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오직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누리는 은혜와 자비 [시편 116:1-11]
 – 2024년 12월 28일
– 2024년 12월 28일 –
 
본 시편은 생사를 결정하는 삶의 위기에서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개인적인 감사시다. 감사뿐 아니라 탄식과 기도, 확신과 서원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듯 모든 시편의 요소가 뒤섞여 있기에 단락 구분은 쉽지 않다. 하지만 본 시편은 시대 배경이나 구체적인 어려움의 내용이 분명치 않음에도 여러 차례 죽음의 위기를 경험하고 부른 노래임이 틀림없다. 다만, 본 시편 후반부에서 여호와의 성전 뜰을 언급하며 서원을 지킨다는 말에 근거하여(19절) 예배 의식이나 절기 예식에서 불렸을 것으로 추측한다. 
 
시편 116편은 할렐루야 시편 모음집의 여섯 번째 시편으로 115편에서 언급된 우상의 헛됨과 하나님의 축복을 대비하며 사용된 죽음의 모티프가 중심 주제로 등장한다. 여호와께서는 언약적 성실하심을 통해 그 백성을 죽음으로부터 건져주신다는 것이 주요 메시지다. 
 
 
 
1. 여호와께 기도함(1~4절)
본 시편은 개인 감사시다. 감사시란, 자신을 고난으로부터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다. 이미 구원을 경험하였기에 그 구원경험을 묘하사면서 여호와께 감사드리고,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여러 가지 통찰들을 표현해낸다. 1~2절은 시인이 하나님께 기도한 경험을 묘사한다. 1절은 여호와께서 시인의 음성과 간구를 들으시기에 여호와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사랑한다(아하브)”라는 단어는 시편에서 시인이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에 대한 사랑을 고백할 때 종종 이 어휘를 사용한다. 또한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신 것을 확신에 찬 어조로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여호와를 사랑한다고까지 고백하는 것은 구원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2절 역시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셨다는 과거의 경험을 고백한 후에 평생 주님께 외칠 것을 선언한다. 1~2절은 시인이 갖고 있는 과거의 구원 경험을 기초로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라는 결연하고 깊은 기도에 대한 의지를 선명하게 표현한다. 
 
3절은 1~2절에서 말한 구원의 경험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시인은 사망의 줄에 묶였었고 스올의 고통을 마주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2절 하반절을 직역하면 “스올의 고통이 나를 발견했을 때, 내가 환란과 슬픔을 발견했을 때”이다. 스올이란 죽음의 영역을 뜻하므로, 이 구절은 죽음이 시인을 찾아와서 시인이 그 죽음을 마주하고 깊은 슬픔을 경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순간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했다.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건져 달라고 간구한 것이다. 대개 죽음의 순간을 마주할 때 두려움에 빠져 절망을 경험하게 되는데, 시인은 오히려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는 것을 선택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이에 대한 설명이 5절이다. 그리고 또 주목해야 할 것은 시인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했다는 것이다. 이 표현은 할렐루야 시편 모음의 마지막 시편인 118편에서 집중적으로 조명된다. 즉, 116편과 118편은 시의 주제가 유사하다. 
 
 
 
2. 여호와의 구원하심에 대한 묘사(5~8절)
이 단락은 시인이 경험한 구원 사건에 대해 서술한다. 그 구원의 경험을 통해 시인은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배웠다. 5절은 출애굽기 34:6의 요약적인 서술이다. “은총(한눈)과 자비(라훔)라는 문구를 통해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표현한다. 이런 표현은 이미 111편과 112편에서 이미 등장했었다(시 111:4; 112:4). 특히 112:4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성품을 묘사할 때 ‘의로움’을 뜻하는 “짜디크”를 함께 사용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곧 의인임을 강조했다. 본문은 이 “은총(한눈), 자비(라훔), 의(짜디크)”를 모두 사용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성품을 다시 진술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에 성실한 분이시며, 그 가운데 그분의 의로우심을 드러내시는 분이시다. 그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와 의로움이 시인 개인을 죽음으로부터 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6절에서 “순진한 자”를 지키셨고, “낮은 자”를 구원하셨다는 표현으로 다시 설명한다. ‘순진한 자’는 미성숙한 자라는 의미로서 잠언에서는 지혜의 길과 미련함의 길 앞에 서서 선택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알지 못해 유혹에 흔들리고 있는 자들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즉, 6절의 시인이 이러한 순진한 자였기에 죽음의 유혹에 빠져 들게 되었지만, 여호와께서 자신을 지켜주셨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낮은 상태”에 있을 때 구원해 주셨다고 고백하는데, “낮아짐”이란 스올을 향해서 낮아졌다는 뜻이다. 죽음에 매우 가까이 이르렀음을 뜻한다. 
 
7절은 그런 상태에서 구원받음의 결과를 노래한다. 이제 “평안함”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평안함(마노아흐)”은 ‘안식하다’로 번역되는 누아흐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에서 이겨서 땅을 차지하고 하나님의 왕국을 든든히 세웠을 때 주로 사용되었다. 즉, “마노아흐”는 단순한 내적 평안의 상태 정도가 아니라 외적인 평안과 회복의 상태까지 모두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8절은 이렇게 죽음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한다. 자신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셨고 자신의 눈을 눈물에서, 자신의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다고 표현한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그의 언약적 성실하심과 의로우심으로 인해 시인을 죽음에서 구원하여주셨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3. 감사의 결단(9~11절)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결단을 표현한다. 9절은 “내가 생명의 땅에서 여호와 앞에서 행할 것이다”라고 분명하게 선언한다. “생명의 땅”이란 죽음을 벗어난 땅이다. “생명(하임)”으로 번역된 단어는 육체적인 생명뿐 아니라 삶에서 누리는 축복까지 포괄적으로 의미할 수 있다. 시인은 이제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생명을 가지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아가게 도리 것이라고 고백한다. 
 
10~11절은 시인이 죽음의 위기에 빠졌을 때를 잠시 회고하는 내용이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였지만, 주변 사람들이 거짓말하는 것에 놀랐다고 말한다. 시인의 주위에는 거짓말하는 자로 가득했으나 시인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기에, 생명의 땅에 다시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죽음의 위기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빛을 발하고 있다. 
 
 
 
나는?
-시인은 아무도 구원해줄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드린 간구를 듣고 대답해주신 하나님께 자신의 사랑을 정성껏 표현한다. 그리고 이제는 다급할 때만이 아니라, 또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하나님께만 평생에 기도하겠다고 다짐한다. 기도가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수단이나 위기에서 벗어나는 방편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과 교제하는 통로가 되기를 바란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이 기도다.
 
-시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으로 기도한다. 이 기도는 이전에 절박한 상황에서 기도했을 때 응답해주신 하나님을 잊을 수 없었다. 그 응답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사랑을 입어 사랑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사랑하니까 그럴 수 있다. 
 
-죽을 고비에 있던 시인을 구해 주신 하나님이시다. 사망의 줄이 두르고 있어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시인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여길 만큼 고통스러웠고 이대로 생이 끝난다는 생각에 몹시 슬펐다. 그때 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간절한 간구뿐이었다. 제발 살려주시기를 구할 뿐이었다. 위태로운 목숨 앞에서 하나님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 없고 도움도 되지 않고 생각나지도 않았다. 
 
-어떤 문제든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은혜롭고 의롭고 긍휼이 많으신 성품을 알기에 낙심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큰 확신 가운데 기도할 수 있었다. 고통의 한가운데서 시인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신뢰를 꺾으려던 자들을 향해서는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이 자신을 외면한 듯 보이는 순간에 도리어 다른 어느 때보다 더 선명하게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에 시인은 믿음의 절개를 지킬 수 있었다. 
 
-시인의 기도는 간구를 들으시는 주님을 사랑하기에 망설임 없이 드릴 수 있었다. 환난과 슬픔이 깊을 수록 더욱 기도하였다. 친구들의 조롱과 놀림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이 기도를 더욱 붙잡게 한 것이다. 
 
*신앙은 관념적이지 않다. 시인이 죽음의 고통과 슬픔 속에서 하나님을 앙망하며 구원을 호소하는 것은 관념적 지식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하나님이 늘 자신과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는 분이라는 체험적 앎이 있기에 가능하다. 고달픈 삶이 지속되지만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이끌어 주실 것이다.
 
 
 
*주님, 사랑하는 주님과 기도로 늘 만나겠습니다. 
*주님, 나의 환난과 슬픔을 아시는 주님, 제 앞에 놓여 있는 큰 산을 함께 넘어가 주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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