 압제하는 등 사회 약자들을 향한 불의한 태도를 묵인하지 않으실 것이다. 악인이 대접받는 세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공의가 어디 있느냐고 불평만 하지 말고, 지금 불의한 세상 때문에 신음하는 이들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일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유다 백성과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마땅히 바쳐야 할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있었고, 그런 악행이 상습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돌아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돌려 드리는 자들에게는 재앙이 그치고 기쁨의 땅이 되게 하실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처럼 열방 중에서 복 있는 자로 불릴 것이다.
-모든 물질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신다. 이스라엘은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있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곳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고서 십일조와 헌물을 드렸다.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면 채워주시는 은혜가 분명히 역사한다.
*항변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맴돈다. 신뢰는 행동으로 증명된다. 행하지 않고 말만 무성할 때 이스라엘 백성의 항변처럼 자극적인 말로 언성이 높아질 뿐일 것이다.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 백성의 기본 요소다. 기본이다. 기본부터 착실하게 다져야 한다. 나아가 물질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삶이라는 제물도 함께 들여야 한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내 삶의 일상이 마땅히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와 헌물처럼 거룩하게 구별되어 드려야 하지 않을까?
*기본이 흔들리면 안 된다. 기본부터 성실하게.
*주님, 언약의 사자 되신 주님께서 이미 오셨었고, 다시 오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연단하시고 깨끗하게 하시는 은혜를 따라 더 순전하고 정결한 삶을 살아내겠습니다.
*주님,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며 마땅히 들려야 할 하나님의 것을 기꺼이 드리는 삶이 어색하지 않도록 살겠습니다. 감사함으로 마땅히 드릴 것을 드리는 믿음으로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