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 교만한 자가 자기 복이 있다, 악이 번성한다는 백성들의 불평에 하나님은 그들을 비난하시며 다가올 ‘그날’을 경고하신다. 하나님은 그를 경외하고 섬기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의인과 악인으로 구별하신다. 말일에 하나님은 이들에게 마땅한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 같은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그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하라고 명령하신다. “기억”은 실천이라는 결과로 증명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1. 완악한 말로 거스르는 백성(3:13~15)
말라기를 통한 하나님의 여섯 번째 경고(마지막 경고, 3:13~4:3)에서 의인과 악인이 누구이며(3:13~18), 마지막 때 여호와의 날에 이들에게 임할 운명(4:1~3)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를 거슬러 완악한 말을 서슴지 않았음을 지적하신다(13절). ‘완악하게 말했다’라는 것은 하나님을 제압하듯 주제넘게 말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우리가 하나님을 거슬러서 무슨 말을 했나이까?’라고 끝까지 반박한다. 이것은 어떤 말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말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헛되다. 악인이 행복한 자들이다(14~15절).”라는 말이 완악하다고 일러주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느라 명령을 지키고 슬프게 다니는 행동이 다 쓸데없다고 치부했다(14절). ‘슬프게 행하는 것’은 상복을 입고 허리를 구부린 채 슬프고 어두운 표정으로 걷는 모습(시 35:14)을 가리킨다. 또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교만한 행악자를 행복자로 부르며(15절), 그런 자들이 강성해졌고, 그들이 하나님을 시험하고도 심판을 피했다고 떠들어댔다(15절). 이스라엘은 악을 행하는 자가 다 선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즐거워하신다고 착각했다(2:17). 십일조와 헌물에 대한 하나님의 원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사는 자가 그의 즐거움이 되고 모든 열방으로부터 행복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신뢰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시 1:2; 2:12)임을 인지하지 못했다. 모세가 죽기 전에 말했듯이 이스라엘은 만왕의 왕인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행복한 백성(신 33:29)인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왕과 주인으로 삼은 것이 행복이며 특권인지를 깨닫지도 못하고 그걸 누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2. 의인과 악인의 구분(3:16~18)
본 단락은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에서 의인과 악인의 구별을 다룬다. 앞서 3:13~15절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도며, 악인이 복되다고 주장하는 악인들을 먼저 언급했다. 이어서 본문은 의인들을 묘사하는데, 먼저 16절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인들)은 하나님이 악인의 말이나 의인의 말을 분명히 다 들으셨음을 확신한다. 그뿐 아니라 그 말들을 기념책(출 32:32)에 기록하여 후에 그를 경외하고 이름을 존중하는 자들을 신원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3:5에서 밝혔듯이 하나님은 불시에 속히 오셔서 사람들의 악행을 증언하며 심판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를 경외하는 자들의 경우는 그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시며 아들을 아끼듯 아끼실 것이다(17절).
‘특별한 소유(세굴라)’로 번역된 단어는 출애굽 후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면서 이스라엘을 민족 중에서 자신의 ‘소유’로 삼겠다고 선포하실 때 처음으로 등장한다(출 19:5). 그런데 이 약속은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라 말씀을 지킬 때 성립이 되는 조건 약속이다. 이 특별한 소유된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이자 거룩한 백성으로(출 19:6) 개개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성결을 대표하는 제사장과 같은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나는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만 해당한다는 의미다.
3:17에서도 그의 정한 날(말일)에 특별한 소유될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그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들(3:16)이라고 선언하셨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이며, 이는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과 일치한다. 또한 혈통 상의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열방 중에서 그를 경외하는 자들을 보배로운 소유로 삼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이미 1:5, 11, 14에서 예고한 대로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 이방 민족 중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순종하는 자들까지도 마침내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세워 축복하시면서 그를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예고하신(창 12:3) 대로 성취된 것이다. 하나님께 돌아온 백성은 그의 특별한 소유가 될 뿐 아니라 의인과 악인,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그를 섬기지 않는 자가 무엇이 다른지 구별할 수 있게 될 것이다(18절).
3. 의인과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마지막 권고(4:1~6)
본문은 마지막 경고 중에서 의인과 악인에게 여호와의 날에 각각 임할 구원과 심판을 선언한다. 4절의 시작은 “보라!(힌네)”라고 외치며 시작한다. 하나님은 용광로같이 불타는 여호와의 날이 다가옴을 예고하신다. 이날 하나님 앞에서 의인과 악인에게 합당한 심판이 내려진다. 이들은 교만을 행하는 자, 악을 행하는 자,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로 소개된다.
먼저 악인은 지푸라기가 될 것이다. 더는 생명력이 없어 말라 시들어질 것이란 뜻이다. 더구나 여호와의 날에 그것이 불살라지므로 뿌리나 가지, 즉 소생하거나 접붙일 수 있는 가능성이 남지 않고 다 소멸된다. 반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들은 공의와 치유와 즐거움을 경험할 것이다. 공의의 해가 떠오르면 어둠 속에 숨겨진 불의가 다 드러난다. 해의 날개에 함께 한 치유는 의인에게 생명과 구원, 하나님의 호의가 임함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의인들은 불에 타 소멸한 악인들과 달리 밖으로 나가서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공의와 이 모든 혜택을 입고 송아지처럼 즐거워 뛸 것이다(렘 50:11). 그뿐만 아니라 의인들은 악인들을 심판하는 데 동참할 것이다. 악인들은 지푸라기처럼 다 소멸하여 의인의 발바닥 밑에서 재로 나뒹굴게 된다. 미가서에서도 의인을 사자로 비유하여 원수를 멸하는 심판의 도구로 기술한다. 이슬과 비로도 표현하여 축복의 도구로 쓰임 받을 것도 예고했다(미 5:7~9).
질의 문답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 1:2에서부터 시작하여 4:3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로 일단락된다. 이 표현은 말라기를 통해 전달되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강조해 준다. “만군의 여호와(많은 군대의 여호와)”란 칭호는 하나님이 온 세상에서 가장 용맹스러운 용사이자 왕임을 함축하는 표현이다. 이 호칭은 포로 귀환 공동체에 언약의 삶을 살며 종말론적인 소망을 가질 것을 권고하는 역할을 했다.
4~6절은 하나님의 마지막 권고이다. ‘내 종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라’로 시작된다. 단지 말라기의 결론만이 아니다. 열두 권의 소선지서(호세아~말라기)를 포함한 전체 선지서의 마지막 단락으로 의미심장하다. “기억하라(자카르)”는 명령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식, 인지, 이해력을 가지라는 의미가 아니다. 말씀에 대한 행동력, 실천을 촉구하는 명령이다. 하나님이 주신 수많은 가르침을 나와 관계없는 낯선 것으로 여긴다면(호 8:12) 기억해도 소용없다. 또한 기억해서 실행해야 할 구체적 내용은 하나님이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해 모세를 통해 주신 법(율법), 율례와 법도(4절)이다.
시내산 언약을 통해 주신 율법은 십계명과 그에 부속하는 율례들(출 20~23장)을 가리킬 수 있고, 모세오경 전체를 가리킬 수도 있다. 본문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굳이 구분된 특정한 것이 아니기에 율법, 율례, 법도의 내용을 따로 구분하여 나누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모세오경은 모두 언약을 기반한 거룩한 백성이 되는 지침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크고 두려운 날(4:1, 5), 즉 여호와의 날이 이를 것을 예고하시면서,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겠다고 말씀하신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분열 왕국 시대 아합왕이 통치하던 시기에 사역한 선지자였다. 그는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자(왕하 2:11)이며, 앞서 3:1에서 길을 준비할 자로 하나님이 보내겠다고 하신 사자다. 예수님께서는 3:1과 4:5에서 예고된 엘리야가 세례 요한임을 밝히셨다(마 11:10, 14).
종말 전에 이 선지자를 보내시는 이유는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고,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께로 돌이키게 하시기 위함이다. 이처럼 시내산에서 백성에게 준 계명을 통해, 하나님이 보내는 선지자를 통해, 이제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하나님과 올바른 언약 관계로 돌아오도록 수고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여러 방법으로 백성을 부르는데도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은 저주로 그 땅을 치실 것이다. “저주(헤렘)”로 번역된 단어는 “진멸”이라는 뜻도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실 때 그 땅 일곱 족속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는데(신 7:1~2; 20:16~18), 지금은 그 진멸의 저주가 이스라엘에게도 임할 수 있음을 경고하신 것이다. 가나안 땅의 이방인들이 진멸 당한 이유가 죄였듯이, 이스라엘에게 경고된 진멸 또한 죄와 관련이 있다. 하나님의 경고는 이스라엘이 경각심을 갖게 하여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바람은 엘리야(세례 요한)가 올 당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말라기의 말씀이 선포되는 포로 귀환 공동체와 그 후에 올 모든 세대에게 기대하시는 바다.
나는?
-그날에는 모든 것이 드러난다. 지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고백에 아무 반응도 안 하시는 듯 보이지만, 정한 날이 되면 이 백성의 말과 행실을 기억하여 그들을 가장 소중한 보물로 삼고, 가장 사랑하는 자녀로 아끼실 것이다. 또 지금은 의인과 악인,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와 경외하는 자가 구분되지 않는 혼돈의 시대이지만, 주께서 정하신 날이 오면 누구든 하나님을 섬기는 의인과 섬기지 않는 악인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이 땅을 위해 하나님을 버렸고, 누가 하늘을 위해 이 땅에 가치를 추구하지 않았는지 드러날 것이다. 아무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무익하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명령을 지키는 일로 세상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소외되는 경우가 있다(3:14). 또한 교만한 자와 악한 자가 창성하기도 한다(3:15). 이런 일들을 통해 나를 혼란스럽게 하며, 하나님을 배반하도록 유혹한다. 믿음 때문에 당하는 아픔이 있다면, 그러므로 분별하여 극복해 가기를 힘써야 한다. 극복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데까지 이를 수도 있다.
-그날은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날이다. 백성은 교만한 자가 복되고, 악한 자가 창성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고 말하면서 불의에 영합하는 삶을 정당화하고 있으나(3:15), 하나님이 정하신 날이 오면 그들이 비아냥거리던 ‘공의의 하나님(2:17)’이 홀연히 임하실 것이다.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를 초개같이 하셔서 극렬한 풀무불에 뿌리와 가지 하나 남지 않게 사르실 것이다. 악인은 불에 타는 심판을 내리시겠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치료하는 광선으로 온전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던 절대다수의 무리 사이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면서 겪었던 모든 고난과 눈물과 상처들을 고쳐주시고 위로하실 것이다. 기쁨으로 춤추게 하실 것이다. 악인을 심판하는 자리에 앉게 하실 것이다.
-무질서와 혼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지극한 관심을 보이시는 하나님이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3:16)”은 반역의 세대 속에서 살지만, 하나님의 왕권을 존귀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남은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특별한 소유”로 여기며 보호해 주신다(3:17).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만 신뢰하며 순종의 삶을 살고 있는가! 거역하고 무시하며 조롱하는 세상에서 하나님만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사는가?
-교만한 자들과 악을 행하는 자들을 철저하게 심판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소망을 주신다(4:1~3).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믿음 없이 살아가는 자들은 철저한 심판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다. 그렇게 누리는 의인들의 구원은 외양간에서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자유와 기쁨을 만끽하게 하실 것이다.
-그날을 위해 지금은 돌아와야 할 때이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모세에게 명한 법을 기억해야 한다. 은혜로 구원하시고 언약을 맺은 첫 순간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언약의 사자를 예비하는 엘리야(세례 요한)가 와서 그들의 마음을 아비들(열조들)의 마음으로 돌이킬 때 반응할 것이다. 엘리야를 통해서 바알에서 여호와께로 돌아온 열조들처럼 언약 관계를 회복하지 않고서는 크고 두려운 심판의 날에 진멸(헤렘)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셔서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이 엘리야는 세례 요한이다(눅 1:17). 엘리야의 사역은 백성을 돌이키는 사역이다(왕상 18장). 하나님은 지금도 완악한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촉구하신다.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에 믿음으로 반응해야 하지 않을까?
-그 때에 이르면 모든 것이 드러난다. 그 때에 이르면 피할 수 없다. 특별한 소유로 거둠을 받을 지, 용광로 같은 불을 받을 지…. 이렇게 선명한 “그 때”이기에 하나님께서 오늘 나의 믿음의 의지를 시험하신다. 오만방자한 하나님을 무시하는 세상 속에서 “피차 말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드러내는 삶을 살라고 말이다. 그 때에 이미 정한 것이 드러난다. 그러니 그 때가 이르기전 돌이켜야 한다. 오만한 무시에서 겸손한 경외함으로 말이다.
-알아서 돌이키라 하지 않으신다. “율례와 법도”의 언약을 기억하여 그대로 행함므로,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어 일깨워 주심으로 이를 따라 돌이키라 하신다. 돌이켜야 산다!. 재로 짓밟힐 존재에서 하나님의 귀한 소유로 살 수 있다. 돌이킴이 이 시대에 주신 은혜이다.
*말씀을 묵상하는데, “경외함”에 대한 하나님의 요청이 분명하게 들려진다. 나는 일상에서부터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하고 있을까? 말씀을 듣고 기억하여 행하는 삶을 살며 혹시 오만하여 하나님을 무시하는 경향에 침묵하고 있지는 않을까? “피차에 말”한다고 했는데, 분명 소수가 다수에게 했을 터, 그러한 용기와 담대함이 내게는 있을까?
*대다수의 오만과 무시의 환경 속에 소수의 겸손과 경외함으로 든든히 무장해야 하겠다. 하나님의 러브레터가 절절하구나…. 마지막 심판전에 어떻헤서든 마음을 돌이키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절절하구나… 결국 하나님의 러브레터에 대한 답장은 “경외함”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정하여 말씀하여 주신대로 순종하며 살아내려 할 것이다. 결국 그 때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나의 모습이 그때까지 살아낸 나의 삶을 통한 답장일 것이다. 답장 잘 써 내려 가야겠다! 오직 말씀의 은혜 아래 말씀대로… 그렇게 그렇게 답장을 써내려 가야지…..
*주님,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을 회복하시겠다는 그 약속이 이미 성취하셨고, 진노 중에도 언약의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경외하고 존중하며 말씀따라 살아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